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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전생 더 빌런-303화 (303/367)

무한전생-더 빌런 303화

28-쿠데타

[비슷하지. 나 지금 국방연구소 산하의 비밀 연구실에 있어.]

“아~ 소장님 능력이 필요한 모양이네요?”

[필요하면 좀 정중하게 대해줬으면 좋겠는데. 이렇게 행동반경 제약하지 말고 말이야.]

“그래도 중국에 납치되었을 때보단 낫지 않아요?”

[그건 그렇지.]

“혹시 제가 방문하면 폐가 될까요?”

[아니, 제발 방문해 줘.]

“언제쯤 방문할까요?”

[빠르면 빠를수록 좋아.]

“그럼 오늘?”

[그럼 최고지.]

“치맥 사들고 갈게요.”

경완은 마리아와의 통화를 끊고 정청완 준장에게 문자를 넣었다. 오늘 저녁 마리아 소장과 치맥을 할 거라는 일방적인 의사전달이었다.

그런데 바빠서 문자를 못 본 건지, 아니면 알아서 하라는 건지 답장이 없었다.

둘 중 무엇인지 확인된 건 경완이 치맥을 사들고 마리아 소장이 알려준 GPS 좌표의 비밀 연구소로 향했다.

“이경완 씨입니까?”

“네.”

“이쪽으로.”

정문에 있던 경비가 경완을 안내했다. 당황하지 않는 걸 보아 경완이 온 걸 알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러니까 정청완 준장은 경완의 문자를 읽씹했다는 뜻이다.

경완은 그 사실을 파악했지만 딱히 섭섭하지는 않았다. 그보다는 국방부의 비밀연구소라는 곳이 더 흥미가 있었다.

그가 뒤를 따라가는 경비는 겉으로 보이진 않았지만 권총으로 무장한 상태였고, 경비실 안에 있던 동료경비는 소총을 들고 있었으며, 또한 곳곳에 동작 감지기는 물론 감시 카메라도 설치되어 있었다.

축약하자면 대외적으로는 민간 연구소로 위장한 민간인 출입금지 시설이었다.

“경완 씨!”

접객실이라고 들어간 방에 들어가니 마리아 소장이 경완은 격하게 반겼다. 꾸미지 않아서 평소보다 흐트러진 행색이었지만 혈색만큼은 좋았다.

“여기 치킨과 맥주예요.”

“외국 맥주네요?”

“취향이 아니세요?”

“센스가 좋다고요.”

마리아 소장은 급히 닭다리 한쪽을 뜯고 맥주를 벌컥벌컥 마시더니 드디어 스트레스가 풀린다는 듯 캬~ 감탄사를 내뱉었다.

“많이 힘드셨나 봐요?”

“그렇게 힘들지는 않았지만 답답하기는 했죠.”

“무슨 일이라도 하셨어요?”

“계엄사령관이 부탁한 일이 있어요.”

그게 뭔지 궁금하기는 했지만 물어보기 전에 확인할 것이 있었다.

“군부 정권에 협조하실 생각인가요?”

“굳이 반발할 생각은 없어요. 제가 뭐 대단한 민주투사도 아니고.”

“시키는 거만 연구해야 할 수도 있다는 걱정은 안 드세요?”

“걱정은 들죠. 하지만 당장은 아닌 것 같아요.”

“계엄사령관이 부탁한 일이 구미에 맞는 모양이네요.”

그 말에 마리아 소장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경완 씨. 초능력 중화 영역이라는 거 들어봤어요?”

“그거 혹시 초능력이 발동하지 않도록 하는 거죠?”

“경완 씨! 경험해 봤구나! 어땠어요?”

바로 눈을 반짝이며 경험담을 묻는 그녀에게 경완이 대답했다.

“위협적이더라고요. 거리를 내줬으면 정말 힘들었을 거예요.”

“중화 영역이 전개되는 범위가 있었죠?”

“네. 약 3미터에서 4미터 정도?”

“계엄사령관이 제게 부탁한 게 그거예요. 초능력 중화 영역의 확장. 적어도 권총탄 살상거리 정도는 포함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주문이었죠.”

“이거 위기감이 드는데요.”

“그렇죠. 초능력의 발동을 막는 능력이라니…… 그걸 코어로 구현한 것도 놀라웠어요.”

“박사님이 개발한 거 아니에요?”

“아니요. 그랬으면 여기에 안 있었겠죠.”

하긴 그녀 역시 엄청난 영향력을 가진 사람이었다.

어느 정도 본인의 동의가 없었더라면 이런 곳에 감금에 가까운 형태로 있진 않았을 것이다. 아마 그 동의를 이끌어낸 것이 바로 그녀가 초능력 중화 영역이라고 일컬은 능력을 담은 장비일 것이다.

