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전생-더 빌런 297화
28-쿠데타
“별일 없다니 다행이네요.”
[그런데 경완 씨에게 쿠데타 정권의 사람이 찾아가진 않았나요?]
“아니긴요. 얼마나 빵빵한 전력으로 찾아오던지 놀라서 도망갔잖아요.”
[도망이요? 경완 씨가 당할 리는 없을 것 같은데요.]
“저야 멀쩡하겠지만 제 집은 엉망이 되겠죠.”
경완은 억지로 열려서 망가진 대문을 흘겨보았다.
“대문은 망가졌네요. 이거 손해배상은 누구에게 청구해야 하나요?”
[글쎄요? 변호사랑 상의해야 하지 않을까요?]
쿠데타를 성공한 군에 대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맡아줄 간 큰 변호사가 있으려나?
설사 그런 변호사가 있어도 사법질서를 무시하고 쿠데타를 실행한 자들을 상대로 법적으로 해결하겠다는 건 참으로 멍청한 짓이었다. 차라리 군에 연결된 인맥으로 해결하는 게 현명했으니…….
“쿠데타 쪽이랑 안면 있는 거 아니었어요?”
[제가요?]
“네.”
[왜요?]
“그야 반 쿠데타 시위를 막으신 장본인이니까?”
[…….]
강우빈은 말이 없었다. 본인이 샌드맨이라는 걸 경완이 알고 있다는 것에 충격을 먹은 모양이었다.
[언제부터입니까?]
“오래됐어요. 감독님이 불씨 재단을 맡기 전부터?”
[……그럼 왜 가만히 있었던 거죠?]
“제가 뭐 그리 대단한 놈이라고 신고하고 그래요? 할 이유도 없고, 해봤자 좋을 일도 없고, 서로 고생만 하지 누구 좋으라고요?”
확답할 수 있는 건 경완이 좋아할 사람이 좋아하진 않을 거라는 사실이다.
[그렇군요.]
강우빈은 평정심을 되찾은 듯 침착하게 대답한 후 잠시 뜸을 들였다.
[전 쿠데타 세력과 상관이 없습니다.]
“그럼 시위는 왜 막았는데요?”
[제가 막지 않으면 막대한 사상자가 나올 예정이었거든요.]
“왜요?”
[군부는 초능력 군인을 앞세워 시위대를 무력진압할 계획이었습니다.]
“그래도 돼요? 안 그래도 여론이 안 좋을 텐데?”
자칫 불씨에 휘발유를 끼얹는 꼴이 될 수도 있었다.
강우빈이 대답했다.
[군부는 정보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무슨 정보요?”
[어제 일어난 반 쿠데타 시위에 배후가 있다는 정보를요. 시위를 신속히 진압한 다음엔 그 정보와 증거를 가지고 배후를 압박하며 정국을 쇄신할 계획이었죠. 지금쯤 진행하고 있겠군요.]
“시위대에 배후가 있다고요?”
[그럼 지원 세력 없이 하루 만에 10만 명이나 모인 반 쿠데타 시위가 가능하다고 보십니까?]
“가능하지 않을까요?”
경완은 편견을 가지지 않으려고 노력 중이었고, 그런 그의 대답에 강우빈은 말문이 막혔다.
하지만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 있었다.
[그게 가능하더라도 어제의 대규모 시위에 배후 세력이 있었던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배후 세력이라면 재벌인가요?”
[재벌도 있고, 정치인도 있고, 법조계 쪽 인물도 있습니다. 한국 기득권 상당 부분이 참여했죠.]
그의 말은 모두가 참여하지 않았다는 말이기도 했다. 하긴 가진 게 많아서 신중을 기하려는 이가 없진 않을 것이다.
“언론은 없네요?”
[비판하는 언론이 있기는 하지만 이 나라의 주류언론은 죄다 권력과 영합해 부귀영화를 누렸으니까요. 새삼스럽지도 않습니다.]
일제 치하에선 천황폐하 만세, 인민군이 서울 점령했을 때는 김일성 장군님 만세, 쿠데타가 성공했을 때는 위대하신 지도자 만세.
권력에 반발하는 경쟁자가 탄압받고 도태되는 반면에 이들 주류언론은 권력과 영합하여 온갖 특혜를 받은 걸 바탕으로 이슈와 프레임을 선점해 대한민국의 여론을 주도하며 막강한 언론권력을 누렸다.
그랬던 언론사가 새삼 시대가 바뀌었다고 민주투사가 될 리 만무했으니, 쿠데타를 비난하는 건 적당히 상황을 관망하다가 아! 이 쿠데타한 새끼들 조또 없구나라는 판단이 들었을 때쯤 날선 비난의 펜촉을 휘둘러도 늦지 않다는 계산일 것이다.
