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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전생 더 빌런-318화 (318/367)

무한전생-더 빌런 318화

29-역사는 거꾸로 간다

조셉은 그런 족벌들과의 연대를 강하게 하면 된다고 생각하지만, 곤잘레스는 족벌들을 믿을 수 없었다.

위버멘쉬 필리핀은 새로운 세력이었고, 족벌과 성격도 달랐다. 본인들의 기득권을 위해 필리핀의 중산층을 말려서 도태시켜버린 족벌과 성공을 위해 밑바닥에서 기어 올라온 위버멘쉬 필리핀은 태생 자체가 달랐다.

설사 그 태생을 부정하며 족벌들 사이에 끼어들려고 해도, 오랜 시간 족벌들 사이에 구축된 그들만의 리그에 끼어들기엔 시간이 모자랐다.

설사 끼어든다고 해도 그건 위버멘쉬 필리핀 지부의 족벌화를 뜻했다. 유유상종이라 하였으니, 족벌들은 그들과 비슷하고, 그들과 비슷한 생각을 하지 않는 자를 결코 같은 무리로 받아들이지 않을 테니까.

하지만 이는 초능력 업계에서의 도태를 의미했다. 족벌화된 위버멘쉬 지부에 어느 능력 있는 초능력자가 몸을 담는단 말인가?

곤잘레스가 보기에 이러한 일들의 결과는 자명했다.

새로운 식민지 구조. 능력 있는 초능력자는 금의환향을 꿈꾸며 필리핀을 떠나는 풍토가 당연시될 것이며, 필리핀은 싸고 값싼 초능력자를 공급하는 원산지가 될 것이다. 그리고 위버멘쉬 필리핀은 유명무실해지거나 강력한 다른 위버멘쉬 지부의 괴뢰지부 정도가 되겠지.

그건 곤잘레스와 그 동료들이 그간 필리핀 지부에 몸을 담고 이뤄왔던 모든 것이 퇴색한다는 뜻이었다.

경완은 고개를 끄덕였다. 곤잘레스의 입장이 이해는 되었다.

한편으론 능력이 없는 것도 아니면서 본인과 주변만 잘 먹고 잘 살면 되는데 왜 그리 오지랖을 부리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일단 넘어갔다.

“설득해 볼 생각은 없었나요?”

“이미 여러 번 시도해 봤습니다.”

“제가 설득해 볼까요?”

같은 말이라도 누가 하느냐에 따라서 그 의미와 깊이가 완전히 바뀐다. 괜히 메시지보다 메신저를 공격하라는 말이 있을까?

경완의 말에 곤잘레스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대꾸했다.

“어떻게 말이죠?”

“일단 말로요.”

잠시 곤잘레스가 고민하더니 대답했다.

“그를 설득할 시간은 많지 않을 겁니다.”

계획 중간, 조셉과 측근들을 납치한 직후가 아니라면 딱히 설득할 시간을 내지 못할 거라는 말에 경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한번 해보죠.”

곤잘레스는 탐탁지 않은 표정에도 고개를 끄덕였다.

경완의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기도 했고, 혹여 설득에 성공한다면 나쁠 것이 없었다. 다만 탐탁지 않은 표정을 짓는 건 설득 가능성이 전혀 기대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작전은 이틀 뒤로 계획되었다. 최재빈이 현장시찰을 명목으로 세부를 방문했을 때 세부에 마련된 모종의 장소에 경완이 워프마커를 심어둘 필요가 있었다.

세부는 관광지로 유명한 만큼 경완이 최재빈 회장을 따라다니며 구경해도 수상하지는 않았다. 밤에 몰래 나가 인적 드문 곳에 워프마커를 설치해두고 곤잘레스가 준 대포폰으로 워프마커의 GPS좌표를 전송해 주는 것으로 경완이 준비해야 할 일은 다 끝났다.

이제 남은 건 최재빈이 현지 시찰을 끝내고 마닐라로 돌아간 후 곤잘레스의 연락을 기다리는 것뿐.

최재빈이 시찰을 끝내고 마닐라로 돌아오는 길에 경완에게 휴대폰 화면을 보여주며 물었다.

“이거 봤어요?”

휴대폰 화면에는 뉴스가 나와 있었다. ‘최재빈의 필리핀 방문에 따라간 이경완, 최재빈과 무슨 인연이?’라는 타이틀이었다.

경완이 최재빈을 보며 물었다.

“이거 혹시 정보 흘린 거예요?”

“굳이 흘릴 필요도 없었어요.”

외신도 있고 필리핀 교민도 있으니 잠깐 돌아다닌 것만으로 충분히 입소문이 퍼지기엔 충분했다.

경완의 얼굴은 국내보단 해외 교민들이 더 잘 알고 있었다. 초능력 업계의 두유노우 클럽에선 빠질 수 없는 인간이 바로 이경완이었으니까.

