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전생-더 빌런 322화
30-요하네스 발푸기스
[그래서 당신은 이경완이 맞습니까?]
경완은 고개를 끄덕이며 헬멧을 벗었다.
나바하 루롱은 경완의 얼굴을 확인하더니 안심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당신이 반드시 알아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고작 그걸 위해서 이 큰일을 벌인 겁니까?]
경완이 입을 열었다. 어디에 마이크라도 설치된 것인지 나바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경완이 다시 물었다.
[무엇을 알려주고 싶은 건데요?]
[요하네스 발푸기스는 미쳤습니다.]
그 말에 경완은 고개를 갸웃했다. 요하네스가 좀 이상한 사람이기는 하지만 비범하다면 비범했지 미친 사람으로 보이진 않았기 때문이다.
경완의 반응에 나바하는 말을 이었다.
[평양 대폭발의 원인이 정말 어떤 알 수 없는 초능력자가 벌인 사고라고 생각하십니까?]
그 말에 모니터를 보던 경완의 시선이 아래로 내려왔다. 그 시선에 CN폭탄이 든 상자가 들어왔다. 잠깐이었지만 굳은 그의 눈꺼풀은 한 번도 깜빡이지 않았다.
나바하가 말을 이었다.
[맞습니다. 코리아 남북통일의 시발점이 된 평양 대폭발의 본질은 바로 그 CN폭탄으로 일으킨 테러입니다.]
[…….]
경완은 할 말을 잊었다. 그 사건이 위버멘쉬, 아니 요하네스가 저지른 짓이라고?
대체 왜?
“Why?”
[미친 인간의 속내를 제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경완은 혼란한 정신을 붙잡고 물었다.
[아무튼, 그래서 저걸 훔쳤다?]
[미친놈의 손에 그걸 놔둘 순 없으니까요. 저걸 만들 수 있는 능력이 담긴 코어도 빼냈습니다. 미친 총수가 더 이상 CN폭탄을 만들지 못하게 해야 하니까요.]
[그 코어는 나한테 있는데요.]
[예상했습니다. CN폭탄과 CN폭탄을 제조할 수 있는 기술 중 뭐가 중요한지는 누구나 예상 가능하니까요. 연구소가 습격당했다는 말을 듣고 바로 준비한 덕분에 이렇게 당신과 대화할 기회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역시나 요하네스는 당신 외에는 달리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없었던 모양입니다. 그는 그런 인간입니다. 타인을 믿는 척하기만 하는 인간.]
[이런 사실을 밝히는 이유가 뭔가요?]
[…….]
경완의 질문에 나바하는 잠시 침묵하다가 물었다.
[그 미친 인간에게 코어를 돌려줄 생각입니까?]
[당신의 말이 사실인지 확인이 안 되니까요.]
화면이 아니라 실제로 만났다면 나바하가 거짓말을 하는지 아닌지 확인할 수 있었을 것이다.
경완의 말에 나바하는 이렇게 대꾸했다.
[그럼 그 당사자에게 물어보시죠. 당신에겐 거짓말을 가려내는 능력이 있지 않습니까?]
이렇게까지 말한다는 건 적어도 평양대폭발의 배후에는 요하네스가 있다는 건 확실한 모양이었다.
대답 없는 경완을 향해 나바하는 비틀린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어차피 그는 당신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을 테니까요.]
[그걸 어떻게 압니까?]
[당신에 대한 그의 기이할 정도의 집착에 대해서는 자각하고 있습니까?]
물음에 대해 물음으로 답변받자 경완은 입을 다물었다. 요하네스가 경완에게 보인 그 기묘할 정도로 이유 모를 호의에 단순히 경완이 뛰어난 초능력자라는 것 외에 다른 이유라도 있다는 말인가?
[그 이유를 알고 있다는 뉘앙스로 들립니다만…….]
[안다면 당신과 이렇게 접촉했을 리가 없죠. 그거 아십니까? 처음에 저흰 발푸기스 총수가 당신의 바지사장인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두 사람 사이를 파 봐도 도대체 무슨 관계인지 알 수가 없었죠. 오히려 이쪽에서 묻고 싶습니다. 총수와 무슨 관계입니까?]
[어……. 그쪽에서 일방적으로 호의를 베푸는 관계?]
[이상하다는 생각은 못 하셨나요?]
[했죠.]
[이유는 물어봤습니까?]
[제가 들은 답변이 당신이 아는 것과 다를 건 없을 것 같은데요.]
이경완은 매우 가치 높은 초능력자라서 그만한 대우를 해주는 것이라는 그런 이야기 말이다.
