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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전생 더 빌런-316화 (316/367)

무한전생-더 빌런 316화

29-역사는 거꾸로 간다

경완은 머리를 긁적이다가 대통령과 덕담을 몇 마디 나누고는 통화를 끊었다. 그리곤 김봉남을 보았다.

경완의 시선에 들어온 김봉남의 표정은 밝았는데, 직감적으로 경완이 이 일을 수용하기로 결심했다는 걸 느낀 모양이었다.

“구체적으로 제가 뭘 하면 되나요?”

경완의 물음에 김봉남은 시끄러울 정도로 입을 털기 시작했다.

* * *

김봉남이 털어놓은 곤잘레스의 계획은 간단했다. 위버멘쉬 필리핀 내부에서 하극상, 혹은 쿠데타를 일으키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지부장인 조셉과 그 추종자들은 반드시 실종될 필요가 있었다.

“죽이는 건가요?”

“굳이 죽일 필요까진 없어요. 그들을 억류하는 사이에 사회적 불구로 만드는 거죠. 필요한 명단은 이미 다 준비해 놨데요.”

“누가요?”

“곤잘레스가요.”

경완은 근육질이었던 곤잘레스를 떠올렸다. 그리고 김봉남을 보았다. 사실 이 듀오에서 머리는 곤잘레스 쪽이었던가?

“그걸 저보고 하라는 건가요?”

“여기서 경완 씨의 역할은 조셉의 경호원들을 제압하는 것까지예요. 그 뒤는 곤잘레스와 제가 맡습니다.”

“이거 범죄 아닌가요?”

“괜찮습니다. 원래 필리핀은 범죄가 많거든요.”

지금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닐 텐데…….

“그럼 그냥 가서 때려눕히면 돼요?”

“그건 아니고, 일단 필리핀을 방문하는 명분을 만들어야 해요.”

“굳이 방문을 해야 하나요?”

그냥 몰래 처리해도 되지 않을까? 태평양도 가로지를 수 있는 경완이라면 필리핀까지 가는 것도 어렵진 않을 텐데 말이다.

그 말에 김봉남은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에…… 경완 씨, 위치정보는 전략자산 취급받고 있다던데요?”

“뭔 자산이요?”

“전략자산이요.”

무슨 말인지 이해한 경완은 입맛을 다셨다. 하긴 그가 웜홀 능력을 얻었을 때부터 김준이 그가 집에 잘 있는지 더 민감하게 물어보기는 했다.

이번 곤잘레스의 작전이 하루 이틀로 끝나는 것도 아닐 테니, 갑자기 경완이 말도 없이 사라지면 미국을 비롯해 그를 주시하는 이들을 깜짝 놀라게 할 것이다. 밑에 실무를 맡은 자들은 갑작스레 바빠질 테고 말이다.

그런 식으로 깜짝 놀라게 해서 경각심을 부추기는 건 경완에게 긍정적인 일은 아니었다. 괜히 경계심을 일으키고 서로 신경 쓰고 피곤해지는 것보다 그럴 신경을 미연이 엉덩이 주무르는 데에 쓰는 게 더 생산적이지 않겠는가?

그렇다고 경완의 행적을 주지하고 있는 이들에게 일일이 갑자기 모습을 감춘 사유를 알려줄 수도 없는 노릇이고 말이다.

“그래서 명분이 뭐죠?”

“여기서 조력자가 필요하답니다.”

김봉남의 설명은 정호태 지부장이 붙잡고 방문한 한 장년(壯年)인으로 이어졌다.

재계 서열 24위, 영호 그룹의 회장, 최재빈.

그는 정호태의 눈치를 살피며 경완에게 아주 친근한 미소로 손을 내밀었다.

경완은 기꺼이 그와 악수를 했지만 재벌이랍시고 상석 자리를 내주진 않았다. 최재빈이 기분 나빠할 수도 있지만, 그걸 겁낼 경완도 아니었고, 누가 위에 있는지 신경전을 벌이는 건 처음 만난 남자들 사이에선 흔히 있는 일이었다.

“에~. 그러니까, 영호 그룹에서 필리핀에 사업차 방문하면서 제가 따라간다는 말이죠?”

“저와 경완 씨가 연말 파티에서 만나 친분을 나누었다는 시나리오죠.”

최 회장의 말에 경완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정호태를 보았다.

“정 지부장님도 같이 가시는 건가요?”

“제가 따라가면 위버멘쉬 코리아가 연관되었다는 냄새를 너무 진하게 풍겨서 안 됩니다.”

그래서 중간에 최재빈이라는 기업인을 끼운 것이다. 경완이 필리핀에 방문해도 의심받지 않을 최소한의 개연성을 위해서 말이다.

경완은 최재빈을 보았다. 그는 경완의 시선에 웃으며 말을 걸어왔다.

