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전생-더 빌런 290화
27-권력은 잠들지 않는다
“어쭈?”
하지만 방해가 있었다. 남성의 옆에 있던 장갑차에서 TSTG를 입은 인원 셋이 내리더니 경완의 앞을 막는 것이 아닌가? 그 셋은 특수대의 예비대원이었다.
“투, 투항하십시오!”
셋 중 앞에 선 이가 긴장한 목소리로 외쳤다.
경완은 고개를 갸웃했다.
“왜?”
내가 뭘했다고? 싸움 말린 것밖에 더 있나?
답변이 돌아왔다.
“다, 당신에겐 국가전복혐의가 걸려있습니다!”
“…….”
경완은 그래도 폭력 혐의인 줄 알았는데 난데없이 국가전복혐의가 튀어나와서 어이가 없었다.
“구, 국가전복혐의입니다!”
그렇게 잠시 벙쪄있었더니 못 들은 줄 알고 더욱 목청을 높여 혐의를 친절하게 알려주는 상대였다.
그런 상대에게 경완이 물었다.
“내가 왜?”
“투항하지 않으면 당신은…….”
“아니, 내가 왜 국가전복 따위를 하냐고.”
“네?”
왜 투항해야 하냐고 들은 상대의 착각을 수정해 주니 상대가 당황했다.
“아니, 그렇잖아? 내가 국가전복을 시도했으면 미쳤다고 여기 와서 싸움을 말리고 있을까? 난리 난 틈에 청와대부터 가서 대통령을 납치한 다음 국회에 가서 국회의원들 협박하고 있었겠지.”
“…….”
듣자하니 그럴싸해서 할 말을 잊어버릴 뻔했지만 금방 정신을 차리고 경완에게 제안했다.
“이, 일단 함께 가시죠.”
“함께는 지랄. 윗대가리 나오라 그래.”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진짜 곤란하게 해줄까?”
경완의 머리칼이 둥둥 뜨기 시작했다. 동시에 주변의 자잘한 것들은 물론 덩치 큰 것들까지 둥실둥실 떠올랐다.
뒤집힌 아스팔트 덩어리, 부러진 가로수와 가로등은 물론 잠시 전까지 치열하게 싸우던 초능력자들까지!
TSTG를 입은 초능력 특수대의 예비대원들은 허우적거리는 동료와 용의자들을 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이런 괴물을 과연 자기들이 잡을 수 있을까?
“미적거리지 말고 빨리 튀어나와. 내 시간은 소중하거든.”
경완이 짜증을 내면서 손을 휘젓자 채찍처럼 튀어 나간 염동력의 끝자락이 장갑차 뒤에 숨어있던 지휘관의 멱살을 붙잡고 경완 앞으로 끌고 나왔다.
참 꼰대처럼 생긴 중년 남성을 앞에 꿇리고 염동력으로 의자를 만들어 거만하게 궁둥이를 붙인 경완이 입을 열었다.
“어찌 된 일인지 읊어보쇼.”
강제로 꿇려진 굴욕적인 자세였지만 수치심을 느낄 여유가 없었던 터라 지휘관은 자신이 아는 바를 그대로 설명했다.
내용의 얼개는 김준이 전화로 했던 것과 큰 차이는 없었다. 위버멘쉬의 보안팀이 검찰중앙지검을 무단침입해 참고인들을 빼내갔고, 그들을 잡기 위해 초능력 특수대가 뒤쫓다가 이렇게 여기에서 농성하는 걸 진압하게 되었다고 말이다.
“……이런 무력이 사유화되어서는 안 됩, 읍!”
열정적으로 설명하던 꼰대 지위관이 개인적 의견을 달려고 하자 바로 입을 막은 경완이 물었다.
“그런데 나한테 붙은 국가전복혐의는 도대체 뭐요?”
그 물음에 지휘관의 눈알이 좌우로 굴렀다. 입은 우물쭈물 딱 봐도 변명을 준비하는 티가 났다.
그래서 경완이 물었다.
“특수대 윗대가리가 누구에요? 경찰청장?”
“그게 말입니다! 이경완 씨! 읍!”
경완은 서둘러 뭔가 말하려는 지휘관의 입을 염동력으로 틀어막고 멀뚱히 구경하고 있던 특수대 예비대원들을 보았다. 말장난으로 시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경완의 시선에 그들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초능력 테러 등을 진압하는 초능력 특수진압대는 경찰청장 직속이었다.
“경찰청장이랑 연락돼요?”
경완이 지휘관을 향해 묻자 지휘관이 급하게 뭔가를 말하려고 했다.
“경완 씨, 제 얘기를…….”
“에이, 씹팔! 내가 직접 경찰청에 날아갈까?”
지휘관은 넋을 놓았다. 경완의 욕설 때문이 아니라 아마 날아간 실적과 날아간 승진과 앞으로 다가올 징계의 위기 때문이 아닐까?
