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전생-더 빌런 325화
30-요하네스 발푸기스
“아니요. 조금 바빴어요.”
김준은 대꾸하는 경완의 표정에서 그의 분위기가 조금 바뀐 것을 인지했다. 아무래도 김준이 방문한 것이 의례적인 안부인사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렸기 때문일까? 그게 아니라 요하네스와 나눴던 대화 때문이었지만 김준이 알 수 있는 내용은 아니었다.
아무튼, 그런 경완의 태도에 김준은 입맛을 다시며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괜히 이빨 까봤자 경완의 심기만 자극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여전히 시사에 관심은 두고 계신가요?”
“뉴스는 챙겨보고 있죠.”
한국 뉴스야 여전히 정청완 중장 죽어라, 쿠데타 정권 실패하라며 저주를 퍼붓고 있기는 하지만 어차피 경완이 챙겨보는 건 외신뿐이었다.
“그럼 위버멘쉬 아메리카와 전미초능력 협회가 곧 통합할 거라는 뉴스도 보셨겠네요.”
“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김준의 조심스러운 질문에 경완은 어깨를 으쓱했다.
“별생각 없는데요?”
“경완 씨. 그동안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살아오셨지만, 당신은 미국적자입니다.”
“그렇기는 하지만 정말 별생각이 없는데요?”
경완은 난감해하는 김준의 표정에 말을 이었다.
“혹시 그 통합에 어떤 태도를 보여야 하는 건 아니죠?”
“기왕이면 긍정적이셨으면 좋겠습니다만…….”
“그게 긍정적일 수 있어요? 그나마 위버멘쉬 아메리카랑 전미 초능력 협회로 나뉘어서 서로 경쟁하는 구도였는데 통합을 해버리면 정부 입장에선 슈퍼갑이 등장한 거나 다름없잖아요.”
“그럼 부정적으로 보시는 겁니까?”
“능력 있는 초능력자일수록 정부의 간섭에서 벗어나기 쉬울 테니 나쁜 것만은 아니죠.”
경완의 대답에 김준은 화색이 되어서 말을 이었다.
“그럼 기왕 이렇게 된 거 미국 협회에 소속되시는 건 어떻습니까?”
“미국 협회라면 곧 통합해서 새로 생길 협회요?”
“네.”
김준이 고개를 끄덕이자 경완은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김준은 그 이유가 궁금했다.
“이유를 알 수 있겠습니까?”
“일단 어디에 소속된다는 거 자체가 싫고요, 내 위에 누군가 내게 명령을 내릴 수 있는 구도가 마음에 안 들고요, 그리고 그 새로 생긴다는 협회가 좀 구려요.”
“어디가 구리다는 말씀이세요?”
“냄새가 구려요.”
“아니, 경완 씨가 잘 모르셔서 하시는 말씀인데 새로 설립될 협회는 여태까지와 다르게 매우 투명하게 운영될 예정입니다.”
경완은 김준의 진땀뺀 옹호는 한 마디로 일축했다.
“그건 알 수 없는 거죠. 권력이 집중되는 곳에 잡놈들도 기웃거리는 건 당연한 현상이거든요. 그리고 마지막 이유도 있어요.”
“뭔가요?”
“앞으로 제가 큰일을 해야 할 것 같아서요. 그 협회라는 곳이 제 밑에 들어오는 거라면 몰라도, 제가 들어가는 건 좀…….”
경완이 말꼬리를 흐리자 김준이 초조한 표정을 지었다.
“경완 씨. 지금 그런 나이브한 생각을 가질 때가 아닙니다. 지금 위버멘쉬는 심각한 위기에 처했어요.”
“그거 혹시 우라늄 관련 이슌가요?”
“어떻게 아셨습니까?”
김준의 표정이 심각해졌고 경완은 미국에서 일어난 급변의 원인을 짐작할 수 있었다.
반(反) 총수 세력이 우라늄 변성 기술에 대한 정보를 유출했고, 이로 인해 위버멘쉬에 대한 견제가 필요해진 상황에서 위버멘쉬 아메리카가 떨어져 나가는 건 위버멘쉬의 명성에 타격을 주기에 충분했으니까.
일단 벌을 주고 싶어도 그 영향력을 깎아놔야 사회전반에 혼란이 덜하다는 계산에서였을 것이다.
경완은 솔직하게 대답했다.
“저도 관련되어 있거든요.”
“어찌된 일인지 말씀해주실 수 있습니까?”
“에…… 그러니까.”
