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한전생 더 빌런-315화 (315/367)

무한전생-더 빌런 315화

29-역사는 거꾸로 간다

“이건 제가 아니라 곤잘레스의 구상이에요. 곤잘레스하고는 이야기가 다 된 상태라 경완 씨만 마음을 먹으면.”

“잠깐만, 잠깐만. 이런 이야기는 정 지부장님하고 이야기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지금 단계에서 한국지부가 나설 수가 없잖아요. 한국 정부랑 필리핀 정부랑 이야기도 안 되어 있고, 조셉 지부장이 아마 극렬하게 막으려고 들걸요?”

그래서 이경완이었다. 그는 공식적으로 위버멘쉬 소속이 아니었다. 위버멘쉬 총수가 그에게 보내는 호의와 지원, 또한 이경완 밑에 들어가겠다는 정호태 지부장의 기자회견을 생각하면 눈 가리고 아웅이었지만 경완이 위버멘쉬에 가입한 적은 분명히 없으니 위버멘쉬 필리핀과 접촉하는 걸 조셉 지부장이 막을 수 있는 명분은 딱히 없었다.

요하네스라면 아마 이경완이 위버멘쉬에 가입한 적 없다고 기꺼이 지원사격도 해주지 않을까?

경완은 입을 다물고 김봉남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싶은지 스스로에게 물어보았다. 답은 바로 나왔다.

“하기 싫은데요.”

하기 귀찮다. 지금 위버멘쉬 코리아와 손을 잡은 상태만으로 충분했다.

“하아…… 그렇군요.”

김봉남은 실망 가득한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질척이지 않고 깔끔하게 포기한 태도였다.

경완은 그가 실망과 함께 돌아갔을 때 필리핀 건은 끝난 줄 알았다. 며칠 뒤에 김봉남이 매~우 미안한 표정과 함께 다시 찾아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저~ 형님.”

“우리가 언제 형아우 하기로 했던가요?”

딱 봐도 부탁할 것이 있다는 태도에 경완의 태도 역시 까칠해졌다.

“어…… 그게 말이죠. 저는 정말 경완 씨에게 이런 말은 하고 싶지 않았는데 말이죠.”

“빨리 말해봐요.”

“에~ 그러니까 어디서부터 말해야 하나…….”

일단 일의 시작은 김봉남이 경완의 거절에 실망하고 돌아간 이후부터였다. 김봉남은 입이 가벼웠고, 곤잘레스와 함께 필리핀 지부를 홀라당 삼키자는 제안을 경완이 거절한 썰을 정호태 지부장 앞에서 떠들었다.

그런데 마침 정호태 지부장은 최근 군부 정권과 초능력 산업 경제와 기업 생태계에 관해서 이런저런 자문도 하고 현안에 대해서 같이 상의도 하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거기서 김봉남과 곤잘레스의 이야기가 어쩌다 나와 버린 것이다.

그리고 마침 정청완 중장은 국민적 지지를 얻을 새로운 동력원이 필요한 참이었다. 그 이유는 이러했다.

적폐청산은 인적청산 이후에도 시스템적인 장치가 필요했다. 적어도 군부 정권이 물러났을 때 적폐 인사들이 다시 복권해서 엘리트 카르텔을 구축해 도로아미타불이 되지 않도록 시스템이 자리 잡을 시간이 필요했다.

전문가에 의하면 이를 위한 시간은 최소 10년. 적어도 군부정권을 한 번 더 연장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그건 정청완 중장이 한 입으로 두말하는 짓이었다. 분명 적폐청산에만 집중하겠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렇다고 적폐청산에 최소 10년이 필요하다는 말을 국민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납득하는 이가 많을까, 못하는 이가 많을까?

그래서 정청완 중장은 어떤 성과가 필요했다. 군부정권 연장을 정당화해 줄 성과가 말이다. 그래서 때마침 귀에 들어온 곤잘레스의 구상은 경제, 외교적 성과를 국민들에게 자랑하기에 매우 괜찮은 소재라고 생각했다.

그거 하나만으로는 정권 연장의 정당성을 충당하진 못하겠지만 없는 것보다는 나았다.

즉, 곤잘레스의 구상이 다시 경완을 찾아온 건 군부정권, 정청완 중장의 의중이라는 뜻이었다. 도와달라고 말이다.

“정 지부장님은요?”

“어…… 그게 필리핀 지부를 정탐하러 간다고…….”

말꼬리를 흐리며 경완의 눈치를 보는 김봉남을 보니 딱 봐도 직급이 낮다고 싫은 일을 맡긴 게 분명했다. 경완은 속으로 혀를 찼다. 정호태 지부장은 김봉남의 하극상이 걱정되지도 않나?