“개발자가 누굴까요?”

“글쎄요. 알려주진 않더라고요.”

“혹시 초능 특수전 부대 소속의 초능력자일까요?”

“지금은 그럴 가능성이 가장 높아요. 초능력 무효화라는 능력을 코어에 덮어쓸 수 있는 인재라면 전 세계에서 탐을 낼 인재니까요.”

“그럼 제가 상대한 장비를 개발한 사람이 둘이라는 거네요.”

초능력 무효화 능력자. 그 능력을 코어에 덮어쓸 수 있는 능력자.

경완의 추측에 마리아 소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그럴 가능성이 가장 높죠.”

“그래도 여전히 코어가 필요하네요.”

위버멘쉬의 강점은 변치 않을 거라는 경완의 말에 마리아 소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위버멘쉬의 인재와 기술 관리는 가히 국가급이라 할 수 있죠.”

반독점법으로 기술 공개를 강제하는 순간 그 나라의 코어 공급이 뚝 끊길 것이다. 게다가 위버멘쉬의 시작은 유럽이었지만 본사는 중앙아메리카의 조세회피용 작은 섬나라에 있었다.

“그 능력의 원리가 뭔가요?”

“초능력의 발현 원리는 결국 S입자의 물질계 간섭이에요. 그리고 이 중화 영역은 그 간섭을 방해하죠.”

“어째 초능력의 출력을 높이면 극복할 수 있다는 소리로 들리는데요.”

“음 그건 좀 달라죠.”

“설명해 주세요.”

“신경이 아무리 굵고 튼튼해도 신경독이 안 듣는 건 아니라고 하면 이해하겠어요?”

경완은 고개를 끄덕였다. S입자가 물질계에 간섭하는 방식은 여전히 오리무중이었지만, 이 무효화 영역은 그 간섭하는 방식에 뭔가 오류를 일으킨다는 말이었다.

S입자가 물질계에 간섭하는 방식에 영향을 끼친다는 말의 초능력학적인 의미는 마리아 소장이 자발적 감금상태에 들어가도록 하기에 충분했다.

S입자가 물질계에 간섭하는 방식에 대해서 연구할 수 있는 단서가 될 수도 있으니까.

마리아 소장이 능글맞게 웃으며 말했다.

“우리 경완 씨, 심장이 팔딱팔딱해요? 리얼 먼치킨 인생에 갑자기 난항이 생길까 봐?”

“음……. 아니라고 하면 거짓말이겠죠?”

초능력자를 확실하게 제압할 수 있는 수단은 경완에게도 매우 위협적이었다.

저번에는 겨우 손가락에 꼽을 정도의 인원에다가 정면승부였지만 경완이 잘 자는 사이에 중화 영역에 갇히기라도 하면 골치가 아팠다.

아마 저번처럼 염동력으로 거리를 두고 공격하는 방식은 어렵지 않을까?

“혹시 대항 방법이 있을까요?”

“지금으로서는 두 가지 방법이 있어요.”

“오~ 두 가지나요?”

계엄사령관 입장에선 이 얘기를 들으면 속이 터지질 않을까? 중화 영역을 늘릴 방법을 부탁했더니 그걸 극복할 방법을 두 가지나 생각해 냈으니 말이다.

“하나는 외부 장비의 도입이에요. TSTG가 대표적이죠.”

“그걸 입으면 중화 영역 내에서도 초능력을 쓸 수 있다는 건가요?”

경완은 아리송했다. 그도 TSTG에 적용된 기술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고 있었지만 그중 어느 것이 이 중화 영역에 대항할 수 있는지 감이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정적이지만 말이에요.”

TSTG가 중화 영역을 극복하는 방식은 S입자로 가공된 초능력 신소재에 있었다. 중화 영역이 이미 간섭된 영역을 뚫지 못한다는 것이다.

“초능력 중화영역은 장(場)의 형태가 아니라 파(波)의 형태로 퍼져요.”

“그리고 그 파동은 초능력 신소재만으로 막을 수 있다?”

“아마 그 이유는…….”

경완은 인내심을 가지고 마리아 소장의 학술적인 진술을 들었다. 일단 두 번째 방법을 듣기 전에 기분 상하게 했다가 입을 다물면 자기만 곤란해진다.

그녀의 설명이 끝나자 경완은 바로 다음 방법을 물었다.

“다른 하나는요?”

“확인되지 않은 이론적인 방법이에요. 제가 생각한 중화 영역의 특징이 맞다면 중화 한계가 있을 거예요.”

“중화 한계?”

“그러니까 일정 공간 내에 S입자로 인한 현실간섭경로가 여러 개일 때 가장 중화가 쉬운 것만 중화한다는 가설이에요.”

