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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전생 더 빌런-285화 (285/367)

무한전생-더 빌런 285화

27-권력은 잠들지 않는다

[정호태 지부장이 저런 결정을 내린 건 본인의 판단입니다. 저는 독립한 지부의 운영에 어떤 간섭도 하지 않아요.]

“정말입니까?”

[믿음을 강요하진 않겠습니다.]

그 담담한 목소리에 경완은 한숨을 푹 내쉬며 한 박자 느리게 질문했다.

“왜 이따위 시나리오를 준비한 겁니까?”

[그야 조직의 생존과 번영을 위해서죠.]

“이해가 안 되는데요?”

[제가 경완 씨와 대화를 할 때마다 느끼지만 경완 씨는 본인의 가치를 과소평가하고 있어요. 아니면 주변 모두가 경완 씨를 과소평가하도록 본인의 역량을 잘 감추고 있다고 안심하고 있다던가. 아마 세상만사를 귀찮아하는 성품 때문이라고 보지만, 세상엔 그런 포장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이가 있습니다. 저처럼 말이죠.]

“…….”

[경완 씨는 마음만 먹으면 우리 위버멘쉬가 세운 아성 따윈 단숨에 짓밟을 힘이 있어요. 그런 존재와 대척점에 선다? 그런 어리석은 선택을 할 정도로 저나 정 지부장은 지능이 낮지 않아요.]

“아니, 그래도 이건 좀 그렇잖아요. 제 휘하에 들어오겠다니.”

[그럼 경완 씨를 어느 위치에 올려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냥 단순히 협력 및 우호관계로도 충분하잖아요.”

[저는 그 협력과 우호관계가 영원하리라 믿지 않습니다. 세상엔 영원한 건 없습니까요. 차라리 경완 씨 밑으로 편입되는 편이 단순한 협력과 우호관계보다 더 오래가지 않을까요?]

“도대체 얼마나 오래가려고요?”

[경완 씨, 우리 생각보다 세상은 더 빠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인정하지 않고 자신이 알고 있는 것, 가진 것이 영원하리라 믿는 안이한 자들은 만일의 상황이 닥치면 그저 경완 씨의 자비만을 구걸하게 될 겁니다.]

“만일의 상황이라뇨?”

[충돌일 수도 있고 도움일 수도 있죠. 경완 씨의 성격대로라면 아마 책임자를 붙잡아다 윽박지르는 상황이 아닐까요?]

“아니, 제가 왜 그런 악당 짓을 합니까?”

[그게 왜 악당 짓입니까?]

“때리고 협박하는 게 악당 짓이 아니면 뭔가요?”

경완의 말에 요하네스는 유쾌하게 웃었다.

[하하하하! 그렇게 생각하시는군요. 하지만 경완 씨. 목적은 수단을 정당화한다는 말을 아십니까?]

“알죠. 이삼류 악당들이 제가 한 짓들을 정당화할 때 흔히 쓰는 논리잖아요?”

목적은 수단을 정당화한다. 마키아 벨리의 군주론에 나오는 말이었지만, 경완은 이 말이 무척이나 1차원적이라고 생각했다.

수단이 달라지면 결과도 달라지는 법. 1+0=2라는 공식을 만들어도, 이를 참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결국 0을 1로 수정하는 작업을 거쳐야 한다.

하물며 변수가 더 많고, 시간조차 돌릴 수 없는 현실에서 동일한 결과를 얻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수정작업을 해야 하겠는가?

괜히 동서고금을 통틀어 권력자들이 정통성을 얻고자 발버둥치고, 반정과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자들이 그 행위를 정당화하고자 통치적 업적을 필요로 한 것이 아니었다.

요하네스는 즐겁다는 말투로 질문을 살짝 비틀었다.

[하지만 경완 씨는 사랑하는 이를 위해서라면 기꺼이 악당이 될 수 있지 않습니까?]

“…….”

경완은 반박할 수 없었다. 국정원 서충헌 차장이 이미연을 건들려고 하자 사회적으로 박살 내버린 게 얼마 전이 아니었던가?

아무리 자기 딴엔 온건한 방식을 택했더라고 하더라도, 그 과정에선 조금이나마 분명 협박과 폭력이 행해졌다.

분명 옳지 못한 수단을 선택한 것이다. 하지만 그때는 오명을 뒤집어쓰더라도 그 방법이 미연에게 가해지는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믿었다.

그렇다. 경완은 목적을 위해 수단을 결정했다. 비록 그것이 ‘옳지 못한’ 방법일지라도. 이것이 정당화가 아니면 무엇이 정당화일까?

[목적은 수단을 정당화한다. 분명 오류투성이인 말입니다. 하지만 현실적인 말이죠.]

