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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전생 더 빌런-283화 (283/367)

무한전생-더 빌런 283화

27-권력은 잠들지 않는다

“잘 마셨습니다.”

“입맛에 맞아서 다행입니다.”

“그럼 이만,”

“잠깐! 언제 또 이렇게 연수원에 들어올지 모르는데 구경 좀 하고 가세요.”

“그러기 귀찮은데…….”

“그러지 말고 이철 씨 강습하는 것도 좀 구경해보세요.”

“아, 그 아이X맨 슈트 강습요?”

김봉남은 고개를 끄덕였고, 경완은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할 일도 없는데 잠시 구경하는 것도 나쁘진 않다고 생각했다.

김봉남은 경완이 수락하자 그를 데리고 엘리베이터에 탔다. 엘리베이터는 지하로 향했다.

김봉남이 입을 열었다.

“배진이는 오늘 나왔나요?”

“아니요.”

“어떻게 하려고 그러는 걸까요?”

“글쎄요.”

“한때 가르친 아이인데 걱정이 안 되세요?”

“전 스승이 아니라 강사랍니다.”

냉정하게 선을 긋는 모습에 김봉남이 쓴 입맛을 다시며 대꾸했다.

“너무 냉정하세요.”

“제가 정이 많았으면 많은 사람이 겁먹지 않았을까요?”

“왜요?”

“인연이 자아내는 인과가 어떻게 전개될지 알 수 없거든요. 솔직히 제가 정에 쉽게 휘둘리는 인간이었으면 지금쯤 저와 제 주변이 어떻게 되었을지 상상이 돼요?”

“안 되죠.”

김봉남은 쓰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니까 그간 경완이 보여준 세상에 대한 무관심은 그 나름의 배려였던 것이다.

꽤나 깊게 내려간 엘리베이터가 서서히 멈춰 섰다.

“그래도 배진이가 너무 아파하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부친이 부패 검사라 돈은 충분히 모아뒀을 테니 굶을 걱정은 안 해도 되겠죠.”

냉정하기 짝이 없는 말에 김봉남은 쓰게 웃으며 문이 열린 엘리베이터를 나섰다. 경완이 그 뒤를 따랐다.

엘리베이터 앞엔 길지 않은 복도가 있었고, 복도 끝에는 돔 형태의 커다란 방이 있었다.

경완이 입을 열었다.

“비밀기지 같네요.”

“쓸데없는 돈 낭비죠.”

김봉남은 이게 다 국방과 국회에 있는 높으신 분들이 TSTG에 대한 보안을 걱정해서 만든 거라고 푸념을 늘어놓았다.

어차피 전 세계에서 개발되고 있는 TSTG의 핵심은 위버멘쉬에서 독점 공급하고 있는 코어 기술인데 마치 자기들이 대단한 혁신적 장비를 개발한 것마냥 호들갑을 떤다면서 말이다.

물론 주변부의 장갑기술이라든지, 엑소스켈레톤 기술 등도 중요하기는 하지만 한국의 기술이 적용된 보조기술은 일본이나 미국 등 기존 기술선진국의 것을 따라잡진 못했다.

김봉남의 설명에 경완은 성의 없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시선을 방의 가운데로 옮겼다.

중앙에서 TSTG를 입고 있는 두 사람이 대련을 하고 있었고 서넛 정도 되는 이들이 조금 떨어진 곳에 앉아 대련을 구경하고 있었다. 그들도 TSTG를 입고 있었다.

대련하고 있는 둘 중 한 명이 이철이었데, 그는 교관으로서 TSTG를 착용한 근접격투술을 지도대련을 통해 가르치고 있었다.

그들 중 한 명이 경완과 김봉남을 발견하고는 일어나자 두 사람에게 시선이 모였다. 그리고 두 사람이 누군지 알아보았고 순식간에 분위기가 어수선해졌다.

이경완과 연수원 원장인 매스 이펙터. 주의가 흐트러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이철은 훈련생들에게 잠시 휴식시간을 주고 두 사람에게 다가왔다.

“무슨 일로 오셨어요?”

이철이 김봉남에게 물었다. 김봉남이 멋쩍게 웃었다.

“이거이거 방해하려고 한 건 아닌데.”

“아니에요. 어차피 쉬려고 했습니다.”

그제야 이철의 시선이 경완에게 향했다. 니가 왜 여기에 있냐는 시선이었다. 대답은 김봉남이 대신했다.

“경완 씨 강습이 오늘 마지막이라서 구경 좀 시켜주려고 왔죠.”

“아, 그렇군요.”

“요즘 별 애로사항은 없죠?”

“네, 없습니다.”

김봉남은 점검하듯 이철과 몇 가지 문답을 주고받더니 슬쩍 운을 띄웠다.

“슬슬 휴식시간이 지나지 않았나요?”

“아, 네 그렇죠.”

