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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전생 더 빌런-302화 (302/367)

무한전생-더 빌런 302화

28-쿠데타

경완이 말을 이었다.

“국가 체제는 이 소위 초능력 군벌의 협조를 얻지 않으면 존속되기 어려울 겁니다.”

“제가 그걸 두고 볼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뭐, 모든 초능력자를 국가 관리 아래에 둘 순 있겠죠. 초능력 인재 유출로 인한 국가 경쟁력 감소를 감수할 수 있다면야.”

표정이 잔뜩 굳은 채 정청완 준장이 말했다.

“나를, 이 나라를 믿어줄 순 없는 겁니까?”

“샌드맨하고는 어떤 관계이신가요?”

맥락과 전혀 상관없는 반문에 정청완 준장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아무 관계도 아닙니다.”

“만일 샌드맨이 없었다면 반 쿠데타 시위는 어떻게 됐을까요? 그냥 놔두셨을까요, 아니면 강경하게 진압하셨을까요?”

“저는,”

“저 거짓말 잘 가려내기로 유명한 이경완입니다.”

경완이 말을 잘라먹었지만 정청완 준장은 그저 입을 꾹 닫고 경완과 시선을 맞추다가 말했다.

“그들의 시위는 반대세력에 의해 조직적으로 이루어진 겁니다. 전 정치깡패와 용역깡패를 혐오합니다. 돈 몇 푼에 정치적 신념을 팔아먹는 전문 시위꾼 같은 인간들이야말로 민주주의의 적입니다. 그들을 억압하고 몰아내는 일에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않을 겁니다.”

“그들 모두가 100% 돈 받고 시위에 참여했다고요?”

“…….”

“뭐, 배후 세력이 시위를 촉발시킬 순 있겠죠. 하지만 10만이나 되는 인원이 모인 건 분명 그만한 민의가 있었다는 방증이 아닐까요?”

정청완 준장은 대답하지 않았다. 굳이 변명하지 않겠다는 분위기에 경완이 먼저 입을 열었다.

“뭐, 군인이신 입장이니 불가피하게 부수적인 피해는 감수할 수도 있겠죠.”

경완의 눈이 가늘어졌다.

“하지만 그 부수적 피해에 저와 제 사람이 포함될 때 제가 어떻게 행동할까요?”

“…….”

여전히 말이 없는 그를 향해 경완이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기분 좋은 미소라기보다는 사나워 보였다.

“그러니 저를 위한 울타리를 쌓는 건 사령관님의 대의에도 이익이라는 말입니다. 제가 알아서 제 분노가 터져 나올 상황을 만들지 않도록 노력하겠다는 거죠. 그러고도 불행이 일어난다면 적어도 남 탓할 이유는 줄어들지 않겠어요?”

정청완 준장은 말없이 생각에 잠겼다. 경완은 할 말은 더 있었지만 방금 말한 부분에서 정청완 준장의 확고한 결정을 기대하며 기다렸다.

그리고 흡족한 대답을 들었다.

* * *

계엄 사령관과의 면담을 끝낸 경완은 정호태에게 연락할 방법이 필요했다.

계엄사령관으로부터 위버멘쉬 코리아를 적대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냈기 때문이다.

그 대신 계엄 정권의 행보에 반하는 움직임은 보이지 말라는 조건이 붙었지만 경완은 거기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정청완 준장도 자신의 입장을 충분히 들었다. 즉, 계엄 정권이 먼저 선을 넘는 행동을 하면 경완이 굳이 약속을 지킬 필요가 없다는 걸 계엄사령관도 인지하고 있다는 말이었다.

경완은 우선 요하네스에게 연락했다. 그는 경완과 계엄사령관 사이의 맺은 밀약에 가볍게 감탄하는 태도를 보이더니 이내 정호태 지부장과 연락을 취해보도록 하겠다며 통화를 끊었다.

그로부터 경완이 정호태 지부장의 전화를 받은 건 약 4분쯤 뒤였다.

[경완 씨. 저 정호태 지부장입니다.]

등록되지 있지 않은 번호를 받자 정호태 지부장의 음성이 들려왔다.

“정 지부장님. 잘 지내셨어요?”

[잘 지내긴요. 숨어 지낸다고 아주 그냥 답답하게 있죠. 경완 씨는요?]

“막 방금 계엄사령관하고 이야기하고 오는 길입니다.”

[그래요? 어떻게 됐습니까?]

정호태 지부장의 목소리에 잔뜩 기대가 서려 있었고 경완은 그 기대를 충분히 충족시켜 주었다.

“이야기 잘 됐죠. 이제 위버멘쉬 코리아 쪽 사람들에 대한 수배는 풀릴 겁니다.”

