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전생-더 빌런 313화
29-역사는 거꾸로 간다
“그런데 그 마약은 어떻게 만들어진 겁니까?”
예민하다고 예민할 수 있는 물음이었지만 요하네스는 어렵지 않게 알려주었다.
[경완 씨도 보셨죠? 마약 제조 장비에서 나온 코어를.]
“네.”
[그 코어는 초능력 신소재 제조를 위한 물질 변이 능력을 넣은 코어였습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물질 변이 능력에는 다양한 형태가 있었지만, 그중 가장 일반적인 것이 S입자를 통한 물성 변환이었다. S입자가 물질을 구성하는 소립자와 결합해 물리화학적 특성이 강화되거나 완전히 다른 물성을 가진 물질이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과학적으로 설명하기 힘들 정도로 자력이 강해진 철 같은 거 말이다.
이 물리화학적 변화는 그 정도가 경우마다 상당히 다르다는 게 문제인데, 좀비헐크마약 같은 건 그 정도가 아주 심했다.
[단순한 마약이 아니라, 차라리 마약의 성질을 가진 바이러스에 가깝죠. 인체 내에서 증식하는 약물이니까요.]
“어……. 그런데, 그런 마약이라면 인체 내에서 재생산될 때도 S입자가 필요한 거 아닌가요?”
[그건 문제가 안 됩니다. 이미 세상에는 S입자가 퍼져있으니까요.]
“……혹시 초능력 각성의 원리를 알고 계시는 건 아니죠?”
[아직 모릅니다. 그래서 CIA와 미국이 저와 손을 잡은 거고, 동시에 저와의 약속을 어기려고 했던 거죠.]
그 말에 경완의 머리엔 어떤 물음이 떠올랐다.
“히어로들이 인위로 초능력자를 각성시키는 연구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모양이죠?”
사실 물음이라기보다는 확인에 가까운 질문이었다.
그렇다. 미국이 요하네스와 공조한 이유, 그리고 잭슨이 미국의 히어로들에게 공격적인 태도를 보인 이유, 또한 미국의 히어로들이 미정부와 갈등을 빚을 것을 각오하고 끝내 요하네스의 편을 든 이유 모두 좀비헐크마약에서 인위적인 초능력자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보았기 때문이다.
단순히 섭취하는 것만으로도 신체강화능력자가 된다니, 이만큼 초능력 각성의 원리를 파악할 수 있는 연구소재가 또 어디 있단 말인가?
그러니 미국은 그런 귀한 자료와 연구 샘플을 독점할 생각에 요하네스의 손을 잡았고, 뒤통수를 때리려다가 미국의 히어로들에 의해 방해받았다.
결국 이득을 얻은 것은 목적을 완수한 요하네스, 그리고 인위 각성 연구의 중요한 단서가 될 샘플과 자료를 파기할 수 있었던 히어로들이었다.
서로의 이해가 아주 잘 일치한 것이다.
요하네스는 경완의 물음에 이렇게 대답했다.
[초능력 각성의 매커니즘 연구가 피할 수 없는 일이라는 건 그들도 잘 압니다. 하지만 인체 실험을 용납할 순 없죠.]
단순히 인체 실험이 나쁘다라는 차원이 아니었다. 국가나 기업에 초능력 각성을 인위적으로 일으킬 수 있는 방법이 쥐어지는 것 자체가 기존 초능력자들의 기득권에 악영향을 끼친다.
좀 극단적으로 예를 들자면 이런 것이다. ‘어? 너 내 말 안 들어? 야! 다른 새끼 각성시켜!’ 이런 세상이 닥칠지 누가 알겠는가?
아무리 초능력자의 강력함이 중요한 변수라고 해도 수요와 공급의 간극이 만들어내는 강력한 사회적 압력을 부정할 순 없었다. 그들 역시 인간이라 사회라는 인프라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모든 이들이 이경완이 될 수는 없는 거 아니겠는가?
그러니 인체 실험을 용납할 순 없다는 말은 최대한 인위적인 각성 방법에 대한 연구를 방해하면서 경쟁자의 등장을 늦추고 싶은 현존 초능력자들의 입장을 잘 포장한 설명이었다.
“총수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각성 방법이 나올까요?”
[글쎄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미래에도 각성 방법이 나오지 않는다는 말일까?
그렇다면 요하네스가 미련 없이 좀비헐크마약과 관련 자료를 폐기한 이유를 이해하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딱히 성과도 없는데 위험하기만 한 물건에 미련을 가질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경완은 대충 요하네스의 목적을 이해했다. 그가 예지능력자라서 미래에 촉발될 재앙을 예견하고 막기 위해서라면 여태까지의 행보도 이해가 갔다.