경완은 최재빈의 입가에 지어진 미소를 보며 물었다.

“왜 그리 좋아해요? 주가라도 올랐어요?”

“후후. 노코멘트하죠.”

최재빈은 말은 아꼈지만 주가가 오른 것이 틀림없었다.

경완은 역시 주식판은 상식으로 돌아가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냥 따라다니는 것뿐인데 그걸 호재라고 설레발 치는 주식쟁이들의 심리란, 쯧쯧.

최재빈이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이 물었다.

“아, 오늘 저녁 만찬이 있는데 참여하실 건가요?”

“당연히 참여해야죠.”

경완은 이렇게 고생(?)하는데 맛있는 거라도 먹어야 남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찬 장소는 한 5성급 호텔의 연회장.

최재빈을 따라 연회장에 간 경완은 그 자리에 조셉이 참석한 것을 보았다. 곤잘레스도 그의 옆에 있었다.

[하하. 이렇게 다시 뵙는군요.]

경완을 발견한 조셉은 최재빈 회장에게 말을 건네며 경완에게도 인사를 했다.

[경완 씨, 이 사람이 바로 곤잘레스입니다.]

[여기서 뵙게 되다니……. 이제 한국에서 활동 안 하세요?]

경완이 천연덕스럽게 손을 내밀었고 곤잘레스도 태연하게 손을 내밀었다.

[네, 이젠, 뭐…….]

그러면서 눈을 두 번 깜박였다. 경완은 그 신호가 바로 오늘 일을 저지르겠다는 신호라는 걸 알아차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옆에서 두 눈 뜨고 보고 있던 조셉은 신호가 오갔다는 사실 자체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경완이 고개를 끄덕인 건 그저 곤잘레스의 대답에 관한 반응이라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그렇게 조셉은 위기를 모면할 마지막 기회를 붙잡지 못했다.

필리핀의 유력인사들과 만찬을 즐기며 필리핀의 현안에 관해 이야기를 나눈 조셉은 만찬이 끝나고 그대로 호텔로 올라와 에스코트걸과 뜨거운 쮁스 한판을 뛴 후에 침대 위에 노곤한 몸을 뉘이고 기분 좋게 잠들었다.

깊은 밤. 에스코트걸의 따끈따끈하고 매끄러운 나신을 안고 만족스런 수면을 취하던 그를 깨운 것은 휴대폰의 수신음 소리였다.

그는 억지로 눈을 뜨며 휴대폰을 붙잡아 전화 건 사람을 확인했다. 측근 중 한 명이었다.

그런데 이름을 확인하자마자 수신음이 끊겼다. 뭔가 이상한 기분에 조셉은 발신 버튼을 눌렀지만 측근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뭔가 심상찮은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조셉은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팬티를 입으며 다른 측근에게 전화를 걸어보았지만 역시나 받지 않았다. 아무리 밤이라도 이상한 일이었다.

그때 방문이 스르륵 열렸다.

조셉이 시선을 돌렸을 때 그가 목격한 것은 빛조차 빨아들일 것 같은 검은 연기였다.

그 검은 연기는 마치 공포영화의 한 장면처럼 조셉을 덮쳤고, 그는 온몸이 조이는 압박감에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어디론가 끌려가는 느낌을 받아야 했다.

“꺄악!”

에스코트걸이 검은 연기에 휩싸이는 조셉을 보고 비명을 질렀지만, 연기가 어디론가 빨려 들어가듯 사라진 후 그녀가 볼 수 있었던 건 열린 방문과 인기척이 전혀 없는 복도뿐이었다.

* * *

검은 연기에 붙잡혀 끌려가던 조셉은 이것이 바로 염동계열의 초능력이라는 걸 알아차리고 자신도 능력을 전개했다.

그의 능력은 고통 전가. 파동 형태의 패스를 이용하는 정신계열 능력으로써, 정신에 직접적으로 고통을 주는 것이기 때문에 고통내성이 있는 신체강화 능력자에게도 매우 효과적이었다.

그래서 아무리 강력한 염동력자라고 해도 제압할 자신이 있었지만, 그가 들은 것은 짜증 섞인 외국어였다.

“아, 씨발. 이게 뭐야.”

검은 연기가 서서히 흩어졌고, 밝은 달빛과 은은한 조명 아래 한 사람의 얼굴이 드러났다.

조셉은 그 얼굴을 알고 있었다.

[미스터 리! 당신이 왜?!]

[당신 능력 상당히 쓸만하네요. 괜히 지부장이 된 게 아니네요.]

경완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흔들며 말했다.

조셉의 능력은 상당히 강력했다. 정신에 가해지는 직접적인 통증은 사지(四肢)와 사고(思考)를 마비시키기에 충분했다.

