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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전생 더 빌런-278화 (278/367)

무한전생-더 빌런 278화

26-빌런본색

박근태 변호사가 마리아 소장의 안부를 묻자 경완은 고개를 끄덕였다.

박근태 변호사는 예전에 마리아 소장이 국가를 상대로 소송했을 때 법률적으로 도와준 인연이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지금 경완까지 이어진 것이다.

“앉으시죠.”

박근태 변호사는 경완에게 자리를 권하고 본격적인 상담을 시작했다. 사건의 전반적인 개요는 이미 들어서 알기 때문에 경완이 가져온 법원 출두명령서만 확인했다.

서류를 확인한 박근태 변호사가 말했다.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무죄요?”

“네.”

증거는 명백하고 상대는 국정원 차장씩이나 된다. 무죄 판결을 받는 건 무리였다.

경완도 기대하진 않았다. 문제는 그것이 아니니까.

“저는 집행유예면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그건 가능할 겁니다.”

“다만 그건 부차적인 목표일 뿐이에요.”

경완의 말에 박근태 변호사는 입을 다물고 집중했다. 이경완 같은 남자가 고작 법이 무서워서 이렇게 변호사까지 구한 건 아닐 테니까.

“저는 언론 플레이를 원해요.”

“언론 플레이라면…….”

“네. 이 사건이 벌어진 원인과 이렇게 제가 폭행범이 된 이유까지 세상 모든 사람이 알길 바래요.”

평범한 직장인이면 폭행범 딱지가 사회생활에 막대한 애로사항이 되겠지만 경완에게는 상관없는 이야기였다.

“목적은 경고입니까?”

“그렇죠. 언론 플레이로 욕 좀 보면 괜히 건드렸다고 후회하지 않을까요?”

경완의 말에 박근태 변호사는 우려를 표했다.

“언론 플레이의 핵심은 언론입니다. 언론이 어떻게 프레임을 짜느냐에 따라 역풍이 불 수도 있어요.”

어느 당이 저지른 성범죄엔 당 이름을 크게 명시하며 호들갑 떨고, 어느 당이 저지른 성범죄엔 당을 명시하지 않고 모 정치인, 모 당원이 했다며 뭉뚱그린다.

그래프에도 장난을 치고, 말해야 할 걸 말하지 않는 걸로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그렇게 한 번 일으킨 부정적인 감정은 쉽게 지워지지 않고, 어리석은 개돼지들은 본인의 판단 잘못을 인정하기보다는 오히려 자신의 감정을 정당화하기 위해 되지도 않는 논리를 가져다 붙이며 인지편향을 일으킨다.

민주주의, 일인일표가 보장되는 사회에서 그건 너무나 막강한 힘이라 정권을 창출하기도 하고, 정권을 무너뜨리기도 한다.

그래서 언론을 빗대어 제4의 권력이라 불리지만, 현실은 제 몸집과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자본에 기대야 하는 천민자본주의의 주구일 뿐이었다.

기사의 탈을 쓴 수많은 광고는 그 일례였고, 자정(自淨)을 오직 구성원의 양심에만 기대는 언론의 현 실태였다.

그래서 박근태 변호사는 이렇게 말을 이었다.

“언론은 저들 편입니다.”

서충헌 차장은 검찰과 재계 사이를 이어주는 부업을 했다.

그 말은 서충헌 차장을 비호할 검찰이 많을 거라는 걸 뜻했고, 따라서 언론 역시 서충헌 차장에게 유리한 프레임을 짤 거라는 뜻이었다. 검언유착은 오래된 관행이었고 재계는 소중한 광고료를 지불해 주는 물주였으니까.

이에 경완은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과거와는 다르게 언론이 언로(言路)를 독점한 상태는 아니잖아요?”

“인터넷을 활용할 생각인가요?”

“네. 이슈에 환장한 사람은 많잖아요?”

인터넷 렉카는 물론 인플루언서도 있고 아니면 경완이 직접 SNS를 개설해도 된다. 아무리 한국 정부라지만 미국 기업의 SNS를 막을 순 없을걸?

경완의 구상에 박근태 변호사는 이렇게 대답했다.

“쉽지 않을 겁니다.”

“왜 이러세요? 마리아 소장님 때도 잘하셨던 분이? 솔직히 여론으로 재판부 압박하는 것도 변호사들의 공공연한 전략 아닌가요?”

박근태 변호사는 어색하게 웃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다만 그 과정에서 어마어마한 인맥과 돈이 소모되었을 뿐.

그런데 과연 이경완이 마리아 소장만큼의 인맥이나 재물이 있을까?

“경완 씨는 마리아 소장님과 경우가 다릅니다.”