“……그렇죠.”

경완은 인정했다.

세상은 결코 이상적이지 않다. 신이 제정신으로 창조했나 싶을 정도로 불합리와 비이성이 넘쳐났다.

외눈박이밖에 없는 세상에선 두눈박이가 비정상이고 외눈박이가 정상이듯, 현실세계에는 마키아벨리의 저 오류투성이인 말이 옳다고 느껴지는 시간과 장소가 즐비했다.

세상엔 ‘절대’가 없었고, 마키아벨리의 문장도 ‘절대’ 틀리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요하네스가 말을 이었다.

[자격 있는 자가 세상의 부와 권력을 쥐는 것은 지극히 옳은 일입니다. 경완 씨에게는 그럴 자격이 있어요. 위버멘쉬 한국지부쯤 휘하에 넣고 부릴 수 있는 자격이요.]

“누가 그 자격을 부여합니까? 총수님께서?”

경완의 대꾸에 요하네스는 담담하게 말을 받았다.

[제가 설립하고 독립한 위버멘쉬 때문에 귀찮아지신 것에 대해선 정말 미안합니다.]

“진짜요?”

[아니요. 전혀요.]

“…….”

[하하! 분위기가 좀 딱딱해지는 것 같기에 농담 좀 했습니다.]

경완이 황당해서 말이 없는 가운데, 요하네스는 잠깐 뜸을 들이다가 말을 이었다.

[제가 자격을 운운할 순 없죠. 세상 사람들의 대변인도 아니고요. 그저 제 생각을 말했을 뿐입니다. 하지만 경완 씨. 누가 당신에게 부와 권력을 주지 말라고 했습니까? 그들은 무슨 자격으로 그런 말을 하는 거죠? 내가 인정하겠는데?]

“사람들의 반발이 걱정되지 않습니까?”

[그런 거 걱정했으면 위버멘쉬를 만들지조차 않았을 겁니다.]

“제가 하지 말라고 하면요?”

[그건 정호태 지부장과 말씀하세요. 한국지부는 그의 담당이니까요. 한국지부가 경완 씨 밑으로 들어가겠다고 한 거지, 위버멘쉬 모두가 당신의 밑으로 들어가겠다고 한 것이 아닙니다.]

“제가 해체하라고 하면요?”

[알아서 하겠죠. 해체하든 거부하든 제 알 바는 아닙니다. 설사 순순히 해체하더라도요. 하지만 그런 경우엔 언제고 다시 위버멘쉬가 한국에 진출하겠죠. 그게 본부 차원이 될 수도 있고, 이미 독립한 지부가 할 수도 있어요.]

경완은 마른세수를 했다. 대화를 나눠볼수록 일은 이미 벌어졌고, 되돌릴 수도 없으며, 요하네스와 대화 자체가 소용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요하네스는 끼어들 생각이 전혀 없었다.

경완은 잠시 말없이 폰을 붙잡고 눈을 감았다. 위버멘쉬 한국지부장의 기자회견과 선언이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줄지 가늠하기 위해서였다.

일단 나쁜 건 없었다. 커다란 조직이 경완의 말을 듣겠다고 한 거니까.

하지만 상황이 좋진 않았다. 검찰이 판검사 연쇄 살해 사건의 배후로 위버멘쉬 한국지부를 의심하고 있었기 때문에 자칫하다간 도매급으로 넘어갈 수도 있었다.

경완이 눈을 뜨고 물었다.

“혹시 한국의 판검사 연쇄 살해 사건이 기자회견의 이유와 얽혀 있습니까? 아니라고 하기엔 타이밍이 너무 의심스러운데요.”

[음. 얼마 전 정 지부장이 제게 연락을 했었어요. 한국 사법계가 위버멘쉬 한국지부를 대상으로 표적수사를 하고 있다고요.]

뉘앙스를 들어보니 분명 도움을 요청하기 위한 연락이었을 것이다.

“그래서요?”

[저는 알아서 하라고 했죠. 그 지역을 맡기로 했으면 저항세력도 감당해야 한다고요.]

“아예 저항세력을 뿌리 뽑고 독립시키지 그랬어요?”

[지부를 독립시키는 내부 기준이 있습니다. 지부가 독립신청을 하면 그 나라의 국력, 사회, 문화 등을 고려해서 평가 항목을 짜고 위원회를 통해 평가를 받은 다음 저의 승인을 받게 됩니다. 꽤 복잡해요.]

최소한의 기준은 위버멘쉬가 그 나라에 자리를 잡고 자립할 수 있느냐였고, 위버멘쉬 한국지부는 그 기준을 훌륭히 통과했다. 독립은 한국지부의 의사를 충분히 반영한 결과였던 것이다.

