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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전생 더 빌런-275화 (275/367)

무한전생-더 빌런 275화

26-빌런본색

경완이 이관영을 다독였다.

“걱정하지 마세요. 이 차장님이 알고 있는 거 말고 그 주변을 두들겨볼 테니까요. 먼지 털다 보면 굵직한 거도 나오겠죠.”

이관영은 자신의 제보를 직접적으로 활용하진 않을 거라는 경완의 말에 다소 안심이 되었지만 그래도 자신의 안위를 위해 한 번 더 물어보았다.

“어떻게 터실 생각이십니까?”

“거기까지 말해주기는 힘드네요. 이 차장님이 도와주지 않는다면 모를까.”

“아이고 아닙니다!”

이관영은 혹여나 경완이 자신을 끼워 넣을까 화들짝 놀랐다. 위험하고 골치 아픈 일에 발을 담그기는 싫었다. 딱 보니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으면 되는 구도인데 왜 굳이 끼어든단 말인가?

그래서 이관영은 아주 사소한 소스 하나를 경완에게 던져줬다.

“서 차장에게 내연녀가 있다는 소문이 있어요.”

“겨우 불륜 가지고 국정원 차장 자리가 날아가겠어요? 증거도 없이 소문뿐인데? 다른 거 없어요? 화끈하게 날릴 수 있는 거로요.”

“어…… 화끈한 건 좀 곤란합니다.”

화끈하면 화끈한 만큼 소스가 이관영으로부터 유출되었을 거라고 서 차장은 확신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다른 이가 아니라 이관영 본인에게 곤란한 일이 생긴다.

거절에 가까운 반응에 경완은 입맛을 다셨다.

“어쩔 수 없죠. 그럼 그 불륜 상대에 대한 정보라도 좀 주세요. 빠르게 처리하게요.”

경완의 말에 이관영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그 불륜녀의 신상과 거주지에 관한 걸 알려주었고, 경완은 그 정보를 유용하게 사용하기 위해서 다시 야간 외출을 시작했다.

“오빠. 요즘 어딜 그렇게 쏘다니는 거야?”

그리고 미연에게 걸렸다.

경완은 그녀의 도끼눈을 피해 말꼬리를 늘어뜨렸다.

“어. 음…… 그러니까…….”

하지만 그녀의 예리한 눈초리는 그간 경완의 궤변을 못 이기는 척 넘어가 줬지만 이번에는 어림없다는 듯 싸늘하게 빛나고 있었다.

어. 음. 그러니까 따위로 말꼬리를 흐리며 적당한 변명을 구상하고 있던 경완은 변명을 포기하고 솔직하게 말했다.

그리고 미연은 경악했다.

“그러니까 오빠를 협박한 국정원 차장하고 경찰청장하고 서울지검장을 죄다 물 먹이겠다고?”

“그렇지.”

“오빠, 미쳤어?”

경완은 뚱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안 미쳤어. 오히려 가만히 있는 게 미친 거지.”

경완은 미연을 설득했다.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가마니로 보고 자꾸 건들 거라고. 그러니 최소한의 경고가 필요하다고 말이다.

“그게 물 먹이겠다는 이유야?”

“손에 들린 칼을 뺏는 게 더 안심이 되긴 해.”

“그러다가 더 앙심을 품고 달려들면?”

“다구리 당할 땐 한 놈만 조지라는 말이 있어. 독한 놈이라는 인상을 줘야 만만하게 보지 않거든. 그 세 사람에게 서로를 향한 의리 같은 게 있을 것 같아?”

아마 한 놈이 나가리 되는 판을 보고 감히 더 나갈 깜냥이 있을까? 그래서 굳이 경완이 서충헌부터 조지려는 거다. 가장 만만하기도 하고.

서울지검장의 뒤에는 검찰 카르텔이 있고, 경찰청장 뒤에는 경찰이라는 거대 조직이 있었다.

그에 비하면 국정원 차장은 아무것도 아니다. 과거 독재자의 수족이었던 시절이라면 몰라도 정권의 향방에 따라 왔다갔다 할 정도로 불안정한 자리라는 것도 다른 두 놈에 비해 약골이라는 걸 증명했다.

경완의 이야기를 다 들은 미연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건 내가 끼어들 일이 아닌 것 같네.”

아무리 그녀가 탑연예인이라고 해도 공권력을 상대로 어떻게 할 수는 없었다.

다만 그녀가 할 수 있는 말은 하나뿐.

“무리하지 마.”

어디 자신이 무리 같은 거 할 것 같은 인간인가?

경완이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쓸데없는 걱정을 다하네. 악!”

그리고 심술 난 미연에게 옆구리를 뜯겼다.

그는 옆구리를 문지르며 물었다.

“도대체 무슨 걱정을 하는 거야? 나 이경완이라고.”

“별걱정 안 했어.”

“그럼?”

“난 또 오빠가 뒤늦게 밤문화에 빠진 줄 알았지.”

“내가?”

