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한전생 더 빌런-276화 (276/367)

무한전생-더 빌런 276화

26-빌런본색

경완의 말이 끝나자 접시 하나가 둥둥 떠올랐다.

아! 그런 뜻이었구나!

서충헌은 얼른 무슨 말이라도 하지 않으면 저 허공에 둥둥 뜬 접시가 자기 얼굴에 날아올 거라는 것을 깨닫고는 콱 막힌 목을 어거지로 뚫어냈다.

“무, 무무무, 무슨, 말을…….”

“왜 자꾸 나한테 시비를 거냐고요. 나 평화롭게 살고 싶은 사람이에요.”

경완의 말에 서충헌의 입에선 절로 지랄이라는 단어가 튀어나올 뻔했다. 평화롭게 살고 싶다? 그런 인간이 해온 짓거리들을 봐라. 어디 평화롭게라는 수식어 따위가 붙을 수 있단 말인가?

그래도 지랄이라고 말할 순 없었기에 서충헌은 더듬거리면서 스스로를 변호했다.

“다, 당신은 너무 강합니다.”

“그래서 통제가 필요하다?”

고개를 끄덕이는 서충헌을 향해 경완은 피식 웃었다. 딴에는 김 회장 앞에서 꺼낸 대의를 방패로 삼을 모양인데 경완이 어떻게 여기에 왔는지 모르는 모양이었다.

“그게 아니라, 본인 사업에 어떻게든 도움이 되게 만들려는 거겠죠. 안 그래요, 뚜쟁이씨?”

“뚜……쟁이라니요?”

“돈에 법조인으로서의 양심을 기꺼이 팔아넘길 사법창녀들과 그런 인간들이 필요한 회장님하고 연결해 주는 사업을 하시잖아요. 아마 동업자 이름이 전소희 씨였던가?”

“…….”

서충헌은 머리를 망치로 맞은 것 같은 느낌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이경완은 모든 것을 알고 온 것이다.

“사표를 쓰실래요. 짤리실래요? 짤리는 것보다는 사표 쓰는 게 아무래도 연금도 타 먹을 수 있지 않을까 싶은데…….”

“즈, 즈즈즈, 스즌거 이, 있습니까?!”

“제가 굳이 증거까지 찾아야 돼요? 안 그래도 지금 개소리를 듣고 참느라 인내심이 바닥 직전인데 완전히 인내심이 바닥으로 떨어지면 어떻게 될까요? 지금도 법적인 테두리 안에서 해결하려고 많이 참고 있거든요.”

경완이 협박하면서 다시 육전을 씹자 서충헌은 입을 다물었다.

이성은 분명 경완의 말대로 하는 것이 옳다고 하는데 감정은 그러면 그간 쌓아온 것들을 다 버리라는 소리냐며 울분을 토하고 있어서 차마 입술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 모습에 경완은 혀를 찼다.

“쯧쯧쯧 정신 못 차렸네.”

그리고 둥둥 떠 있던 접시가 총알같이 서충헌의 얼굴로 날아들었다.

첩!

“쿠엑!”

한우 잡채가 서충헌의 면상을 기름기 반들반들하게 만들고는 귀와 어깨에 걸쳐졌다.

잡채만이 아니었다. 김치, 전, 육회 등의 각종 요리가 담긴 쟁반과 그릇이 서충헌의 면상을 향해 날아들었다. 그는 그것을 피할 수도 막을 수도 없었다. 경완의 초능력에 온몸이 붙잡혀 있었기 때문이다.

“허푸! 허풉! 허업!”

서충헌은 허리를 비틀고 고개를 돌리며 숨을 막아대는 음식을 피해 어떻게든 공기를 흡입하려고 애를 썼고, 경완은 계속해서 그의 면상에 접시를 집어 던졌다.

마침내 상 위에 남은 그릇이 없어졌을 땐, 경완은 바닥에 쌓인 음식물을 염동력으로 퍼 올려 서충헌의 면상에 퍼부어주었다. 간간이 접시나 그릇을 던져 숨 막히는 와중에 골이 띵한 충격을 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오늘의 석식 메뉴는 서충헌 차장 면상 개기름 비빔밥입니다!”

“허푸! 허푸! 사람, 허푸! 살!”

물에 익사하는 것도 아니고 음식에 질식사하다니!

농담이 아니라는 게 비참할 정도였다.

경완은 음식으로 강제호흡곤란을 일으켜 서충헌 차장의 정신을 충분히 빼놓은 다음에 다시 물었다.

“얌전히 사표 쓰고 연금 타 먹을래요, 아니면 짤린 백수 될래요?”

“사! 사! 사, 사!”

간신히 공기를 들이마신 서충헌 차장이 대답하려고 할 때, 누군가 경완이 주변에 쳐놓은 염동력의 막을 찢고 난입했다.

“빌런은 얌전히 항복해라! 이 베오울프 님에게 처맞고 싶지 않으면!”

전혀 한국인스럽지 않은 코스튬과 헤어스타일을 한 근육질의 사내가 한국어로 외쳤다.

