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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전생 더 빌런-277화 (277/367)

무한전생-더 빌런 277화

26-빌런본색

“이경완 씨! 당신 무슨 짓을 한 겁니까?!”

“아이고! 우리 공사다망하신 총장님! 안 그래도 한 번 뵈려고 했는데.”

“지금 그렇게…….”

태평하게 있을 때가 아니라는 말을 하려던 경찰총장은 경완의 무심한 눈빛을 마주하고 깨달았다.

평범한 법질서를 따라 움직이는 평범한 서민들, 히어로들, 초인들. 그리고 법률이란 족쇄를 벗어 내던지려고 발버둥치는 빌런들.

그 모두가 사회의 법질서에 연연하는 이들이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눈앞에 있는 사내는 그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았다. 어떤 공권력이 감히 그에게 강제력을 발휘할 수 있을까?

그러한 깨달음은 마치 눈에 쓰였던 뭔가가 벗겨지는 느낌을 주었다. 왜 높으신 분들이 이경완이라는 이름 석자를 꺼내려고 하지 않는지 이해가 되었다.

봐도 답이 없으니까. 그러니까 외면하는 거다. 권력을 가진 높은 분이라도 인간에 불과했고, 답이 없는 문제를 두고 포기하기 일쑤인 게 인간이었다.

그래서 종교가 만들어진 게 아니겠는가? 위정자에게 힘을 가지고도 조용히 죽은 듯 지내려고 하는 이경완은 불가해나 마찬가지였다.

긴장한 청장을 향해 경완은 다소 뜬금없다면 뜬금없는 소리를 내뱉었다.

“서충헌 차장 있잖아요. 아주 음흉한 사람이더라고요.”

“아……. 네.”

“그 사람이 재계랑 사법계랑 중간에 다리 놓고 있었다는 거 아세요?”

“그랬습니까?”

경찰총장은 놀랐지만 다른 한편에선 그래서 뭐 어쩌라고?라는 감정이 피어올랐다. 권력과 돈은 표리일체다. 재계와 법조계가 붙어먹었던 세월이 하루 이틀인가? 회삿돈을 수백억 횡령해도 경제를 살렸다는 명목으로 판사님이 집행유예를 때려준 사례는 한두 번이 아니었다.

경완의 말이 이어졌다.

“원래는 말이죠, 이렇게 커질 일이 아니었어요. 그냥 서충헌 차장의 약점을 잡아서 조용한 협박으로 사표 쓰게 만드는 게 계획의 끝이었거든요. 이렇게 청장님이 절 찾아올 정도로 일을 키울 생각은 아니었단 말이죠.”

그런데 왜 이런 소란이 일어났지? 경찰청장이 불길함을 느낄 때 경완의 말이 귀에 들려왔다.

“그런데 그 사람이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제 역린을 건들려고 하더라고요.”

“역린이라면…….”

“미연이요.”

“아.”

청장은 말을 잇지 못했고 경완의 말만 계속되었다.

“전 제가 어떤 놈인지 알아요. 미연이가 저에 대한 세간의 인식이 어떤지 모를 정도로 어리석지도 않고요. 그럼에도 걔는 저를 사랑해주죠. 그게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인지 아무도 모를 겁니다.”

수많은 사람을 적으로 돌릴 각오. 심지어 연예인인 미연이었다. 아마 자신이 여태 노력해 쌓아올린 모든 것을 걸 정도의 각오를 하지 않았을까?

그 사랑의 크기가 어느 정도인지, 수많은 생을 반복한 경완은 가늠은 해도 감히 입 밖으로 내뱉을 순 없었다. 표현할 수도 없었으며 그럴 주제도 아니었다.

“솔직히 기분만 따지면 깡그리 죽여버리고 싶은데 말이죠~.”

“헉!”

“그건 문제를 키우기만 하겠죠. 저도 알아요.”

경완의 말에 경찰청장은 속으로 안도했다.

“그런데 청장님.”

“넵.”

“나도 사람인데 말이죠, 세상이 이렇게나 바뀌었는데 왜 댁들은 여전히 씨발 돈 많은 새끼들만 배려하고 저같이 힘 쎈 새끼는 조또 배려 안 하는 걸까요? 계속 이딴 식으로 나오면 제가 이 나라의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존중할 마음이 사라지잖아요.”

“그, 그건 잘못된 행동입니다!”

기겁하는 경찰청장을 향해 경완은 툭 한 마디를 던졌다.

“청장님, 사회계약론 알아요?”

“압니다만…….”

모를 리가 있나? 민주주의의 뼈대를 이루는 이론인데.

“기분 같아서는 제가 그 계약을 막 파기하고 싶거든요.”

“…….”

경찰청장은 뭐라고 대답하지 못하고 마른침만 삼켰다.

