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전생-더 빌런 304화
28-쿠데타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도 있잖은가? 지금이야 적폐 청산의 꿈으로 열심히 일하지만 나중에는 과거의 쿠데타 사령관들처럼 독재자가 될지 누가 알까?
아무튼, 군부 정권은 사법부와 입법부를 완전히 손아귀에 쥐었다. 대통령과도 뭔가 협상을 한 것으로 보아 행정부의 협조까지 얻으니 완전히 삼권을 다 쥔 거나 마찬가지였다.
막강한 권력을 쥔 군부 정권이 다음으로 진행한 일은 제4의 권력, 언론에 수술칼을 들이미는 일이었다.
그러자 뜻밖이랄지 당연하달지, 대한민국 역사에서 일어난 두 건의 쿠데타에 모두 우호적이었던 언론사들이 이번 군부 정권에는 매우 적대적인 태도를 보였다.
이유는 군부에 협조하기로 한 의원들이 발의한 한 가지 법안 때문이었다.
‘언론 책임법.’
골자는 간단했다. 경완의 표현을 빌리자면 언론이 개소리했을 때 그만한 책임을 부여하는 법으로, 예를 들자면 기자가 악의적인 기사를 써서 피해를 내면 기자가 아니라 해당 언론사가 책임을 져야 하고, 언론이 뉴스로 거짓 선동을 했을 땐 가장 돈 되는 지면과 헤드라인 뉴스에 그 사실을 밝히고 정정 및 사과 방송을 해야 하는 등의 조치를 취해야 했다.
이에 따르지 않을 경우 방송 사업 허가 박탈 및 신문사 폐간까지 당할 수도 있는 아주 강력한 제제안도 마련되었다.
당연히 언론사들은 언론 자유에 대한 탄압이라며 반발했고, 이에 대한 군부 정권의 대응은 기자나 편집부를 따위를 잡는 게 아니라 언론사주 구속이었다.
당연히 사주가 잡혀간 비협조적인 언론사들은 자극적인 말로 마구 떠들어댔다.
“들었어? 제2의 광주 민주화 운동이 일어날 거래.”
경완이 뉴스에서 나온 말을 미연에게 전달하자 그녀는 이렇게 냉소했다.
“뭐래? 언제는 폭동이라고 해놓고서는.”
광주 민주화 운동 초기, 모든 주요 언론과 방송은 그걸 폭동이라고 불렀다.
미연이 경완을 향해 물었다.
“오빠는 어떻게 생각해? 또 그런 일이 일어날까?”
“글쎄? 디테일에 따라 다르겠지?”
경완은 정청완 준장과 샌드맨 강우빈을 떠올렸다.
첫 번째 시위는 배후가 있다고 했다. 정청완 준장으로선 잡은 주도권을 공고히 하기 위해서라도 그때는 시위를 해산시킬 필요가 있었다. 강제로라도 말이다.
하지만 지금 정국을 주도하는 상황에서 다시금 대규모 시위가 벌어진다면 어떻게 될까? 과연 그때도 배후가 있을까? 배후가 없다면 정청완 준장은 어떻게 대응할까?
당장은 알 수 없는 일이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건 한동안 절대 조용할 리 없을 거라는 점이다.
경완이 나라에서 일어난 소란을 강 건너 불구경하듯 구경할 때 손님이 찾아왔다.
띠~띠띠띠띠.
새울음 소리를 닮은 초인종 소리에 경완은 인터폰을 누름과 동시에 초감각 레이더를 펼쳤다. 집 앞에 승용차 세 대가 서 있었고 양복 입은 이들이 대문 앞에 서 있었다.
인터폰으로 확인해본 결과 참 다양한 곳에서 왔다. 국정원, 주한프랑스 대사관 직원, 그리고 무슨 대기업의 비서실장이라는 인물까지.
경완은 그 세 사람을 다 집안에 들였다. 셋은 서로 어색한 눈빛을 교환하며 경완과 인사를 나누었다.
“이관영 차장님. 지금 국정원 엄청 바쁠 텐데 직접 오셨네요? 그리고 트리오 씨도 오래간만이네요. 그런데 이분은 처음 뵙네요.”
“조천 그룹 비서실장 천배정이라고 합니다.”
“자자, 다들 귀한 손님이신데 앉으세요.”
아무리 분위기가 어색하고 불편했지만 집주인이 활짝 웃으며 권하니 어쩔 수 없이 거실 소파에 앉는 세 사람이었다.
경완은 그들을 위해 기꺼이 몸소 커피를 타주었다. 그래, 공통분모가 없다시피 하고, 설사 공통분모가 있어도 이해관계가 다른 이들이 모였으니 불편하겠지. 그걸 경완이 모를 리가 있나? 하지만 굳이 그 가시방석에 앉히는 재미를 놓칠 순 없었다.