경완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총장님은 판검사 연쇄 살인의 배후에 한국지부가 관련되어 있다고 보십니까?”

[저는 그렇다고 봐요.]

“한국지부 전체가 한통속이라고요?”

그 질문에 요하네스는 한 박자 늦게 대답했다.

[경완 씨. 위버멘쉬에 초기에 들어온 사람들, 그래서 위버멘쉬의 핵심 의사결정권자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인 줄 아나요?]

“글쎄요?”

[야망이 있거나, 세상이 엿 같거나, 혹은 그 둘 다인 사람들이죠. 잘난 인생을 살다가 초능력을 각성한 이들은 좀처럼 위버멘쉬에 오려고 하지 않았어요. 좀 잘나간다 싶은 뒤에 인력 수급이 쉬워졌죠. 하지만 한국지부의 설립 인원은 초기 회원들이랍니다.]

경완의 머리에 매스 이펙터 김봉남이 떠올랐다.

그래, 분명 김봉남은 위버멘쉬가 빌런 조직으로 취급받을 때부터 활동했었다.

“한국지부의 결정권자들이 관련되어 있다는 말인가요?”

[그건 저도 잘 모르겠군요.]

모두가 동의한 사항일 수도 있고, 일부의 일탈일 수도 있고, 혹은 그 일부의 일탈을 모두가 방관하는 공범자일 수도 있고.

그때쯤 뉴스에선 기자회견이 마무리되고 있었다. 경완은 요하네스에게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총장님. 제가 어떻게 하길 바라십니까?”

총장의 의사에 따라 차후 두 사람 사이의 관계가 결정될 테니까.

요하네스는 이렇게 답했다.

[경완 씨 마음대로 하세요. 당신이 어떤 결정을 하든 당신을 향한 저의 친애와 우호는 바뀌지 않을 겁니다.]

“……왜 그렇게까지 저에게 우호적입니까?”

[하하. 그건 나중에 밝힐 즐거움으로 남겨두죠.]

“전 전혀 즐겁지가 않은데요?”

[제가 즐겁다는 말입니다.]

“하아.”

경완은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쉬운 인사가 아니었다.

[하하하. 이제 전화 끊으실 건가요?]

“예지능력자십니까?”

[아니요. 기자회견이 끝나서요. 경완 씨에겐 저보다 더 질문하고 싶은 사람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요하네스는 의뭉을 떨었고, 경완은 강하게 의심했다. 세계에서 발견된 적 없다는 예지능력자가 존재한다면 그가 바로 요하네스라고.

일단 그와 통화를 끊은 경완은 바로 정호태 지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김준에게는 돌아가라고 눈치를 누고 말이다.

“정 지부장님, 접니다.”

[네, 경완 씨.]

“기자회견 봤어요.”

[……자세한 이야기는 직접 방문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정호태 지부장이 기자회견장에서 경완의 집으로 오는 건 두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기자들을 개떼처럼 이끌고 온 정호태 지부장이 초인종을 눌렀다.

하지만 대문은 열리지 않았다. 대신 경완이 담 넘어 고개를 내밀었다. 그리고 정호태 지부장을 확인하고는 염동력으로 그를 붙잡아 올리고는 담을 넘겨 마당에 내려다 놓았다.

정호태 지부장은 저항하지 않고 새끼고양이처럼 얌전히 그런 취급을 감내했다.

경완이 모욕을 주기 위해서 그런 건 아니었다. 그저 혹시나 취재 욕심에 눈이 돌아간 기자들이 대문 안으로 침범해서 소란이 일어날까 봐 그랬을 뿐. 하지만 그 장면이 오히려 기자들에게 좋은 촬영거리였다.

“들어가시죠.”

“네.”

마당에 내려선 정호태 지부장은 경완의 제안에 마치 상급자의 지시를 받은 것마냥 공손히 고개를 숙이더니 경완의 뒤를 따라 집안으로 들어왔다.

경완은 그에게 소파에 착석을 권하더니 자신은 주방으로 향했다.

“커피 한 잔 하실래요?”

“감사합니다.”

정호태 지부장은 굳이 거절하지 않았고, 경완은 그의 대답에서 이야기가 빨리 끝나진 않을 거라는 걸 예상했다.

잠깐 몇 마디 말만 하고 일어나려면 경완이 권한 커피를 받아들이지 않았을 테니까.

경완은 자신의 커피도 한 잔 타서 테이블 위로 가져왔다. 커피잔을 놓는 동시에 그의 몸에서 검은 연기가 뿜어져 나와 거실 주변을 감쌌다.

정호태가 그러한 변화에 그의 얼굴을 보자 그는 별거 아니라는 듯이 담담하게 대답했다.

“주변에 도감청하려는 이들이 많아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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