경완에게 우호적인 것도,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편을 들어준 것도, 자칫 이경완이라는 남자가 세상의 적이 되는 상황을 막기 위해서는 아니었을까?
그러한 생각을 하게 된 건 정청완 중장과의 관계를 물어본 문답 때문이었다.
“그런데 왜 정청완 중장을 도와주신 건가요?”
[글쎄요? 전 그를 도왔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저 이해가 일치했을 뿐이죠.]
경완은 고개를 갸웃했다. 정청완이야 쿠데타를 위해선 요하네스의 도움이 아주 요긴했겠지만, 요하네스가 그 쿠데타에서 무엇을 얻을 수 있단 말인가?
“그게 총수님에게 무슨 득이 있나요?”
[그야 그 나라에 경완 씨가 살고 있지 않습니까?]
“그건 또 무슨 관련이…….”
[오랫동안 부와 권력을 독점해 온 인간들이 흔히 겪는 착오 중 하나는 본인들이 가긴 그것이 영원하리라 믿는 거죠. 그리고 그 자신감에 기인해, 해서는 안 될 짓을 벌이기도 합니다.]
“저를 건드렸을 거다, 이 말인가요?”
[물론이죠. 경완 씨가 아무리 잘나 봤자 그들만의 리그에 당신을 끼워줄 리 없는 자들이죠. 아무리 경완 씨가 그들의 부와 권력에 도움이 되어도 그럴 겁니다. 그들이 당신에게 바라는 최선의 모습은 비싼 먹이에 배가 불러 만족해하는 길들여진 맹수죠. 하지만 경완 씨가 그런 관계를 평생 수용했을까요? 당신을 인정하기엔 저들의 수준이 천박하니 언젠가 갈등이 일어날 것은 자명했습니다.]
요하네스의 말을 경완은 부정할 수 없었다.
설사 저들이 경완을 인정하더라도, 경완이 저들은 인정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다. 경완은 오만할 수 있다면, 이 세상 그 어떤 거부(巨富)나 권력자보다 더 오만할 수 있었다.
무한전생자에게 그들이 쌓은 부와 권력은 딱히 아무런 의미도 지니지 못하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관련성이 모자라 보였다. 요하네스의 설명에 정작 그의 이익이 무엇인지는 빠져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그건 저의 일이지 총수님의 일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 물음에 요하네스는 이렇게 대꾸했다.
[제가 도와달라고 하면 경완 씨는 기꺼이 도와주시겠죠.]
“일단 무슨 일인지는 들어봐야죠.”
[경완 씨가 기꺼이 도와줄 만한 일만 부탁할 거니까 명제가 틀린 건 아닙니다.]
이 양반이?
[그리고 저는 경완 씨가 도와달라면 기꺼이 도와드릴 겁니다.]
“제가 무리한 부탁을 하면요?”
[무리한 부탁을 하실 사람도 아니지 않습니까?]
“…….”
피장파장의 어법을 뻔뻔스러울 정도로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 사용해서 경완이 황당해할 말을 잃은 와중에 요하네스가 말을 이었다.
[그러니 우리는 깐부라고 할 수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경완 씨를 공격하는 건 저를 공격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죠.]
“너무 비약인 것 같은데요?”
경완이 어우~ 하며 질겁하는 표정을 짓는 걸 알까? 요하네스는 낮게 웃으며 말했다.
[그만큼 우리 관계가 우호적이라는 겁니다. 기실 별거 아닌 일이기도 하고요. 친구집 근처에 해충 둥지가 있어서 쏘이기 전에 미리 약 뿌린 거에 불과하달까?]
한 나라의 기득권을 쥔 계층을 해충 취급하는 패기가 참으로 대단했다. 위버멘쉬의 총수라는 자리가 그 정도 위치였던가?
경완은 그런 자리에 의존한 자신감이라기보다는 요하네스 본인의 역량에 자체에 대한 믿음 정도로 보았다. 하긴 예언능력자이니까.
그런데 궁금한 점이 하나 생겼다.
“재벌들은 어떻게 설득한 거죠?”
똥개도 제집 앞에선 절만은 먹고 들어간다. 하물며 한국을 주름잡는 재벌이지 않은가?
게다가 위버멘쉬 코리아를 독립시킨 상황에서 요하네스가 한국 내에서 활용할 카드가 마땅히 있는 것 같지도 않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 갑자기 대기업들이 정청완 중장의 군부 정권에 협조하기 시작했다.
이 의문에 요하네스는 이렇게 말했다.