“그렇기는 하죠. 하지만 다 때려 부수는 것보다는 낫잖아요.”

“…….”

순간 박근태 변호사의 표정이 무너질 뻔했다. 언론 플레이로 엿을 먹이지 못하면 실력행사에 나설 수밖에 없다는 말인가?

경완은 그런 그의 심정을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을 이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가능할 테니까요.”

뭐가 가능하단 말인가? 언론 플레이? 아니면 깽판?

박근태 변호사는 괜히 의뢰를 맡겠다고 한 건 아닌지 후회했지만 경완이 내민 USB를 일단 받았다.

“이건 뭔가요?”

“일단 확인해 보세요.”

박근태 변호사는 노트북에 USB를 연결해서 내용을 확인하고는 신음성을 흘렸다.

“아. 음…… 하아…….”

“언론 플레이 용도로 쓸만하죠?”

USB에 담긴 건 경완이 도촬한 영상이었다. 영상에는 서충헌 차장과 그 내연녀, 그리고 김명정 회장의 대화 내용이 담겨있었다.

“경완 씨. 혹시 개인정보보호법이라는 게 있다는 건 아십니까?”

“알죠. 다 알고 하는 짓이에요.”

“…….”

경완의 대범함이랄지, 뻔뻔함에 박근태 변호사는 저절로 입이 다물어졌다.

물론, 경완의 말대로 언론 플레이 용도로는 쓸만했다. 그가 왜 서충헌 차장에게 폭력을 가했는지 대중에게 이해시킬 수 있을 정도로는 말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가 원하는 대로 프레임이 잡히진 않을 거라는 점에 있었다. 아무리 인터넷 여론을 이용한다고 해도 프레임을 선점하려면 조직된 힘이 필요했고, 그 방면에서 한국 언론은 여전히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언론의 협조를 받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소스를 가지고 있어도 허사입니다. 그리고 경완 씨가 들고온 소스는 자칫 초능력자의 불법도촬로 프레임이 짜일 수 있고 저들이 보복을 결심하면 이미연 씨에게도 피해가 갈 수 있습니다.”

박근태 변호사는 미연을 언급할 때 경완이 미소를 짓자 서늘한 느낌이 들었지만 그럼에도 해야 할 말을 밀고 나갔다.

“마리아 소장님은 쌓아놓은 특허와 연구자로서의 권위가 기업의 협조를 이끌어내기 매우 유효했습니다만 경완 씨는…….”

그런 게 없다.

흐려지는 말꼬리에 붙어야 할 말이 뭔지는 경완도 충분히 이해했다.

“그렇다면 언론의 협조를 받아야겠네요.”

“네.”

“마침 아는 회장님이 있어요.”

“언론사주 말씀하시는 겁니까?”

경완이 고개를 끄덕이자 박근태 변호사는 의아해했다. 친하게 지내는 기업인이나 언론인이 있다면 세간에 알려지지 않을 리가 없는데?

하지만 일단 있다고 하니 다행이었다.

“실례지만 그분 성함이……?”

“음. 그건 나중에 얘기할게요. 먼저 그분의 양해를 구해야 할 것 같아서요.”

“알겠습니다. 그럼 일단 그분의 협조부터 구하죠.”

“네, 그럼 약속부터 받고 올게요.”

“서두르셔야 할 겁니다. 공판기일이 얼마 남지 않았어요.”

경완은 고개를 끄덕였고, 그날 밤 ○○일보 김명전 회장은 불청객의 방문을 받았다.

“다시 뵙네요, 김 회장님!”

“너, 너 뭐야! 어떻게 들어왔어?!”

김 회장은 누가 듣고 들어오라고 소리를 질렀지만 이미 염동력으로 쳐진 벽이 소리가 새는 것을 막았다.

경완은 뻔뻔한 얼굴로 대꾸했다.

“창문으로요.”

그 말에 김 회장은 굳은 표정으로 침대 밑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그러면서 경완에게 말을 걸었다. 자신의 행동에 주의를 기울이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내가 사는 곳은 어떻게 알았지?”

언론사주로서, 저널리즘을 사업의 한 수단으로 사용해온 김 회장은 원한을 많이 쌓았다. 아니, 사실 언론의 사업구조는 공공의 이익을 위하든 아니면 사익을 위하든 원한을 쌓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김 회장도 재벌들이 자신의 개인정보를 숨기는 것처럼, 아니 그보다 더 철저하게 자신의 개인정보가 유출되는 것을 막아왔다. 그런데 어떻게 자신이 있는 곳을 찾아왔단 말인가? 법조계가 움직였다면 자신이 모를 리가 없었다.

경완은 대답했다.