위버멘쉬는 우라늄 관련해 위험한 초능력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었고, 내부 배신자에 의해서 그것이 유출되었으며, 그것을 회수하는 과정에서 경완이 도움을 주었다는 사실을 김준에게 설명했다.
“제가 아는 사실과는 좀 다릅니다만…….”
“혹시 위버멘쉬가 핵무기를 비축하고 있다 그런 소리라도 들었나요?”
“……아닙니까?”
“이야 진짜 그런 이야기가 있나보네요.”
“정말 사실입니까?”
“그건 저도 모르죠. 위버멘쉬는 비밀이 많으니까요.”
다만 적을 악마화하는 것만큼 이쪽을 규합하고 반대 의견을 억누르기에 좋은 방법도 없었다.
“그런데 위버멘쉬가 핵무기를 확보해서 어디다가 쓰려고요? 세계 정복이라고 한 대요? 그거 참 시대착오적이네요. 그리고 대놓고 그럴 정도로 총수가 어리석지도 않을 텐데요?”
“하지만 아니 뗀 굴뚝에 연기가 난다고, 괜히 그런 소문이 나올까요?”
김준이 심각한 표정을 물어보는데 심히 조국을 믿고 싶은 모양이었다.
“왜 이러세요, 아마추어 같이. 그래서 이라크에 대량살상 무기가 있었던가요?”
“…….”
“어떤 소문은 진실한 이유를 가리기 위해서 퍼지기도 하죠.”
“이 일을 정부가 시작했다는 겁니까?”
“글쎄요? 분명 요하네스 총수가 빌미를 주기는 했죠. 하지만 생각해봐요. 예지 능력자라고 소문이 퍼질 정도로 용의주도한 그가 과연 아무 생각 없이 미국의 심기를 거스르는 짓을 했겠어요?”
요하네스가 일이 이렇게 진행되는 동안 왜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는지, 그 의중을 알 순 없지만, 그 수중에는 아직 공개되지 않은 카드가 있다는 것만은 분명했다. 그렇지 않고서는 저렇게나 아무런 액션을 취하지 않을 리가 없으니까.
김준은 경완의 말을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그런 이야기를 이렇게 해주셔도 됩니까?”
“딱히 하지 말라는 부탁도 안 받았는걸요? 아마 지금 상황도 총수의 머릿속엔 있는 거 아닐까요?”
“그럼 그 의도는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경완은 요하네스의 목적과 행동이유를 고려해봤다. 그가 미국에서 일어나는 일을 방치하는 건 그것이 그에게 나쁘지 않는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아마 엿먹어보라고?”
“네? 총수가 엿을 먹겠다는 겁니까?”
“아니요. 미국 엿먹으라고요.”
김준은 고개를 갸웃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 벌어지는 일은 위버멘쉬에 불리하면 불리했지 미국에 불리하진 않기 때문이었다.
그런 그에게 경완은 말을 이었다.
“불장난을 하면 불이 나는 게 세상 이치죠.”
“그게 무슨…….”
“미국도 로비가 활발해서 초능력 공학의 적용에 대한 규제안이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다면서요? 그 뒤에 누가 있을 지는 뻔하죠.”
“으음…….”
“한 번 사고가 크게 터진 후에야 부랴부랴 수습을 시도하겠죠.”
“그럼 위버멘쉬 총수는 그런 일이 터지길 기다리는 겁니까?”
경완은 ‘아마도?’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김준이 조심스럽게 다시 질문했다.
“혹시 위버멘쉬에서 그런 사고가 일어나도록 일을 꾸미지 않을까요?”
“위버멘쉬 총수가 그런 병신짓을 할 리도 없지만, 설사 그런 일이 있다고 해도 못 막으면 제가 미국에 상당히 실망을 할 것 같은데요.”
국제사회에선 당한 놈이 잘못이라지 않은가?
억울하지만 국제 사회의 생리가 그렇다. 그렇다고 미국이 없어져야 할 놈인가라고 하기도 그렇다.
미국이라는 깡패가 사라지면 주변국이 다 깡패가 되려고 엉덩이를 들썩일 텐데, 그렇게 되면 깡패가 한 명에서 여럿이 될 뿐이다.
약소국 입장에선 치사하고 더러워도 미국이 짱 먹고 있는 편이 최선, 아니 차악이었다. 잔인한 현실에서 필요악은 부정할 수 없는 실제였다.
김준은 경완의 말에 민망한 표정과 심각한 표정을 오가며 마지막으로 물었다.
“경완 씨. 만약 미국과 위버멘쉬가 충돌한다면 누구 편을 드시겠습니까?”
