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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전생 더 빌런-296화 (296/367)

무한전생-더 빌런 296화

28-쿠데타

그런데 그는 뭔가가 자신의 집으로 다가오는 것을 느꼈다. 뭔가 불편하거나 위험을 느끼게 되면 시시때때로 초감각 레이다를 돌리는 그의 습관 덕분이었다.

다가오는 것은 군부대였다. 특수부대원으로 보이는 중무장한 병사들과 장갑차 세 대, 그리고 TSTG를 착용한 초능력자 5명까지.

경완은 미연의 캐리어를 대충 닫고는 바로 태평양 웜홀을 열었다.

“아직 덜 챙겼는데!”

“나중에 내가 따로 챙겨올게.”

경완은 미연의 허리를 짐짝처럼 들어서는 태평양으로 피신했다. 바스티앙은 연락도 없이 온 그에게 의아해 하면서도 한국에서 일어난 쿠데타 사태를 듣고는 놀라워했다.

[그런 일이 있었다니. 얼마든지 여기에 머무셔도 좋습니다.]

[배려 감사합니다.]

미연와 경완은 바스티앙의 배려에 감사를 표했다. 두 사람은 바스티앙이 내어준 숙소에 짐을 풀고 긴밀히 이야기를 나누었다.

미연은 가장 먼저 경완이 그녀를 한국에서 빼낸 이유부터 물었다.

“나한테 위험이 있을 거라 생각한 거야?”

“아무래도 날 제어하려면 널 손아귀에 쥐는 편이 가장 확실할 테니까.”

그것이 과연 목줄이 될지 역린이 될지 당장 경완이 판단할 순 없었다. 그 상황이 되어봐야 판단할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그런 상황이 닥칠 때까지 수수방관하고 싶진 않았다.

“그래서 날 여기에 데려온 거야?”

“그렇지.”

“하지만 여기에 계속 있을 순 없잖아?”

“그것도 그렇지.”

경완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미연의 기반은 죄다 한국에 있으니까.

그녀에게 당장 그 모든 것을 포기하라고 말할 순 없었다. 그렇게 말하기에 경완은 너무나 유능했고, 그 사실은 미연도 알고 있었다. 경완은 본인의 귀찮음과 평온을 이유로 미연에게 희생하라고 감히 말할 수가 없었다.

그녀가 물었다.

“오빠는 어떻게 하고 싶어?”

걱정이 많을텐데 침착하게 자신의 의사를 물어보는 그녀에게 경완은 이렇게 대답했다.

“일단 정보부터 모으자. 뭐라고 하기엔 아는 게 너무 없네.”

그러자 미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인터넷을 검색하거나 메신저로 지인들과 연락하기 시작했다. 경완도 인터넷을 뒤적거리며 관련 정보를 찾았다.

어느 정도 쿠데타의 윤곽이 밝혀진 건 인터넷 덕분이었다. 요즘 같은 정보화 시대에 쿠데타 세력이 아무리 정보를 막아봤자 오래 가지 못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쏟아지는 정보와 각종 외신 뉴스를 종합한 결과는 이랬다.

쿠데타 핵심 주축은 국방부 산하의 비밀 전력인 초능 특수전 부대였다. 중국 붕괴 전에 중국이 초능력 특수전투부대를 보유하고 있었듯이, 한국에서도 초능력자로 이루어진 군부대를 조직했다.

그런데 도대체 무슨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초능력 각성 초기에 국방부는 군내 장병들 사이에서 초능력을 각성한 이들을 닥치는 대로 끌어모으는 식으로 이러한 부대를 만들었다.

일단 사람부터 갈아넣는 군의 관습을 따라 급조된 부대는 여러가지로 문제가 많을 수밖에 없었다. 일단 징집된 청년들이 강제로 전역이 미뤄지고 부사관이 되어버렸다는 점, 그럼에도 그런 장병들을 집 지키는 개 수준으로 대우했다는 점, 그 밖에 워낙 보수적이라 세상 변하는 줄 모르는 꼰대들이 지휘관이랍시고 진급에 눈에 멀어 까라면 까라는 시대착오적인 명령을 해대는 등 불만이라는 이름의 불쏘시개를 쌓았다.

국방부가 이를 모를 리 없었지만 문제는 개선을 하려는 시도도 하기 전에 평양 대폭발과 서울 참사가 연이어 벌어졌다는 것이다.

자연히 개선안은 뒤로 미루어졌고, 참다 못한 초능 특수전 부대가 쿠데타를 일으켰다.. 라는 것이 인터넷과 외신들이 떠드는 말이었다.

하지만 경완은 글쎄? 라고 판단했다. 고작 불만이 다였다면 폭동이나 불복종 등으로 그치지 과연 쿠데타같이 거창한 일이 벌어졌을까?