뭔소리야? 하지만 어렴풋이 이해가 되는 것 같아서 경완은 무심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그녀가 슬쩍 물었다.

“어때요? 한 번 가설을 검증해 보고 싶지 않아요?”

“어…… 전 박사님 같은 사람은 아니라…….”

초능력 중화 영역에 대항하는 방법을 얻는 건 경완에게도 매우 중요한 일임은 틀림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갑자기 학구열 넘치는 학자의 모습을 보일 수도 없었다.

마리아는 그의 마음을 다 이해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은밀한 어조로 말했다.

“하지만 궁금하죠? 필요에 의해서라도.”

그녀는 경완에게 중화 영역에 대한 대응법이 필요하다는 것을 꿰뚫어보았고 그는 말을 돌리지 않고 고개를 끄덕여 순순히 수긍했다.

두 사람은 어떤 면에선 누구보다 말이 잘 통했다.

“하지만 괜찮을까요? 계엄사령관이 싫어할 것 같은데.”

안 그래도 이경완 때문에 여러모로 골머리를 쌓고 있을 텐데 그 와중에 그에게 중화 영역에 대응할 수단이 들어간다는 소식이 전해지면 과연 정청완 준장이 가만히 있을까? 분명 마리아에게 여러모로 압박이 들어올 수도 있었다.

“뭐 괜찮지 않을까요? 허락받기보다는 용서받기가 쉽다는 말도 있잖아요?”

“아내분 있으셨어요?”

보통 그런 말은 남편에게 적용되는 말 아닌가?

“풉! 뭐래.”

경완의 농담에 마리아 소장은 웃음을 터뜨리며 말을 이었다.

“준비해 놓을 테니까 연락하면 와요. 아참, 혹시 이 말 도청당하고 있을까요?”

“미리 다 막아놨으니 걱정 마십시오, 소장님.”

이미 들어올 때부터 방 안을 얇게 코팅하듯 깔아둔 염동력이 모든 소리를 차단하고 있었다.

경완의 말에 마리아 소장은 잘했다고 엄지를 척 들더니 치킨과 맥주에 집중했다.

* * *

미연이 한국에 돌아온 것은 태평양에 웜홀로 건너간 지 사흘 뒤였다.

그동안 한국의 사회는 숨 가쁘게 움직였고 미연이 돌아와서도 여전했다.

단 사흘 만에 검찰과 법원의 기능을 거의 다 장악하고 협조자를 구한 군부 정권은 사정의 칼날을 의회에 들이밀었으니, 국회의원 약 3분의 1이 검찰 캐비넷에 잠자고 있던 파일을 근거로 긴급구속 되었다.

국회의원의 불구속 특권 따윈 엿이나 먹으라는 행동에 언론과 국회의원 등이 내란죄, 반란 운운하며 반발했지만 군부 정권을 막을 세력은 보이지 않았다.

군대? 정청완 준장에게 반발할 기미를 보이는 장성들이 쥐도 새도 모르게 실종된 이후 군대 역시 잠잠해졌다.

미연은 회사와의 통화를 마치고 뉴스를 보고 있는 경완에게 말했다.

“어떻게 저럴 수 있지?”

“정신계 초능력.”

“세뇌 같은 거야?”

“단순 세뇌로는 저렇게 못 하지. 정신계 능력을 이용해서 피아를 확실하게 구분한 거야.”

정신계 능력을 이용해 기억을 교환하면 상대를 설득하는 것도, 도와줄 사람을 찾는 것도, 도와주는 척 뒤통수 때릴 인간을 구별하는 것도 용이했다.

세뇌로는 검사나 판사라는 고급 두뇌를 활용하는 건 무리였으며, 또한 정청완 준장에게 세뇌 능력까지 있진 않았다.

정신계 능력의 통로인 패스에는 능력의 기질이 묻어나올 수밖에 없고 경완이 경험한 바로는 정청완 계엄사령관의 정신계 능력은 세뇌가 아니라 기억의 공유에 특화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능력은 초기 혼란을 확실히 잡아야 하는 상황에 정말 유용했다.

빠르게 피아를 구분하고 정국을 주도할 수 있는 원동력이 정청완 준장의 초능력으로부터 비롯되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었다.

“기억의 공유라…… 그거 공부할 때 좋겠다.”

“그러게? 왜 저 양반은 저 좋은 능력으로 돈이나 벌지 왜 쿠데타 따위나 한 걸까?”

학구열 높으신 강남 사모님들 사이에 소문이 퍼지면 1년 이내에 준재벌은 되지 않을까?

경완이 중얼거리듯 한 말에 미연이 대꾸했다.

“은퇴한 뒤에 하겠지.”

“그건 모르는 거고.”

경완은 시니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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