“안 싸우고 서로 친하게 지냈으면 좋겠는데……. 괜히 중간에 끼인 사람만 민망하잖아요.”
“그 의견도 전달하겠습니다.”
김준이 고개를 푹 숙이자 경완은 입을 열었다.
“착한놈 편들 거예요.”
“네?”
“의외죠?”
“……네.”
경완의 말에 김준이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예상한 대답은 ‘센놈. 이기는 놈 편’을 예상했는데 갑자기 착한놈 편을 들겠다니?
경완이 말을 이었다.
“제가 아까 말했잖아요. 큰일을 할 예정이라고요.”
“어……. 혹시 무슨 일인지 알 수 있겠습니까?”
“세계평화요.”
경완의 대답에 김준의 표정은 마치 사흘 묵은 똥무더기가 쌓여 있는 것을 목격한 환경미화원 같은 표정이 되었다.
* * *
김준은 경완을 새로 만들어질 미국의 협회에 가입시키려고 찾아왔지만 실패했다.
하지만 소득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는 경완의 불길한 예상은 물론 달라진 태도, 혹은 방침에 대해서 누구보다 빨리 미국 상부에 전달할 수 있었다.
유유자적 안빈낙도를 추구하던 경완이 어째서 심경에 변화를 일으켰나도 중요한 문제지만 당분간 그의 변한 방침이 미국의 국익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예측하는 것도 문제였다.
경완이 말하길 앞으로 착한놈 편을 들어줄 생각이라지 않은가? 그럼 그의 입장에서 미국은 편을 들어줄 만큼 충분히 착한가? 아니라면 어떻게 되는가?
이러한 혼란은 미국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경완의 전언과 결합되어 경완에 대한 우려를 부추겼다. 강경파에선 하루빨리 이경완을 제거해야 할지도 모른다며 공포감을 부추길 정도였다.
미국이 비록 중국과는 다르지만 중국처럼 참수작전을 하겠다고 경완이 미국을 헤집고 다니면? 과연 막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그런 우려가 길어지지 못했다 미국 서부 네바다 주에서 버섯구름이 피어올랐기 때문이다. 그것도 세 번이나.
버섯구름이 피어오른 간격은 약 24시간, 하루 간격이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핵이 세 번이나 터졌을까? 버섯구름을 관측한 각국은 미국이 신형 핵폭탄 실험이라도 하나 생각했지만 상식적으로 생각해 봤을 때 신형 핵폭탄을 한 번에 세 개나 개발해서 연속으로 시험할 리가 없었다.
미국 언론이 네바주의 버섯구름에 관한 뉴스를 퍼뜨리며 불안감팔이를 하고 있을 때 경완은 요하네스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제가 가장 먼저 연락했나요?]
“네.”
경완은 김준이나 국정원 등에서 오는 수신을 일단 보류하고 요하네스와 대화를 이어나갔다.
“역시 미국에서 일이 벌어졌나요?”
[헬라세포에 초능력을 가하는 연구에서 사고가 터졌죠.]
요하네스가 대답했다.
헬라세포. 영향만 공급하면 무한증식하는 특성이 있어서 수십 년간 인류 의학의 발전에 공헌해 온 암세포였다. 이른바 업계표준 암세포랄까?
따라서 초능력 바이오 공학 연구에 있어서 이 헬라세포를 초능력 공학스럽게 가공하는 것은 업계 관계자들에겐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정확히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아십니까?”
[음……. 아마 초능력 헬라세포의 임계점 문제가 아닐까 싶네요.]
S입자를 강제로 주입당한 헬라세포는 원래 그 S입자를 오래 붙잡아두지 못하고 상실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뭐든 임계점을 넘어가면 일이 터지는 법, 일정 공간 안에 S입자가 주입당한 헬라세포가 충분히 많아지자, S입자를 통해 일종의 네크워크를 형성하게 되었고, S입자의 손실이 급격히 줄어들었다.
아마 연구하던 이들 입장에선 쾌재였을 것이다. 초능력 헬라세포를 세상에 선보일 때가 가까워졌으니까. 아마 몇은 노벨상을 받을 꿈에도 부풀었으리라.
하지만 헬라세포는 암세포였다. 에너지원을 흡수해서 무한분열하는 것이 지상과제인 헬라세포에게 주입된 S입자와 이를 통해서 형성된 S입자는 그야 말로 새로운 탄생의 기회나 마찬가지였다.
“그거 정말 위험하게 들리는데요?”
[방치하면 위험하죠. 하지만 치명적인 약점이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걸 아무런 조건 없이 미국에 제공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