“정청완 중장이 뭐라 그래요?”

“정청완 중장이 아니라 무슨 초능 자원부 차관이라는 사람이,”

“아, 됐어요.”

경완은 손사래를 쳤다. 실무 담당하는 사람과의 이야기는 일단 정청완 중장의 정확한 의도와 목적을 알아낸 다음에 해도 충분했다.

경완은 일단 저장만 되어 있는 연락처로 전화했다. 김봉남은 입을 다물고 경완이 통화를 하는 걸 기다렸다.

[누구십니까?]

아는 목소리에 경완은 대답했다.

“이경완입니다.”

[이경완? 위버멘쉬의 이경완?]

“딱히 위버멘쉬의 이경완은 아닙니다만…….”

[말투를 들어보니 당신이 맞군요.]

전화 받은 상대도 정청완 중장이 확실했기에 경완은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에…… 그러니까 제가 좀 이상한 소리를 들었는데요…….”

경완은 김봉남에게 들은 이야기를 정청완 중장에게 대충 전달한 후에 물었다.

“그래서 정확히 각하께서 원하시는 게 뭡니까?”

[각하라는 표현이 별로 듣기 좋진 않군요.]

“그럼 중장님?”

[훨씬 낫군요.]

흡족함과 안심 그 사이 어딘가의 감정을 풍기는 그에게 경완은 다시 한번 질문했다. 원하는 게 뭔지 말이다.

[경완 씨에게 말입니까?]

“그것도 있고, 전체적으로 그리는 그림이 뭔지 알아야 할 것 같아서요.”

[왜요?]

“저도 모르게 제가 원하는 일을 하고 싶진 않아서요. 중장님이라면 아실 텐데요?”

쿠데타의 시작은 징집으로 만들어진 초능 특수전 부대와 그들의 불만이었다. 당시 위정자들에겐 국익, 충성, 민족의 중흥 등 다양한 명분과 대의가 있었겠지만, 그 본질에는 정보의 비대칭과 불합리한 이용이 있었다는 걸 부정할 순 없었다.

즉, 국가와 개인 간의 불공정 거래가 쿠데타의 불씨였다는 말이고 이는 정청완 중장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경완은 공정한 거래가 가능하도록 정보의 개방을 요구한 것이다. 정청완 중장이라면 국가와 개인이라는 이 기울어진 운동장에서의 협상이 얼마나 개인에게 불리한지 이해할 테니 말이다.

잠시 말이 없었던 정청완 중장은 이내 이렇게 말했다.

[그런 거라면 저보다는 대통령 각하께 물어보시는 편이 더 자세히 알 수 있을 겁니다.]

자신은 이런 걸 잘 설명할 말재주가 없다면서 대통령과 직통이 가능한 번호까지 알려주면서 말이다.

경완은 전화번호를 받고는 현 대통령을 떠올렸다.

민주주의의 배신자, 정청완 중장을 방패로 삼은 독재자, 적폐청산을 명분 삼은 위선자.

이외에도 여러 멸칭과 확인되지 않은 소문들이 있었으니, 심지어는 정청완 중장은 바지사장이고 사실은 그 뒤에 대통령이 있다, 사실은 그냥 쿠데타가 아니라 친위 쿠데타였다 등의 말도 나오는 인물이었다.

이러한 평가에는 이유가 있을 수밖에 없었는데, 바로 대통령이 정청완 중장과 군부 정권에 대해 매우 협조적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초능 특수전 부대원의 수는 그리 많지 않았다. 또한 시대가 바뀌었기 때문에 국군은 쿠데타에 저항할 의지가 확고했다.

하지만 이러한 저항을 돈좌시킨 장본인이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이었다. 그뿐인가? 그 이후에도 행정부의 수반으로서 정청완 중장의 손아귀에 국회와 법원, 검찰이 들어갈 수 있도록 대통령으로서 지원하기까지 했으니, 괜히 친위 쿠데타라는 말이 나도는 게 아니었다.

그런 인물에게 이야기를 들으라고?

경완은 호기심이 이는 것을 느끼며 정청완 중장이 알려준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직통전화였다.

[여보세요.]

걸걸한 목소리. 기억 속에 있는 대통령의 목소리였다.

“대통령님. 저 이경완입니다.”

[누구?]

“이경완이요. 국회의원 테러범이요.”

경완은 그 어떤 별명보다 저 별명이 마음에 들었다. 뭔가 권위에 도전적이지 않은가?

그런 자기소개에 대통령은 살짝 당황한 기색을 보이며 물었다.

[아, 자네로군. 그런데 어떻게 이 번호를 알고 있나?]