“그 왜 서울지검장이 찾아와서 뭔가 부탁했다고 했잖아.”

검찰의 인간관계는 술자리에서 만들어진다지 않은가? 동료도 술자리에서 사귀고, 청탁도 술자리에서 받고, 상대 변호사도 술자리에서 만나고, 여자도 술자리에서 만나고. 마담뚜를 장모님으로 두신 그분들이야말로 룸살롱 문화의 숨은 주역들 아니겠는가?

그래서 경완이 그 영향을 받은 줄 알았다는 게 미연의 대답이었다. 늦바람이 무섭다나?

경완은 그러한 그녀의 말에 큭큭 웃었다. 참 별의별 걱정을 다한다. 아마 이런 오묘한 맛 때문에 누군가와 같이 사는 것이 아닐까?

* * *

경완의 밤마실이 결실을 본 건 약 일주일만이었다.

생각보다는 훨씬 빠른 시간 안에 성과를 얻은 것은 내연녀의 집 여기저기에 몰래 설치한 몰카 덕분이기는 하지만 운도 좋았다. 서충헌 차장이 내연녀의 집을 방문해서 나눈 대화가 마침 경완과 관련되었기 때문이다.

[이경완이 꿈쩍도 하지 않아.]

[자기, 어떻게 할 거야? 투자한 회장님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 같은데?]

[언론의 협조를 받아야지.]

[그럼 김 회장님한테 연락할까?]

경완은 둘의 이야기에서 그간 몰랐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판검사는 사법 권력을 쥐고 있는 존재들. 그리고 권력을 쥐면 으레 똥파리들이 모여들게 마련이었고, 이렇게 권력에 날아드는 똥파리들이 판검사 코 꿰는 수단은 고금을 통틀어 유서가 깊었다.

‘검사와 조폭’이라고 구글링만 해도 그 방법을 풍자한 만평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일종의 클래식이라고 할까? 시스템에 대한 권한을 쥔 자를 손아귀에 넣는 방법은 고금 이래로 변한 적이 없었으니, 인간적인 정으로 접근해서 한 단계 한 단계 가랑비에 옷 젖게 하듯이 타락시키는 것이다. 뭔가 이건 아니다라는 것을 깨달았을 무렵에는 돌이킬 수 없는 수렁에 빠져 버린 상태.

한낱 조폭조차 쓰는 방법인데 돈 많은 회장님들이 못 쓸 리 없었다.

그것도 조폭처럼 천박하거나 비굴한 방법이 아니라 격조 높고 합법적인 수단으로 말이다.

사외이사, 고액 연봉의 법무팀장 자리, 혹은 세금이 다 처리된 고액 자문료 등이 바로 그 방법이었으니, 전관예우라는 건 결국 권력과 자본이 짝짜꿍할 수 있도록 묵인된 구조에서 꽃핀 관행에 불과했다.

그리고 서충헌은 사법권력과 자본가를 연결해주는 부업을 했다. 국정원의 정보력으로 적당한 판검사를 물색해 적당한 회장님과 연결해주는 것이다.

어디 재벌 회장님처럼 장학생을 만들기에는 이미 그러고 있는 그 힘센 재벌의 눈초리와 비용이 부담스러운 회장님들에게 적절한 검사를 매칭시켜주는 일종의 마담뚜 역할이었다. 여기서 재벌 회장님들과의 접선을 담당하는 동업자가 바로 내연녀였던 것이다.

그런데 이 사업에 비상이 걸렸다. 기껏 연결해주었던 판검사가 죽어나가기 시작했던 것.

아직 죽은 사람은 열 명도 채 되지 않았지만, 여느 재벌처럼 장학생을 충분히 보유하지 않은 회장님들의 보험이 하늘나라로 가는 상황.

서충헌이 어떻게든, 이경완을 동원해서라도 판검사 살해범을 잡으려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회장님들의 불신으로 사업 자체가 날아가는 정도라면 감수할 수 있지만 투자한 자산이 날아간 그들의 분노를 감당할 자신은 없었던 것이다.

파멸하기 싫다면 어떻게든 판검사 살해범을 붙잡아 고객들에게 면피할 수 있어야 했다.

그래서 이경완이 검찰의 기밀 자료를 입수한 사실에 놀라고 기대했다. 어디서 그런 정보력을 얻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를 움직일 수 있다면 판검사 살해범을 붙잡을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다.

뿐만 아니라 그를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이 확인되면 그의 이용가치와 이용방법은 새로운 상품이 될 수 있으리라.

그래서 서충헌은 김 회장을 만났다. 회원제 고급 요정은 은밀한 이야기를 하기에 딱 좋았다.

“그래서 이미연을 어떻게 해보겠다고?”

“일단 이경완과의 관계성을 다시 부각해야겠죠.”

반백의 김 회장은 서충헌의 계획에 미간을 찌푸렸다.

“위험해.”