쿠데타 같은 정권 탈취 행위는 단순히 불만의 표출만으로는 성공할 수 없었다. 쿠데타를 성공시키기 위한 가장 첫번째 필요조건은 정권과 권력에 대한 갈망이었다.

그것이 있지 않는 한 쿠데타는 결코 성공할 수 없었다. 쿠데타에 동참할 인간들 중, 그 어떤 자도 술에 술탄듯, 물에 물탄듯 애매모호한 리더쉽에 동참할 이는 없었다.

하이리스크 하이리턴인 쿠데타인데 가담자에게 확신을 줄 요소는 최대한 많아야 했고 그것 중 하나가 바로 권력에 대한 의지였다.

경완은 인터넷으로 계엄 사령관이라고 하는 자의 발표를 살폈다.

[우리 대한민국은 초유의 위기에 서있습니다. 이는 비단 경제적 위기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윤리의 위기, 국가 정체성의 위기입니다.]

그는 이 나라가 위기에 처해있다고 주장했다. 법치는 대기업과 자본에 일그러져 유전무죄 유전무죄가 된지 오래였고, 금융 범죄와 사기에 대한 관용은 자본주의의 핵심인 신용을 더럽혔으며, 정치인과 공무원은 검은 머리 외국인 및 대기업과 손을 잡고 일신의 이익을 위해 국가 인프라를 민영화하는데 여념이 없었다.

이 명백한 모럴 해저드의 결과가 바로 판검사 연쇄 살인이었다. 법률가들을 죽여서라도 사회 기득권을 쥐고자 하는 세력이 있다는 것이 판검사 연쇄 살인 사건의 본질이었고, 그럴 빌미를 준 것이 땅에 떨어진 국가 지도자들의 윤리라는 것이다.

낮은 출산율은 빈부격차와 자본주의적 갈취가 맺은 열매였지만, 정치인들은 이 문제의 본질을 외면한 채 이민과 외노자로 오직 기업의 입장만 옹호했다.

이걸 이대로 두고 보면 이 나라의 미래는 뻔했다. 아무리 민족주의가 시대착오적이고 국수주의적인 개념이라고 해도, 그것이 이 나라를 위기에서 구해내고, 현재의 경제적 성과를 이뤄낸 중요한 기둥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아니 현재의 위태한 대한민국을 보호하는 가장 든든한 울타리야 말로 민족주의였다. 같은 민족이라는 명분이 연대를 가능케 했고 타인을 위한 나라를 위한 희생과 헌신을 가능케 했다. 생판 남을 위해 희생하는 것보다 먼저, 우리 가족, 우리 이웃, 우리 민족과 우리나라를 위해 희생하는 것이 더 쉬운 게 냉정한 사실이었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민족주의라는 껍데기에 기댈 순 없었다. 민족주의라는 낡은 갑옷을 벗고서도 우리가 안전하기 위해선 출산율을 낮추는 이 나라의 근본적인 적폐부터 해결해야 한다.

계엄 사령관은 대통령의 재가를 받아 이를 위한 작업을 진행할 것이다.

여기까지가 계엄 사령관의 발표였다.

‘초능 특수전 부대장 정청완 준장.’

쿠데타의 주동자로 알려져 있는 그는 30대 후반의 젊은 나이였다.

경완은 정청완 준장의 발표를 상당히 걸러들었다. 대체적으로 사실이나, 그 사실들을 연결한 방식과 결론은 일단 제쳐놨다. 출산율, 무전유죄 유전무죄, 모럴 해저드 등은 경완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낮은 출산율이라는 것도 결국엔 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 쌓인 총체적 문제들이 빚어낸 열매라는 것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새끼를 많이 낳는 돼지조차 생존여건이 안 좋아지면 새끼를 낳지 않는데 하물며 인간은 어떻겠는가?

하지만 다른 관점에서 보자. 정권이 바뀌면 숙청을 하는 건 으레 있는 일이었다. 숙청의 대상이 대중들에게 손가락질 받는 재력가나 권력자라면 민심도 수습할 수 있었으니, 민심 수습이 필요한 쿠데타 세력에겐 그야말로 필수 코스가 아니겠는가?

대한민국만해도 정권이 바뀔 때마다 재벌 때리기를 시도했고, 재벌들은 안 맞으려고 비자금을 상납하기 일쑤였으니, 경완의 귀에 계엄 사령관은 말은 지금부터 숙청을 진행하겠다는 말로 들렸다.

나쁘다는 말은 아니었다. 그가 휘두르는 숙청의 칼날에 잘려나갈 악성종양은 분명 있을 테니까.

다만 그 결과가 좋게 흘러갈지는 두고 봐야 하는 문제였다. 수술이 성공했다 하더라도 경과를 살펴하는데, 하물며 계엄사령관이 제대로 수술을 집도할지, 아니면 사정없이 칼질을 할지 지금으로선 알 수가 없는 노릇이었다.

