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한전생 더 빌런-295화 (295/367)

무한전생-더 빌런 295화

28-쿠데타

“그러니까 그놈이 선배를 협박해서 재판 결과에 영향을 줬다는 말씀이죠?”

“쓸데없는 생각 하지 마. 난 절대로 부정할 테니까.”

“네? 하지만 이건 기횝니다!”

이경완을 압박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

하지만 이경완이라는 인간을 직접 겪어본 김필모의 생각은 전혀 달랐다.

그는 다시 명패를 들어 도지경을 때렸다.

“악!”

“사자 아가리에 머리를 들이밀고 싶으면 너 먼저 밀어 넣어, 이 새끼야! 애먼 사람 끌어들이지 말고! 알겠어?!”

사법 카르텔과 깊게 엮이지 않고도 부장판사의 자리까지 올라온 감이 말하고 있었다. 이경완과 더 얽히면 말년에 좋은 꼴 보기 힘들다고 말이다.

* * *

[생각보다 잘 풀렸습니다.]

“그러게요.”

정호태의 말에 경완은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경완은 감옥에 가지 않았다.

공무집행방해와 기물 파손이 좀 있기는 했지만 다행히 벌금형으로 끝낼 수 있었다. 돌아가는 분위기를 보아하니 검찰이 2심을 포기할 정황도 보였다.

위버멘쉬 코리아의 경우에는 조직적으로 저항한 탓인지 검찰이 이 악물고 물고 늘어지고 있어서 여전히 재판을 진행 중이었다.

다만 위버멘쉬는 경완처럼 따로 판사들과 사적 만남을 가질 생각은 없었고, 시간을 질질 끌면서 3심까지 사건을 끌고 갈 생각인 모양이었다.

“시간을 끌면 변수가 많아지지 않나요?”

[대법원장만 우리 사람으로 앉히면 끝입니다. 적어도 사법 카르텔을 혐오하는 인사만 앉혀도 적잖이 유리해지죠.]

법원에 사법 카르텔이 존속할 수 있는 중추에는 인사권과 사건배당이 있었다. 그리고 이것은 법관 부동성 원칙이 규정되지 않은 한국의 사법 시스템에선 모두 대법원장의 손에 쥐어지게 되고, 이는 법원의 위계서열화를 부추겼다.

줄서기, 즉 카르텔의 시발점이 된 것이다.

이런 대법원장 자리를 견제하라고 그 자리를 국회의 동의를 통해 대통령이 임명하게 되어 있었지만, 사법권독립이라는 말장난이 사법 카르텔의 입맛에 맞는 인사를 임명케 하고 있었다.

독립? 서로 간섭하며 견제하라고 있는 삼권분립에 독립이 웬 말인가?

우리 사법권력 지켜주면 너희 국회의원과 행정부가 헛짓거리해도 눈감아 주겠다는 무언의 담합이라도 시도하려는 건가?

다만 확실한 건, 이번 방문으로 경완은 일단 검찰의 휘두르는 칼의 사정거리에서 한발 물러났고, 위버멘쉬 한국지부는 검찰의 수사 여력을 낭비하게 할 수 있었다.

검찰로서는 빠르게 판검사 연쇄 살해에 대한 증거를 확보하고 싶겠지만, 이미 공무집행의 조직적 방해라는 판이 깔린 이상 그 판 위에서 움직여야 하는 약간의 자승자박 상태에 빠진 것이다.

“대법원장이라…… 얼마나 걸릴까요?”

[적어도 다음 대선은 되어야 합니다.]

“내후년은 되어야겠네요?”

[아직 1심도 안 끝났습니다. 충분히 끌 수 있어요.]

빵빵한 변호사단이 있다나?

“하지만 변호사를 믿을 수 있어요?”

[괜찮습니다. 전관변호사만 있는 것도 아니라서요. 돈 밝히는 인간들이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사법 카르텔과 가장 멀리 있는 법률인력이죠.]

옛말에 정승집 개가 죽으면 문지방이 닳도록 문상객이 오지만, 정승이 죽으면 개미 한 마리 얼씬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마찬가지로 전관변호사라는 것이 존속할 수 있는 것은 그저 현직 판검사들이 자기들 노후를 걱정해서 만들어놓은 전관이라는 우습지도 않은 적폐 덕분일 뿐, 전관변호사가 실질적으로 힘이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었다.

사실 진짜 전관이라고 대우를 받았다면 뇌물이나 독직 혐의로 고소되어야 정상이었다.

하지만 그러지도 않는 것은 판사배정, 수사권, 기소권 등 카르텔의 주축이 되는 이권을 쥐고 있는 진짜 현역 카르텔이 핵심이기 때문이었다.