“이 일에 경완 씨의 역할이 커요.”

경완은 고개를 갸웃하면서 정호태를 보았다.

“최 회장님은 제가 구체적으로 무슨 역할을 맡았는지 전부는 모르시는 모양이죠?”

정호태는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위버멘쉬 필리핀과 영호 그룹 사이의 양해각서에 도움이 되도록 중간에 기름칠 역할을 한다는 건 알지만, 어떻게 기름칠을 할 것인지는 잘 모르십니다.”

그 말에 최재빈은 뭔가 불안한 듯 정호태를 보았다.

“정 지부장님? 어째 제게 하시던 말씀과 좀 다른 것 같습니다만?”

“필리핀의 상황이 마냥 우호적인 건 아니라서요. 최 회장님께 피해가 없도록 각별히 유의하도록 하겠습니다. 경완 씨, 그래 주실 수 있죠?”

경완은 지원사격을 원하는 정호태의 눈빛에 고개를 끄덕이며 최재빈을 향해 자신감 있는 모습을 보였다.

“당연하죠. 제 악명을 걸고 회장님에 어떤 피해가 가지 않도록 확실히 하겠습니다.”

뭘 건다고? 악명?

최재빈은 어색하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경완은 그 미소를 보며 생각했다. 사람 한 명 바보 만들기란 이렇게 쉽구나 하고 말이다.

이후 최재빈과의 필리핀행은 빠르게 결정되었다. 경완은 그저 적당히 입고 몸만 가면 최재빈의 수행비서들이 알아서 챙겨주기로 되어 있었다.

“잘 다녀와.”

“응.”

“사고 치지 말고.”

“그건 장담하기 힘든데?”

경완의 대답에 미연은 눈을 가늘게 떴다. 그녀는 경완이 필리핀에 가는 이유에 대해서 대충 들었다. 솔직히 그가 하는 짓이 상식적으로 나쁜 짓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좀 미안했다. 과거 경완이 나쁜 짓을 하긴 했지만 대부분이 나쁜 놈들이 그 대상이었다면, 조셉이라는 필리핀 지부장은 정말 나쁜 사람인지 그녀로서는 판단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솔직히 조셉이 범죄자는 아니지 않은가?

하지만 경완이 살아온 과정을 이해하는 그녀는 그에게 준법 시민이 되라고 강요할 순 없었다.

제도권의 보호를 받지 못해 감옥에 가고 노숙하다가 권력자와 맨손으로 싸운 것이 그의 인생이지 않았던가? 심지어 초능력도 일절 없던 시절에 말이다.

그럼에도 노파심에 잔소리가 절로 나왔다.

“법적으로 곤란해질 상황에 처하지 말라는 말이야.”

“알았어. 들키지 말라는 소리지?”

미연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더는 그녀가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도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말릴 수도 없었다.

이렇게 걱정이 가득할 땐 그녀는 차라리 경완이 집안에 틀어박혀 있을 때가 나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완은 그녀를 품에 안고 등을 토닥였다.

“걱정 마. 걱정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을 테니까.”

“벌어지면?”

“수습할 수 있다니까.”

“사람들이 욕하면?”

“그건 감수해야지.”

경완은 그녀는 충분히 다독인 후에 약속 장소로 최재빈 회장을 만나러 향했다. 위치는 공항 인근의 호텔.

호텔 앞에 도착해 저번에 교환한 연락처로 연락하니 수행비서가 나와 경완을 찾았다.

“이경완 씨 맞습니까?”

“네.”

“들어가시죠. 회장님이 기다리십니다.”

수행비서의 뒤를 따라 경완은 호텔의 어느 방으로 향했다. 도착하니 최재빈 회장이 경완을 반갑게 맞이했다.

“어서 와요.”

그는 본인이 상석에 앉고는 경완에겐 하석을 권했다. 예전에 경완의 집에 방문했을 때 상석을 양보받지 못한 것에 앙금이 남아 있는 눈치랄까?

경완은 개의치 않고 하석에 앉았다. 똥개도 제집 앞마당에선 절반은 먹고 들어간다고 하니 일단은 최 회장의 입장을 존중해 주는 의미로 그가 권한 자리에 앉았다.

최재빈 회장은 경완과 다시 일정에 대해서 상의했다.

그는 필리핀에 방문한 뒤 각계각층의 인사들과 만나면 자연스레 위버멘쉬 필리핀과 접촉할 계획이었고, 경완은 그런 그의 경호를 위해 따라다닌다는 설정이었다.

어떻게 이경완에게 경호를 부탁할 수 있었냐는 질문이 나올 수밖에 없는 설정에 어느 파티에서 우연히 만나 약간의 도움을 받았다는 설명을 추가했다.

