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전생-더 빌런 284화
27-권력은 잠들지 않는다
“그리고 판검사 연쇄 살해 사건의 배후에 위버멘쉬가 있다고 의심하게 되었고요?”
“가능성은 보고 있었습니만 경완 씨가 교차검증을 요청하려고 김견민의 비리자료를 내밀었을 때 확신으로 변했죠. 경완 씨는 위버멘쉬와 돈독한 관계를 보였고, 검찰의 기밀자료를 빼낼 수 있을 만한 조직도 위버멘쉬 뿐이었으니까요.”
“미국도 가능하지 않나요?”
“한국의 검찰 조직은 너무나 폐쇄적이어서 CIA도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더군요.”
경완은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아마 같은 언어권, 비슷한 문화와 인종이었다면 검정고시를 패스할 인재를 손쉽게 키우거나 포섭해서 검찰 카르텔 내부에 침투했겠지만, 한국에 그런 짓을 하기엔 들이는 노력도, 얻을 메리트도 그리 크지 않았다.
한편, 김준은 마른세수를 하며 고심했다. 과연 위에서 그 자료의 출처가 위버멘쉬가 아니라 경완이 직접 범인을 협박해서 얻어낸 거라는 사실을 믿어줄까?
그는 한숨을 내쉬며 경완에게 이해가 안 되는 점을 물었다.
“그때 범인을 잡으셨으면 왜 경찰에 인계를 안 하셨어요?”
“제가 그간 국정원을 도와서 마약 들여오는 놈들 좀 조지기는 하긴 했죠. 하지만 그런 일과 판검사 연쇄 살해는 성격이 완전히 다르잖아요?”
“자경단을 긍정하시는 건가요?”
“딱히 긍정까지 하는 건 아니지만 죽은 놈들 중에 딱히 살아서 세상에 도움이 되는 놈도 없는 것 같고, 오죽 원한에 불탔으면 제 인생 시궁창에 처박으면서까지 그런 일을 하는 범인이 딱하기도 하고, 진흙탕에 발 디디기 싫기도 했고.”
김준은 앞의 두 이유에 대해서는 여윽시 이경완이다며 쓰게 웃었지만, 마지막 이유에는 귀가 쫑긋 섰다. CIA와 공조한 지 몇 년쯤 되면 뭐가 중요한 정보인지 알아보는 감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진흙탕이요?”
“네. 미국도 짐작하지 않았을까 싶은데요. 판검사 연쇄 살해 사건은 사실상 기득권에 대한 소리 없는 쿠데타라는 걸요.”
경완의 말에 김준의 표정은 굳었다.
“위버멘쉬가요?”
“아니면 또 누가 있어서 이런 짓을 할까요?”
“대통령이 사법 개혁을 말한 이유를 알겠네요.”
“위버멘쉬와 손을 잡았다는 거겠죠.”
개인적인 영달이 목적인지, 아니면 썩은내가 폴폴나는 사법계를 더 이상 놔둘 순 없다는 사명감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위버멘쉬와 손을 잡은 건 확실해 보였다.
“설마 대통령이 판검사 연쇄 살해를 지시했을 수도 있다는…….”
김준의 심각한 표정에 경완은 어깨를 으쓱했다.
“글쎄요. 저야 모르죠.”
알고도 손을 잡은 것인지, 아니면 모르고 손을 잡은 것인지.
그 말에 김준은 잠시 말이 없다가 혼잣말하듯 질문을 내뱉었다.
“위버멘쉬가 이런 극단적인 방법을 쓴다는 게 이해가 안 됩니다.”
“왜 이해가 안 돼요?”
“그야 기존의 방식대로도 충분히 이권을 확보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습니까?”
“왜 반정이나 쿠데타, 혁명이 일어나겠어요?”
뜬금없는 말에 김준은 입을 다물고 경완의 설명을 기다렸다.
“다른 이유 다~ 필요 없어요. 결국에는 밥그릇 때문이죠.”
내가 가진 군사력으로 내 밥그릇을 챙기겠다는 게 쿠데타고, 기득권 때문에 밥그릇 다 깨진 서민들이 들고일어나는 것이 혁명이다.
위버멘쉬가 판검사 연쇄 살해 사건을 저지른 이유도 경완이 보기엔 결국 같은 맥락이었다.
“기존 방법대로 사법 카르텔과 이 땅의 이권을 갈라먹자니 수지타산이 안 맞는 모양이죠.”
판검사가 개발정보를 미리 받아서 막대한 개발차익을 얻었다.
과연 누가 그것을 인지하고 수사할까? 사기꾼이 몇백 억을 해먹고 전관예우로 짧게 살다 나왔다. 과연 그 막대한 수임료를 변호사 사무실 혼자서만 먹었을까?