경완은 지휘관이 덜덜 떨리는 손으로 휴대폰을 꺼내고 경찰청장에게 전화를 걸자 휴대폰이 저절로 날아가 경완의 손에 들렸다.
그가 스피커 모드로 전환하고 손바닥 위에 올려놓자 경찰청장이 전화를 받았다.
[어떻게 됐어?]
“접니다, 청장님.”
[누구?]
“제 목소리 벌써 까먹으셨어요? 이거 섭섭한데요? 이경완입니다.”
[……누구?]
다시 묻는 질문에는 현실에서 도피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고 경완은 그리 친절하지 않았다.
“이경완이요, 이경완. 우리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S급 초능력자.”
[왜, 왜 어떻게 이 전화를?]
“특수대 지휘관이 말이 안 통하길래 이렇게 직접 얘기를 해봐야겠다. 싶어서요.”
수화기 너머의 경찰청장은 침묵했고 경완은 가장 궁금한 걸 물었다.
“국가전복혐의. 이거 뭐예요?”
[그, 그야 당신이 위버멘쉬 코리아와 한패니까.]
“누가 그래요?”
[신빙성 있는 첩보가 있어요.]
“그럼 위버멘쉬 코리아도 국가전복혐의인가요?”
[말해줄 수 없어요.]
“모르는 겁니까 말해줄 수 없는 겁니까?”
[말해줄 수 없습니다.]
“청장님. 수화기 너머에 있어서 거짓말해도 괜찮으리라 생각하는 모양인데 수틀리면 지금 당장 경찰청으로 제가 찾아갑니다?”
[……그래도 말해줄 수 없습니다.]
완고한 경찰청장의 태도에 경완은 생각보다 더 큰일이라는 걸 깨달았다.
단순히 검찰이 정신계 초능력을 동원해 불법 채증을 하려다 위버멘쉬가 이에 저항했다는 시나리오가 아니었다. 그 시나리오대로라면 국가전복혐의는 도출되기 힘들었다. 뭔가 뒤에 이어질 시나리오가 분명 더 있었다.
경완은 문뜩 떠오르는 생각을 그대로 내뱉었다.
“혹시 위버멘쉬 한국지부를 홀라당 삼키려고 수작 부리고 있는 건가요?”
[……저는 모르는 일입니다.]
모르긴 뭘 몰라? 정말 모르는 일이라면 그저 적법한 공권력 사용이라며 넘어가면 되는데? 도대체 뭘 모른다는 말일까?
경완은 강한 의심이 들었다.
“경찰청 위가 행정부였던가 청와대였던가?”
[경완 씨!]
협박성 말에 경찰청장이 기겁해 소리를 지를 때 자신의 휴대폰으로 전화가 왔다. 확인해 보니 정호태 지부장이었다.
경완은 아무래도 경찰청장보다는 더 친절하고 자세히 상황을 들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청장과의 통화를 끊고 정호태의 전화를 받았다.
그때 뒤에서 정신 차리고 일어난 초능력 특수대가 체포니 뭐니 헛소리하면서 위버맨쉬 보안팀과 싸우려고 해서 염동력으로 붙잡아다가 중력 제어 능력을 동원해서 몇 번 바닥에 패대기치는 것으로 소강상태를 만들어 주었다.
[경완 씨.]
“도대체 이 무슨 난리입니까?”
[저희로서는 어쩔 수 없었습니다. 이 떡검 새끼들이 갑자기 정신계 보안장비를 벗기려고 달려들어서,]
“그 사정은 들어서 알고 있고, 전 더 내밀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제가 여기에 와서 싸움을 말리니까 저보고 국가전복혐의랍시고 투항하라는데 아는 거 있어요?”
경완의 시선이 여전히 꿇어앉아 눈치를 살피고 있는 지휘관을 향했다. 꿇어앉아 있는 자세 때문에 다리에 잘 피가 통하지 않아서 불편한지 살살 꼼지락거리고 있었다.
[국가전복혐의라고요?! 이 새끼들이 진짜 돌았나?!]
정호태라고 모든 걸 파악하진 못한 모양이었다. 하긴 그러니까 이런 급박한 사태가 일어났겠지.
경완이 물었다.
“왜 저한테 그런 딱지가 붙은 겁니까? 혹시 위버멘쉬 코리아가…….”
[절대 아닙니다! 저희는 국가전복 같은 건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하려면 군부대부터 장악해야 하는데 절대 무립니다.]
군대. 어찌 보면 사법 카르텔보다 더한 복마전이었다. 사법 카르텔은 사람을 사회적으로 죽이지만 군대는 실제로 사람이 죽어나가는 곳. 그래서 더 폐쇄적인 집단.