사회계약론이란 개별 구성원들의 계약의 의해 사회가 구성된다는 이론으로, 다시 말해 사회란 그 구성원의 합의 위에 존재하는, 실제하지 않는 일종의 허상적 개념이라는 뜻이었다. 그렇기에 사회계약론에 따르면 사회의 확장판인 국가라는 것도 결국엔 허상에 불과했다.

이것이 헌법에 명문화된 것이 대한민국헌법 1조2항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온다’는 문구고, 이걸 좀 더 적극적으로 보장하는 헌법이 시민에게 무기 휴대의 권리를 보장하는 미국의 수정 헌법 제2조였다.

정부가 사회계약론을 어기고 시민들을 억압한다면 시민들이 들고 일어나 정부를 붕괴시킬 수 있도록 최소한의 장치를 마련해 둔 것이다.

하지만 사회계약론이 절대적인 진리인 아니었다. 본인이 소시민이라면, 사회를 구성하는 나약한 일개인에 불과하다면 사회계약론은 절대적인 진실이어야 했다. 그래야 본인의 권리를 보호받을 수 있을 테니까.

반대로 말하자면 돈과 권력을 쥐고 대중과 힘없는 개인을 개돼지로 여기는 이들에게 사회계약론 따위는 자신들의 자유와 권력을 제한하는 눈엣가시이자 궤변에 불과했다.

설사 사회계약론이 사실이라고 치자. 그런데 힘없는 개인이 감히 그 계약을 파기할 수 있겠는가? 삼청교육대에 끌려가서 처맞아봐야 정신을 차리지.

권력자와 국가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개인의 무력함을 맛보면 본인이 개돼지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을 수밖에 없으리라.

인간의 역사란 끝없는 권력투쟁의 역사였고, 어떤 사회를 지배하기 위해선 그 사회구성원 모두의 동의가 필요하지 않다는 걸 역사를 좀 공부한 이들은 잘 알고 있었다.

권력자의 입맛대로 움직여줄 열성적 지지자, 혹은 권력자의 비호 안에 들고자 꼬리를 흔드는 개돼지들 30%만 확보하면 그 사회를 충분히 지배할 수 있었다. 나머지 70%는 그 다수가 반대자가 아니라 침묵하는 방관자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헛소리가 아니라 역사적으로도 증명된 사실이었다.

하지만 시대가 변했다. 초능력이 등장하면서 ‘국가를 상대할 수 있는 개인’이라는 개념이 현실화되어 버렸다.

그 가장 대표적인 예가 청장의 눈앞에 있는 이경완이었다.

“저도 알아요. 계약의 파기는 곧 전쟁이라는 거.”

정부는 공권력을 지켜야 했다. 그 공권력이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더라도 자유가 방종이 되어 혼란을 일으키지 않도록 질서를 유지하는 것이 공권력의 본질이었고, 존재이유이자, 존재동력이었다. 사회가 혼란하다는 것 자체가 공권력의 유지를 어렵게 하기 때문이며 정부의 존재 의의를 위태롭게 만들기 때문이다.

경완은 잔뜩 굳은 경찰청장을 향해서 질문을 던졌다.

“혹시 제가 협박하는 걸로 들리신다면 착각이라고 말하고 싶네요. 저는 그저 사실을 나열했을 뿐이에요.”

협박하는 것보다 더 등골이 서늘했다. 전쟁이 일어날 거라는 예언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청장은 식은땀이 등골을 타고 내리는 것을 느끼며 입을 열었다.

“그래서…… 어떻게 하고 싶으신 겁니까?”

“도와주세요.”

“네?”

여태까지 협박에 가까운 말을 하다가 뜬금없이 도와달라고 하니, 갑작스런 템포의 변환에 경찰청장은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파국으로 치닫지 않도록 도와달라고요.”

“아니, 그걸 왜 저한테…….”

“그럼 절 이용해먹으려는 서충헌 차장한테 할까요? 아니면 그 인간하고 같은 편이 분명한 서울지검장한테 도와달라고 할까요?”

“저기, 아는 국회의원 없습니까?”

홀로 독박을 쓸 것 같은 기분에 경찰청장이 조심히 말을 꺼내봤지만 어이없다는 웃음소리만 돌아올 뿐이었다.

“하하! 하하하! 아이고 청장님. 제가 왜 감옥에 갔는지 모르세요?”

“아, 네. 그랬죠.”

경찰청장이 자신의 멍청함을 자책할 때 경완의 웃음이 뚝 그쳤다.

“됐어요. 가보세요.”

“네?”

“별로 도움이 안 될 것 같아서요.”

“…….”

앞에 ‘멍청해서’라는 단어가 생략된 것 같은 기분이 드는 이유는 지금 자존감이 바닥난 상태이기 때문일까?

