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전생-더 빌런 293화
27-권력은 잠들지 않는다
[이경완 공무집행방해 인정.]
[검찰에선 5년으로 구형.]
공무집행방해는 최대 5년 이하의 징역, 1000만 원 이하의 벌금으로 규정되어 있으나, 실제로 적용되는 경우를 보면 굉장히 세다. 사례들을 보면 사소한 공무집행방해라도 일단 걸려들면 최소 10개월의 징역을 구형받는다.
관련 경찰관이 상해라도 당했다면 최소 3년이었다. 공무집행방해는 합의하지 않는다는 내부규정이 있는데다가, 법원에서도 집행유예 판결을 내리지 않았다.
그렇다고 경완에게 규정 내라지만 형량을 최대한으로 때린 검찰의 구형을 적절하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거의 없었다. 너무 과한 구형이라는 의견과 고작 그 정도냐라는 의견으로 여론이 양분되었으니까.
너무 과한 구형이라는 입장에선 형평성을 이유로 들었다.
사실 경완이 초능력 특수대와 위버멘쉬 보안팀을 제압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무위는 엄청났으나 부상자는 없었기 때문이다. 다들 육체계열의 초능력자였던데다가 TSTG도 착용한 덕분이었는데, 큰 부상자도 없는 공무집행방해에 5년이란 형량은 그동안의 판례로 봐서도 부당하다는 것이었다.
고작 그 정도냐라는 입장에선, 공무를 방해했는데도 고작 그 정도 구형을 받고 있었느냐라는 새삼스러운 놀라움과 경완이 보여준 놀라운 능력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
이 입장에 선 의견은 명료했다. 설사 형량이 좀 과하다고 하더라도 저렇게 강력한 힘은 통제되어야 한다고 말이다.
이제 공은 법원으로 넘어갔고, 미연은 분통을 터뜨렸다.
“이게 말이 돼?’
“그러게?”
경완이 맞장구쳤지만 미연의 흥분은 가라앉지 않았다.
“어떻게 좀 해봐.”
“이미 엎어진 물인데 어떻게? 아무리 나라도 한계가 있어.”
“그럼 이대로 감옥에 갈 거야?”
“법원 판결이 남았잖아.”
“법원을 믿어?”
법관과 검찰의 접촉은 금지되어 있지만 다 로스쿨이나 연수원에서 접점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고등판사 출신, 검사장 출신이 즐비한 로펌이라는 중간다리도 있었다. 과연 그들 간에 사적 모임이 절대로 없을까? 과연 그들이 그 자리에서 사적인 친분만 다질까? 애당초 사적친분이랍시고 그런 자리를 가지는 것이 적절할까?
미연의 물음에 경완은 고개를 갸웃했다.
“글쎄?”
애당초 법이란 완전하지 않았고 인간이 판결하기 때문에 주관이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경완이 아니라고 대답하지 않고 글쎄라고 한 이유는 그 주관이라는 것이 개인의 신념과도 밀접하게 맞닿아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개인의 신념이란 참으로 예측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누구는 부귀영화를 위해 나라를 팔아먹고, 누구는 나라를 지키겠다고 패가망신하고.
판사님의 신념이 대체로 어떤지는 어떤 판결을 내리는지 보기 전에는 알 수 없었다. 마치 상자를 열기 전엔 생사를 알 수 없는 슈뢰딩거의 고양이처럼 말이다.
과연 판사님들은 경완의 사건을 두고 앞선 판례들을 참고할까, 아니면 그의 힘에 위협을 느껴 새로운 판례를 만들어낼까?
추측하기엔 판단의 근거가 부족했다. 그저 지금은 불안해하는 미연을 안심하고 달래는 게 쓸데없이 걱정하는 것보다 더 생산적이었다.
다행히 그녀를 안심시킬 수 있는 확실한 재료가 있었다.
일단 김마리아 여사가 비싼 로펌을 고용해 준다고 연락이 왔고 정호태 지부장도 언제든 도움이 필요하면 말하라고 연락해 왔다.
위버멘쉬와 같은 취급을 받으면 아무래도 좀 불리할 것 같아서 일단 그쪽 협력은 두고 보자고 말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그리고 김준도 연락을 해왔다. 그쪽은 필요하면 CIA 한국지부의 정보력을 제공해 주겠다는 제안을 해왔다. 하지만 정작 경완이 원하는 부탁은 안 들어줬다.
‘그냥 미국에서 한국 정치권에 압박을 넣어주면 안 돼요?’
‘어…… 그건 좀.’
그래, 지들도 초능력자들이 너무 세다는 게 불안하겠지. 실제로 정치사회적 기반이 약한 국가에선 이미 초능력자들이 기득권에 올라서서 국가권력을 장악하기도 하고, 어디에선 초능력 군인들에 의한 쿠데타가 성공하기도 하는데 경완을 위해서 한국 정치권에 압박을 줘버리면 미국 내 초능력자들에게 잘못된 시그널을 줄 수도 있었다.