[재벌들의 자식들은 대부분 한 번쯤 외국으로 가곤 하죠. 본인들도 업무차 외국 순방을 하지 않을 수 없고요.]
“그래서요?”
[외국에 있는 그들의 가족사진을 몇 장 보내줬죠.]
“어…….”
뭐지 이 양아치스러움은? 경완이 생각을 정리하며 물었다.
“그러니까 가족을 빌미로 협박을 했다는 말인가요?”
[전 그 사진을 정청완 중장에게 줬을 뿐입니다.]
“그가 그 사진을 어떻게 활용할지 모르고 줬다는 말은 아니겠죠?”
[당연히 알고 줬지만 딱히 양심에 가책을 느끼진 않더군요.]
“왜요?”
[재벌 혹은 대기업이라는 존재는 민생경제를 붙들고 협박을 하지 않습니까? 그들의 장악한 경제에 얽힌 수많은 가족과 사람들의 생활을 볼모로 잡고 압력을 행사해 왔죠. 형편없는 경영 결과에 혈세 투입을 강제하면서 본인들은 막대한 재산을 보전해 온 사례가 이미 여러 건이지 않습니까? 눈에는 눈, 이에는 이, 협박에는 협박. 경완 씨라면 좋아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는데요.]
경완은 확신했다. 요하네스는 미친놈이 맞다고. 위버멘쉬가 한때는 빌런 조직으로 분류되었던 것을 생각하면 새삼스러운 감상이었다.
사실상 전 세계의 견제를 받으면서 위버멘쉬를 지금의 위치에 올려놓은 요하네스는 어떤 면에선 비범함을 넘어 과연 제정신일까 의심스러운 구석이 있었다.
하지만 경완은 미친놈을 마냥 싫어하진 않았다. 미친놈도 미친놈 나름이었고, 요하네스가 굳이 틀린 말을 하지도 않았다.
“뭐, 싫어하진 않아요.”
적어도 반은 만큼은 돌려줘야 다음 생으로 갈 때 마음이 편했기에 경완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원칙을 매우 좋아했다. 그게 옳은지 아닌지는 몰라도 일단 속은 시원하지 않은가? 너무 과한 복수로 기분이 찜찜해지는 것도 막고 말이다.
경완은 그 후로 요하네스와 잡담을 더 나누었다.
그 잡담 와중에 경완은 요하네스가 일련번호를 확인했던 코어가 브라질에서 유출된 것이고, 이 때문에 김봉남이 브라질에 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김봉남을 비롯한 위버멘쉬의 핵심 회원들이 브라질에서 무슨 짓을 했는지는 다음 날 외신뉴스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 * *
[초능력은 총기와 다름없다!]
[초능력 방치. 이대로 좋은가?]
[왜 브라질은 침묵하는가?]
[정부의 힘을 능가하는 민간조직의 등장!]
위버멘쉬 브라질 지부에서 전투가 일어났다. 총기와 폭탄만이 아니라 강력한 무력을 보유한 초능력자들이 교전을 벌였다.
기습적으로 벌어진 이 일로 인해 위버멘쉬 브라질은 수뇌부의 절반이 실종되었고, 남은 절반은 기자회견에서 창백하게 질린 얼굴과 덜덜 떨리는 손으로 간신히 손에 넣은 브라질 지부의 독립성을 포기하기로 선언했다.
그러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 위버멘쉬 본부는 감찰을 위한 인력들을 대대적으로 파견했고, 위버멘쉬 브라질 지부의 각종 문제를 집어내기 시작했다.
이를 위한 인력 중에는 이미 독립한 다른 나라 지부의 초능력자도 있었으니, 이번 일은 브라질 지부의 치욕이자 흑역사가 될 것이 분명했다.
위버멘쉬 브라질 지부에서의 교전, 독립 포기, 대대적인 감찰. 이 심상치 않은 일련의 일에 위버멘쉬 브라질에서 벌어진 전투와 실종에 혹시 위버멘쉬 본사가 관련되어 있지 않냐는 의문을 낳았지만 증거도 없었고 브라질 당국도 침묵했다.
그리고 위버멘쉬 본부가 브라질 지부를 감찰한 결과를 발표할 날짜를 공표했다는 외신이 들어왔을 때쯤 김봉남이 경완의 집을 방문했다.
다시 만난 그는 부상이라도 입었는지 팔에 붕대를 감고 있었고 얼굴에는 반창고가 붙어 있었다.
“무슨 일이에요?”
“험한 일이 좀 있었죠.”
“정 지부장님 말로는 휴가 갔었다던데 싸움이라도 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