“그럼 결국 제 일은 최 회장님께서 쉬는 시간에 해야겠네요.”

“아무래도 그편이 자연스럽겠죠.”

최재빈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경완에게 주의할 점을 몇 가지 더 설명해 주다가 수행비서의 신호를 받고 일어났다.

“보딩 시간이 다 되어 가네요. 움직입시다.”

경완은 그를 따라 공항으로 향했다. 게이트를 지나 여객기에 탄 경완은 주변의 눈치를 살피다가 최재빈에게 물었다.

“이거 전세기 아니에요?”

“아닌데요.”

“재벌이시잖아요.”

경완의 말에 최재빈은 어이없다는 눈으로 경완을 보았다.

“재벌이면 다 전세기 타고 다닌다고 생각하십니까?”

“영화나 드라마 보면 다 그렇던데요?”

그 말에 최재빈은 어이없다는 듯이 독백하듯 투덜거렸다.

“이래서 TV가 사람들을 다 망쳐놓는다니까.”

그러면서 전세기를 타기 위해 필요한 절차와 비용, 관리에 관해 썰을 풀기 시작했다.

경완은 아아 소리를 내면서 고개를 끄덕이며 반쯤 한 귀로 흘렸다.

왜냐면 반은 영화나 드라마에 나오는 재벌의 연출은 대부분 허구다, 그들은 오히려 함부로 돈을 쓰지 않는다, 전세기는 명품이 아니라 업무용이다 등의 사실적 이야기와 나머지 반은 최재빈 본인 역시 건실한 기업가로서 국가 경제의 미래를 걱정하는 어쩌고저쩌고 자랑이 섞인 이야기였기 때문이었다.

제법 흥미로운 이야기였지만 은근히 본인 자랑하는 내용이 듣기 썩 좋지는 않았다.

딴에는 경완의 존경이나 관심을 끌어내 보려는 시도였지만 충분하지 못했다. 그의 관심을 끌기엔 최재빈은 야망은 있지만 경완과 다르게 너무나 상식인이었다.

“아~ 그렇군요. 그런데 제가 지금 좀 피곤해서 그런데 잠시 눈 좀 붙여도 될까요?”

“물론이죠? 그런데 어젯밤에 잘 못 주무셨어요?”

“아, 뭐 그렇죠.”

경완은 말을 아꼈고, 그런 그를 보는 최재빈의 표정엔 씨바 ㅈ나 부럽다는 표정이 지어져 있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기에 저런 표정을 짓는 걸까?

경완의 생각이 동거 중인 여친인 이미연에게 닿았다. 그리고 최재빈을 향해 속으로 혀를 찼다. 하여간 X달린 것들은 재벌도 다를 바가 없다니까.

낮잠에 들었던 경완은 누군가의 목소리에 눈을 떴다. 떠보니 최재빈의 수행비서가 조심스럽게 그를 깨우고 있었다.

경완은 옆을 보며 물었다.

“다 왔어요?”

“네.”

최재빈은 보고 있던 서류를 뒷자리의 비서에게 건네주며 대답했고, 경완은 그 모습을 보고 물었다.

“설마 일하셨어요?”

“네.”

“재벌 맞아요?”

“무슨 소리 하는 겁니까?”

“저는 이렇게 열심히 일하는 재벌이 있는 줄은 몰랐죠.”

“드라마 끊으세요.”

어이없어 하는 대꾸에 경완은 어깨를 으쓱하는 걸로 대답을 대신하고는 내릴 준비를 했다.

마닐라 공항에 도착하니 기다리고 있는 이들이 있었다. 최재빈이 귀띔하길 필리핀을 주름잡는 재벌 가문이란다.

[반갑습니다, 미스터 최. 이얄라 고공웨이라고 합니다.]

최재빈에게 먼저 다가와 웃으며 손을 내민 이는 동아시아인에 가까운 외모에 최재빈의 또래로 보이는 사내였다.

그는 최재빈과 악수를 나누고는 최재빈 뒤에 서 있는 경완을 보며 궁금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경완이 지루한 표정으로 서 있어서 그런지 경호원으로 보이진 않았던 모양이었다.

[누구?]

[이경완 씨입니다.]

[누구라고요?]

최재빈은 이얄라에게 경완을 소개했다. 그러자 이얄라는 놀람과 동시에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는 이내 표정 관리를 하며 경완에게도 손을 내밀며 반갑다고 인사를 했지만, 딱히 반갑지는 않은지 미소가 어색할 지경이었다.

경완은 이얄라의 뒤를 따라가며 최재빈에게 조용히 물었다.

“왜 저래요?”

최재빈은 어깨를 으쓱하다가 자기 수행비서를 보았다. 수행비서가 대답했다.

“어찌 된 일인지 확인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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