[역시 경완 씨! 당신을 따르길 잘했습니다.]

“대신 계엄 정부에 협조를 좀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건 좀 그런데요.]

“일단 큰 틀에선 간섭하지 않기로 했지만 세부적인 부분은 잘 조율해야 할 거예요.”

경완은 계엄사령관과 일종의 불가침조약을 맺었지만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본인이 잘 알고 있었다.

영토가 딱 나뉜 국가도 아니고, 위버멘쉬 코리아를 울타리로 삼기로 한 이상, 그리고 위버멘쉬 코리아가 한국에서 영리활동을 하는 이상 정권을 쥔 계엄 정부의 영향력을 완전히 단절하는 건 불가능한 이야기였다.

“인력 파견까진 아니더라도 정보 정도는 제공해야 할 필요가 있을 거예요.”

그러면서 경완은 계엄사령관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적폐 청산에 대한 의지가 아주 강한 인간이라고 말이다.

그 과정에서 위버멘쉬 코리아가 수집한 정보를 요구한다면 어느 정도는 제공해 줘야 할 필요가 있었다. 적폐 청산이란 숙청의 칼날이 위버멘쉬 코리아가 아니라 다른 쪽을 향하도록 말이다.

[아주 골치 아픈 인간이네요.]

“사납죠. 저도 건들기 싫어요.”

[새로 적응한다고 골치 아플 것 같기는 하지만 상황이 나쁘진 않네요.]

경완은 정호태의 계산이 뭔지 읽어냈다. 하지만 그 계산이 대해서는 좀 부정적이었다.

“군부 정권이 기득권 조질 때 흘러나올 이권은 위버멘쉬랑은 좀 안 맞지 않나요?”

위버멘쉬는 초능력자라는 인재 공급으로 일어난 조직이다. 전통적인 한국 기득권의 이권을 취하기엔 소화기관이 좀 다르지 않을까?

정호태가 가볍게 말했다.

[에이. 사람이 어디 밥만 먹고 살 수 있나요? 그리고 문어발 확장이야말로 이 나라에서 잘나가는 기업이 마땅히 취해야 할 방향 아닐까요?]

일리가 없는 말은 아니었다. 다양한 영역으로의 확장은 전문성 부족이라는 약점을 달고 있지만, 경기(景氣)에 따라 서로 보완이 가능하고 시너지가 용이하다는 점에서 장점이 있었다.

“너무 심하게 하다가 괜히 빌미를 주진 말고요.”

[하하! 알겠습니다.]

웃음을 터뜨리는 걸 보니 기분이 아주 좋은 모양이었다. 그간 사법 카르텔과의 싸움이 단박에 해결되고 명실상부 대한민국 기득권의 한 자리를 차지할 그림이 눈에 보이는 모양이었다.

[그나저나 이렇게 경완 씨가 수고를 해주셨는데 뭔가 원하시는 건 없습니까?]

“돈은 딱히 필요 없어요.”

돈 말고 다른 게 필요하다는 뉘앙스에 정호태는 물었다.

[말씀만 하시죠.]

그에 경완은 차후 자신에게 있어 위버멘쉬 코리아가 어떤 역할을 하게 될 것인가를 계엄사령관에게 털어놓았다는 이야기를 했다.

[울타리라. 고작 그 정도로 만족하시는 겁니까?]

그렇게 묻는 정호태의 목소리에는 아쉬움이 가득했다.

“뭔가 큰 꿈을 꾸시고 계시다면 저는 빼주세요. 그리고 군부 정권이 지난 다음에 꾸시구요.”

[계엄이 길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시는 모양입니다?]

“문제는 경제라고 하잖아요? 요즘 같은 시대에 개발 독재로 경제 성장을 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죠.”

[그렇다면 우리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겠군요.]

“그렇게 되겠군요.”

경완은 정호태의 말에서 군부가 단순히 위버멘쉬 코리아가 보유한 무력이 우려되어 압박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장악한 군부 정권은 개발독재의 성과를 쿠데타의 면죄부로 삼았다.

하지만 그 경제적인 성과는 단순히 수많은 노동자를 착취해 자본을 만들고 용역 깡패를 동원해 시위대를 해산시켜서 일군 것이 아니라 시기에 맞게 수출 주도형 경제를 꾸린 덕분에 세계적 경제 성장의 수혜를 입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비록 지금이 그때와 같이 세계 경제가 성장하진 못하고 있지만, 초능력이라는 새로운 경제성장의 동력원이 있었고, 지금은 그 과도기였다.

정청완 준장이 국민의 지지를 얻어 적폐 청산이라는 목적을 완수하기 위해서는 서민경제의 안정이 필요했고, 지금과 같은 경제 구조에선 단순히 재벌을 때려잡는다고 가능한 일도 아니었다.