이철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경완에게 한 마디 했다.

“나중에 저녁이나 같이 먹자.”

“나가기 귀찮아.”

완벽한 아싸의 심드렁한 대답에 이철은 어이가 없어서 황당한 미소를 짓더니 이내 머리를 도리도리 저으며 TSTG 근접격투술 교습을 진행했다.

아무래도 이경완과 위버멘쉬 한국 연수원 원장이 보고 있다는 생각 때문인지 교습받는 훈련생들의 행동이 휴식시간 전보다 더 빠릿빠릿하고 절도 있어 보였다.

김봉남이 그걸 보면서 경완에게 물었다.

“어때요? 잘하는 것 같아요?”

“잘하네요.”

이철은 경완과의 대련에서 흡수한 요령과 테크닉을 훈련생들에게 제법 잘 전수하고 있었다.

김봉남이 슬쩍 운을 띄웠다.

“솔직히 저 기술 중에 경완 씨 지분이 어느 정도 된다고 생각해요?”

“왜요? 로열티 챙겨주게요?”

“그래야 하지 않을까요?”

김봉남의 표정을 확인한 경완은 손을 내저었다.

표정이 밝은 거 보니까 경완에게 로열티 지급하는 게 본인의 생각이 아니라 상부의 지시쯤 되는 모양이었다. 하찮지만 맡은 일을 완수해 냈다는 신입사원의 기쁨이 묻어나올 것 같은 표정이랄까?

아마 돈을 매개로 자신과 위버멘쉬 사이의 관계를 더욱 끈끈하게 할 생각인 모양인데, 경완은 좀 거리를 두기로 했다.

판검사 연쇄 살해 사건은 기득권 카르텔과 위버멘쉬의 충돌과 앞으로의 혼란을 암시했다. 그 혼란에서의 정세는 분명 위버멘쉬의 우세임이 틀림없지만, 결과는 확신할 수 없었다. 또한 진흙탕이 부글부글 끓으며 이리저리 오물이 튀는 상황에 발을 들이밀기 싫은 건 경완도 마찬가지였다.

“아유~ 저런 사소한 거 가지고 로열티 운운하는 건 좀 그래요.”

“아니죠. 경완 씨의 대응기술을 익힌 사람과 익히지 않은 사람 사이에 근접교전 승률이 약 30%나 차이가 나요. TSTG의 가격을 생각하면 충분히 로열티를 지불할 가치가 있어요.”

김봉남의 말에 경완은 지도대련을 하고 있는 이철의 손속이 위축되는 것을 느꼈다. 갑자기 왜 저래?

경완은 의아해하면서도 김봉남과의 대화에 집중하며 고개를 저었다.

“딱히 특별한 기술도 아니에요. 저런 전신 중갑을 입고 근접교전을 하는 기술이나 비전은 서양에 엄청나게 많을걸요? 전신 갑옷을 입고 싸웠던 기사의 전통이 있던 곳이잖아요. 제가 썼던 기술도, 아니 그보다 더 좋은 기술도 많을 거예요.”

“흠…… 확실히 유럽 쪽에선 TSTG 근접교전기술에 대한 강습 요청이 거의 없다시피 하긴 했죠.”

김봉남이 긍정하자 이철의 움직임이 다시 평상시로 돌아왔다.

경완은 속으로 피식 웃음을 흘렸다. 소심하기는……. 이것으로 확실해졌다. 이철은 여전히 소시민티를 벗지 못하고 있었다. 자기한테 로열티 내라고 할까 봐 움직임이 소극적으로 되는 거 봐라.

경완은 위버멘쉬와 거리도 둘 겸, 이철에게 약간의 호의도 베풀 겸, 김봉남의 제안에 마침표를 찍었다.

“아무튼 별것도 아닌 거로 로열티 운운하면 부담돼요.”

“무슨 말씀인지 알겠어요.”

김봉남은 고개를 끄덕이며 더는 입을 열지 않았다.

그렇게 잠시 두 사람은 말없이 이철의 지도대련을 구경했다. 그런데 김봉남의 폰이 울렸다.

“네, 여보세요. 네, 네. 네?”

김봉남은 무슨 말을 들었는지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

“네. 네. 알겠습니다.”

통화를 끊은 그는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겼는지 경완에게 이렇게 말했다.

“경완 씨, 저 먼저 가보겠습니다.”

“왜 혼자 가요? 같이 가요.”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겨서. 경완 씨는 따로 사람 붙여 드릴 테니 좀 더 구경하다 가세요.”

“싫어요. 집에 갈래요. 형, 나 간다!”

경완은 단호하게 귀가를 결정했고, 김봉남은 그를 말릴 수 없었다. 그가 말했던 급한 일 때문에 서둘러 어디론가 가야 했기 때문이다.