위버멘쉬는 이미 이 땅에 자리 잡으면서 대기업과 손을 잡았다. 수지타산을 맞추려면 그만큼 기득권에서 이권을 뺏어와야 했고, 사법권이란 날카로운 칼을 쥔 카르텔은 양보라는 걸 잘 모른다.
그들은 재벌같이 거래가 업인 장사꾼도 아니었고, 나름 치열한 경쟁을 뚫고 권력을 잡았다는 자부심이 있는 엘리트 집단이니까.
따라서 위버멘쉬가 사법 카르텔을 공격하기로 한 건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그런 부류에 대한 협상이나 회유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닐 테니까.
다만 성공한다면 향후 대한민국 내에서 위버멘쉬의 지위를 위협할 세력이 사라질 것이란 막대한 리턴도 고려사항일 것이다.
“그래도 너무 극단적이잖습니까?”
“그만큼 썩었다고 판단한 모양이죠.”
살인까지 동원한 인적청산과 사법 개혁은 초강수가 아니라면 도저히 양보를 얻어낼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 아닐까?
경완이 말을 이었다.
“원래 마피아와 마피아가 충돌하면 유혈사태가 터지게 마련이죠.”
“……위버멘쉬도, 대한민국의 사법계도 마피아란 말입니까?”
“둘의 행적을 보면 마피아가 아니라고 말하기가 오히려 이상하지 않아요?”
김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인정하고 싶지 않은 현실을 수용한 그의 생각이 뻗은 건 경완의 방침에 대한 재확인이었다.
“그러니까 강 건너 불구경을 하시겠다고요?”
“말했잖아요. 진흙탕에 발 들이밀기 싫다고요. 그리고 그건 워싱턴도 바라는 바일 텐데요?”
“본국의 의견은 아직 못 들었습니다.”
“뻔하죠.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겠죠.”
“그렇단 얘기는…….”
“사법 카르텔이 충분히 붕괴할 때까지 구경이나 할걸요? 그게 미국의 국익이 될 테니까.”
미국에 떨어지는 콩고물이 사법 카르텔의 편을 들었을 때 많을까, 아니면 위버멘쉬의 편을 들 때 많을까?
조직의 성격과 규모를 생각하면 답은 너무나 자명했다.
법이란 일단 그 나라의 국익을 수호하는 목적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아무리 썩어버린 사법계라고 해도 외국 세력이 한국 땅에서 이권을 추구할 때는 걸림돌이 되어줄 수밖에 없었다.
마피아식으로 표현하자면 ‘내 나와바리에 포크를 얹지 마!’라고라 할까. 아, 물론 검은 머리 외국인은 예외다.
하지만 위버멘쉬는 검찰이나 법원과는 성격이 완전히 다른 단체였다. 그들은 국익을 수호하는 단체가 아니라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이익단체였다.
물론 사회적 책임을 요구하는 여론이 있기는 하지만, 공공의 이익과 국익을 수호해야 하는 공공기관과는 태생부터가 달랐다.
“그렇군요. 충분히 참조가 되었습니다.”
“뭘요. 서로 돕고 사는 거죠.”
경완의 뻔뻔한 말에 김준은 피식 웃더니 결론을 내렸다.
“그럼 위버멘쉬가 승리하겠군요.”
글쎄, 과연 그럴까?
경완은 성급하게 미래를 예단하지 않았다.
“그건 모르죠. 똥개도 제집 앞에선 절반은 먹고 들어간다는데, 사법계가 이대로 밀릴 것 같진 않아요.”
아무리 위버멘쉬가 국제적이고 강력한 신흥세력이라고 해도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다. 바로 신흥세력이라는 점 자체가 약점이었다.
과거 조선시대 때도 삼대가 벼슬을 해야 양반 취급을 해줬던 것처럼 역사가 짧다는 것은 위버멘쉬의 최대 약점이었다.
특히 기득권의 핵심 이권으로 파고들려고 할 때, 이 점이 어마어마한 장벽으로 작동할 수밖에 없었다.
사법 카르텔은 정재계와 오랜 기간 쌓아온 신용(?)이 있었다. 일종의 이너서클이랄까? 이권을 탐하기 위해서 서로 경쟁하기는 하지만 그것은 그들만의 리그에 불과했고, 생판 모르는 남이 그 리그에 끼어드는 것을 원하는 이는 없었다.
새로운 경쟁자라는 것 자체가 기득권이 가장 싫어하는 ‘예측이 어려운 변수’였고, 또한 경쟁자가 늘어나면 갈라먹을 게 줄어들 뿐이니까.
