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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전생 더 빌런-288화 (288/367)

무한전생-더 빌런 288화

27-권력은 잠들지 않는다

경완은 질문을 던진 후 정호태의 대답을 기다리듯 상체를 앞으로 숙이며 두 손 위에 턱을 올려놓았다.

그러한 모습에 정호태는 이유 모를 불안감에 떨떠름하게 대답했다.

“네, 네.”

“그런데 굳이 이 타이밍에, 하필 판검사 연쇄 살해 사건의 배후에 위버멘쉬가 있다고 검찰이 의심하고 있을 때 기자회견을 한 이유는요?”

“그, 그게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말해봐요.”

경완의 요구에 정호태는 왠지 모를 두려움에 조심스러운 태도로 설명했다.

일단은 수사기관에 혼선을 주기 위해서였다.

이경완이 얽혔다는 것만으로 저들에게 혼란을 가할 수 있었고, 정말 판검사 연쇄 살해와 경완이 연관이 있다고 의심하게 된다면 그 이유, 방법, 목적, 대처방안 등을 생각하느라 갈피를 잡지 못할 테니까.

두 번째는 아직도 중립을 지키며 간을 보는 유력자들에 대한 경고의 의미였다.

우리 뒤에 이경완이 있다. 중국이 어떤 꼴이 났는지 알지? 알면 잘하자.. 라는 메시지를 은근히 전달하기 위해서였다.

물론 이것도 경완의 뜻을 물어본 건 아니지만, 그에게도 나쁠 건 없었다. 세계에 널리 알려진 그의 명성(?)을 빌리는 대신 위버멘쉬 한국지부를 통째로 가져다 바치는 것이었으니까.

정호태 지부장의 이야기를 다 들은 경완이 입을 열었다.

“안 되겠네요.”

“네?”

“더 맞읍시다.”

“네?!”

정호태 지부장이 당황하는 사이에 염동력이 그를 강제로 일으켜 세웠고, 경완의 구타가 시작되었다.

잠시 후 정호태 지부장이 경완의 집을 나섰을 때 기자들은 이렇게 대서특필했다.

[위버멘쉬 한국지부를 통째로 가져다 바치겠다는 정호태 지부장! 오히려 이경완에게 두들겨 맞았다?]

[정호태 지부장과 이경완의 의견 불일치 이유는?]

[정호태 지부장 왈(曰) ‘이경완 씨와 의견조율 과정 중’인데 얼굴 여기저기가 퉁퉁 부은 이유에는 묵묵부답!]

위버멘쉬 한국지부와 이경완의 합의가 원활히 이뤄지지 않는 상황(?)을 반기는 뉘앙스의 기사가 쏟아졌고, 그중에는 이대로 영영 위버멘쉬 한국지부와 이경완이 갈라지기를 바라는 노골적인 칼럼도 있었다.

제목은 ‘위버멘쉬 한국지부는 은거를 택한 기인의 평온을 방해하지 마라’였다. 아주 그냥 경완이 평생 두문불출하길 바라는 마음도 듬뿍 끼얹어져 있었다.

아무튼, 두 사람 사이에 오간 대화 내용을 전혀 모르는 이들은 뇌내행복회로를 풀가동시켰고, 이는 위버멘쉬 한국지부에 대한 수사를 강화하려는 검찰에게까지 영향을 끼쳤다.

정호태 지부장과 간부들에 대한 소환조사가 시작된 것이다.

조사 대상 중 한 명이 된 김봉남이 경완에게 전화를 걸어서 징징댔다.

[아무리 검찰이라지만 너무해요. 도무지 깡패랑 무슨 차이가 있는지 모르겠다니까요.]

“그런 소리나 하려고 전화한 거면 끊을게요.”

쭉쭉빵빵 S라인의 절세미녀가 징징거려도 들어줄까 말까 한데 시커먼 사내새끼가 징징거리는 건 도저히 들어줄 수가 없었다.

하지만 김봉남은 못 들은 척 말을 이었다.

[여기 검사들이 질문하는 게 좀 이상해요.]

“뭐가요?”

[제가 빌런 딱지 붙었던 적이 있잖아요?]

교도소 담도 함부로 무너뜨리고 넘었는데 딱지가 붙었다고 표현하는 건 좀 양심이 없는 거 아닌가?

“아무튼, 그래서요?”

[자꾸 아는 빌런이 있느냐, 여전히 불법행위하는 초능력자가 있나 물어보더라고요.]

“그래서요?”

[외환법 위반이니 하는 명분은 개소리 같다 이거죠.]

“그래서요?”

[아니, 그냥 그렇다고 하소연하는 겁니다.]

김봉남이 우는소리 하기에 경완은 이렇게 물었다.

“봉남 씨도 관련되어 있어요?”

[뭐가요?]

“거기 판검사 양반들 죽어 나자빠지는 일에요.”

[어…… 전 잘 몰라요.]

정말 모르는 건 아니지만 딱히 관여하거나 어떤 역할을 맡고 있지는 않다는 뉘앙스랄까?