통증 감각의 전달에만 집중하면서 패스의 연결로 인한 정신오염 등의 부작용이나 약점도 완전히 커버했다. 아마 로봇이 아닌 인간 중에 조셉을 이길 만한 이는 분명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상대가 좋지 않았다. 비록 고통은 달갑지도 않고, 익숙해지기도 쉽지 않지만, 고통을 자아와 분리하거나 오히려 정신집중의 촉매로 삼는 요령쯤은 경완에겐 그다지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슬슬 능력을 거둬주지 않겠어요? 슬슬 짜증이 나서요.]

경완의 하얀 미소에 서린 위협을 읽을 조셉은 마른침을 삼키며 능력을 거둬들였다. 자신의 정신계 능력이 경완을 상대로 그다지 효과가 좋지 못하다는 걸 인정해야 했다.

능력을 거둔 조셉은 주변을 둘러보고 굳은 표정으로 경완에게 물었다.

[왜 이런 짓을 하는 겁니까?]

여긴 자신이 있던 호텔도, 마닐라도 아니었다. 그곳에서 멀리 떨어진 인적 드문 공터. 조셉은 이것이 말로만 듣던 웜홀 능력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렇다. 자신은 납치당한 것이다. 이경완이라는 최강의 초능력자에게.

경완은 조셉의 물음에 민망한 듯 볼을 긁적이더니 입을 열었다.

[그전에 저도 한 가지 물어보죠. 왜 더 큰 꿈을 꾸지 않나요?]

[무슨 말이죠?]

경완은 필리핀 족벌과 손을 잡고 안주하기로 한 조셉의 결정에 관해서 이야기했다. 그러자 조셉은 경완이 무슨 소리를 하는지 이해했다.

[곤잘레스가 이 일의 배후에 있는 겁니까?]

[복잡한 이해관계로 인해 잠시 협력하고 있는 거죠.]

[곤잘레스가 무슨 대가를 제시하든 제가 더 나은 대가를 제시할 수 있습니다.]

조셉은 설득을 시도했지만, 그건 경완이 원하는 바가 아니었다.

[그냥 조셉이 우리에게 협조하는 게 어떨까요?]

[허! 필리핀을 개혁한다는 그 망상 말입니까? 불가능한 소립니다.]

[불가능한 짓이라도 조셉 당신에겐 그다지 손해가 아닐 텐데요?]

[왜 손해가 아닙니까? 그간 맺어온 족벌과의 모든 관계가 망가지는데요.]

[아, 정확히는 리스크 관리죠. 어차피 협조하지 않으면 모종의 장소에 억류될 테니까요. 그 뒤에는 곤잘레스의 계획이 성공하든 실패하든 위버멘쉬 필리핀과 필리핀 족벌 사이의 신용은 박살 난 상태겠죠.]

[그게 정말 필리핀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솔직히 장담은 못 하죠. 하지만 감정적으로는 현실에 안주하는 사람보다 도전하는 사람을 응원하고 싶어지지 않아요?]

[그 대가가 평온한 일상이라고 해도 말입니까?]

[제가 보니까 이미 필리핀 대다수의 일상은 거지 같아 보이던데요.]

경완의 말에 조셉의 표정은 잔뜩 굳었다. 그리고는 이내 잔뜩 비틀린 미소를 머금었다.

[그들의 말이 맞군요. 당신은 오만한 인간입니다.]

[그들?]

경완은 오만하다는 평가보다는 뜬금없이 튀어나온 그들이라는 존재가 신경 쓰였다.

[당신이 뭐라도 되는 줄 아는 모양인데, 당신도 결국 인간입니다. 당신에게 필리핀에 사는 사람들의 인생을 결정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합니까?]

[당연히 없죠.]

[그럼…….]

[당연히 당신과 필리핀 족벌에게도 없죠. 그러니까 승자가 결정하기로 합시다.]

조셉의 신념이 단단했기 때문에 경완은 설득하기를 포기하고 물러났다. 어차피 힘없고 평범한 사람들의 인생은 힘 있고 영향력 있는 사람들에 의해 휘둘리기 마련이지 않은가?

그러자 어둠 속에 숨어있던 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를 본 조셉이 언성을 높였다.

[곤잘레스! 이런 짓을 하고도 네가 무사할 줄 알았나?!]

[당신은 인생을 낭비하고 있어. 안주하는 자는 퇴보하기 마련이고 지금이 바로 그 순간이다.]

조셉은 대꾸하지 않고 곤잘레스를 향해 능력을 전개했다. 하지만 그의 능력은 곤잘레스에게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했다.

조셉은 멀쩡한 곤잘레스의 얼굴을 보며 그의 허리에 채워져 있는 초능력 확장장비를 발견했다. 거기서 방사된 중화 영역이 조셉의 능력을 중화시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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