경완은 그런 히어로를 향해 즉시 손짓했다.

“히어로님! 여기에요, 여기! 여기 이놈이에요!”

“하하하! 빌런! 얌전히 체포되라!”

호탕하게 웃으며 방으로 들어온 베오울프라는 히어로는 경완이 가리킨 서충헌 차장을 붙잡으려고 손을 내밀다가 고개를 갸웃했다. 뭐가 좀 이상했던 것이다.

분명 빌런 신고(빌런이란 초능력으로 각종 범죄를 일으키는 자들을 뜻한다)를 받고 출동했는데 아무리 봐도 양복을 입은 채 전신이 음식물 범벅이 되어 있는 중년인이 빌런이라고 생각되지 않았던 것이다.

저 음식 범벅이 빌런이라면 자신이 찢고 들어왔던 염동력의 벽은 무엇인가? 그 정도 염동력이면 저렇게 음식 범벅이 되었을 리가 없었다. 음식을 자신의 온몸에 바르며 쾌감을 느끼는 변태라면 몰라도 말이다.

베오울프라는 히어로의 시선에 멀쩡한 경완에게 닿자 경완은 다시 서충헌을 가리키며 말했다.

“빌런 맞아요! 공권력으로 제 이득을 채우는 빌런이에요!”

공권력? 무슨 능력이지? 염동력의 일종인가?

베오울프는 미간을 좁히며 입술을 뗐다.

“공권력이라니? 그게 무슨 능력이지?”

처음 들어보는 초능력이었다. 공간에 간섭하는 힘인가?

경완이 순발력 좋게 설명했다.

“손도 대지 않고 다른 사람을 압박하고 괴롭히는 능력이에요!”

그렇군!

경완은 맹세코 진실만을 이야기했고, 공권력이 염동력의 일종이라고 오해한 베오울프는 서충헌 차장을 붙잡았다.

하지만 용의자가 저항이 없자 다시 의아해했다. 검은 안개로 이루어진 것 같은 벽을 뚫고 들어올 때만 해도 한 판 붙을 줄 알았는데 이렇게 쉽게 체포된다고?

의아해하는 그를 빌런 용의자는 더욱 당혹스럽게 했다. 용의자가 자신의 손을 덥석 잡고는 서럽게 울기 시작한 것이다.

용의자를 고발하던 의문의 청년이 당혹해하는 베오울프를 지나가며 한마디 했다.

“역시 베오울프 님! 악독한 빌런을 이렇게나 쉽게 제압하시다니! 대단합니다! 당장 SNS에 올려야겠어요!”

그러면서 베오울프를 향해 스마트폰 카메라를 들이밀고 몇 방 찍고 자연스럽게 나가는 것이 아닌가?

베오울프가 그런 청년을 붙잡았다.

청년이 놀라는 표정으로 물었다.

“왜요?”

“참고인 조사.”

경완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지나갔기 때문에 순간 얼이 빠져 반쯤 멍청한 표정을 짓는대도 베오울프의 입에서 튀어나온 한마디가 경완을 실망시켰다.

요즘 히어로들은 히어돌이라던데 역시 외관이 아이돌이 아닌 인간이라서 그런가 히어돌은 아닌 모양이었다. 민영화된 치안을 담당하는 직업인으로서 최소한의 개념이 탑재되어 있었다.

경완은 고개를 끄덕이며 순순히 베오울프의 뒤를 따라 움직였다.

그리고 베오울프가 방을 나왔을 때 간신히 정신을 차린 서충헌이 경완을 가리키며 소리를 질렀다.

“저놈! 저, 쿠헥!”

하지만 그 순간 경완의 코크스크류 블로우가 서충헌의 턱을 깔끔하게 돌려버렸고, 서충헌은 눈을 까뒤집으며 의식을 잃었다.

베오울프는 갑작스러운 상황에 깜짝 놀랐다.

“무슨 짓인가!”

“아니, 갑자기 발광하려고 하길레, 저도 모르게…….”

저도 모르게라는 변명치고는 기술적으로 매우 깔끔했는데?

하지만 베오울프는 더 이상 의문을 이어갈 수 없었다. 자신의 손에 붙잡힌 용의자가 의식을 잃자마자 사람들을 막고 있던 뿌연 염동력의 벽이 사라지고 사람들이 몰려왔기 때문이었다.

뭐지? 진짜 음식을 온몸에 바르는 걸 좋아하는 변태인가?

베오울프는 자신의 입 앞에 놓인 마이크에 적당한 답변을 하느라 정신이 없었지만 현장에 있던 참고인이 어디 딴 데로 새지 않도록 신경을 쓰면서, 그 두 사람을 경찰에 인계하는 것에 성공했다.

남은 건 이제 대기실로 돌아와 출동일지를 작성하는 것뿐이라 다른 사람들 모르게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베오울프라는 히어로는 서류작업이 싫었다.