경완은 다른 질문을 했다.

“혹시 검찰에서 저를 부를 것 같아요?”

[그럴 수도?]

“정신계 초능력자를 동원할 가능성은?”

[있지 않을까요? 걔들 원래 내로남불이잖아요?]

니가 받으면 뇌물이고, 내가 받으면 그냥 명절 떡값이라는 게 검찰의 행태 아닌가?

실제로 떡값 검사라는 명칭으로 욕만 오지게 처먹을 뿐, 실제로 옷을 벗은 인간은 단 한 명도 없었고, 오히려 떡값 검사 명단 폭로한 정치인만 대법원에서 유죄판결을 받아 정치 생명이 끊어졌다.

반대로 로비 덮은 인간은 법무부 장관이 되었고. 이것이 이 나라의 현실이었다.

이 얼마나 강력한 사법 카르텔이란 말인가?

그런 상황에서 몰래 불법으로 정신계 초능력자를 동원해 기억을 읽고 예민한 정보를 빼내고는 실수였다, 모르는 일이라며 오리발 내미는 건 자기들 이익을 위해 법을 제멋대로 주무르는 자들에겐 여반장이었다.

판검사 연쇄 살해범을 잡고야 말겠다는 명분도 있으니 거칠 게 없을 것이다.

“걱정 안 돼요?”

[이미 정신계 초능력을 막는 장비가 나와서 괜찮아요. 웬만큼 강력한 정신계 능력자가 아니면 뚫기 힘들고 설사 뚫는다고 해도 정신계 초능력이 간섭 중이라고 신호가 와요. 그리고 이 신호는 IT로 연동되어서 바로 대응 프로토콜이 시행되죠.]

정신계 초능력 방어 장비는 미국에서 가장 빨리 개발되어 월가와 정계에 바로 공급된 기술로, 위버멘쉬 한국지부의 모든 간부들에게도 보급된 물건이었다.

사무실이나 자택에 초능력 공학 소재로 만들어진 감지기가 설치되어 패스의 접근 여부를 감지하고, 야외에선 머리띠 형태의 장비를 머리에 써서 패스의 두뇌 접촉 여부를 감지한다는 것이다.

일단 감지하는 게 중요했다. 감지만 한다면 스스로 대처법을 행하든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든 할 수 있으니까. 김봉남이 말한 대응 프로토콜은 후자에 해당했다.

그래서 정신계 초능력으로 정보를 빼내는 건 어렵다는 김봉남의 설명에 경완은 이렇게 생각했다.

“그러면 검찰에서 저를 찾아올 수도 있겠네요?”

[아무래도 그렇지 않을까요?]

경완의 독심술, 진실의 스무고개는 정신계 초능력이 나오기 전에도 신문(訊問)에 유용하다는 사실이 알려져 있었다.

오죽하면 미국에서도 서비스(?)를 이용했을 정도였고, 지금은 독심술 신문요원을 본격적으로 양성 중이었다. 멘탈리스트라는 드라마도 있어서 지원자는 차고 넘칠 정도라고.

아무튼 정신계 능력자를 몰래라도 이용할 수 없다면 정보를 캐내기 위해서라도 경완의 협조가 필요한 게 검찰의 사정이었다. 미국의 독심술 요원을 지원받기에는 아무래도 무리일 테니까.

“좋은 소식 고마워요.”

[아유~ 좋은 소식이라니요. 저는 그저 형님의…….]

경완은 통화종료 버튼을 눌러 길어지는 잡소리를 단호하게 끊고 주방에서 저녁 식사를 차리는 미연에게 물었다.

“미연아. 휴가 갈까?”

“휴가? 어디로?”

“태평양.”

“어…… 혹시 바스티앙 씨 있는 곳?”

“응. 가서 고래 보며 힐링 좀 하자.”

귀찮게 할 인간들을 피해서 잠시 관망도 좀 하고.

미연이 웃으며 화답했다.

“좋아. 그런데 몇 사람 같이 데려가도 될까?”

“물론.”

그렇게 갑작스럽게 휴가가 잡혔지만, 슬슬 이번 시즌 활동이 마무리되어 가던 미연이라 별 부담 없이 휴가 일정을 잡았다. 거기에 지인들도 같이했다.

“오랜만이에요, 형부~”

“불러줘서 고마워, 미연아.”

붙임성 있게 인사하는 윤혜정과 이영미 뒤로 두 사람이 더 있었다.

“안녕하세요, 원이진이라고 합니다. 만나서 반가워요, 형부.”

“형부, 처음 뵙겠습니다. 우민이라고 해요.”

원이진은 아이돌 출신의 가수였고, 우민은 슈퍼모델 출신의 연예인이라나? 그래서 그런지 예쁘기는 했다.

경완은 형부라는 표현에 살짝 미연을 보았지만 그녀의 표정에는 좋은 티도, 싫은 티도 나지 않았다.

아무튼 경완은 두 사람과도 인사를 나누고는 일행을 향해 물었다.