그런 이너서클에 들어가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이너서클의 누군가를 쳐내고 그 자리를 빼앗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선 실력을 보여줘야 했고, 그것이 이 일련의 사태가 지닌 본질이 아닐까?
경완의 평에 김준은 씁쓸해졌다.
“한층 더 혼란스러워지겠군요.”
“원래 태풍이 한번 쓸고 가면 깨끗해진다잖아요?”
“다 엉망이 되는 게 아니고요?”
“그거야 인간의 관점이죠.”
피식 웃는 경완을 보며 김준은 목구멍으로 올라오는 문장을 간신히 삼켰다.
‘마치 본인은 인간이 아닌 것처럼 말씀하시네요.’
그 문장을 삼킨 건 사람이라고 생각되기 힘들 정도로 강한 이경완이 사람으로 남기를 바라는 김준의 소망 때문이 아닐까?
까똑!
그때 문자가 왔다. 김준은 문자를 확인하고는 경완에게 급히 요청했다.
“TV 켜도 됩니까?”
“뭐, 중요한 속보라도 나오는 모양이네요?”
“방금 들어온 정보가 사실인지 저도 믿을 수가 없어서요.”
김준은 그렇게 대꾸하면서 경완이 염동력으로 건네준 리모콘으로 TV전원을 켰다.
채널을 뉴스로 돌리자 거기엔 위버멘쉬 한국 지부장 정호태가 공식 기자 회견을 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저희 위버멘쉬 한국지부는 S급 초능력자 이경완 씨의 산하에 들어가기로 했습니다.]
“……저게 뭔 개소리야?”
경완은 저도 모르게 말을 내뱉으면서 서둘러 인터넷을 뒤지기 시작했다. 앞의 뭐가 ‘그렇기’ 때문이라고 저런 개소리를 하는지 빨리 알고 싶었다.
그러는 와중에 기자 회견은 계속되었다.
[이경완 씨와 사전에 합의된 내용입니까?]
[검찰의 기습적인 압수수색에 대한 대항책은 아닌가요?]
[그럼 이경완 시가 위버멘쉬 한국지부장이 되는 겁니까?]
정호태는 기자들의 민감하고 파급이 클 수밖에 없는 대답에 하나하나 대답했다.
이경완과 사전에 합의된 바는 없다, 검찰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으며 그저 적절한 시기라서 발표했을 뿐이다, 이경완이 위버멘쉬에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위버멘쉬 한국지부가 이경완의 밑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하나같이 상식적이지 않은 대답이었다. 도대체 이유가 뭘까?
이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정호태는 이렇게 대답했다.
[세상은 변했습니다. 초능력은 이미 우리의 생활 전반에 파고들었고, 얼마나 훌륭한 초능력자와 초능력 기술을 보유하느냐가 기업과 국가의 위상과 경쟁력을 결정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이경완 씨는 현존 최강의 초능력자고, 그런 초능력자의 밑에 들어가는 것은 오히려 저희 지부의 경쟁력과 생존에 도움이 됩니다.]
[이미 위버멘쉬는 한국에서 독점적인 지위를 확보하지 않았나요?]
[글쎄요?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저는 모르겠습니다만, 일단 우리의 진짜 경쟁자는 독립한 타국의 위버멘쉬입니다.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죠.]
어느 기자가 사실상 이경완의 사조직이 되는 게 아니냐고 묻자, 정호태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상 사조직이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이경완에게 위버멘쉬의 지분이나 딱히 권한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게 가능하냐고 묻는 기자의 질문에는 이렇게 대답했다.
[지부 내부적으로 총의를 모아 내린 결론입니다. 우리는 이경완 씨의 지시를 따를 겁니다. 필요한 법적 절차는 차후 그분과 긴밀한 협의 후에 진행할 생각입니다.]
경완은 어느새 검색을 멈추고 정호태 지부장의 기자회견에 집중했다.
그 고요한 분위기에 김준은 소리 없이 침 삼키느라 고생해야 했다.
건들면 터질 것 같은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갑자기 전화벨이 울렸다. 김준은 화들짝 놀랐지만 소리 내지 않으려 입술을 꾹 다물고 있었던 덕분에 어깨만 흠칫하고 말았다.
하지만 경완은 침착하다 못해 차가워지기까지 한 표정으로 핸드폰을 꺼내 발신자를 확인한 다음 통화버튼을 눌렀다.
“네, 총장님.”
전화를 한 사람은 다름 아닌 요하네스였다.
[위버멘쉬 한국지부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던데 보셨습니까?]
“총장님은 알고 계셨어요?”
[독립한 위버멘쉬 한국지부를 위해 준비해 둔 몇 가지 시나리오 중 하나였죠.]
“총장님께서 관여하신 건 아니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