경완은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세 사람 앞에 믹스커피를 대령했다.
“자, 그럼 누구부터 말씀하실 건가요?”
경완은 작은 콜로세움을 마련했다. 과연 검투사들은 그가 연 콜로세움에 올라갈 것인가?
하지만 불행하게도 그들은 양보의 미학을 발휘했다. 먼저 르티오 참사관이 입을 열었다.
“우선 귀국에서 일어난 일에 애도를 표합니다.”
“에이 괜찮아요. 이미 두 번이나 일어난 일이잖아요. 이것도 지나가겠죠.”
경완이 밝게 웃으며 대답하자 조천 그룹 비서실장이라는 천배정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쿠데타에 대한 경완의 태도가 그다지 적대적이지 않다는 사실이 오늘 방문한 용건에 별로 호재가 아닌 모양이었다.
“그래서 바쁘신 와중에 이렇게 찾아오신 이유는요?”
“혹시 프랑스 이주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나쁘지 않죠.”
“안 됩니다!”
바로 이관영 차장의 태클이 들어왔다. 르티오는 프랑스 남자다운 매력적인 미소를 지으며 대꾸했다.
“아, 한국 정부를 자극하려는 의도는 아니었습니다. 다만 경완 씨가 한국에 남아 있는 것보다 어쩌면 한국을 떠나 있는 편이 서로에게 좋을 수도 있지 않을까란 생각에서 드린 제안입니다.”
경완은 김준을 떠올렸다. 그가 여기 있었다면 과연 무슨 말을 했을까?
이관영 차장은 르티오의 입을 막기엔 지금 상황과 자신의 신분이 적절치 않음을 깨닫고 경완을 설득하려고 시선을 돌렸다.
“경완 씨. 정말 한국을 떠나실 건 아니죠? 경완 씨 돈 많이 버시잖아요? 돈 많으면 가장 살기 좋은 곳이 이 나라 아닙니까? 혹시 모자라다고 생각하시면 저희 국정원이 넉넉하게 챙겨 드리겠습니다.”
“고작 그런 일로 오신 거예요? 제 이민을 막겠다고요?”
“그건 아니지만 와보니 겸사겸사 해야 할 것 같아서…….”
이관영의 눈빛이 르티오와 천배정을 오갔다. 두 사람이 경완에게 무슨 말을 하느냐에 따라서 간섭할 의지가 충만해 보였다.
“그러면 원래 용건은요?”
“아, 그건…….”
이관영의 눈빛이 르티오와 천배정을 다시 오갔다.
날카롭게 빛나던 조금 전과는 다르게 불편한 걸 보는 기색이 역력했다. 두 사람의 귀가 거슬리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경완은 단호했다.
“할 말 없으시면 돌아가시죠? 서로 시간 낭비하지 말고요.”
“경완 씨. 지금 쿠데타 정국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관영은 정보가 유출되는 걸 각오하고 입을 열었다.
“말했잖아요. 이 또한 지나가리라고요.”
“혹시 쿠데타 사령관과 이야기를 나눴습니까?”
“물론이죠. 면담까지 아주 잘했는데요.”
경완의 대답에 이관영은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물었다.
“혹시 계엄사령관에게 협력하기로 한 겁니까?”
“그건 아니고 절 건들지 말아 달라고 했어요.”
“그렇습니까?”
이관영은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입을 열었다.
“경완 씨, 이 나라의 미래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여태껏 잘해온 것처럼 앞으로도 잘 해내겠죠.”
“쿠데타가 벌어졌는데도 말입니까?”
“에이~ 왜 이래요, 선수끼리. 쿠데타가 이번이 처음도 아니잖아요.”
쿠데타 정권이 섰던 나라치고는 정말 평화롭게 민주정부가 탄생했다. 매년 쿠데타로 유혈이 낭자한 다른 나라에 비해선 정말 양호하다 할 수 있었다.
“원하시는 게 뭐예요? 국정원과 손잡고 쿠데타 정국을 몰아내자 뭐 이런 건가요?”
“…….”
대답은 없었지만 그렇다라는 대답인 건 충분히 알 수 있었다.
“흐음……. 보신주의 기질이 다분하신 이 차장님 머리에서 그런 발상이 나왔을 리는 없고. 대통령이 지금 와서 딴생각했을 리도 없고. 국정원 내부에 중정 시절이 그리우신 분들이 있나 봐요?”
이관영은 경완이 너무나 정곡을 찔러서 자리가 너무나 불편해졌다. 어찌나 불편해하는지 다른 사람 시선엔 금방이라도 바지에 지릴 듯이 전전긍긍하는 모습처럼 보였다.