하지만 나바하는 회의적인 태도로 되물었다.
[그의 말을 믿나요? 당신이 최고의 인재라는 게?]
[어……. 총수는 예지능력자 아니었나요?]
경완은 겸연쩍게 볼을 긁적이며 대꾸했다. 솔직히 본인의 입으로 나 무한전생자요~라고 밝히는 것은 좀 거시기 하지만 예지능력자가 보장한다는 거 자체가 그럴싸하지 않은가?
나바하는 경완의 말에 이렇게 단언했다.
[총수는 예지능력자가 아닙니다. 그가 놀라운 식견을 보여준 것은 사실이지만 실패한 일이 얼마나 많은지 아십니까?]
[모르죠.]
[……많습니다.]
[알겠어요.]
경완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속으로는 의아함이 계속 샘솟았다. 그럼 요하네스라는 사람은 도대체 어떤 사람인가?
그때 아련하게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핵기지의 누군가가 뭔가 수상한 정황을 발견한 모양이었다.
경완은 CN폭탄이 든 컨테이너 박스를 들며 화면 너머의 나바하에게 인사했다. 기폭 시스템은 경완이 손을 얹은 순간 잘려서 무력화되었다.
[전 그럼 이만 가볼게요.]
[그가 평양대폭발의 범인인 걸 확인하면 절대,]
[아유~ 당연하죠. 걱정하지 마세요.]
경완은 손을 내저으며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
돌아가는 건 어렵지 않았다. 밤이라는 시간대로 험한 지형을 이용해 추적을 뿌리친 후에 웜홀로 도망치면 되니까.
태평양 연구기지로 돌아간 경완은 바스티앙의 사무실로 향했다.
[성공했군요.]
[네, 저기 바스티앙 씨. 잠시 총수님이랑 단둘이 면담을 좀 해야 하는데요.]
경완을 반갑게 맞이하던 바스티앙은 그의 친절한 말에 든 뼈에 ‘뭐지?’라는 표정을 지었지만 금방 자리를 비켜주었다. 이란 핵기지에서 경완과 나바하가 나누던 대화는 지하에 있었기 때문에 바스티앙은 듣지 못했다.
그가 나가자마자 경완은 초능력을 전개해 방안을 틀어막았다.
“저.…… 총수님.”
“누군가에게서 어떤 이야기를 들은 모양이군요. 혹시 나바하?”
경완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이야기를 들었나요?”
“평양대폭발이요.”
“혹시 제가 범인이라던가요?”
“네.”
“그렇군요.”
요하네스는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맞습니다. 제가 그랬습니다.”
“…….”
신체 반응을 보니 진실을 말하고 있었다.
“왜요?”
“음……. 솔직히 제가 정청완 준장의 쿠데타에 도움을 준 것과 같은 맥락이랄까요?”
“절 위해서라고요?”
요하네스는 고개를 끄덕였고 경완은 나바하가 말한 ‘미쳤다’라는 것의 의미를 피부로 느꼈다. 확실히 요하네스는 어딘가 뒤틀려있었다.
“세계평화를 추구하신다고 하셨잖아요. 평양에 그런 짓을 한 게 어떻게 세계평화에 기여를 할 수 있죠?”
“아. 음……. 이걸 어디서부터 말해야 하나……. 제 세계평화의 청사진의 중심에는 이경완, 당신이 있기 때문이랄까요?”
경완은 다시 할 말을 잃고 눈을 껌벅였다. 필리핀에서부터, 이란, 태평양까지 정신없고 그 맥락을 이해할 수 없는 일의 연속이었다.
뜬금없이 세계평화의 청사진에 왜 자신을 집어넣는단 말인가?
“저 그런 거 싫은데요.”
그 말에 요하네스는 진지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경완 씨 혹시 앞으로 좀비헐크마약 같은 일이 또 없을 거라 생각하십니까? 수중에 있는 그것들도 제가 아니면 개발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초능력 공학은 이제 막 태동했고, 온갖 위험 가능성이 산재했지만, 그 어느 나라도 중단할 생각은 없었다. 초능력 공학이 적용된 무기체계 연구를 포기할 나라도 없었다.
우라늄의 평화적, 깨끗한 사용을 위한 연구는 명분조차 좋았으니, CN폭탄 기술이 다른 곳에서 등장하는 건 어쩌면 시간문제였다.
과거 산업혁명기, 뭐가 유해한지 무해한지 모르고 이익이 된다면 뭐든 개발하고 배출하던 시기처럼, 지금의 인류 역시 그럴 기미를 보이고 있었다.
