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전생-더 빌런 301화
28-쿠데타
경완이 세 번째 손가락을 폈다.
“마지막으로 저는 한국에 그 어떤 책임도 지고 싶지 않아요.”
“책임이라고요?”
“일을 저질렀으면 책임을 져야 사람이죠. 안 그래요?”
사실 마지막 이유가 가장 컸다.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는 말은 사실 백마 탄 초인과 구원자를 애타게 찾는 대중심리의 변형에 불과했다.
차라리 큰 힘을 쓰는 데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는 말이 더 정확한 표현이자 그 힘을 가진 자에게도 설득력 있는 말이었다.
즉, 경완이 정청완 준장의 제안을 수락해 그의 편에 서게 되면 경완은 어떤 의미에서든 쿠데타 정부가 하는 일에 대해서 책임을 회피할 수 없는 입장에 서게 된다는 말이었다.
책임.
이 얼마나 어렵고 지겹고 짜증 나는 단어란 말인가?
이게 얼마나 어려운 말이냐면, 애 낳고 도망가는 여자도 있고, 임신시켜 놓고 도망가는 남자도 있고, 이혼해놓고 양육비 안 주는 것들도 있고, 그냥 애를 고아원에 버리고 가는 이들도 있다.
자기 혈육에 대한 책임도 이렇게 짊어지는 것이 어려운 세상일진대 한 나라의 운명에, 그 나라에 사는 모든 이들에게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권력과 정권에 대한 책임이라니?
그동안 이 나라의 윗분들 상당수는 그딴 책임 따위는 개좆으로 보는 등의 행동을 해왔지만 경완은 그럴 수 없었다.
그런 인간들하고 같은 수준으로 떨어지는 건 자존심 문제였다.
경완의 설명이 끝나자 정청완 준장은 말없이 시선을 아래로 했다. 생각에 잠긴 것이다.
하지만 고민은 길지 않았다. 그는 이내 경완을 보며 물었다.
“경완 씨가 원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냥 귀찮지 않고 편안하게, 평온하게 지내는 거죠.”
정청완 준장의 눈이 가늘어졌다. 경완의 목적은 그가 가진 능력을 생각하면 무책임할 정도였다.
“너무 이기적인 거 아닙니까?”
“군인이시잖아요? 대체불가라는 게 얼마나 위험한지 모르시진 않을 텐데요?”
“…….”
어떤 조직이든 존속하기 위해선 대체 가능한 인재가 있어야 했다. 인간을 죽음으로 몰아넣어야 하는 군일수록 더욱 그렇지 않겠는가? 그래서 ‘인적자원’이라는 개념도 있는 거고.
경완이 말을 이었다.
“그리고 제가 가만히 있는 게 오히려 사령관님을 도와주는 게 아닐까요? 사령관님 능력 덕분에 사령관님의 의도가 뭔지는 정확하게 전달되었지만, 인간의 행동은 결국에는 기분이라는 게 중요하게 작용하잖아요.”
“…….”
말없이 부연설명을 요구하는 눈빛에 경완이 말했다.
“사령관님이 참고 넘어가는 일을 제가 못 참고 넘어갈 경우라든가, 사령관님이 못 참고 넘어갈 일을 내가 좀 말리고 싶다던가.”
“…….”
“상대방의 입장과 논리를 이해한다고 해도, 그게 내 입장과 내 논리를 고쳐야 할 이유가 되는 건 아니잖아요.”
타인과 살아가기 위해선 대화가 필요하다. 하지만 대화가 반드시 합의로 이어진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오히려 평행선인 서로의 입장을 확인하는 단계로 전락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렇지 않다면 전쟁이 왜 벌어지겠는가? 재벌이 서민의 입장을 이해하는 것과 서민의 편을 드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처럼 말이다.
경완의 말에 정청완 준장이 다시 생각에 잠기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경완 씨에게 합류를 권유하는 일은 더는 없도록 하죠.”
“좋군요.”
경완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저 말만 들으려고 온 건 아니었다.
“그런데 위버멘쉬 코리아는 왜 공격한 겁니까?”
“……그러고 보니 경완 씨와 위버멘쉬 코리아는 제법 깊은 관계로 보이더군요.”
정청완 준장의 눈빛이 다시 날카로워졌다.
경완은 어깨를 으쓱했다.
“저를 따르겠다고 공식적으로 밝힌 곳이잖아요?”
“경완 씨는 그들이 어떤 이들인지 알고 그들을 받아들인 겁니까?”
“어떤 사람들인데요?”
“국가질서를 흩트리고 권력을 잡으려는 이들이죠.”