경완이 말을 이었다.
“지금 쿠데타가 반공주의를 내세운 것이 아니라 적폐청산을 내세웠으니 할 일 없는 국정원은 찬밥 신세일 테고, 적폐로 몰린 사람들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있는 인맥 없는 인맥 모아서 반발하려고 할 텐데 국정원만 한 손발도 없고.”
이관영은 이제 경완과 시선을 마주치지 못하고 시선을 내리깔았다. 경완의 말투에서 호의보다는 냉소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원 사격이 들어왔다. 조천 그룹 비서실장이라는 천배정이 입을 연 것이다.
“지금 군부 정권은 너무나 급진적입니다.”
“명색이 적폐 청산이잖아요. 빠르게 처리해야 적폐들이 힘을 못 모으죠.”
“경완 씨가 말씀하시는 그 적폐가 모두 도려내어지면 한국은 망합니다.”
“그럴 수도 있죠.”
“지금 군부는 적폐가 아닌 이들도 적폐로 몰고 있습니다.”
“그럴 수도 있죠.”
“한강의 기적으로 쌓아올린 성과가 모두 무너져 내릴 수도 있습니다.”
“그럴 수도 있죠.”
경완은 천배정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 비슷한 것을 쳐주었고, 천배정은 설득의 가능성을 보고는 신이 나서 말을 더 했다.
그리고 그런 그를 보며 이관영의 표정은 점점 일그러져갔다. 지금 설득되고 있다고 말을 계속하는 거란 말인가? 도대체 어떤 머저리가 저런 눈치 없는 인간을 보냈을까?
사실 그건 이관영의 오해였다. 경완의 세부적인 성격에 대한 건 각 기관의 기밀로 다루어졌기 때문에 한낱 기업의 비서실장으로서는 저런 경완의 대답들이 사실은 진심 한 푼 담지 않은 반응이라는 걸 바로 인지할 순 없었다.
“누군가 군부 정권의 행보를 막아야 합니다.”
“누군가 나서겠죠.”
“선생님께서 도와주시지 않으시겠습니까?”
그렇게 묻는 천배정의 시선엔 기대가 가득했다.
경완은 대답의 몫을 이관영에게 넘겼다.
“이 차장님. 이 차장님은 제 대답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평소 경완을 어느 정도 잘 알고 있었기에 답은 금방 나왔다.
“……‘노’가 아닐까요?”
“이유도 짐작은 되시죠?”
“네.”
이관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경완이 거절한 이유에는 뭔가 거창한 대의보다는 지극히 개인적인 사유가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예를 들자면 ‘귀찮아서’라든가.
천배정의 시선이 이관영에게 향했다. 하지만 이관영은 알려주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경완은 그 모습을 보고 속으로 혀를 찼다. 저렇게 속이 좁아서야. 딱 봐도 같은 반(反)군정 세력인 것 같은데 저렇게 피아 구분을 못 해서야 어찌 큰일을 하겠나?
“일단 여기까지 오신 정성을 생각해서 세 분께 제 입장을 밝히자면, 일단 저와 계엄사령관은 일종의 불가침조약을 맺었습니다. 군정이 제 영역을 건들지 않기로 한 대가로 저 역시 군정의 적폐 청산을 방해하지 않기로요.”
“아.”
천배정이 안타까움에 탄성을 터뜨렸다. 이관영도 입이 쓴지 입맛을 다셨다. 주한 프랑스 대사관 소속 르티오만 귀한 정보를 얻었다며 미소를 지었다.
“저희 프랑스는 경완 씨의 선택을 존중합니다.”
“아유, 감사합니다. 솔직히 욕먹을 각오도 했습니다. 레볼루숑의 프랑스 아닙니까?”
“저희 프랑스가 그렇게 융통성 없는 나라는 아닙니다.”
융통성이라기보다는 이중적이겠지. 프랑스가 알제리에 한 짓만 봐도 얼마나 앞뒤가 다른 나라인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괜히 유럽의 짱개가 아니다.
경완은 그래도 웃으며 르티오와 덕담을 나눈 후에 축객령을 내리려고 했는데 초인종이 울렸다.
“누구세요?”
[접니다.]
김준이었다.
경완은 김준을 반가이 맞이했고 김준은 현관에 들어오자마자 선객들을 보고는 경완을 쳐다보았다.
“왜요?”
“하아~ 아닙니다.”
눈치 있는 인간이라면 먼저 선객들부터 내보내야 하는 거 아닌가?
일부러 눈치 없는 척하는 경완의 태도에 오늘 골탕 좀 먹겠다고 각오한 김준이 선객들과 인사를 나누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