쓸데없는 잡념이 드는 뇌리에 경완의 말이 화살처럼 박혔다.

“서충헌 차장과 저 사이의 일은 그냥 규정대로 알아서 해주세요.”

“규정대로라면…….”

“폭행이면 폭행인 거죠. 그걸 부정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렇습니까.”

“그런데 말이죠. 상대가 국정원 차장이랍시고 특별히 챙겨주거나 하진 마세요.”

“…….”

“우리나라 경찰이 아무리 상대 빽보고 일처리를 한다지만 저는 이경완이잖아요.”

상대가 국정원 차장이라면 나는 이경완이다. 꿇릴 것 없다.

그러한 선언에 경찰청장은 마른침을 삼켰다.

국정원 차장과 이경완. 개인의 이름을 어떤 국가기관의 고위 직급에 비교할 순 없지만 경찰청장은 지금 이 순간 둘의 영향력이 비등하다고 느꼈다. 아니, 실질적인 파괴력은 이경완이 압승하는 상황이랄까?

국가로부터 어떤 권한도 부여받지 못하고, 재벌처럼 돈이 많거나 국가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거대한 사업체를 가진 것도 아니지만 개인의 무력을 국가 차원에서 걱정해야 하는 인간.

경완이 말을 이었다.

“저쪽에서 경찰을 압박하겠지만 휘말리기 싫으시면…… 무슨 말인지 아시겠죠?”

경찰청장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돌아가는 길에는 한숨을 내쉬었다. 나라꼴이 어찌 되려고…….

일단 경찰청장은 사건을 규정대로 처리했다. 일선 경찰들은 얽히긴 싫어서 그냥 뭉개고 싶었지만 그래도 공무원이었기 때문에 시키는 대로 처리했다. 피해자가 국정원 차장이라지 않은가?

“오빠, 이게 뭐야?”

“어. 출두 명령서?”

우편물을 확인하다가 법원에서 온 봉투를 확인한 미연의 눈이 떨렸다.

“결국 저질렀구나.”

허탈해하는 그녀의 모습에 경완은 언제고 이런 날(?)이 올 거라고 그녀가 예전부터 생각하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경완은 그녀가 더 걱정하기 전에 얼른 사정을 설명했고 그의 이야기를 다 들은 미연은 분개했다.

“뭐 그런 개새끼가 다 있어?!”

대사도 아닌데 찰진 욕설을 내뱉는 그녀의 모습에 경완은 그녀의 커리어를 걱정해 주었다.

“……미연아, 너 여배우야.”

“욕을 안 할 수가 없잖아!”

“자, 침착해. 침착해.”

경완은 마치 애를 달래주듯 그녀를 품에 안고 그녀의 등을 두드려 주었다.

좀 진정이 된 그녀가 뺨을 경완의 가슴팍에 붙이고 물었다.

“내가 뭐 도와줄 거 없을까?”

“걱정 마. 다~ 내가 알아서 할게. 네가 끼어들면 더 곤란해.”

경완은 미연은 안심시켜 놓고 전화를 걸었다.

“변호사님. 네, 접니다. 며칠 전에 전화했던. 예, 예. 아니요. 제가 사무실에 방문하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그리고 경완은 백화점에 들러서 비싼 양복을 쫙 빼입고 헤어샵에 가서 머리까지 정리하여 미연도 못 알아볼 정도의 훈남으로 재탄생한 후 약속 장소로 향했다.

가는 길에 그는 커다란 유리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옷매무새를 정리하며 생각했다. 역시 옷이 날개라는 말이 맞다고.

그가 이렇게 귀찮게 걸음을 옮겨 다니며 스스로를 꾸민 이유는 이제부터의 싸움은 폭력이 아니라 법률이라는 룰 안에서 타인의 지원을 받아 싸우는 일종의 사회적 전투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양복과 잘 꾸민 외모는 그 사회적 전투를 위한 전투복이었다.

외모도 경쟁력이라지 않은가?

취향에 맞는 방식은 전혀 아니었지만 미연의 얼굴을 봐서라도 한 번 시도 정도는 할 가치가 있었다.

“반갑습니다. 이올장 사무소의 박근태 변호사라고 합니다.”

경완이 방문하자 변호사라기보다는 학자풍의 느낌이 더 강한 중년의 마른 남성이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내밀었다.

“이경완이라고 합니다.”

“유명하신 분을 만나서 기분이 참 묘합니다.”

박근태 변호사는 경완을 만나도 살짝 긴장만 했을 뿐 두려워하는 기색은 없었다. 아무래도 아는 사람의 소개로 받은 의뢰인이었기 때문이다.

“박사님은 잘 지내시나요?”

“아, 마리아 소장님이요? 네 그렇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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