“그래서 달라고요?”
“아니요. 그딴 거 지금 당장 부숴버리셔도 좋습니다. 그딴 것보다 세계평화가 더 중요하니까요. 경완 씨. 제가 해드릴 수 있는 말은, 그 정도 수준의 위기가 앞으로도 계속 있을 거라는 겁니다. 예방도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아요. 예방도 불구하고 사건이 터졌을 때, 그것을 수습할 능력자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장담하건대, 그 책무는 결코 편하지도, 즐겁지도, 영광되지도 않을 겁니다.”
“그걸 제가 한다?”
“네. 진지하게 대답해 주세요. 경완 씨는 세계멸망의 위기 앞에서 잠자코 계실 겁니까?”
그 질문에 경완은 잠깐 눈을 감았다. 미연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래, 뭐 힘들고 귀찮지만 해도 되겠지. 결국 하게 되겠지.
“아마…… 나서겠죠?”
“진심이십니까?”
“네.”
“정말요?”
“네.”
“후회하실 수도 있는데요?”
요하네스는 마치 맹세라도 시키려는 듯이 물어댔고 경완은 짜증내며 대답했다.
“아! 후회 좀 할 수도 있죠. 그렇다고 안 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면서요? 그보다. 어떻게 평양대폭발 사건이 세계평화로 이어질 수 있는지부터 이해시켜 주시죠?”
그 찜찜함을 털어내지 않는 이상 요하네스와 거리를 두고 싶어질 테니까.
요하네스는 담담한 어조로 설명했다.
“당연한 국제 역학적 관계의 귀결이죠. 북한을 무너뜨리지 않으면 중국이 북한을 지렛대로 삼아서 동아시아 전쟁이 일어났을 테니까요.”
초능력 시대에 국력은 곧 초능력자고, 단일국가로 가장 많은 인구를 가지고 있는 중국의 초능력 자원은 미국조차 능가할 것이 뻔했으며, 그로 인한 자신감은 중국에게 세계 패권 국가로서의 발걸음을 성큼 내딛게 할 것은 당연했다.
그 와중에 미국에 붙어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 작은 반도 국가의 사정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 결과가 제2의 한국전쟁이 된다고 해도 중국이 과거의 치욕을 되갚아주고 세계의 패권국가로서 우뚝 설 수 있다면 제2가 아니라 제3, 제4의 한국전쟁도 일으킬 수 있으리라.
“그 전쟁은 세계대전으로 번질 가능성이 상당히 높지만 거기까지 가기도 전에 남한은 휩쓸렸을 겁니다.”
경완은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러니까 본인의 세계평화에 이경완이 필요하고, 그래서 그에게 해가 되는 것들을 미리 치워버렸다? 평양의 수백만을 죽이면서?
경완은 거기서 기묘한 광기를 느꼈다. 침착하게 미쳐버렸달까? 나바하의 말대로 요하네스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는 단순히 세계평화라는 대의에 집착하는 미친놈이 아니었다. ‘이경완이 중심이 되는’ 세계평화라는 대의를 위해서 수백만 명도 핵폭탄으로 죽일 수 있는, 아니 이미 죽인 미친놈이었다.
경완이 인연을 끊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는 와중에도 요하네스의 설명은 이어졌다. 어딘가 기묘하게 후련해하기도 하고 즐거워하기도 한 기색이 묻어났다.
“경완 씨가 중국에서 어그로를 끌어준 덕분에 일을 저지르기 훨씬 수월했지 뭡니까.”
중국이라…… 경완의 머리에 떠오르는 사건이 있었다.
“서울 대참사는요? 예견했나요?”
“설마 경완 씨는 아직 저를 예지능력자라고 생각하고 계시는 겁니까?”
“아니라고 하기엔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너무 많잖아요. 가령 좀비헐크마약 같은 거요.”
“…….”
요하네스는 잠시 말이 없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웃기 시작했다.
“풉! 하하! 하하하하! 하하하하하!”
광기마저 느껴지는 웃음소리에 경완은 진짜 미쳤나? 손절해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했다. 하지만 위버멘쉬 총수의 도움이 없다면 그가 말한 세계적 위기를 경완 혼자 수습하기는 정말 어려울 것이다.
한참이나 웃던 그는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설마, 오늘 이거까지 다 밝히게 될 줄은 몰랐는데. 음……. 경완 씨. 예지능력자가 아니라면 어떤 능력자가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일까요?”
그 질문에 경완의 머리엔 심심할 때 보던 웹소설 내용이 떠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