아무튼, 그런 언론의 과거야 이미 알려져서 알 수 있으면 알 수 있다고 쳐도, 교외 지역에서 재단이나 운영하던 사람이 쿠데타과 반대 시위의 배후 같은 정보를 가지고 있는 게 경완에겐 인상 깊었다.
“감독님은 어떻게 그런 사실들을 다 알고 계시는 건가요?”
[나름 정보를 얻고 있는 라인이 있습니다.]
경완은 사망기자를 떠올렸다. 신기할 정도로 정보력이 좋았던 그 역시 비질란스에 소속되었었지?
“사망기자가 아직 안 잡히고 활동하고 있나 보네요. 아니면 잡혔는데 몰래 감독님하고 연락하고 있다거나.”
[…….]
더는 말할 수 없다는 침묵에 경완은 사망기자에 대해선 더 묻지 않았다.
“아무래도 이 쿠데타 사태에 대해서 잘 알고 계신 모양인데 정보라도 좀 풀어주시죠?”
[음……. 어디서부터 할까요?]
“그 초능 특수전 뭐시기 하는 곳부터요.”
[알겠습니다.]
강우빈은 곧 자신이 아는 바를 이야기했다.
외신에 알려진, 초능 특수전 부대의 불만은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 불만에 끼얹어진 여러 기름이 있었고, 위버멘쉬 코리아 역시 본의 아니게 기름을 부은 곳이었다. 일종의 차별과 질시랄까?
위버멘쉬가 한국지부를 설립하면서 여러 초능력자들을 닥치는 대로 회원으로 모집했지만 손을 대지 못한 곳이 있었으니, 바로 군에 소속된 초능력자들이었다.
이유는 단 한 가지. 한국에 빠르게 자리를 잡느라 아무래도 여러 기득권층과 마찰을 빚은 상황인데 군대와 또 마찰을 빚을 순 없었던 것이다. 또 그전에 군이 위버멘쉬에 초능력자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단단히 경계 및 단속하기도 했고 말이다.
이런 상황이 되자, 사회에 있는 초능력자들은 높은 수요로 몸값이 올라가 거액을 벌지만, 군에 묶이게 된 초능력들은 최저시급에 간당간당한 대우를 받으니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으리라.
이에 대한 문제제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북한 붕괴와 서울 참사를 핑계로 초능 특수전 부대의 처우 개선은 차일피일 미루어졌고, 이는 자연스럽게 내부 사조직을 형성하는 촉매가 되었다. 마치 상사에 대한 뒷담을 하면서 공감대를 형성하듯, 공통된 부조리를 같이 씹으면서 자연스럽게 사조직이 형성된 것이다.
들킬 위험은 없었다. 일단 군에 있던 초능력 각성자를 급히 다 긁어모은 터라 별의별 초능력자들이 다 있었고 그중엔 텔레파시를 각성한 이도 여럿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들은 표층의식을 연결하는 일종의 허브가 되어 서로의 불만과 의견을 들키지 않게 나누는 사조직의 결성을 가능케 했다.
그저 박한 대우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던 장이 야망을 꿈꾸는 장이 된 건 바로 이러한 텔레파시 허브 때문이기도 했다. 누군가의 야망이, 누군가의 현실 인식이, 현대 교육을 받은 장병들의 머리에 각인된 ‘쿠데타는 나쁘다’라는 상식을 무너뜨린 것이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첫 쿠데타의 주역은 반인반신으로, 그 자녀들은 반인반신의 혈육으로 숭앙받고, 두 번째 쿠데타의 주역은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하지 못한다고 방면되었으며 그 자손 삼 대 역시 잘 먹고 잘 살고 있었다. 아마 앞으로도 잘 먹고 잘 살 확률이 99.99%는 보장된 현실.
정말 쿠데타가 나쁜 거라면 조선도 나쁜 짓해서 세워진 나라 아닌가? 정몽주 입장에서 이성계는 쿠데타 세력의 수괴일 뿐이었으니까.
하지만 현실은 어떠한가? 이성계를 쿠데타 주동자로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 않은가? 새로운 왕조를 세운 창업자라면 몰라도.
그렇다. 역사는 승자가 기록하는 것이다.
이는 세 번째 쿠데타를 꿈꾸는 이들의 야망을 정당화했다.
출처를 단정 지을 수 없는 누군가의 표층심리에 영향을 받은 이들은 국가로부터 당했던 억울한 부조리와 평소에 보아왔던 사회의 적폐를 보고 이대로는 안 된다, 제2의 건국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된 건 그저 비약만은 아니었다.