“그냥 잠깐 이경완의 귀에만 들어갈 정도면 됩니다. 그 이후는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자넨 미국이나 한국정부가 게을러서, 아님 바보라서 그저 이경완을 두고 보고 있다고 생각하나?”

“누가 먼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려 하겠습니까? 그 때문인 건 저도 압니다.”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 일단 그것은 쥐새끼 공동체의 생존에 도움이 되는 일이기는 했다. 하나 공동체를 위해 총대를 메고 자신을 희생하는 건 너무나 어려운 문제였다.

그래서 김 회장은 서충헌의 제안에 살짝 흥미가 돋았다. 그가 총대를 멘다면야 투자를 고려할 만큼 리스크 분산이 되지 않을까?

“아는데 굳이 위험을 감수하겠다는 건가?”

“어차피 이대로 가만히 놔둘 수만은 없는 노릇 아니겠습니까?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누군가는 그자의 목에 방울을 달아야 합니다. 이는 국가를 위해서라도 필요한 일입니다.”

서충헌의 말에 김 회장은 장고에 잠겼다.

국가를 위해서라는 말에 코웃음이 나올 뻔했다. 다만, 언론사주로서 그럴듯한 명분의 중요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고 서충헌의 입에 발린 말이 관련된 이들, 그리고 이경완을 건드는 걸 저어할 인사들을 설득할 일종의 가이드라인이라는 걸 파악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강력하고 위험한 초능력자는 사회의 질서를 위해서라도 통제되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이미연이라는 배우에게 불이익이 발생한다고 해도 그건 사회적 편익과 국가적 차원에서 감수해야 하는 일이었다.

그걸 왜 자신이 결정하냐고? 그럼 아무것도 모르는 무지렁이 대중들이 그걸 결정할까?

결론을 내린 김 회장이 입을 열려는 순간 밖에서 소란이 일어나고 문이 벌컥 열렸다.

그러면서 들어오는 젊은 남자가 김 회장을 보며 말했다.

“영감님. 대답 신중하게 하세요. 뒈지고 싶지 않으면.”

남자의 모습을 확인한 김 회장은 놀라서 눈을 부릅뜨고 서충헌을 노려보았다. 아니! 일을 어떻게 처리했기에 이경완이 이 장소를 알고 이렇게 찾아왔느냐라는 비난이 섞여 있었다.

놀란 건 서충헌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놀라다 못해 심장이 멈추고 기절하고 싶을 정도였다.

그런 서충헌을 향해 경완이 감탄사를 날렸다.

“이야~. 밖에 가만히 듣고 있는데 가관이던데요, 서충헌 차장님?”

“어. 그…… 어. 그러니까…….”

서충헌 차장의 멍해진 머릿속엔 경완이 그간 무슨 짓을 해왔는지만 반복되어 떠오르고 있었다.

때리고 병신 만들고 죽이고.

설마 죽이지는 않겠지? 아니, 그럼 병신 만들 가능성은 높다고?

서충헌이 마른침을 삼키는 와중에 경완이 김 회장이라는 사람을 보며 말을 이었다.

“유명 언론 사주 김명전 회장님? 대답은요?”

밖에서 열심히 검색한 덕분에 서충헌이 누굴 만났는지 이름을 알 수 있었다.

김명전 회장은 경완이 턱 끝으로 서충헌을 가리키며 대답을 재촉하자 굳은 표정으로 서충헌 차장에게 이렇게 말했다.

“오, 오늘 일은 없었던 것으로 합세.”

“아이고~ 우리 공사다망하신 회장님을 쓸데없는 일로 헛걸음하게 한 것 같아서 죄송하네요.”

“커흠. 흠.”

경완의 너스레에 김명전 회장은 불편한지 연신 헛기침을 했고, 경완은 그런 그를 위해 호텔리어처럼 허리를 숙이며 길을 비켜주었다.

“나가시는 길은 이쪽입니다.”

그 말에 김명전 회장은 애써 침착하게 움직였지만 신발에 발을 다 집어넣기도 전에 서둘러 발걸음을 떼서 방을 나갔다. 그리고 검은 안개에 막혀 다가오지 못하는 자신의 수행원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입을 벙긋거리는 걸 보니까 소리도 차단된 모양이었다. 하긴 어쩐지 이경완이 들어오는데 소란이 없었다 싶었다.

김명전 회장을 고이 보낸 경완은 서충헌 차장 맞은편에 앉아서 손끝으로 육전 하나를 입에 넣었다. 그리고는 육전을 씹으며 아직 얼어있는 서충헌 차장에게 말을 걸었다.

“나한테 왜 이래요?”

“…….”

“말해요. 편하게.”

“…….”

이 상황에서 어떻게 편하게 말하란 말인가?

“파플로프의 개라고 알아요?”

갑자기 무슨 뜬금없는 파블로프의 개소린가? 싶었지만 이어진 설명이 가관이었다.

“저한테 아! 이 사람은 처맞아야 말을 할 수 있는구나라는 조건반사를 심어주고 싶으면 계속 입을 다물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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