적폐를 때려잡는다고 그것이 곧장 경제적 성과로 이어지는 것도 아니고 그 효과가 나올 때쯤엔 그것이 적폐 청산의 효과라는 사실은 대중들의 머릿속에서 지워진 이후일 것이다.

그런데 운이 좋게도 지금은 전 사회, 산업 전반에 걸쳐 초능력이 도입 중인 세상이었다. 경제적 안정 및 치안의 유지에 위버멘쉬 코리아를 이용할 수 있다면 분명 큰 도움이 되리라.

이것이 경완이 생각한, 군부가 위버멘쉬를 압박한 또 하나의 이유였다.

“그런데 한 가지 물어볼 것이 있어요.”

[네, 말씀하세요.]

“초능 특수전 부대인가? 거기 초능력 병사들이 사용하는 초능력 확장장비가 대단히 특이하던데. 알고 계셨어요?”

초능력 무효화 영역을 발동하는 초능력 확장장비. 그것을 언급하자 정호태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네. 너무 늦게 알았지만요.]

그 말에는 위버멘쉬가 공급한 것이 아니라는 뉘앙스가 담겨 있었다. 경완은 중요한 문제라 다시 한 번 확인했다.

“그러니까 위버멘쉬에서 공급한 것은 아니다?”

[초능력자의 지지를 받아야 할 저희가 왜 초능력을 무력화할 기술을 개발하겠습니까?]

“개발하지도 않았다?”

경완은 놀랐다. 그러니까 초능 특수전 부대의 초능력 무력화 장비가 위버멘쉬와 상관이 없다?

그렇다면 둘 중 하나였다. 국방부나 혹은 초능 특수전 부대에서 자체적으로 개발했거나 아니면 그러한 물건을 개발할 수 있는 배후 세력이 있거나.

[아무래도 중화 능력을 저희가 공급한 코어에 덮어쓰기를 한 것 같은데. 아마 국방부나 함께 연구하던 산하 기업의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경완은 또 하나의 단어를 귀에 담았다. 중화 능력이라? 위버멘쉬는 이미 무효화 능력에 대해선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경완은 그 부분은 묻지 않고 현안에 집중했다.

“한국의 초능력 연구가 그 정도라고요?”

[연구 역량 자체는 세계에서도 순위급이니까요.]

기초 연구에 투자하지 않아서 그렇지 연구인력과 연구 인프라 자체는 상당히 우수한 것이 한국 과학계였다.

“혹시 마리아 박사님하고 연락이 되나요?”

[음. 해보고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렇게 통화를 끊고 잠시 후 정호태가 연락했다.

[안됩니다. 어디 억류당한 상황인 것 같습니다.]

“억류요?”

[네. 텔레파시로도 연락이 안 되는 걸 보면 저쪽에서도 텔레파시 능력자가 방해하는 것 같네요.]

그렇다면 그녀의 신변은 정청완 준장에게 있는 건가?

“알겠어요. 이 다음은 제가 알아서 하죠.”

[네, 그럼 저희는 복귀해서 경완 씨의 든든한 울타리가 될 준비를 하죠.]

“부탁합니다.”

통화를 끊은 경완은 정청완 준장에게 연락했다. 오늘 또 전화하게 될 줄은 몰랐다.

“여보세요.”

[무슨 일입니까?]

“혹시 마리아 킴 여사께서 어디 계신지 알고 계신가요?”

[……그분은 왜요?]

“왜긴요? 안부라도 확인해 보려고요.”

[그분은 중요한 일을 하고 계십니다.]

“그럼 언제쯤 뵐 수 있을까요?”

언제고 반드시 만나겠다는 의지를 느낀 탓일까? 정청완 준장이 한발 양보했다.

쓸데없이 잔머리 굴리며 시간을 질질 끄는 수작질이 자칫 경완을 자극할 수도 있다는 건 그도 알고 있었다.

경완이 도움을 주었던 검사가 청부살해 당하자 단신으로 국회의사당에 쳐들어간 이경완이었다. 심지어 그때는 초능력도 없었다.

[오늘 저녁 연락이 되도록 조치해놓죠.]

“네, 감사합니다.”

그날 저녁. 미연을 데리고 올까 말까 고민하다가 휴식도 취할 겸 며칠 더 태평양에 두기로 한 경완이 저녁으로 라면을 끓일 때 전화가 왔다. 마리아 소장의 번호였다.

“네, 소장님. 수상한 시절에 고생이 많으셨죠?”

[경완 씨. 내가 아주 답답해 미치겠어.]

“왜요? 군에서 막 납치해다가 어디 잡아 가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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