힘이면 다 된다고.
돈으로 미국의 정치를 사버린 자본가들에겐 이 얼마나 심기 불편한 일인가?
돈이면 다 되던 미국에 돈으로 안 되는 일이 생겨 버린다니?
미국이 괜히 초능력자들에게 돈을 뿌리다시피 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어떻게든 초능력자를 자본주의 체계 안에 쑤셔 넣으려는 자본가들의 필사적인 발악이었다.
초능력자들이 돈에 연연하지 않는다는 것만큼 자본가들에게 불안한 일은 또 없을 테니까.
어쩌면 그래서 자본가들이 가장 꺼리는 초능력자 부류를 대표하는 상징이 바로 이경완이라 할 수 있었다.
과연 자본가들은 돈에 휘둘리지 않는 지구 최강의 폭력이라는 상징성을 수용할 수 있을까?
자본가에게 휘둘리는 미국 정가를 생각해 보면 한국 정부를 압박해 달라는 경완의 요청이 거부당한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명분과 실리가 모두 괜찮았다. 동맹의 내정에 간섭할 순 없다고 한 발짝 물러서서 경완의 대응을 지켜보는 것만으로 어떤 유용한 판단의 근거가 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아무튼, 김준과 미국은 실망스러운 반응을 보였지만, 또 하나 경완을 지지하는 세력이 있었으니 바로 일본이었다.
일본 대사관에서 나온 직원은 경완에게 아예 정치적 망명이라는 카드를 제안했을 정도로 적극적이라 어안이 벙벙할 정도였다.
‘아니, 이 친구들이 왜 이렇게 나를 좋아하지?’
경완이 물어보니 대사관 직원은 그간 그가 일본에 보여준 호의를 거론하며 당연하다고 했지만 나중에 들은 김준의 말에 의하면 그저 경완이 한국에서 떨어져 나가는 게 일본에 유리하기 때문이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지구 최강의 초능력자가 경쟁국에 붙어 있는 것보다는 낫다고 말이다.
경완도 그런 생각을 안 한 건 아니었지만 겉으로는 호의적인 제안이었기 감사를 표했다. 어찌 되었든 미연에게 나는 이렇게 도와줄 친구가 많다고 안심시켜 줄 근거로 삼기엔 충분했던 것이다.
미연을 안심시켜 회사로 보낸 경완은 따로 한 사람에게 전화를 걸었다.
“총수님, 오랜만입니다. 잘 지내셨어요?”
바로 위버멘쉬의 창립자이자 총수 요하네스 발푸기스였다.
[저야 여전하죠. 하지만 경완 씨는 요새 골치가 아프시겠군요.]
경완의 예상대로 자신의 근황을 잘 알고 있는 요하네스였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 조언을 듣고 싶어서요.”
[지키고 싶은 게 있나 보군요.]
“그렇게 됐습니다.”
경완은 부정하지 않았다. 지금의 생활이야말로 그가 지키고 싶은 것이니까. 과거의 자신이었다면 기소가 어떻게 되든 판결이 어떻게 나든 신경 쓰지 않았을 것이다.
요하네스가 대답했다.
[제가 말씀드릴 수 있는 건 사람이 중요하다는 것밖엔 없군요.]
너무나 두루뭉술한 대답에 경완이 물었다.
“그거 혹시 예언입니까?”
[굳이 예언할 필요도 없는 진실이죠.]
“선문답은 별로 안 좋아하는데요.”
[경완 씨, 선문답 좋아하잖아요.]
“그걸 어떻게 아세요?”
[궤변과 선문답은 종이 한 장 차이니까요.]
“…….”
미연마저 인정하는 궤변론자 이경완이 할 말을 잊은 사이에 요하네스가 말을 이었다.
[걱정 마세요. 다 잘될 겁니다.]
예언능력자로 의심받는 이의 장담에 경완은 다소 마음을 놓았다.
하지만 믿음이 배반당하기까지 미처 하루가 걸리지 않았다.
[경완 씨.]
“네, 정 지부장님. 어쩐 일이세요. 바쁘신 줄 알았는데.”
위버멘쉬 코리아도 법적 공방을 준비하느라 매우 바쁜 상황이었다.
경완은 이어진 정호태의 말에 미간을 찌푸렸습니다.
[사법 카르텔이 움직였습니다.]
어느 룸살롱에서 판사 몇과 부장검사가 포함된 검사가 모임을 가졌다나?
평소라면 여느 때나 다름없는 흔한(?) 사법 카르텔의 모임이라고 치부했을지 모르겠지만, 그 모임에 참가한 부장검사는 위버멘쉬 코리아가 관련된 사건에 영향을 끼치는 인물이었고, 또 다른 검사는 무려 경완의 사건 담당이었다.