전관변호사란 그저 카르텔 내부의 불문율에 기대야 하는 존재, 혹은 카르텔의 주변부를 지탱하는 보조일 뿐이었으니, 전관변호사를 없애봤자 사법 권력의 핵심 이권에 대한 견제장치가 구조적으로 미비하면 전관변호사 따위는 언제든 다시 등장할 수 있었다.

그러나 모두가 전관변호사는 될 수 없었다.

판검사가 되지 못하거나, 되더라도 카르텔에 소속되지 못하고 옷을 벗은 후 변호사가 된 이들은 전관변호사보다 더 많았다.

이런 자들에게 자신들이 빨지 못할 꿀을 빠는 사법 카르텔은 얼마나 얄미운 존재겠는가? 자금만 보태준다면 사법 카르텔을 상대로 시간 정도 끌어줄 법률 병사들은 얼마든지 모집할 수 있다는 말이었다.

그리고 시간을 끌수록 대법원장에 입맛에 맞는 사람을 앉히겠다는 정호태의 목적이 이루어질 가능성도 커졌다.

판검사 연쇄 살해 프로젝트 팀(?)이 있으니 대법원장에 오를 후보 중에 정 급하면 카르텔만 골라 쓱싹해도 나쁘지 않았다. 정호태가 딱히 친 위버멘쉬 인사를 앉히고 싶은 욕심이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 말이다.

“딱히 제가 도와드릴 일은 없고요?”

[네. 괜히 저희의 밀월 관계가 밝혀지면 서로 곤란하니까요.]

“밀월 관계라니요. 어감이 좀 이상하네요.”

[작당모의하는 악당 같죠?]

정호태는 어설픈 연기자처럼 큭큭 웃었고, 경완은 침묵으로 긍정했다.

사실 악당이나 마찬가지 아닌가? 아무리 부패했다지만 판검사를 죽이고 있으니까.

정호태의 목소리가 진지해졌다.

[요하네스 총수님께서는 제게 한국지부를 맡기기 전에 이렇게 당부하셨습니다. 필요한 존재가 되라고요. 그것이 설사 악이라 할지라도 필요 없는 존재가 되는 것보다는 낫다고요.]

필요악인가?

경완은 그 단어에 불쾌감을 느꼈다. 왜냐면 대부분의 필요악이란 골치 아픈 문제, 그 자체이기 때문이었다.

경완은 과거에 본인이 불가피하게 행했던 필요악을 떠올렸다. 그때의 기억을 반추해 보면 정호태처럼 자청해서라도 필요악이 되겠다고 하는 사람의 운명은 험난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도 그러했으니까.

그 가시밭길은 결코 범상한 인물이 걷긴 어려웠다.

“참 어려운 길을 가시네요.”

[어쩌겠습니까? 제가 선택한 건데요.]

“잘될 겁니다.”

어딘가 지친 목소리에 경완은 근거 없는 덕담으로 그의 앞길을 빌어주었다.

그리고 2심까지는 위버멘쉬 코리아의 계획대로 잘 되는 듯했다.

* * *

28-쿠데타

[오늘 수도 방위 사령부는 청와대와 국회를 제압하고…….]

[쿠데타입니다! 국방부 산하 초능 특작대가…….]

[대통령은 오늘부로 계엄령을 발동하고…….]

하루아침에 세상이 바뀌었다면 믿어지겠는가? 그런데 정말 하룻밤 사이에 큰일이 일어났다. 대한민국 건국 이래 3번째 쿠데타가 발생한 것이다.

사람들은 상상도 못 했지만 사실 쿠데타가 두 번이나 일어났는데 세 번째 일어나지 말라는 법도 없었다.

초능력 각성으로 인한 변화는 여전히 과도기 혹은 혼란기를 만든 것이 현실이었으니, 이러한 혼란은 쿠데타가 일어나기 충분할 빈틈이었으리라.

“오빠. 이게 무슨 일이야?”

“글쎄?”

뉴스 채널을 돌려봤지만 정보 통제가 되고 있는지 일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당최 알 수가 없었다.

친위 쿠데타인지 정권을 노린 군부 쿠데타인지도 알 수 없었다. 쿠데타의 주체가 군부인지 정치인인지도 확신할 수 없었다.

경완은 김준에게 전화를 해봤지만 받지 않았다. 정호태에게도 연락해봤지만 받지 않았다. 다들 미친 듯이 바쁜 모양이었다.

그런데 뉴스 채널의 화면이 일제히 바뀌었다. 청와대였다. 거기에는 현직 대통령이 앉아 뭔가를 읽고 있었다. 이마가 땀으로 번들거렸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그렇게 시작한 대통령의 발언은 계엄령 발동에 대한 변(辯)을 담고 있었다.

