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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전생 더 빌런-291화 (291/367)

무한전생-더 빌런 291화

27-권력은 잠들지 않는다

숨 막히는 침묵이 기자들 사이에 감돌다가 이내 폭발했다.

“그렇게 하실 능력이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청와대에 대한 경고입니까?!”

“그래서 그런 혐의가 붙은 건 아닙니까?!”

경완이 다시 손을 들자 조용해졌다. 그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오해라는 겁니다. 저는 국가전복을 할 생각이 전혀 없는데 저한테 그런 혐의를 붙였다는 건 뭔가 오해가 있었으니 그랬던 거겠죠. 아, 그리고 조금 전에 예를 든 건 협박이나 경고가 아니라 사실을 얘기한 겁니다. 제가 정말 국가전복을 노리고 있다면 그렇게 행동할 거라는 예시였죠.”

“그럼 위버멘쉬와 손잡고 국가전복을 시도하려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이십니까?”

“당연히 아니죠.”

“그럼 검찰에 무력으로 침입해 주요인사들을 빼내간 것은요?”

“제가 알기로는 프로토콜에 따른 거라던데요?”

“프로토콜이라면…….”

“검찰에서 불법으로 무슨 짓을 해서 발동한 거라던데 자세한 건 위버멘쉬 코리아의 오피셜을 기다리시는 게 나을 겁니다.”

“경완 씨 정말 위버멘쉬와 같은 편이신 건가요?”

“같은 편이라기보다는 부탁을 좀 받은 거죠. 이 현장을 좀 보세요. 쓸데없는 오해로 이렇게나 시민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았습니까? 그래 놓고는 정리도 안 하고 가고.”

경완이 혀를 차며 비난의 화살을 돌려보았지만 기자들의 관심 밖이었다.

“경완 씨는 위버멘쉬가 공권력에 저항하는 것이 옳다고 여기십니까?”

경완이 대답했다.

“저항할 수 있으면 저항하는 게 당연한 게 아닌가요?”

“경완 씨는 공권력을 뭐라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날선 목소리의 질문에 아까 전 초능력 특수대의 지휘관과의 대화를 떠올린 경완은 얼굴을 긁적이며 잠시 생각하더니 대답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요.”

굳이 다른 대답을 생각할 필요는 없었다. 사실이 그러한 걸 어쩌겠나? 주저리주저리 길게 포장할 마음도 없었다.

“돈 많으면 전관변호사 사서 형량 가볍게 받는 건 이제 전 국민이 아는 상식이 된 지 오래잖아요. 이해는 합니다. 돈 있는 사람이 자기 돈 써서 어떻게든 공권력을 좌지우지하려는 게 인류의 역사잖아요. 안 그런 적이 없죠. 그런데 돈과 빽으로 어떻게든 법망을 피하려는 행태 역시 공권력에 대한 저항 아닐까요? 법치주의가 존재하는 한 절대 없어지지 않을 인간군상이죠. 그러니까 위버멘쉬 보안팀의 저항도 딱히 특별할 것이 없다고 생각해요. 대기업들도 갑자기 검찰이나 세무공무원이 들이닥치면 공무집행방해를 무릅쓰고 예민한 자료를 파기 소각한 적이 있잖아요? 다~ 그런 겁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대기업이 얽힌 이야기를 하면 기자들에게도 부담된다.

다른 기자가 주제를 바꾸었다.

“경완 씨가 이번에 저지른 일을 보면 폭행과 공무집행방해죄에 해당할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 물음에 경완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재판 과정이랑 판결하는 거 보고 생각하겠죠.”

“……본인은 죄가 아니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러자 경완은 다음과 같은 말로 기자들을 침묵시켰다.

“구국의 판단이랍시고 쿠데타가 두 번이나 성공하고,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나라에서 왜 굳이 범법이 죄라고 말하는지 저는 도무지 모르겠는데요?”

회삿돈을 횡령해도 경제에 이바지했다고 판사가 솜방망이 형량을 매겨주는데 범법이 뭐가 그리 큰 문제랴? 공으로 과를 사할 수 있다면 경완이 이 나라에 안겨준 이득을 생각해 봤을 때 살인, 강간 외엔 면죄부를 받아도 충분하지 않을까?

여기까지 말한 그는 휴가 기간인데 사람 귀찮게 싸우지 말고 좋게좋게 대화로 해결하라는 권고 같은 협박을 남기며 웜홀로 사라졌고, 이에 기자들은 서둘러 기사를 송고했다.

다시 태평양 한가운데 있는 기지에 나타난 경완은 바스티앙으로부터 태블릿을 빌려서 한국의 상황을 살폈다. 물론 일행들에게는 말하지 않았다. 오히려 초능력으로 그녀들이 놀기 쉽게 했다.