“무슨 작당모의라도 하는 걸까요?”
[당연한 거 아니겠습니까? 판결 조작이겠죠.]
“그걸 그렇게 대놓고 모여서 한다고요?”
[그만큼 급하다는 소리겠죠. 증거도 있습니다.]
그 증거란 그들의 밀담을 나눈 녹취록이었다. 당연하게도 불법이었기에 증거채택조차 되지 않고 공개해봤자 저들의 경각심을 안겨줄 뿐 국면전환에 전혀 도움이 안 되는 자료였다.
녹취록에 언뜻 오간 말 중엔 원래라면 은퇴한 전관변호사와 로펌을 중간에 다리로 삼을 수 있었지만 그렇게 중간다리를 통해 ‘일’을 진행하기엔 일정이 촉박했다는 말도 있었다.
하지만 전관변호사가 끼었느니 아니니 하는 것 중요한 건 그들이 언급한 ‘일’이었고, 그들이 말하는 일이란 자기들 입맛에 맞는 판사에게 사건을 배당하는 것이었다. 당연히 그 사건은 이경완과 위버멘쉬 코리아 두 케이스였다.
검찰에 기소권이 있다면 법원에는 사건배당이라는 권력이 있었다.
사법 카르텔에서 검찰의 기소권이 행동대장의 손에 들린 칼이라면 법원의 사건배당은 사법 기득권의 화룡점정을 완성하는 키포인트였다.
경완은 녹취록을 다 듣고는 혀를 내둘렀다.
“이야~ 이거 대단하네요.”
[이대로라면 어떤 변호사를 쓰든 필패입니다.]
2심과 3심이 남아있기는 하지만 일단 구형이 되어 법정구속이 되면 운신에 제약을 받고, 저항하면 명분에 밀리며 국민의 반감을 산다. 아무것도 모르는 국민들은 물밑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의 내막을 모를 테니까.
수면 아래서 벌어지는 일을 공개한다고 해도 그건 방어에 급급해 유용한 카드를 소모하는 행동일 뿐 불리한 국면을 전환할 순 없었다. 그런 식으로 손안의 패를 소모하고 주도권을 내주게 되면 맞다가 끝나버릴 수도 있었다.
그런 결말이 싫어서 저항하면 혐의에 불과했던 국가전복이 진짜가 될 수도 있었다. 자체적인 무력이 장난이 아닌 위버멘쉬였으니까.
경완은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아무래도 1심을 승소로 가져가는 게 좋겠죠?”
[물론이죠.]
“무슨 방법을 쓰든 간에요?”
[네.]
“저들이 사적으로 만남을 가졌으니, 저도 사적으로 우리 재판을 맡아주실 법관을 만나도 되겠죠?”
[……저와 생각이 같으시군요.]
정호태는 경완의 말에 기꺼워하며 준비가 되는 대로 연락을 주겠다고 했다.
아직 사건배당이 이루어지지 않았으니 어떤 판사를 만나야 하는지 알 수 없다며 말이다.
누구에게 사건이 배당되는지 알게 되면 신속하게 알려달라는 말과 함께 정호태와의 통화를 끊은 경완의 머릿속에 요하네스의 말이 떠올랐다.
‘제가 말씀드릴 수 있는 건 사람이 중요하다는 것밖엔 없군요.’
정말 사람이 중요한 사건이었다.
* * *
사건배당이 된 건 경완의 재판이 먼저였다. 위버멘쉬 코리아 쪽은 배정된 판사를 거부하며 공판 날짜를 최대한 뒤로 미룰 계획이라나?
경완의 경우는 사건배당 일주일 후에 재판이 있을 예정이라 사적인 면담을 하기엔 일정이 꽤나 촉박했다.
하지만 위버멘쉬 코리아처럼 이의신청을 하면서 재판을 뒤로 물리지 않기로 했다. 경완이 위버멘쉬 코리아와 동일한 전략을 취하면 저들의 의구심을 키우거나 경각심을 줄 수 있었다. 그리고 어차피 판사가 바뀌더라도 저들 입김이 닿지 않았을 거라는 보장이 없었다.
정호태로부터 사건배당이 된 판사의 정보가 들어오자 경완은 바로 밤 나들이를 나섰다. 느긋하게 때를 기다리기에는 일정이 촉박했다.
들러야 하는 곳은 총 3곳.
이유는 경완의 사건이 징역 5년으로 기소되어 합의부 사건으로 배정되었기 때문이었다.
합의부 사건이란 징역 1년 형이 넘어가거나 혹을 일정 금액 이상이 걸렸거나 해서 중대한 사건이라고 생각된 경우 세 명의 판사가 사건을 심리하고 합의한 후 판결을 내리도록 한 사건이었다.
이 합의부는 재판장과 두 명의 배석판사로 구성되는데 경완은 일단 재판장부터 방문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