한국은 북한 붕괴 이후 대량의 북한 난민으로 인한 사회적 불안과 초능력 범죄의 증가를 잘 막아왔으나 서울 참사가 나는 등 극심한 혼란을 수습하는 와중에 한국의 체제를 부정하고 법치주의를 파괴하는 세력의 준동을 막지 못하고 위기를 맞이했다.

따라서 비상사태를 선언하고 대한민국 내의 불온세력을 몰아내려고 한다는 것이 발언 내용의 전부였다.

“참 영양가 없는 발언이네.”

화면에 나오는 대통령의 얼굴을 보아하니 본인도 썩 내키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본인이 원하지 않는 방식이라거나, 아니면 생각하지 못한 전개라던가.

어쩌면 협박을 받은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마지못해 쿠데타 주축과 손을 잡기로 한 것일 수도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경완은 대통령이 쿠데타의 핵심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분명 자신이 알지 못하는 배경이 있을 것이다.

그때 전화가 울렸고, 경완은 얼른 전화를 받았다.

“네, 김준 씨.”

[시간이 없으니 본론만 말하겠습니다. 이 쿠데타에 경완 씨가 관여한 겁니까?]

“네?”

[아니군요. 다행입니다. 당분간 연락이 안 될 겁니다.]

김준은 그렇게 확인만 하고 전화를 끊었다.

경완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김준은 미국인인데 뭐가 연락이 안 된다는 소릴까? 설마 쿠데타 세력이 미국과 척을 지기라도 한다는 소린가?

이어서 또 전화가 울렸다. 정호태였다.

“정 지부장님. 무슨 일이 일어난 거죠?”

[저희도 모르는 세력이 있었습니다.]

“네?”

경완이 어이없어하는 와중에 전화기 너머로 소란이 들려왔다. 총소리도 섞인 것 같았다.

정호태가 급히 말을 이었다.

[저희는 잠시 잠적해야 할 것 같습니다. 경완 씨, 부디 보중하십시오.]

전화가 끊어지자 경완은 바로 마리아 여사에게 연락했다. 여러 사회인사와 안면이 있는 그녀라면 훌륭한 정보통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미연아. 너도 다른 사람들에게 연락해 봐.”

“응.”

경완은 미연에게 말하고 사태 파악을 위해 혹시나 해서 요하네스에게 전화를 걸었다.

“총수님.”

[아, 경완 씨. 한국에 그런 일이 생기다니. 깜짝 놀라셨을 겁니다.]

“쿠데타가 날 걸 예상하고 계셨습니까?”

[아니요. 설마요. 저도 미처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말하는 내용과는 다르게 어조가 너무 평화로워서 믿을 수가 없었다.

“정호태 지부장 말로는 자기도 몰랐던 제3의 세력이 있다고 하던데요?”

[오! 그것참 놀라운 사실이군요.]

여전히 어조가 너무 평화로워서 조롱조로 들릴 정도였다.

경완이 불쾌감에 미간을 찌푸릴 때 요하네스가 말했다.

[그런데 그게 그렇게 큰 문제가 되나요?]

“네?”

[지금 한국의 상황이야말로 경완 씨의 가치가 극대화되는 상황이 아니던가요? 경완 씨가 주도권을 쥐고 주무를 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까?]

요하네스의 말이 틀리진 않았다. 정치니 민중의 지지니 돈이니 하는 것이 아니라 폭력이 지배하는 상황이야말로 경완에겐 오히려 유리한 상황이 아닐까? 본인이 행동할 마음만 먹는다면 말이다.

[저는 경완 씨가 우리의 한국지부를 받아들이기로 했을 때부터 한국에 관심을 끊었답니다. 왜냐면 경완 씨 덕분에 걱정할 게 없기 때문이죠.]

“제가 뭘 어떻게 할 줄 알고요?”

[마음에 안 드는 놈들을 조지겠죠. 그리고 그간 경완 씨 행적을 생각해보면 경완 씨 마음에 들지 않는 놈들이 어떤 부류인지는 뻔하지 않겠습니까?]

경완은 딱히 반박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지금 그게 중요한 것도 아니었다.

“……아무튼, 한국에서 지금 일어나는 사태에 대해서 아시는 바가 없다는 말씀이시죠?”

[없기는 하지만 한 가지 조언은 드릴 수 있습니다.]

“뭔가요?”

[당신의 연인인 미연 씨는 곧장 안전한 곳에 피신시키는 편이 좋을 겁니다.]

“……조언 감사합니다.”

경완은 곧장 통화를 끊고는 미연에게 말했다.

“미연아, 짐 챙겨.”

“응.”

“서둘러.”

“알았어.”

미연이 서둘러 짐을 챙기는 와중에 경완 자신도 짐을 챙겼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