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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전생 더 빌런-314화 (314/367)

무한전생-더 빌런 314화

29-역사는 거꾸로 간다

경완은 짐작이 가는 일이 있었지만 시치미를 떼보았다. 그러자 김봉남은 입맛을 다시더니 미주알고주알 감추지 않고 있었던 일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사실은 총수님 부탁을 받고 브라질에 갔었거든요.”

“무슨 일로요?”

“위버멘쉬 헌장을 어긴 놈들이 있어서요.”

“그건 또 뭐예요?”

“아, 위버멘쉬 헌장이요?”

김봉남이 설명하길 위버멘쉬 헌장이란, 위버멘쉬라는 조직의 핵심회원이 되기 위해 맹세하는 내부규칙이었다.

“별 내용은 없어요. 그냥 서로 의리를 지키자, 가능하면 양심적으로 성공해서 존경받고 살자, 이런 거죠.”

“상식적이네요.”

“그렇죠. 그런데 세상에는 그 상식적인 약조조차 안 지키는 놈이 있네요.”

“도대체 무슨 짓을 했기에.”

“마약 조직이랑 손잡았더라고요.”

“안 되는 일인가요?”

경완은 고개를 갸웃했다. 느그 총수는 쿠데타 사령관하고도 손잡았는데 하찮은 마약 조직 정도야 무슨 대수랴?

그 물음에 김봉남은 머리를 긁적이다가 대답했다.

“위버멘쉬 헌장에 맹세할 땐 개인적인 다짐도 맹세하거든요. 이게 생각보다 매우 중요한 규약이라서요.”

“그래서요?”

“문제는 그 새끼들이 맹세할 때 분명 조국의 마약 조직들을 모조리 척결하며 마약에 대항하겠다는 식의 맹세를 했거든요.”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게 자신의 맹세를 지킬 수 없는 현실을 깨달았거나 상황이 바뀌었을 수도 있지 않나요?”

사람이 살다 보면 현실에 치여서 생각이 바뀔 수도 있는 거 아니겠는가?

“바로 그게 문제예요. 총수님께서 강조하시는 게 바로 그 부분이거든요. 절대 꺾이지 않는 정신과 의지. 그걸 꺾은 자는 위버멘쉬를 배신한 걸로 간주돼요.”

“그게 배신이 되나요?”

경완의 물음에 김봉남은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본인이 본인에게 한 맹세조차 어기는 자가 조직에 대한 의리를 지킬 리 없죠.”

“그건 좀 논리가 이상한데요?”

본인이 개인적으로 한 맹세를 지키지 않는다고 그게 조직에 대한 배신으로 이어진다? 너무 비약이 아닌가?

하지만 김봉남은 나름의 논리가 있었다.

“우리 위버멘쉬는 생각보다 느슨한 조직이거든요. 개인의 자유를 최대한 존중한다고요. 그러니 존중받는 자유만큼은 책임을 져야 하죠. 모두는 아니지만 적어도 위버멘쉬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이들은 초심을 지키는 것에 대해서 강력한 규약을 가져야 해요. 그렇지 않았다면 위버멘쉬는 진즉에 공중분해가 되었을걸요?”

그렇게 말하는 김봉남의 표정은 여태 경완이 본 적 없을 정도로 진지했다.

그 말에서 경완은 위버멘쉬의 운영이 확실히 기업과는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이들 조직은 차라리 비밀결사나 사이비 종교와 닮은 면이 있었다. 개방적인 것 같지만 폐쇄적이고, 속세의 기준을 따르기보다는 자기들만의 가치를 형성하고 그것을 추구하는 느낌이었다.

또 한편으로는 아, 이래서 조직 이름이 위버멘쉬구나, 라는 생각도 들었다.

단순히 초능력을 통한 초인이라는 가치뿐만 아니라 내면적인, 정신적인 초월에도 가치를 두는 것 같았으니까. 무거운 약속, 다짐, 맹세야말로 정신적 발전을 위한 땔감들이었다.

“그래서 어떻게 했어요?”

“죽일 놈은 죽이고 팰 놈은 팼죠.”

“……어, 그런 일은 이제 안 하는 거 아니었어요?”

“에이~ 인간이 변하질 않는데 어떻게 그러겠어요?”

경박하게 웃는 김봉남의 표정엔 얼핏 광기마저 보였다. 마치 세상 모든 죄악을 감당하겠다고 고해성사를 하는 광신도 같다고나 할까?

경완은 생각했다.

‘이 새끼도 제정신은 아니구나.’

뭐, 요하네스도 어디 나사 하나 빠진 구석이 있는데 그런 총수를 믿고 따르는 김봉남도 나사가 어디 풀려있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그래서 그런 이야기하려고 온 거예요?”