“정청완 중장에게 받았어요.”

[어째서?]

경완은 정청완 중장과 있었던 대화를 전달했고, 대통령은 간단히 대답했다.

[정청완 중장이 원하는 건 군부 정권의 대의를 이어받아 줄 정치세력을 육성하는 것이네. 이를 위해 여러 정치인을 암중으로 지원하고 있지. 자네에게 제안이 간 것도 이의 연장선일세.]

그 대답에는 중요한 사실이 담겨 있었다. 정청완 중장이 군부정권의 연장을 포기하기로 했다는 것.

어쩌면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쿠데타 성공의 핵심, 초인 특수전 부대는 징집병으로 이루어진 부대였다. 따라서 하나회 같은 군내 사조직과는 성격이 완전히 달랐다.

당연히 그들이 원하는 바도 하나회와는 달랐다. 그들이 원하는 건 아마 일상이 아닐까? 그들이 쿠데타를 하게 된 이유도 결국은 협박과 다름없는 국가의 압박 때문이었으니까.

쿠데타 핵심층의 이런 한계는 정청완 중장이 군부정권의 연장을 현실적으로 포기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으리라…….

“대통령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자네가 도와주는 게 어떻냐고?]

“네.”

[음…… 나쁜 일은 아니지.]

“그렇게 말씀하시는 게 대통령님께 이득이 되기 때문은 아니고요?”

경완의 질문은 예리했다. 정청완 중장이 군부정권의 연장을 포기하고 대신 그 역할을 이어받을 정치세력의 육성을 필요로 한다면 현 대통령의 협조는 필수 불가결이었다.

정청완 중장이 아무리 쿠데타를 성공한 걸물이라고 하더라도 완전히 체제를 뒤엎어 종신 독재를 하겠다고 드는 것이 아닌 이상, 현 시스템의 전문가인 대통령보다 정치를 잘할 순 없을 테니까.

그런데 떡을 만지면 손에 콩고물이 묻는 것이 당연한 게 이 세상의 이치 일진데 하물며 대통령이라도 예외일까? 경완이 보기엔 군부정권 연장 포기라는 정청완 중장의 결심에는 협조자인 대통령에게 그간 협조한 대가를 주기 위한 것도 있는 것 같았다.

세상엔 공짜가 없으니까. 아무리 대통령이 기억전달을 통해 정청완 중장의 설득에 넘어갔더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무료봉사할 이유는 되지 않았다. 그래서 정청완 중장은 새로운 정치세력이란 대가를 제시한 것이 아닐까? 그건 분명 대통령의 정치적 자산이 될 테니까.

이러한 사실을 대통령은 부정하지 않았다.

[그렇기는 하지. 나로서도 나중 일을 생각해야 하니까.]

군부정권에 협조한 이상 대통령도 도매금으로 넘어갈 수 있었다. 적폐로 규정한 숙청 대상들이 다시 부와 권력을 쥐는 상황은 대통령도 달갑지 않았으니, 정청완 중장으로부터 지휘봉을 넘겨받는 대신 적폐청산을 마무리할 책임을 지는 건 대통령 입장에서는 남는 일이었다.

그러한 사실을 인정한 대통령이었지만 경완을 설득할 말이 없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자네에게도 그편이 좋지 않나? 새로운 질서를 창출하는 일에 지분이 생긴다면 욕심 때문에라도 자네를 함부로 건들 사람이 없어질 텐데 말이야.]

“예전에도 함부로 못 건드렸는데요?”

[그때는 그랬겠지. 하지만 기술은 발달하고 있네. 중화 영역만 봐도 그렇지 않은가? 초능력 기술은 발달할 것이고, 결국엔 거대한 집단, 조직, 국가의 역량이 개인을 넘어서는 건 시간문제겠지. 자네를 대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어마어마한 압력이 들어올 거야. 자네가 할 수 있는 일은 노력해서 대체 불가능한 위치를 계속해서 점유하든지, 아니면 그러한 압력에 타협하는 것 둘 중 하나일세.]

비약과 과장이 좀 섞여 있었지만 대통령의 예상은 딱히 부정할 부분이 없었다. 경완의 예견과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 과거의 경완이었다면 비릿한 웃음과 함께 어디 한번 해보자며 방관했겠지만, 이제는 좀 둥글게 살기로 하지 않았던가?

“구체적으로 제게 이득이 되는 사항이 있나요?”

[위버멘쉬 코리아와 위버멘쉬 필리핀의 강력한 연결고리가 되는 걸세. 그 연합이 이권을 창출하는 동안 자네는 강력한 울타리를 가지게 되는 거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