경완이 집으로 귀가한 후 그는 여느 때처럼 어떻게 하면 시간을 알뜰하게 허비할 수 있을까를 궁리하며 TV도 켜고 인터넷도 켜고 게임을 할까 웹툰을 볼까 고민했다.

그런데 유튜브에 뉴스 속보가 하나 뜨는 것이 아닌가? 그것은 검찰의 위버멘쉬 한국지부에 대한 압수수색이었다.

“이야~ 능력 있네.”

경완은 주방에서 간식으로 감자칩을 가져와 키보드 앞에 앉았다. 그리고 관련 뉴스를 찾아보면서 왜 인터넷에서 ‘이제부터 서로 죽여라’라는 밈이 사라지지 않는지 이해가 되었다.

남 싸우는 거 구경하는 게 재밌잖은가?

* * *

27-권력은 잠들지 않는다

검찰은 금융법 위반 혐의로 위버멘쉬 한국지부를 기습적으로 압수수색했다.

탈세 혐의, 혹은 외환법 운운하면서 불법적인 자금 유출이라고 하는데 경완이 보기에는 부족한 정보를 압수수색을 통해 캐내려는 시도로 보였다.

하지만 이 일이 시사하는 바는 명백했다.

검찰이 위버멘쉬를 적대하려 한다는 것, 아니면 적어도 협상에서 좀 더 많은 이익을 얻기 위해 자신들의 위세를 과시하거나 혹은 길들이기를 시도한다는 것이다. 어찌 되었든 위버멘쉬 코리아는 본부와 분리되었으니까.

과연 위버멘쉬의 대응은 어떨까?

보니까 의외로 강경했다. 언론을 통해 혐의를 부인한 것이다. 지부의 현금 흐름을 보여주는 대외비 자료까지 공개하면서 말이다.

“이거 대놓고 들이받는데?”

경완은 고개를 갸웃했다. 원래 이럴 경우 사법계와 완전한 척을 지지 않도록 법원의 판결에 맡기겠습니다, 법원이 정당한 판결을 내려줄 겁니다 등의 립서비스를 날릴 법도 한데 그런 것이 일절 없었으니 말이다.

경완이 어리둥절한 와중에 다음날 김준이 찾아왔다.

“왜 왔어요?”

“위버멘쉬 한국지부 때문에 왔습니다.”

“왜요?”

“판검사 연쇄 살해 사건의 뒤에 위버멘쉬가 있다는 첩보가 들어왔습니다. 사실입니까?”

김준의 심각한 표정에 경완은 황당해서 눈을 껌벅였다.

“그걸 왜 저한테 물어봐요?”

“모르셨습니까?”

“당연히 모르죠.”

경완의 말에 김준은 눈을 감고 한숨을 내쉬었다.

왠지 안도하는 느낌에 경완이 물었다.

“왜요? 제가 위버멘쉬랑 손잡고 그런 짓을 저질렀을까 봐요?”

“본국에선 그럴 가능성도 제시했습니다.”

“하긴 범인이 아직까지 잡히지 않았으니까요.”

“그 정도로 증거 제거 능력이 있는 초능력자는 발견된 적 없었습니다. 심지어 S입자의 자취를 읽는 에스퍼도 추적에 실패했으니까요.”

그러니까 이경완이 가장 범인일 가능성이 높다? 천리안 장비 운용등급이 세계 최고이자 S입자 운용능력자인 그라면 완벽하게 증거를 지울 수 있을 테니까.

충분히 그럴 만했기에 경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물었다.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수사상황을 잘 알아요?”

“어…… 그게 좀 말해주기 곤란합니다.”

어디 경찰에 스파이라도 심어둔 모양이지. 경완은 굳이 캐묻진 않았다.

한미 관계가 이랬던 게 어디 하루 이틀이었던가? 그게 아니라도 동맹국에도 스파이를 심는 것이 미국이었다.

솔직히 미국이 아니라 힘 좀 쓴다는 나라는 예외 없이 우방국에 스파이 행위를 하고 있다는 것에 경완은 자신의 불알 두 쪽을 다 걸 수 있었다.

오히려 안 하는 게 경완 입장에선 의아한 일이었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죠. 제가 만나봤는데 보통이 아니더라고요.”

“네? 누굴요?”

“범인이요.”

“네?!”

김준이 놀라서 두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경완이 대수롭지 않게 지난 일을 꺼냈다.

“예전에 제가 교차 검증을 부탁했던 자료있죠. 그거 범인을 협박해서 얻은 거예요.”

“위버멘쉬에서 준 자료가 아니었단 말인가요?”

“네.”

“아. 네…… 그랬군요.”

“아, 그 자료 때문에 저를 더 의심했나 봐요?”

김준은 마른세수를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경완의 예리한 시선을 피할 순 없었다.

하지만 경완은 그런 김준의 반응에 한 가지를 또 읽어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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