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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전생 더 빌런-289화 (289/367)

무한전생-더 빌런 289화

27-권력은 잠들지 않는다

경완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바스티앙은 경완의 얼굴을 보며 눈을 껌벅이다가 착잡한 듯 입맛을 다시더니 말을 이었다.

[제가 위버멘쉬의 회원이고, 벨푸기스 씨를 존경하기는 합니다만 종종 이해하기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뭐가요?]

[그분이 내리는 지침이나 계획이 인간은 절대로 공평하지 않다는 걸 전제로 하는 것 같아서요.]

[그것도 당연한 것 같은데요?]

안 그런 조직도 있나? 하다못해 좆소기업도 일 잘하는 노예와 일 못하는 노예의 대우가 다를 텐데, 촘촘하게 인사관리를 하는 대기업이나 위버멘쉬 같은 다국적 글로벌 조직은 어떻겠는가?

바스티앙이 여전히 고개를 갸웃하는 경완을 향해 대꾸했다.

[인간의 생명까지 그렇게 보는 것 같아서 말입니다.]

[아아.]

경완은 이해가 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바스티앙은 프랑스인이고 프랑스인에겐 똘레랑스가 기본적으로 탑재되어 있다지? 그런 바스티앙에게 생각이 다르다고 피까지 보는 위버멘쉬의 모습이 곱게 보일 리는 없었다.

물론 똘레랑스가 민주주의 기본이라고 매우 중시하면서 레볼루숑으로 귀족들 목을 댕겅댕겅 따버린 모순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뭐 세상일이란 다 어느 부분에선 경계가 모호하고 모순적인 부분이 있게 마련이었으니까.

아, 그래서 바스티앙이 여전히 위버멘쉬 회원인 모양이었다.

경완은 이렇게 대답을 회피했다.

[저는 살인마 소리까지 들은 적 있으니 위버멘쉬의 정책에 대해서 뭐라고 말하기 어렵네요.]

[아, 죄송합니다.]

[아유~ 아닙니다.]

바스티앙의 사과에 경완이 손사래를 치며 웃었고, 미안한 표정을 짓던 바스티앙은 마른세수로 표정을 원래대로 돌리고는 하던 말을 이었다.

[위버멘쉬는 수단과 방법을 철저하게 가리는 집단입니다.]

[반대 아닌가요?]

[아닙니다.]

바스티앙이 말하길 협상이 필요한 곳에서는 협상을, 협박이 필요한 곳에서는 협박을, 베풂이 필요한 곳에서는 베푸는 것이 위버멘쉬의 최대 강점이라고 말했다.

그것을 정확히 판단할 수 있는 판단력이 적과 잠재적 경쟁자를 분쇄하고 위버멘쉬에 우호적인 인물을 늘려 오늘날의 위상을 이뤄낼 수 있었다고 말이다.

따지고 보면 바스티앙 본인부터가 그러한 전략에 의해 위버멘쉬의 회원이 된 경우였다.

바다와 자연을 사랑하기에 대양국제활용기구라는 비전의 실현을 원했고 이에 위버멘쉬가 전폭적으로 협조하기로 해서 회원이 된 것이니까.

이 계약은 오늘날까지 성실하게 이행되고 있었고 이는 바스티앙이 위버멘쉬 회원증을 쉽사리 버리기 힘든 신뢰를 쌓았다.

바스티앙이 말을 이었다.

[한국지부가 한국에서 그런 극단적인 방법을 사용한 이유는 그 부분이 취약하기 때문이겠죠.]

권력이 순환되지 않고 고여 있으니 그 고인물을 빼버리면 연못을 자기네 물로 채울 수 있다는 논리였다.

[극단적인 방법 말고 다른 방법은 없었을까요?]

경완은 궁금한 부분을 물었다. 정호태는 물리적 제거가 최선의 방법인 양 말했지만 경완은 온건한 방법의 가능성에 대해 다른 사람의 시선으로 의견을 들어보고 싶었다.

그러자 바스티앙은 좀 색다른 관점에서 대답을 내놓았다.

[타협도 어느 정도 공감대가 있어야 가능한 일입니다. 그리고 위버멘쉬는 전체적으로 조직의 건전성을 유지하려는 경향이 굉장히 강합니다. 말단은 몰라도 핵심이 되는 인원과 관리자는 그것이 본연의 업무 중 하나에요.]

[그러니까 타협을 하면 조직의 건전성이 훼손된다는 말인가요?]

[네. 위버멘쉬는 단순히 자본주의적 이익을 추구하는 집단이 아니니까요. 그들은 시스템 자체를 원합니다.]

경완은 고개를 끄덕였다. 여태까지 봐온 위버멘쉬의 행태를 보면 맥락에 맞는 이야기였다.

바스티앙이 이야기를 계속했다.