한편, 경찰서에 온 경완은 얌전히 책상 앞에 앉았다. 눈앞에서 노트북을 펼치고 앉는 경찰의 어깨너머로 초인범죄과라는 간판이 보였다.

“이름.”

“저 참고인이에요. 취조하듯 말하지 말아 주세요.”

경찰은 경완의 말에 고개를 살짝 들었다. 뭔가 익숙한 경완의 얼굴에 고개를 갸웃하면서 말했다.

“그래도 용의자가 응급실로 갔으니까 좀 더 자세한 사정청취를 위해서라도 어쩔 수 없습니다.”

“그래요, 그럼.”

그 뒤로 경완은 경찰의 사정청취에 성실하게 임했다.

“이름.”

“이경완이요.”

그 익숙한 이름에 경찰은 잠시 멈칫하고는 다시 고개를 들어 경완의 얼굴을 보았다.

에이~. 설마. 동명이인이겠지. 얼굴도 좀 닮은 것뿐이고.

경찰은 경완의 진술 내용을 확인했다.

“어…… 그러니까 용의자의 이름은 서충헌이고 공권력이라는 능력으로 평범한 시민의 자유를 억압하고 그 과정에서 여성에게 협박을 서슴지 않는다는 말인가요?”

“네.”

경찰은 뭔 헛소리를 하냐고 말하려다가 뒤통수에서 들려오는 동료의 목소리에 입을 다물었다.

‘야야야! 이경완이 여기 왜 있어?’

‘이경완이라면 그 이경완? 에이 설, 지, 진짜네?’

‘아니, 그니까 이경완이 왜 여기에 있냐고?!’

‘나도 몰라!’

‘야야, 빨리 알아봐! 자칫하면 다 날아간다!’

뒤통수에서 들려오는 이야기에 사정청취를 하던 경찰은 어느새 입을 다물고 멍청하게 눈을 껌벅이며 경완의 얼굴을 보았다. 닮은꼴이 아니라 본인?! 진짜로?!

경찰서 내부는 어느새 숨 막히는 침묵에 휩싸였고, 그 원흉인 남자는 쑥스러운 듯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뒤통수를 긁적였다.

“어…… 사정청취 안 하나요? 빨리하고 집에 가고 싶은데…….”

“사, 사건 파일! 아, 아니지! 신고 접수받은 사람! 접수 어떻게 받았어!”

경완으로부터 사정청취를 기록하던 경찰은 이경완이 얽힌 이상 보통 사건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는 비명처럼 소리를 지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치 눈앞에 놓인 시한폭탄을 알아차리고 피하려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핵폭탄을 피하겠다고 도망치는 것보다 차라리 폭탄이 터지지 않도록 기도하는 게 더 현명한 짓이라는 걸 모르는 모양이었다.

‘야! 빌런 신고받고 출동했다며?! 제압은 누가 했는데?!’

‘뭐? 베오울프 따위가 이경완을 제압했을 리 없잖아?!’

‘도대체 무슨 일이야?!’

‘야! 응급실에 간 용의자 신원부터 파악해!’

경찰서 안에 있던 모두가 마치 자신이 맡은 일인 양 적극적으로 나서는 모습이 공무원답지 않다고나 할까, 위기의 순간에 힘을 모으는 한민족스럽다고나 할까?

하지만 국정원, 서울지검장, 경찰청장에 막강한 언론권력을 휘두르는 언론사주까지 얽힌 일의 전모를 파악하는 건 아무리 경찰조직의 중간간부라도 단시간에는 불가능했다.

“저기요~! 저 빨리 진술하고 집에 가고 싶은데요?!”

“아! 넵!”

경완이 목청을 높이자 진술서를 작성하고 있던 경찰이 동료들에게 등을 떠밀려서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식은땀을 흘리면서 자판을 두들겼다.

긴장을 했는지 오타도 많고 제대로 질문도 안 나왔다. 얼른 경완을 집으로 돌려보내고 싶은 모양이었다.

그런 경찰의 모습에 경완은 불쑥 한마디를 던졌다.

“경찰 아저씨 무슨 죄지었어요? 왜 그래요?”

“…….”

순간 타자를 치던 손가락이 멈췄다. 예전에 몇푼 좀 받은 게 떠올라 입을 열지 못한 것이다.

“혹시 죽을죄를 지은 건,”

절래절래!

경찰은 목이 부러질 기세로 흔들었다. 성의 좀 받은 게 죽을죄라고는 절대로 인정할 수 없었다. 돈 좀 받았다고 누가 죽거나 병신이 된 것도 아닌데 이경완에게 죽는다면 이보다 억울한 일이 또 있겠는가?

경찰관은 서둘러 진술서를 작성했고, 경완은 무탈하게 귀가했다.

경찰이 사건의 전후 사정을 대강 파악한 건 경완이 꿀잠 자고 있을 때였고, 보고가 경찰총장의 귀에 들어간 건 다음 날 아침이었으며, 경찰총장이 헐레벌떡 경완의 집에 방문한 건 그날 오전이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