그 말에 경완은 검지로 턱을 두어 번 긁적이더니 이렇게 말했다.
“국가질서라는 게 뭘까요?”
“네?”
“제가 보기엔 위버멘쉬 코리아야말로 국가질서에 가장 잘 부합했던 것 같은데…… 아닌가요?”
인맥, 돈, 권력, 정경유착, 온갖 탈법과 불법을 이용한 영향력 확보. 그것이 이 나라의 기득권들이 해왔던 짓이 아니던가?
일반 국민들마저 다 알고 있으면서도 손을 놓고 있는 공공연한 비밀이란 사실 사회가 허락한 불문율과 다를 바가 없었다.
‘이 나라에서 성공하고 싶으면 이렇게 해라.’
경완이 보기엔 위버멘쉬 한국지부야말로 이 한국의 불문율을 가장 완벽하게 수행해 낸 모범생이었다.
정청완 준장의 표정이 굳었다.
“그런 자들을 제가 용납할 것 같습니까?”
“기회를 주지도 않았잖아요?”
쿠데타 성공하자마자 불온 요소로 낙인찍고 제압하려고 했지.
“그들이 떳떳했다면 저항하지 않았겠죠.”
“저기 사령관님. 그 사람들은 힘없는 소시민이 아니에요. 정권을 쥐었다고 쉽게 자비를 구걸할 사람들이 아니라는 걸 모르셨어요?”
“그들도 국민이라면 마땅히 국가의 명령을 따라야 하지 않겠습니까?”
경완은 거기서 정청완 준장의 한계를 느꼈다. 역시 군인의 사고방식은 어쩔 수 없는 걸까? 아니면 위버멘쉬 코리아에게 위기감을 느낀 방어적 반응일까?
어느 쪽이든 정청완 준장의 그릇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힘이 있다고 규칙을 어기게 두지 않겠다?”
정청완 준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위버멘쉬 코리아도 그 대상입니다.”
그의 입장에서 강력한 세력과 기득권을 구축한 위버멘쉬 코리아는 일단 제압하고 봐야 했다.
쿠데타 정권에 대항이 가능한 강력한 초능력자 집단을 보유했으니 이는 계엄사령관인 정청완 준장에겐 매우 중요한 과제였으리라.
그 대답에 경완은 잘하면 스무스하게 상황을 자기에게 유리한 쪽으로 끌고갈 수 있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했다.
“기회를 주시죠.”
“기회요?”
“나라를 위해 이바지할 기회를요.”
위버멘쉬 코리아에?
정청완 준장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들이 해온 행적을 보면 도저히 그럴 것 같지 않습니다만?”
한국에서 자리 잡기 위해 적폐 기득권과도 타협한 자들이지 않은가?
경완이 말했다.
“제 밑으로 들어온다잖아요.”
그 말에 정청완 준장의 분위기가 더없이 가라앉았다.
“위버멘쉬 코리아가 보유한 무력은 마땅히 국가에 의해서 통제되어야 합니다.”
그 말에 경완은 웃었다.
“첫째, 불가능한 일을 시도하고 계십니다. 둘째, 그러한 시도가 설사 성공한다고 한들 그로 인한 인재 유출과 국가 경쟁력, 그리고 국가 안보의 손해는 어떻게 하실 건가요?”
“…….”
정청완 준장은 대답할 수 없었다.
위버멘쉬 코리아는 초능력자 집단을 중심으로 이권을 형성한 이익 조직이었다. 경완이 말한 대로 그들에 대한 통제가 불가능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그 결과가 경완이 후자에 말한 것처럼 나라에 도움이 되진 않을 것 같았다.
말 없는 그를 향해 경완은 이해한다는 듯이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했다.
“처음에는 대의를 가지고 이 모든 일을 시작했겠죠. 하지만 현실은 우리 생각보다 훨씬 시궁창이죠.”
“타협하라는 겁니까?”
“현실을 제대로 보라는 겁니다. 정말 위버멘쉬 코리아가 사령관님이 청소해야 할 적폐라고 할 수 있을까요?”
정청완 준장은 잠시 말이 없다가 이렇게 대답했다.
“새로운 시대의 적폐는 되겠죠. 내 손으로 그 싹을 뽑지도 말고 놔두라는 겁니까?”
경완이 언급한 부작용을 모르고 있진 않았다.
다만 그 문제는 지금 단계에서 논할 것이 아니라 나중에, 제압이 성공하거나 충분한 압박으로 이쪽이 우위에 섰을 때 논할 내용이었다. 위버멘쉬 코리아가 새로운 시대의 적폐가 되지 않도록 충분히 시간을 두고 수술할 계획이었다.