경완이 물었다.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지만 이런 정보나 전달해 주려고 온 건 아닌 것 같았다.

그 물음에 김봉남은 조심스럽게 운을 띄웠다.

“사실 이번에 간만에 동료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거든요.”

그 이후에 이어진 말은 그의 동료였던 곤잘레스에 관한 이야기였다.

김봉남의 빌런 시절, 그와 듀오로 다니던 신체강화능력자인 곤잘레스는 필리핀 지부가 세워지자 그곳으로 이동했다. 아무래도 출세하기는 거기가 더 좋았다는 판단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지부가 독립하자마자 문제가 생겼죠.”

그건 바로 지부장과의 갈등.

위버멘쉬 필리핀의 지부장 조셉은 족벌과 손을 잡고 강력한 영향력을 구축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현실에 안주한 것이다.

여기에 곤잘레스는 강한 불만을 품고 조셉에게 더 크고 넓은 비전을 요구했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더 나은 환경, 더 나은 위버멘쉬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자고 말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족벌과 부정부패를 타파하자는 말이었죠.”

필리핀의 가장 큰 문제는 지독한 빈부격차 탓에 중산층이 없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민주주의 제도에 대한 지지와 투표율이 높아도, 가난해서 제대로 못 배운 유권자들은 독재를 그리워하며 보수 정권에 투표했다. 여기엔 기득권과 영합한 언론의 왜곡과 부채질, 가난하면 보수화된다는 베블런 효과의 훌륭한 콜라보가 작용했다.

이런 식으로 족벌과 언론, 정치, 법조계를 아우르는 엘리트 카르텔은 필리핀의 중산층을 결딴냈고, 사회적 변화에 대한 대중의 희망을 꺾어버렸으며, 달콤한 과실을 저들만 누렸다. 중산층이 성장할 환경을 만들지 않으니 이러한 악순환은 계속되었고 엘리트 카르텔은 흔들리지 않는 콘크리트 기득권을 확보할 수 있었다.

이런 지독한 빈부격차는 당연하게도 범죄율 급증으로 이어졌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상황이 필리핀에 위버멘쉬 지부가 안착하기에 매우 훌륭한 상황을 만들어주었다. 부패한 경찰조직 따위로는 초능력자를 영입한 범죄조직을 단속할 수 없었으니까.

특히 초능력 각성 초기가 가장 위험했다.

몇몇 마약조직이 영입한 야망 넘치는 초능력자는 한 행정구역을 점령하고 군벌화마저 시도했고, 이를 본 다른 범죄조직들도 너나 할 것 없이 초능력자를 영입하거나, 아니면 초능력자 스스로가 범죄조직의 수장이 되어서 군벌이 되기를 꿈꿨으니.

중앙정부의 행정력이 뻗치는 범위가 극도로 줄어들어 비콜 지방 이남 지역은 무정부 상태에 빠질 위기에 처했다.

이것을 해결한 조직이 바로 위버멘쉬였다.

당연히 위버멘쉬는 대통령부터 시작해서 언론, 족벌 할 것 없이 필리핀 전역에서 환영받았다.

뭐, 사실 위버멘쉬가 작정하면 정권부터 갈아엎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미리 숙이고 들어간 면이 없진 않았다.

아무튼, 이 과정을 통해 위버멘쉬 필리핀은 명실상부한 새로운 기득권이 되었다. 그리고 심사를 거쳐 지부 독립도 이루었다.

하지만 곤잘레스는 거기서 만족할 수 없었다. 그는 위버멘쉬 필리핀이 적극적으로 필리핀 사회 전반에 개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혹시 그 곤잘레스라는 사람이 특별한 맹세라도 했나요? 가령 뭐 옳은 일을 하겠다든지, 필리핀의 부정부패를 몰아내겠다든지.”

경완의 물음에 김봉남은 고개를 저었다.

“그냥 간단했어요. 성공해서 보란 듯이 잘 살겠다.”

“위버멘쉬 헌장이라는 거에 다 그런 맹세만 하는 거예요?”

“저~어기 태평양에 계신 S급님처럼 지구환경보존 같은 거창한 맹세를 하시는 분도 계시기는 하지만 그리 권장하진 않아요.”

“왜요?”

“인간이잖아요.”

경완이 무슨 뜻이냐고 말없이 보자 김봉남이 말을 이었다.

“속세의 다짐도 지키기 어려운데 세계평화 같은 거창한 맹세를 지킬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있겠어요?”

“위버멘쉬라면서요?”

“예수라면 몰라도 우리는 그냥 인간이에요. 시련도 적당히 해야지. 사람을 망가뜨릴 정도는 안 돼요.”

“그 말은 맹세가 시련이라는 말인가요?”