“다들 갈 준비는 됐어요?”

““““네~””””

합창하듯 하는 대답에 경완이 말했다.

“염동력으로 몸을 잡을 테니까 놀라지 마시고. 갑시다.”

그는 일행과 짐을 염동력으로 붙잡은 후 웜홀을 열고 태평양으로 이동했다.

도착하니 미리 연락을 받은 바스티앙이 기다리고 있었다.

“Welcome!”

일행은 바스티앙의 환영을 받았다. 멀리서 그에게 테이밍된 고래들이 일제히 분기를 뿜어내는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었으니 네 여자는 좋아서 소리를 질렀다.

경완은 좋아하는 미연의 모습을 보며 피식 웃고는 바스티앙에게 감사의 말을 전했다.

그러자 바스티앙은 웃으며 겸양을 떨었다.

[하하하. 경완 씨가 해준 것에 비하면 약과죠.]

그는 일행을 위한 숙소를 보여줬는데, 일전에 같이 놀았던 그 슈퍼요트를 불러다 놓았다.

그런 배려에 미연은 물론이고 경완까지 부담스러워하자 그는 웃으며 말했다.

[여기는 연구시설이자 사업시설이지 관광시설은 아니라서요. 여러분의 숙소로 적합한 곳이 없어요.]

대양국제활용기구의 태평양 제1연구기지는 원래 사업의 가능성을 점쳐보기 위한 시범 사업이었다.

지금은 밝은 전망이 기대되고 있지만 여전히 연구와 대양양식 사업이 중심이었기에 관광지로써 활용하기엔 적절하지 않았고, 따라서 손님을 위한 숙소와 편의시설이 부족했다.

[이 기회에 저희 직원분들도 슈퍼요트에 태워보려고요. 다들 고생하고 있거든요.]

기껏 불렀는데 경완 일행만 놀고 보내기엔 아깝다면서 바스티앙은 사람 좋게 웃었다. 그 모습에 미연이 초대한 미녀 4인방의 눈빛이 초롱초롱해졌다. 능력과 외모, 거기에 인성까지.

바스티앙은 직접 일행을 안내해 주면서 여기저기를 구경시켜 주었다.

직원들도 소개해 주었다. 미연의 초대를 받은 미녀들은 여기저기 SNS에 올릴 사진도 찍고 바스티앙하고 썸타보려고 말도 걸어보느라 바빴다.

경완은 전과 다르게 직원들이 하는 일이 뭔지도 구경할 수 있었는데, 고래 겉에 붙은 기생성 따개비를 긁어내거나 전자장비를 달기도 하고 뭔가 훈련을 시키는 것 같은 광경도 있었다.

미연도 그 모습을 보고 뭐 하는지 궁금해서 물었다.

[저기 뭐하는 건가요?]

[교감 훈련 중입니다. 태평양이 워낙 넓다 보니 파견 활동을 해야 하거든요.]

연구선과 강화 고래들을 이끌고 태평양 공해를 누비며 각종 연구와 작업을 하기 위한 사전 작업이라는 것이다.

나중에 대서양이나 인도양에 세워질 해상연구 플랫폼에 그대로 이식할 시스템이 될 수 있도록 개발 중이라나?

그렇게 여러 연구원도 만나고 확장된 해초 숲과 플랑크톤 양식 시설도 구경한 일행들은 바스티앙의 슈퍼요트에서 본격적으로 쉬면서 놀기 시작했다.

미연을 필두로 여자들이 따로 노는 동안 바스티앙은 경완을 위해 커피를 타왔다.

[이렇게 갑자기 온다고 연락을 하니 놀랐습니다.]

바스티앙의 말에 경완이 대답했다.

[갑자기 피해야 할 일이 있었거든요.]

[호오~ 무슨 일인지 궁금하군요.]

[아, 바스티앙 씨도 위버멘쉬 회원이었죠?]

경완은 S급 히어로인 바스티앙에게 적당히 각색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한국에서 현재 일어나고 있는 판검사 연쇄 살해 사건에 얽히고 싶지 않아서 잠시 몸을 피한 거라고 말이다.

그 이야기를 들은 바스티앙의 눈빛이 깊어졌다.

[혹시 그 연쇄 살해 사건의 배경에 한국지부가 얽혀있는 겁니까?]

뭔가 알고 있는 듯해서 경완은 굳이 부정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하더군요.]

[쯧.]

바스티앙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혀를 찼고, 그런 그를 보며 경완이 물었다.

[뭔가 아시는 거라도 있나요?]

[위버멘쉬는 기본적으로 패권을 추구합니다.]

[안 그런 조직도 있나요?]

조직은 기본적으로 생존을 위해서라도 항상 성장해야 하고, 그 성장의 방향은 항상 패권으로 수렴하게 마련이었다.

패권을 쥐는 것이 생존과 성장에 가장 유리하니까. 마치 지능이 높은 종이 먹이사슬의 최상위에 올라서는 수렴진화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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