[부패한 기득권과의 야합은 조직의 건전성을 훼손합니다. 위버멘쉬는 조직의 이상을 위해 헌신하는 초능력자들을 강력한 성장동력으로 삼았고, 앞으로도 그럴 예정이기에 조직 건전성을 항상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죠. 그래서 위버멘쉬가 다양한 곳에서 기득권과 충돌을 빚는 이유가 됩니다.]

그 논리에도 경완은 고개를 끄덕였다.

왜 야합이 조직의 건전성을 훼손하는지도 이해가 되었다. 그러는 순간 욕심에 눈이 먼 소시오패스들이 파고들 틈이 생기니까. 유유상종이라고 그런 부류와 협상하려면 그런 부류를 잘 이해하는 사람에게 힘이 실리게 되지 않겠는가?

그런데 위버멘쉬로선 소시오패스가 조직에 끼칠 악영향이 훨씬 컸다. 그런 소시오패스 인사 한 명 때문에 위버멘쉬에 대한 신뢰가 깨지면 인재의 확보나 육성에 큰 애로사항이 꽃핀다.

그러니 조직의 건전성을 확보해서 소시오패스가 중요한 의사결정권자가 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했고, 이는 탈법을 밥 먹듯이 하는 법꾸라지들과의 협상 가능성을 매우 낮췄을 것이다.

뭐, 그 수단으로 살인이라는 범법을 저지르고 있다는 것이 아이러니랄까?

바스티앙이 해준 이러한 이야기는 사실 정호태가 해줬던 이야기와 큰 차이는 없었다. 경완은 정호태의 말을 교차검증했다는 성과는 얻은 셈 칠 수 있었다.

[그런 것 치고는 친하게 지내는 곳이 많은 것 같던데요?]

[화전양면전술의 일환이죠.]

적당히 타협하는 척하면서 상대 조직의 허실을 파악하고 썩은 사과와 멀쩡한 사과를 구분한 후 썩은 사과를 골라내는 작전을 펴거나, 아니면 상자째로 폐기하기도 한다나?

경완은 혀를 내둘렀다.

[무슨 세계정복하려는 것도 아니고…….]

[맞습니다.]

[네?]

[위버멘쉬는 세계 정복을 꿈꾸는 집단입니다.]

바스티앙은 자신을 멀뚱히 보는 경완의 시선을 피하며 말을 이었다.

[세계에 위버멘쉬의 사상과 세력을 각인하는 것. 그럼으로써 더 좋은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것이 바로 위버멘쉬입니다.]

아, 그런 의미의 세계정복인가? 지부를 독립시키는 것이 그러한 목적이라면 충분히 이해가 된다. 더 좋은 세상이라는 건 동의가 힘들지만 말이다.

[세계 정복이랑 더 좋은 세상이란 말하고 매치가 잘 안 되는데요?]

규모의 크기에 따라 그에 적합한 시스템이 존재한다. 작은 나라엔 작은 나라에 걸맞은 정치문화경제 시스템이 존재하듯이, 큰 나라엔 큰 나라에 걸맞은 시스템이 존재했다.

그리고 아무래도 세계 정복이라는 규모는 ‘더 좋은 세상’이라는 시스템보다 ‘어떻게든 현상을 유지해보려고 끙끙대는 세상’이라는 시스템하고 더 잘 어울렸다.

정복을 위해서는 일정 수준의 통일성이 필요하지만 세계는 모두 다른 역사와 인종, 사상, 문화 등이 모두 제각각이라 어딘가에서는 삐걱거릴 수밖에 없었으니까.

바스티앙은 어깨를 으쓱했다.

[저도 좀 이해가 안 되지만 어쩌겠어요? 인간은 안 된다고 안 하는 존재는 아니잖아요?]

해양국제활용기구라는 비전을 제시한 바스티앙이라 경완은 고개를 끄덕였다. 불가능에 도전하는 인간이 없었다면 지금의 문명은 존재하지 않았을 테니까.

경완이 그렇게 도란도란 바스티앙과 대화를 나누고 여자들은 지능이 강화된 고래와 노는 일에 정신이 없을 때 누군가가 급하게 달려와 슈퍼요트에 올라탔다. 아까 사람들을 소개받을 때 바스티앙의 비서라고 들었던가?

그가 바스티앙에게 다가와 귀에 뭐라고 속삭였다. 프랑스어라서 경완은 무슨 말인지 제대로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이야기를 듣던 와중에 표정이 굳어가던 바스티앙은 비서의 속삭임이 끝나자 경완에게 물었다.

[혹시 한국과 연락이 됩니까?]

[아니요.]

경완은 고개를 저었다. 해외로밍신청도 하지 않았고, 애당초 전화기를 들고오지도 않았다.

바스티앙이 말했다.

[한국에 일이 생겼습니다.]

[뭔데요?]

[위버멘쉬와 초능력 특수대의 충돌입니다.]

바스티앙은 그렇게 말하고는 비서가 건네준 태블릿을 경완에게 건네주었다.