“그야 다 방법이 있죠.”

김 회장은 서충헌 차장과 만났던 한정식집을 서둘러 빠져나왔을 때 경완이 자신의 몸에 마커를 심은 것을 꿈에도 몰랐다.

경완이 말을 이었다.

“자세 안 불편해요? 열심히 눌러도 소용없다는 거 이제는 좀 알 때쯤 되지 않았나?”

열심히 손가락을 놀려 침대 밑의 비상호출버튼을 막 누르고 있던 김 회장은 경완의 말에 이를 악물고 침대 밑으로 내렸던 팔을 침대 위로 올렸다.

노여움에 화난 표정이지만 눈빛에 서린 두려움을 읽어낸 경완은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손님이 왔는데 계속 그렇게 누워있을 거예요?”

“손님은 무슨.”

“그럼 손님이 되지 말고 딴 거 될까요? 뭐가 좋으세요? 강도? 살인마? 도둑? 폭행범? 골라 봐요.”

별로 그러고 싶지 않다는 듯 가벼운 어투였지만 김 회장은 위협을 느끼고 상체를 일으켰다.

“왜 방문했나? 그때 일이라면 끝난 거 아닌가?”

“사고방식이 아주 편리하시네? 손 데일 것 같으면 모르는 척 확 내던지면 되고요. 제가 그때는 고이 보내드렸지만 서충헌 같은 작자와 엮였을 때부터 이렇게 될 줄 몰랐어요?”

“…….”

“우와. 진짜 몰랐나 보네. 감히 대한민국 유력 언론의 주인에게 무슨 짓을 하진 못할 거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라도 있었나 봐요?”

“…….”

연이어 속내를 정확히 찌르는 경완의 말에 김 회장은 감히 반박하지 못하고 미간만 찌푸렸다. 하지만 경완의 얼굴을 향한 눈빛은 떨렸다. 심정 동요를 감추지 못한 것이다.

경완은 방 한쪽에 있는 의자를 끌고 와 김 회장 앞에 앉았다. 그리고 딱하다는 듯이 혀를 찼다.

“쯧쯧쯧. 그러니까 사람을 가려 사귀어야지. 벼락 맞을 놈 옆에 있다가 같이 벼락 맞을 신세가 됐잖아요.”

“날 죽일 건가?”

굳은 표정의 김 회장이 불쑥 물었다.

생사에 대한 질문. 그건 김 회장이 지금 얼마나 심리적 압박을 받고 있는지를 나타내는 표지였다.

경완은 이 정도면 충분히 조였다고 판단했다. 그러면 다음 연출로 가야지.

그는 재밌는 농담을 들은 듯 웃었다.

“푸하하! 제가 왜 김 회장님을 죽여요? 그래서 저한테 무슨 이득이 있다고요? 아니면 제가 죽이고 싶을 정도의 짓거리라도 했어요?”

김 회장은 머리에 여러 사건이 떠올랐지만 서둘러 고개를 저었다. 혹시 죽임을 당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으로 인한 반사적인 행동이었다.

경완이 말을 이었다.

“그리고 제가요, 예전과 다르게 가진 게 좀 많아져서 막 사람을 죽일 상황이 아니에요.”

“아.”

그 말에 김 회장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얼굴에는 미소까지 지어졌다. 그도 가진 것이 많으니 경완의 말이 어느 정도 이해가 되었다. 사람은 가진 것이 많을수록 겁도 많아지는 것이 김 회장이 여태 경험한 세상의 이치였다.

그러니까 가장 무서운 건 가진 것이 없는 놈이었다.

괜히 그가 자신의 개인정보가 언론과 세간에 유출되지 않도록 철저히 감추는 것이 아니었다. 언제 언론사주에게 원한을 품은 미친놈이 칼 들고 담을 넘을지 모르는 거 아닌가?

아무튼, 김 회장은 안심했다. 이경완은 더 이상 잃을 거 없는 미친놈이 아니라, 자신의 것을 잃을까 봐 겁이 생긴 놈이 되었다. 그렇다면 협상이 가능,

“그래서 전략을 좀 바꾸기로 했어요. 마술을 부리는 거죠.”

“마술?”

“왜 그 있잖아요. 사람이 뿅하고 사라지는 마술이요. 다시 나타나게 할 재주는 없지만 그 정도 마술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하는데 김 회장님 생각은 어떠세요?”

뭐가 그리 재밌는지 화사하게 웃는 경완을 보며 김 회장은 대답하지 못하고 마른침을 꼴깍 삼켰다.

경완이 말을 이었다.

“우리나라에서 시체가 없으면 살인사건이 아니라 실종으로 처리된다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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