그들에겐 힘이 있었으니까. 그들에겐 국방부가 외부에 기밀로 하고 싶었던 특별한 강자들이 있었으니까. 억울한 사람이 생길지라도 무리를 해서라도 붙잡혀 있던 초능력 각성자들이었으니까.
하지만 경완은 여전히 의문이었다. 인간은 상식과 관념이란 실에 매달린 마리오네트였다. 사람들이 나쁜 짓을 하는 대부분의 이유는 그것이 나쁜 짓이라는 걸 의식하지 못하거나, 아니면 나쁜 짓을 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상황이 안 좋을 때뿐이었다.
갑자기 초능력을 각성한다고 해도 그것이 상식과 관념이란 족쇄를 끊어낸다기엔 개연성이 약했다.
초능 특수전 부대의 초능력자들도 머리가 없는 건 아닐테고, 쿠데타 같은 비난받을 짓을 하지 않아도 조금만 더 참으며 항의한다면 처우와 대우를 개선하는 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건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 정도로 힘이 있고 쿠데타를 할 정도로 독심이 있었으면 그전에 뒤엎어도 되지 않았을까요? 그러면 국방부도 앗 뜨거라 하면서 양보했을 텐데요.”
[가족이 인질로 잡힌 상황이면 어쩔 수 없죠.]
“……군에서 그따위 짓까지 했다고요?”
경완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 무슨 양아치 같은 짓이란 말인가?
[직접적인 위협은 없어도 간접적인 위협은 충분히 있었습니다. 일종의 굿캅배드캅 전략이죠.]
그러니까 가족을 대상으로 협박한 놈과 그것을 말리는 놈으로 역할을 구분해서 위협하고 어그로 달래서 상부에 명령에 복종하도록 길들이려 했다?
“텔레파시 능력을 간과한 모양이네요.”
경완의 평가에 강우빈이 대꾸했다.
[능력이 미약했다고 파악했거나 그 파급력이 어떨지 이해를 잘못했거나 했던 거겠죠.]
이러한 굿캅배드캅 전략은 초능 특수전 부대에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되거나, 심하게 반발해서 억누를 필요가 있거나, 그것도 아니면 그런 전략을 사용해도 무방한 초능력자에게 적용되었다.
하지만 초능력 커뮤니티인 텔레파시 허브가 있었다. 굿캅배드캅에 당한 이들의 사정이 텔레파시 허브로 알려졌을 때 연결되어 있던 이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나라로부터 배신당한 배신감, 나의 권익과 더 나아가 가족들을 보호하기 위해선 무언가가 더 필요하다는 절박함.
이 두 가지는 ‘쿠데타는 해선 안 된다’라는 관념적 사슬을 끊어내는 절단기의 역할을 하기엔 충분했다. 또한 일신의 무력보다 권력이 사랑하는 가족을 보호하기에 더 유용하다는 명백한 사실도 쿠데타에 당위성을 부여했다.
세상의 악의는 권력을 쥔 자보다 약자에게 쏠리기 더 쉬우니까.
“쿠데타를 한 이유가 이해가 되네요.”
[그래서 경완 씨는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일단 관망하려고요.”
[……쿠데타인데 말입니까?]
“음……. 제가 여태 살아오면서 느낀 게 있어요. 권력을 쥐는 방법이나 그 과정은 딱히 중요하지 않아요. 권력을 쥐고 뭘 하느냐가 더 중요하지.”
물론 과정을 짚어보면 이 새끼가 정말 나라를 위할 놈인지, 아니면 제 사리사욕을 위해 한몫 챙기려고 드는 건지 가늠이 안 되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고려의 왕건은 마누라들이 어찌 생각하든 아랑곳하지 않는 혼인정책으로 한반도의 호족들을 엮어내 평화로운 일통을 이뤄냈고, 조선의 이성계는 기어코 조선이라는 나라를 건국했다.
애석한 일이지만 세상은 결과를 중시한다. 쿠데타를 저질렀다는 것만으로 경완이 그들을 적대하거나 거부할 이유는 되지 않았다. 대한민국의 역사 자체가 성공한 쿠데타에 관대했다. 아니, 전 세계적으로 봐도 성공한 쿠데타가 관대한 대우를 받는 경우는 비일비재했다.
경완은 그저 그런 세파를 존중할 뿐이었다. 쿠데타는 절대 용납할 수 없다는 세상이었다면 그 역시 다른 입장을 취했을 것이다.
[……만일 제가 어제 시위를 막지 않았다면 어땠을까요?]
강우빈이 물었다. 쿠데타 세력이 정권을 강탈하고 하려던 짓이 반 쿠데타 시위에 대한 무력진압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