태블릿엔 외신 뉴스가 떠 있었고, 사진엔 하늘을 날아다니며 전투 중인 초능력자들과 엉망이 된 도로가 보였다. 배경엔 위버멘쉬 한국지부 건물이 보였다.

“어…… 음…….”

[여기 있어도 괜찮겠습니까?]

괜찮을 리가 있나? 이게 자신과 얼마나 어떻게 얽혀있는 일인지 감도 안 잡히는데.

[잠시 다녀올게요. 제 일행들에게는 잘 설명해 주세요.]

경완은 고개를 끄덕이는 바스티앙에게 고맙다고 말하고는 웜홀로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는 옷을 갈아입으러 집안으로 들어갔다.

위잉~ 위잉~

현관으로 들어온 경완이 수영복을 아무렇게나 벗어던질 때 거실 테이블 위에 놓아둔 전화가 계속 울리고 있었다.

일정 시간 받지 않으면 자동으로 사서함 기능으로 넘어가는데도 상대가 그 기능을 사용하지 않는지 끊었다가 다시 전화를 걸고 있었다.

경완이 옷을 걸치며 확인해 보니 김준이었다.

“여보세요.”

[경완 씨! 왜 대체 전화를 안 받습니까?!]

“전화기 두고 갔어요.”

[다른 일행들은요?!]

“노느라 정신이 없어요.”

바다에서 논다고 다들 휴대폰을 고이 짐 속에 넣어놨다.

[지금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고 계십니까?]

“바스티앙 씨가 알려주더라고요.”

[경완 씨가 관여한 일이 아닙니까?]

“제가 왜요? 그리고 제가 관여하면 이렇게 되겠어요?”

[흐음.]

“그런데 왜 싸움이 벌어진 거예요?”

[제가 알기로는 위버멘쉬가 검찰에 무력 침투해서 일이 벌어진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왜 침투했는지는 모르고요?”

[검찰의 불법 수사로부터 회사 기밀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는 발표가 있었습니다.]

그 말에 경완은 전에 김봉남과의 통화가 생각났다. 설마설마 정신계 초능력을 이용하겠나 싶었지만 설마가 사람 잡는다고 진짜로 쓴 모양이었다.

“알았어요. 전화 줘서 고마워요.”

[어떻게 하시려고요?]

“쓸데없는 싸움은 막아야죠.”

경완은 김준의 대답을 듣지 않고 바로 전화를 끊었다.

현관에서 운동화를 신은 그가 날아올랐다. 방향은 위버멘쉬 한국지부였다.

* * *

“쳐!”

“막아!”

“이 새끼들아! 공권력이 우스워 보이냐!”

“씨발! 공권력이면 개 짓거리해도 되냐!”

위버멘쉬 보안팀의 초능력자들과 초능력 특수진압대의 초능력자들이 싸우고 있었다.

수는 위버멘쉬 보안팀 쪽이 조금 더 많았지만 초능력 특수대도 밀리지 않았다. 초능력 특수대가 착용하고 있는 TSTG가 수의 차이를 좁혔다.

서로의 전투력이 비등해 대치하는 상황에 이변이 발생했다. 갑자기 몸이 무거워진 것이다. 아니, 무거워지다 못해 자세가 무너져 짓눌린 개구리처럼 일제히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자의적인 행동은 아니었다. 멀리서 상황을 살피던 지휘관이 어떻게 된 거냐고 무전으로 소리를 질렀으니까.

현장에 있던 초능력 특수대원들이 보고했다. 이경완이 나타났다고.

중력 제어 능력으로 광범위한 현장을 짓눌러 전투를 멈춘 그는 주변을 살피며 혀를 찼다.

“난리 난 거 봐라. 누가 보면 전쟁 난 줄 알겠다. 이게 무슨 민폐냐, 응?”

그의 발치에는 제일 잘 싸우던 두 놈이 엎어져 그의 훈계를 들었다.

한 놈은 특수대 소속으로 보였고, 또 한 놈은 위버멘쉬 보안팀 소속으로 보였다.

힘센 놈들이니만큼 둘의 전투가 주변에 끼친 피해도 컸다.

“싸우려면 저기 공중에서 싸우던가, 아니면 일격필살로 단숨에 재끼든가, 어쭙잖게 힘을 휘두르니까 이렇게 주변에 피해를 끼치잖아.”

그렇게 훈계하는 경완에게 반론하는 이는 한 명도 없었다.

짓눌리는 중력을 버텨내려고 안간힘을 쓸 뿐. 몇 명은 과도한 중력에 머리에서 피가 빠져 블랙아웃 증상으로 기절한 놈도 있었다.

그때 저 멀리서 확성기로 목소리가 들려왔다.

[요, 용의자 이경완은 반항하지 말고 투항하라!]

뭔~ 이경완?

경완은 어이가 없어서 마이크를 쥐고 있는 남성을 향해 몸을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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