“진짜 요즘 같은 세상에 쿠데타라니.. 이해가 안 된다니까.”

미연의 말에 경완은 어깨를 으쓱했다.

“상상보다 더한 일이 벌어지는 세상인데 새삼스러워할 것까지야.”

조금만 시선을 넓히고 주변을 돌아보면 우리의 상식이란 너무나 얄팍하다는 걸 깨달을 수밖에 없다. 그걸 깨닫지 못하는 인간이 많다는 것조차 상식의 파괴에 일조할 정도다.

경완의 대꾸에 미연은 그를 보며 물었다.

“오빠. 이제 어떻게 할 거야?”

“너는 어떻게 할 건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겠어? 여기 이렇게 사건을 지켜보는 거 외에?”

“너 회복능력 있잖아? 여기서 소일거리로 그거 하면 되겠네.”

“그럴까? 가 아니고, 한국은?”

“일단 두고 보자고.”

경완의 말에 미연은 잠시 말없이 그를 보더니 물었다.

“그래서 오빠는 어떻게 하고 싶은데? 그 물음에 아직 대답 안 해줬거든.”

그 말에 경완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지금 그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그가 이루고 싶은 꿈은 무엇인가?

답은 금방 나왔다.

“첫째는 네 안전. 둘째는 네 자유, 셋째는 너의 권익보호.”

그 말에 미연은 애써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붙잡으며 물었다.

“왜 오빠에 관한 건 없어?”

“난 딱히 원하는 게 없으니까. 노숙자로 뒹굴어도 불만없거든.”

그가 노숙자로 뒹구는 걸 다른 이들이 가만히 두고 볼 것인지는 다른 문제였다.

“내 사랑은?”

미연이 툭던지는 말에 경완은 어처구니 없다는 표정으로 그녀를 보았다. 그와 적지 않은 시간을 살을 부대끼며 살아온 그녀는 경완 못지 않는 뻔뻔한 낯가죽으로 말없이 그를 보며 무언으로 대답을 요구했다.

“네 자유라니까. 난 나 싫어졌다고, 사랑이 식었다고 떠나는 여자를 잡는 습관은 없어.”

그 말에 미연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화제를 바꾸었다.

“그런데 내가 치료행위하는 건 의료법 위반이 아닐까?”

“내가 바스티앙 씨에게 물어볼게.”

미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두 사람은 그날 저녁, 한국에서 반 쿠데타 시위가 대규모로 벌어졌다는 소식을 알게 되었다. 또한 그 시위가 완벽하게 진압되었다는 사실도.

“샌드맨이 왜 여기서 나와?”

“그러게?”

미연의 놀람에 경완도 놀랐다. 비질란스의 일원이자 불씨 재단의 실질적 운영자인 그를 그동안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갑자기 이렇게 나타난 것이다. 그것도 쿠데타에 협조하는 형태로 말이다.

그 덕분에 사상자가 0에 가깝다는 건 희소식이지만 다른 관점에서 보자면 이건 민주주의의 종말을 상징하는 일이기도 했다. 아무리 머릿수를 모아봤자 강력한 초능력자가 있으면 시위가 소용없다는 것이 만 천하에 알려진 것이다. 경완은 정호태 지부장과의 대화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경완이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나 잠시 다녀올게.”

“어딜? 설마 한국?”

“응.”

“.. 괜찮겠어?”

“누가 날 해꼬지 할 수 있겠어?”

걱정하는 얼굴에 경완은 콧대를 높이며 반문했다. 미연의 걱정을 덜어주려는 나름의 배려였다.

다음날 바스티앙에게 미연의 안위를 부탁한 경완은 바로 웜홀로 한국으로 건너왔다. 한국으로 돌아오자마자 경완의 핸드폰이 문자로 불이 났지만, 경완은 다 재쳐두고 번호를 하나 검색했다.

[여보세요.]

“강우빈 씨. 오랜만입니다.”

[네, 경완 씨.]

오랜만에 연락을 받은 거 치고는 좀 건조한 반응이었지만 경완은 무딘 척 넘어가며 그의 안부를 물었다.

“갑자기 쿠데타라니 놀랐습니다. 재단 식구들은 좀 괜찮은가요?”

[서울 참사에서도 별일 없었던 재단입니다. 쿠데타가 일어났다고 해도 바로 영향이 오진 않죠.]

공익 신고자를 경제적 빈곤으로부터 보호한다는 성격을 가진 불씨 재단은 서울을 벗어난 교외 지역에 근거지를 마련하는 수밖에 없었다. 공익 신고자를 보호한다는 걸 좋아하는 기득권은 없으니까.

뒤가 구린 사장이나 회장님, 고위공무원분들에게 불씨 재단은 자신들의 등에 칼을 꽂으라고 부추기는 재단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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