“뭐, 그런 면이 없지 않아 있죠?”

“그럼 총수님의 맹세는 뭔가요?”

“글쎄요.”

“혹시 세계평화?”

“아닐걸요?”

“그런데 아니라는 걸 어떻게 아세요?”

“물어봤거든요.”

김봉남이 이어서 말하길, 요하네스는 세계평화를 맹세하진 않았다고 대답했고, 구체적으로 무엇을 맹세했는지 대답해 주지 않겠다고 말했다.

“혹시 세계정복?”

“그것도 아니라고 했어요.”

“그럼 인류번영?”

“그것도 아니라고 했어요.”

“그럼 환경보존?”

“그것도 물어봤어요.”

과거 어리고 경박했던 김봉남은 여러 질문을 던졌지만 요하네스는 그 특유의 속을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해주지 않았고, 김봉남도 스무고개 하듯 계속 물어볼 순 없었기에 요하네스의 맹세는 미지로 남았다.

경완은 아리송해졌다. 위버멘쉬 총수의 목적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위버멘쉬라는 조직을 만들어서 하고자 하는 게 고작 초능력자의 권익 보호라는 말인가? 요하네스와 여러 번 만나고 대화를 나눠본 경완에게 그 구호는 그저 회원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미끼로 보일 뿐이었다.

일단 의문을 접어둔 그는 본론으로 돌아왔다.

“그래서 그 친구는 도대체 뭐가 불만인가요?”

“성공에 대한 기준이 조셉 지부장하고 다르다는 점이요.”

조셉 지부장은 필리핀의 기득권과 이권을 나눠 먹고 부와 권력을 유지하는 것을 선택했지만, 곤잘레스의 눈에는 그것이 사상누각으로 보였다.

“독립한 위버멘쉬 지부는 언젠가 외부로 그 영향력을 확대하려고 할 테니까요. 그리고 그 의미는 단순히 어느 지부의 국제진출 같은 게 아닐 거예요. 한 지역, 한 나라의 기득권이 된 집단의 영향력이 외부로 투사될 테니까요.”

그러니 국가의 역량 자체를 키우는 것이 중요했다. 그래야만 외세가 될 다른 나라 지부의 영향력을 감당할 수 있을 테니까.

경완이 물었다.

“본부에서 중재하지 않을까요?”

“그럴 수도 있지만, 본부의 존재는 아마 최후의 가이드라인, 폭탄이 터지지 않도록 방지하는 안전핀의 역할에 가까울 거고, 분쟁은 어느 정도 방관할 가능성이 높아요.”

그 말에 경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곤잘레스라는 친구가 우려하는 바가 뭔지 충분히 이해되었다.

확실히 필리핀은 치명적인 약점이 많았다. 부르주아 계급에 대한 증오를 살짝만 자극해도 사회가 불안정해지고, 사이비나 이데올로기를 침투시키기도 쉬웠으며, 부정부패 덕분에 회유와 배반을 종용하는 것도 용이했다.

더구나 필리핀은 종교적으로도 극심한 갈등의 씨앗이 심어져 있었다.

필리핀 남쪽 제도에는 이슬람 반군이 존재하는 게 현실이며, 이는 위버멘쉬 필리핀 지부조차 손을 못 대고 있는 문제였다.

종교는 예민한 문제였으며, 위버멘쉬는 이슬람권에도 진출 중이었으니까.

아무리 위버멘쉬 필리핀이 필리핀의 기득권층에 올라서봤자 국력이 튼튼한 나라의 위버멘쉬 지부가 영향력을 투사하기 시작하면 그 지위가 언제까지 유지될까?

필리핀의 기득권층? 그들에겐 위버멘쉬 브라질이든, 위버멘쉬 미얀마든 자기들 기득권을 지켜줄 이라면 기꺼이 손을 잡을 자들이었다.

“그래서 이런 이야기들을 제게 꺼낸 이유는요?”

“위버멘쉬 필리핀. 우리가 먹죠.”

“……네?”

김봉남의 말에 경완은 눈을 껌벅였다.

“지금은 일종의 과도기예요. 독립한 위버멘쉬의 지부들이 각 지역에서 위치를 공고히 하고 있는 단계죠. 하지만 얼마나 이 평화로운 시대가 이어질까요? 결국엔 세력을 확장하거나 동맹을 찾게 될걸요?”

김봉남과 곤잘레스는 듀오였고, 곤잘레스는 한국계 혼혈이었으니 이를 매개로 하면 위버멘쉬 코리아와 위버멘쉬 필리핀이 손을 잡는 것도 충분히 가능했다.

그리고 이는 서로에게 흡족한 시너지가 나올 거라는 게 김봉남의 설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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