그래서 경완이 지금 그것을 언급하는 게 정청완 준장은 별로 달갑지 않았다.
경완이 대꾸했다.
“적폐라. 그렇게 되려면 족히 한 세대는 걸릴 텐데 그때까지 사령관님이 수수방관하겠다는 소리로 이해해도 되겠습니까?”
도발적으로도 들리는 말에 정청완 준장의 눈썹이 꿈틀했다.
“세상이 변하고 있어요. 국가의 시스템은 포용적이어야지 배타적이 되면 안 됩니다. 물론 방종과 선을 넘은 탐욕을 견제하는 장치는 필요하겠죠. 하지만 첫 단추를 잘 끼우는 게 그림이 좋지 않을까요?”
국가 통제의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똑똑하게 실행해야 한다는 말을 이해할까? 아니라면 말을 길게 해야 할 것 같아서 귀찮을 것 같은데.
경완이 우려하는 와중에 정청완 준장이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당신이 아니라면 깊게 고려할 만한 제안이군요.”
그 말에 경완은 군병력이 자신의 집으로 출동한 걸 떠올렸다. 그러니까 위버멘쉬 코리아에 대한 견제의 이유에는 결국 자신이 적잖은 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고백이었다.
경완도 솔직하게 나가기로 했다.
“제가 위버멘쉬 코리아와 결탁할 상황을 생각하니 여러모로 우려가 되는 건 충분히 이해합니다. 하지만 저도 어쩔 수 없습니다.”
“뭐가 어쩔 수 없단 말이죠?”
“초능 특수전 부대의 장병들이 쿠데타를 결심하게 된 이유는 결국 가족들을 지키려면 권력이 필요하다고 느껴서가 아닙니까?”
경완의 말에 정청완 준장의 눈이 부릅떠졌다. 경완에게 전달한 기억 이미지엔 자신이 쿠데타를 일으킨 당위성에 대한 것만 있었지, 장병들을 설득시킨 내용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경완은 일부러 씁쓸한 미소를 지어주어 말을 이었다.
“제게 그런 사실을 알려주지 않은 이유는 이해합니다. 장병들의 사생활을 보호해 주고 싶었기 때문이겠죠.”
일단 잔뜩 포장해서 치켜세워주고,
“그러니 이해해 주셔야 합니다. 저도 제 소중한 사람을 지키기 위해서 울타리가 필요하거든요.”
공감대를 끌어냈다. 얼마나 설득력이 있을지는 판단할 수 없었다.
정청완 준장의 눈이 가늘게 떠졌다.
“……세력이 필요하다는 겁니까?”
“그렇죠. 일신의 무력만으로는 부족하니까.”
돈과 권력과 사람.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 사회적 영향력으로 쌓은 담장이라면 여러모로 편리하고 편안한 안전장치가 되어줄 것이다.
“역시 받아들이기 어려우신가요?”
“사실상 군벌을 인정하라는 거나 마찬가지라는 건 알고 있습니까?”
정청완 준장의 말투가 날카로워졌다. 이경완을 정점에 둔 초능력자 집단이라니. 그 무력의 척도는 가히 군대와 비견할 만했다.
경완은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국외로 시선을 돌려보세요. 죄다 군벌투성이입니다. 초능력 때문에요.”
누구나 각성할 가능성은 있지만, 총기처럼 모두에게 보급될 수 없으며, 그 편차도 매우 커서 국가가 우려할 정도로 개인 강해질 수 있는 힘.
이러한 초능력의 특징은 자본가와 노동자라는 계급에 새로이 각성자와 비각성자라는 계급을 더할 것이고, 이는 신세기 귀족주의의 태동을 불러올 가능성이 컸다.
자본가가 귀족이 될 수 없었던 이유는 자본가가 무력까지 쥐도록 세상이 놔두지 않았기 때문이지만, 초능력이 열린 세상에선 초능력이란 무력을 쥔 자가 돈까지 쥘 수 있게 될 테니까.
이러한 신귀족은 과거의 귀족과는 다르겠지만, 또 스스로 귀족이라고 명찰을 붙이지도 않겠지만 분명 귀족이나 다름없는 계층이 될 것이고 그럴 수밖에 없었다.
누가 언제 어떻게 각성할지 알 수 없는 초능력은 결국 정보와 돈을 쥐고 있는 자들이 무력의 사유화를 용이하게 할 테니까.
이게 과연 억측일까?
남미의 마약조직들은 초능력 각성 이전에도 돈과 무력을 쥐고 군벌 귀족처럼 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