시커먼 염동력으로 만든 초능력 워터 슬라이드. 위로 이동하는 건 중력 제어 능력으로 계단을 대신한 덕분에 미연을 비롯한 일행들은 힘들게 계단을 올라가는 고생 없이 둥실둥실 떠오르는 재미와 워터 슬라이드에서 미끄러지는 재미를 마음껏 즐겼다.

[대단하네요.]

[평소에 잘 쓰지도 않는 능력인데 이럴 때라도 써야죠.]

바스티앙의 감탄에 경완이 대꾸했다. 초능력을 가지고 부수고 패는 짓만 하는 건 전혀 생산성이 없는 짓 아니겠는가?

“오빠! 고마워!”

“재밌게 잘 놀았어요~”

일행들은 한국에서 일어난 일도 모르고 몸에 묻은 바닷물을 씻어냈다. 오늘 남은 일정은 근사한 저녁과 수면이랄까?

바스티앙이 저녁을 준비하는 동안 경완은 한국의 상황을 살폈다. 한 마디로 축소하자면 피아를 구분하기 힘든 혼란 상황이었다.

정부는 공권력 행사를 막아낸 위버멘쉬의 행태를 공무집행방해이자 국가질서를 해치는 짓이라며 강도 높게 비난했고, 이에 정호태 지부장은 참고인의 정신계 초능력 방호 장비를 강제로 벗기려던 검찰의 행태를 영상과 함께 공개하며 이런 부당한 공권력 행사에 결코 동의하지 않는다는 말과 함께 오히려 국가질서를 해치는 자들이 누구인지 눈 씻고 보라며 강하게 반격한 상황이었다.

이 와중에 국민여론이 갈라진 건 당연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가진 게 많아서 어떤 이들에게 검찰의 행태는 선을 벗어난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물론 재벌들은 감히 검찰이 자신들에게 저딴 짓을 할 리 없다는 자신감이 있겠지만 검찰에 저항하기엔 재벌 티어도 낮고, 부자지만 재벌도 아닌 이들에게 검찰의 행태는 간접적인 위협으로 다가왔다.

저런 행태를 놔두면 몰래 조세 회피처에 꿍쳐둔 거랑 남몰래 나쁜 짓 한 거랑 검찰이 언제든지 수월하게 알 수 있다는 말 아닌가? 안 그래도 날카로운 칼을 든 강도놈들인데 거기에 날개를 달아줄 순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언론이 일방적으로 위버멘쉬를 비난하지 않고 검찰의 불법행위에 대한 비판 기사 역시 적지 않다는 것을 경완은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앞으로 과연 어떻게 될까?

다음날 그는 검찰의 대응으로부터 앞으로의 전개를 가늠할 수 있었다.

정호태 및 위버멘쉬 주요간부들과 보안팀 기소.

그리고 이경완 기소.

경완은 놀라지 않았다. 검찰이 이렇게 나올 것 같기는 했다.

그는 바스티앙에게서 전화기를 빌려 정호태와 연락했다.

“검찰 대응은 보셨죠?”

[네.]

“그래서 결국 어찌 된 일입니까?”

경완은 일의 배경을 물었고, 정호태는 이렇게 대답했다.

[위기를 기회로 여기는 것 같습니다.]

하룻밤 사이에 얻은 정보였지만 무슨 일이 있었는지 가늠하기엔 충분했다. 검찰이 자꾸 죽어나가는 사법 카르텔에 생명의 위기를 느끼는 와중에 판검사 연쇄 살인의 배후에 위버멘쉬가 있을지 모른다는 정보가 재벌가에 은밀히 퍼져 나갔다.

확신할 순 없는 정보라지만 그들은 어떻게 느꼈을까? 위협을 느끼지 않았을까?

재벌이다 보니 자신들이 목숨의 위협을 받을 거라는 상상은 여태 해본 적 없을 것이다. 그러나 판검사 연쇄 살인 사건을 보고도 그랬을까? 가진 게 많은 사람일수록 자신의 건강과 안위에 신경 쓰는 것은 당연했다.

경완은 주식을 검색해 봤다. 과연 초능력 보안경호업체의 주식 가격이 폭등해 있었다. 그전에도 꾸준히 오르고 있었지만 본격적으로 폭등한 건 판검사 살인 사건이 판검사 연쇄 살인사건으로 판명된 이후였다.

물론 그 사건으로 인해 요인들에 대한 경호 수요가 있을 거라는 예상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좀 더 자세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정호태의 생각은 달랐다.

[대기업들이 우리 뒤통수를 쳤습니다.]