그러니 밖에서 굴러들어온 돌인 위버멘쉬로서는 군대에 대한 장악력도, 영향력도 미비할 수밖에 없었다. 거기는 철저히 내부인의 논리로 돌아가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럼 왜 그따위 딱지를 붙이려고 했을까요?”
경완은 질문을 하면서 인상을 썼다. 정호태 때문이 아니라 아까부터 계속 지휘관의 휴대폰으로 경찰청장이 전화를 해댔기 때문이었다.
혹여나 경완이 청와대로 돌진하는 건 아닌지 걱정됐음이 분명했다.
경완이 통화거부 버튼을 누를 때쯤 정호태가 대답했다.
[모르겠습니다. 왜 그런 무리를 했는지 말이죠. 검찰중앙지검을 무력침입해서 참고인들을 빼낸 것은 사실이지만 국가전복혐의까지 가기는 어렵습니다.]
“글쎄요? 작정하면 가능하지 않을까요?”
[…그렇군요.]
정호태는 잠시 말이 없더니 경완의 말에 동의했다.
사법계가 작정한다면 불가능한 짓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외력이 작용해야 했다. 사법계가 내부의견 충돌이 일어나지 않고 일사불란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하는 외력이 말이다.
적어도 국가전복혐의로 몰아가는 일에 가담한 이들이 리스크를 감수할 만큼의 달달한 이익을 보장할 수 있는 곳임은 분명했다. 위버멘쉬 한국지부가 만만한 곳도 아니고 말이다.
[좀 더 알아보고 연락드리겠습니다.]
“저는 여기 정리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뭘요. 저한테도 불똥이 튈 것 같아서 이러는 거죠.”
[송구합니다.]
“정 지부장님 탓은 아닌 것 같네요.”
경완은 그렇게 말하고 통화를 끊었다. 그리고 지휘관을 내려다보았다.
“뭔가 서로 오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오해…… 요?”
경완의 정중한 말투에 지휘관은 황당해졌다.
“뭔가 서로 오해가 있는 것 같으니까 정리하고 오늘은 돌아가시죠.”
“…….”
지휘관의 입장에선 뭔 개소린가 싶을 것이다.
“이렇게 있으면 시민들에게 피해가 되니까 일단 돌아가시라고요.”
“당신…… 공권력을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무전유죄 유전무죄. 누구는 생활고에 생계형 절도를 해도 전과가 쌓였다고 몇 년씩 감방에 있고, 누구는 재벌 자식이라서 마약을 몇 키로나 몰래 들여와도 초범이랍시고 집행유예 받는 게 바로 공권력의 민낯이죠. 그러니까 저한테 공권력이 정의라느니, 옳다느니 같은 개소리를 하려면 입 밖에 꺼내기 전에 집어치우시죠. 가소로우니까.”
“…….”
“어차피 여기서 계속 버팅겨봤자 시민들만 불편하지 공권력 행사라는 걸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법이 두렵지도 않소?”
“나 이경완이에요.”
그렇게 제 이름 석 자를 말하는 경완의 표정엔 그 어떤 자만이나 오만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과학적 사실을 읊듯이 담담할 뿐.
지휘관은 입술을 깨물며 특수대를 뒤로 물렸다. 그리고 경완은 위버멘쉬 보안팀과 함께 엉망이 된 현장을 정리했다.
일단 부러진 가로수와 가로등을 한쪽에 치우고 망가진 도로를 대충이라도 메워 차량이 지나갈 수 있도록 조치했다.
경완의 출력 좋고 정교한 초능력 응용 덕분에 일은 순식간에 마무리 되자, 멀리서 보고 있던 기자들이 누구보다 먼저 경완의 입 앞에 마이크를 대려고 개떼처럼 달려왔다.
경완은 굳이 그들을 피하지 않았고 기다렸다.
“이경완 씨! 이게 무슨 일입니까?!”
“국가전복혐의를 받았다는 것이 사실입니까?!”
“공권력과 위버멘쉬가 충돌했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질문이 여러 개 쏟아졌지만 경완이 손을 들자 좌중은 순식간에 침묵했다. 기자들은 조급해하지 않았다.
국회의사당 테러 사건 때도 그랬지만 경완에겐 기자들을 만족시켜 줄 쇼맨쉽이 충분했다.
“에~ 그러니까 불행한 오해가 있었던 같습니다.”
“오해라면…….”
“어떻게 제가 국가전복혐의를 받을 수 있겠어요?”
“혐의를 부인하시는 겁니까?”
“당연히 부인하죠. 제가 국가전복을 할 것 같으면 왜 여기에 와서 쓸데없이 싸움이나 말리고 있겠습니까? 청와대부터 달려가서 대통령을 납치하고 국회의사당에서 국회의원 목줄을 잡고 죽고 싶지 않으면 국가통수권을 나한테 넘기라고 협박이나 하고 있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