검찰과 손잡고 위버멘쉬 코리아를 견제하는 포지션으로 변했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위버멘쉬 코리아의 인적 자산과 시스템을 뜯어 본인들을 보호할 울타리를 만들겠다는 의도를 읽을 수 있었다는 게 정호태의 주장이었다. 그 증거가 폭등한 초능력 보안경호 업체의 주가였고, 그 상당수가 재벌과 대기업의 손에 들어갔다는 것이다.

어느 정도 이해되는 주장이었다. 검찰과 대기업의 결탁 정도는 되어야 국가전복이라는 거창한 혐의를 붙일 수 있었을 테니까.

경완이 대꾸했다.

“정정합시다. 대기업이 아니라 재벌, 우리가 아니라 위버멘쉬.”

재벌의 여론 플레이로 많은 이들이 재벌=대기업이라고 착각을 하지만, 재벌의 대기업 장악력은 정치권의 도움이 필수였다.

국민연금 등의 백기사, 해외의 경쟁 상품을 견제해 주는 법안, 수백억 횡령을 해도 집행유예나 대통령 특별사면으로 풀려나는 등의 엄청난 혜택 등 정경유착이야말로 재벌이 대기업을 장악할 수 있는 원동력이었다.

어떤 이들은 대기업을 조이면 나라를 떠날 거라며 겁을 주지만 솔직히 재벌이 한국에서 했던 방식을 해외에서 해댔다간 죽을 때까지 사면도 못 받고 감방에서 썩어야 할 텐데 미쳤다고 떠날까?

이 사기 치기 좋고 기업 하기가 땅 짚고 헤엄치기나 마찬가지인 나라를? 해외로 나가면 한국 정관계에 박아놓은 유용한 인맥과 빽도 없어지는데? 대가리에 총이라도 맞지 않고서는 그럴 리가 없었다.

아무튼, 이런 구조에서 위버멘쉬 코리아가 대기업과 초능력 인력 파견 및 교육에 관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고 해도 그것이 과연 재벌의 이익과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건 아니었다. 대기업=재벌이 아니듯 대기업의 이익=재벌의 이익이라고 할 순 없기 때문이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 제가 그걸 너무 간과한 모양입니다.]

정호태는 자책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이 북한이었던 시절은 IMF 시절에 끝났고, 승계와 상속을 위해서라면 고의부도, 물적분할, 편법증여 등 주주의 이익 따윈 개똥으로 보고 뒤통수나 치는 소유주의 행태와 그걸 방관하는 정경유착이야말로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핵심원인으로 변한 지 이미 오래였다.

평양 대폭발과 북한 붕괴로 잔뜩 부풀려진 증시가 오래가지 못하고 널뛰기하는 것도 그 때문이었다. 주주의 이익이 아니라 사주의 이익을 중시하는 한국의 불안정한 증시환경은 장기투자보다는 단기 이익을 빨아먹으려는 세력의 투기판이었다.

하지만 정호태는 그걸 잠시 잊었다. 중국도 날라가고 북한도 날라가고 북한 개발한다고 해외 자금이 쏟아지며 금융환경이 변한 터라 세상이 좀 변한 줄 알았다. 재벌도 좀 더 글로벌한 기준에 맞출 줄 알았다나?

하지만 다~ 착각이었다. 개가 똥을 어떻게 끊나? 정경유착의 달달함은 끊기 힘든 마약이었다.

“총수님하고는 전화해 보셨어요?”

[알아서 하라고 하시더군요.]

“냉정하시군요.”

[이런 일이 있을 수도 있다고 독립하기 전에 말씀해 주셨죠.]

이미 각오한 일이기 때문에 요하네스의 결정을 이해한다는 정호태였다.

경완이 물었다.

“앞으로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검찰이 소환하려고 할 겁니다.]

“응하실 생각인가요?”

[응해야죠. 다만 저들이 헛짓거리할 생각을 못 하게 단단히 준비할 생각입니다. 경완 씨는 어떻게 하실 겁니까?]

“저도 응해야죠.”

[대책이 있습니까?]

“뭐 대책이랄 게 있겠어요? 전 그냥 정호태 씨 말을 믿고 가는 거죠.”

[제가 무슨 말을 했나요?]

“했죠. 앞으로 초능력자가 위에 서는 세상이 된다고.”

앞으로는 무전유죄 유전무죄가 아니라 유력무죄 무력유죄가 되는 세상이 된다며? 아니 둘 다인가?

“제 생각엔 그게 조금 빨리 올 것 같아서요.”

초능력 특수대가 경완 때문에 공권력 행사를 다하지 못하고 얌전히 물러난 걸 보고 경완은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라에 망조가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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