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전생-더 빌런 327화
30-요하네스 발푸기스
[첫 핵폭탄을 저놈이 어떻게 견딘 건가요?]
경완의 물음에 발표하던 연구원, 혹은 학자가 말했다.
[그건 알 수 없습니다만, 당시 이미 지하로 뿌리를 뻗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핵폭탄 같은 걸 무지성으로 ‘쓰자!’해서 바로 썼을 리가 없다. 화염방사기도 써보고, 백린탄도 써보고, 황산도 뿌려보고, 갖가지 방법을 동원해 봤지만 도저히 안 되어서 핵폭탄을 쓴 것이 아니겠는가? 그 과정에서 초능력 헬라 세포가 지하로 뿌리를 뻗었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었다.
다른 이가 질문했다.
[혹시 이번에도 적응하면 마치 포자 같은 것을 날리진 않을까요?]
[그건 괜찮습니다. 저 살덩이들이 저런 행동을 보이는 건 S입자의 네트워크가 형성되어서니까요. 물리적으로 잘게 쪼개면 적응력을 잃고 일반적인 헬라 세포로 돌아갈 겁니다. 채취한 샘플의 반응을 보면 확실합니다.]
[그러니까 포자를 형성하거나 파편이 다른 곳으로 날아가서 증식하거나 하는 일은 없을 거라는 거죠?]
[네. 지금은요.]
그래서 지금 당장 일을 시작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여기서 초능력 헬라 세포가 더 변이하기 시작하면 그 결과를 예측할 수 없을 테니까.
경완은 그러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왜 요하네스가 재앙이라고 표현했는지 이해가 되었다. 그리고 한숨이 나왔다. 이런 일이 이번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말 아닌가?
브리핑이 끝난 후 약간의 정비시간이 주어졌고, 경완은 한국에서 챙겨온 스토리지 박스를 열었다. 요하네스가 저번 작전에 선물로 준 TSTG였다.
경완이 그것을 착용하고 있는 걸 본 마이티 가이가 물었다.
[그건 한국 정부에서 준겁니까?]
[위버멘쉬에서요.]
[아. 총수가 당신을 좋아한다는 소리는 많이 들었는데..]
[시선이 왜 그래요?]
[아니, 발푸기스 총수가 동성애자라는 소문이 있어서요.]
[아.]
경완은 황당해졌다. 하긴 요하네스의 회귀 능력과 회귀 전 이경완과의 인연을 모르면 경완에 대한 요하네스 총수의 기이할 정도의 호의에 의문을 가질 만하다. 마이티 가이는 그중에 요하네스 게이설을 믿는 모양이었다.
[아닐걸요?]
요하네스의 성적 취향을 정확히 모르지만, 게이라서 경완에게 호의를 보이는 것은 절대 아니었다.
[총수가 게이가 아니라는 말이죠?]
[그건 모르겠는데 확실한 건 성적 취향과 제게 우호적인 건 관련이 없다는 거죠.]
[그럼 게이일 수도 있다는 말인가요?]
[아니, 몰라요. 그게 그렇게 중요해요?]
[주요인사의 성취향은 매우 중요한 기밀이니까요.]
대꾸하는 마이티 가이의 표정은 진지했고, 경완은 무안해서 입맛을 다셨다.
하긴 미인계는 동서고금을 통틀어 매우 효과적인 전략이었다. 위버멘쉬 총수정도 되면 얼마나 많은 고급정보를 쥐고 있겠는가? 베갯머리 송사로 정보 몇 가닥만 얻어내면 투입한 자원에 대비해 어마어마한 이득을 취할 수도 있었다.
[여하튼 그의 성취향에 대해선 몰라요.]
[당신에게 어필한 적은,]
[아 없다니까요!]
경완이 오만상을 찡그리고 나서야 마이티 가이는 아쉬운 표정으로 물러났다.
[당신하고 무슨 관련이 있기에 그런 걸 물어봅니까?]
경완은 TSTG를 거의 다 입고 핼맷만 옆구리에 낀 상태로 물었다. 마이티 가이가 진지한 표정을 대답했다.
[현재 미국 사회의 물밑에서 벌어지고 있는 거대한 흐름이 있어요. 그 흐름에 영향을 끼치는 주축이 있는데 그중 한 명이 발푸기스 총수입니다.]
[이미 위버멘쉬 아메리카와 전미 초능력 협회가 통합하기로 했잖아요?]
[그렇다고 발푸기스 총수의 영향력이 완전히 삭제되는 건 아니죠. 그리고 그가 가만히 있을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군요.]
경완은 그 얘기를 듣다가 마이티 가이에게 이렇게 물었다.
[당신은 누구 편인가요.]
요하네스의 편이냐 미국 기득권의 편이냐고 묻는 질문에 마이티 가이는 웃으며 대답했다.
[시민들의 편이죠.]
* * *
경완이 TSTG를 착용하고 나올 때쯤 다른 이들도 모두 준비를 갖추고 본격적으로 작전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작전이 군사작전다웠던 건 군용화물선으로 목표 지점에 낙하하기 전까지였다. 염동력자로 구성된 총 22명의 작전인원이 질퍽한 살점의 대지에 착지한 후엔 완전히 3D작업이었다.
힘들고. 더럽고. 어렵고.
인간이라는 양분 덩어리를 발견한 초능력 헬라 세포가 꾸물거리며 일행을 덮으려 다가오고 그걸 초능력으로 밀어내서 막는 와중에 사람만 한 크기의 전략핵을 파묻기 위해 최소 250미터를 땅속으로 파고들어야 했다.
땅도 그냥 땅이 아니었다. 흙과 모래가 점액질의 무언가와 섞여 질퍽이며 흘러내리는 땅이었다. 가만히 있으면 발목이 잠긴 질퍽이는 땅에서 점균이 증식하듯 무언가가 다리를 타고 올라왔기 때문에 수시로 신경을 써줘야 했다.
초능력 헬라 세포가 뿌리를 내린 지점이라 점액질 같은 살덩이들이 더욱 활발하게 움직였다.
경완은 그 일행의 중심으로서 땅을 파내는 일에 전념했다. 은근히 저항력 있는 땅속을 절단 능력으로 파내고 염동력으로 들어내서 뒤로 전달하면 마이티 가이가 그걸 받아서 구덩이 밖으로 던져버리는 식이었다.
구덩이는 점균처럼 꾸물거리며 다가오는 초능력 헬라 세포 때문에 항상 붕괴의 위험이 있었고, 그걸 염동력자들이 염동력으로 밀어내며 붕괴되지 않도록 막아야 했다.
충분한 중량을 버티도록 지속적으로 염동력을 발휘하는 건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었다. 비유하자면 단거리 선수가 마치 중거리나 장거리 달리기를 해야 하는 것처럼 어색한 일이었다.
그간 염동력자들이 맞닥뜨려왔던 문제는 대부분 단기간에 해결되는 경우가 많았으니까.
[젠장! 이건 수당을 더 받아야 돼!]
뒤에서 불만 섞인 소리가 들려오자 마이티 가이가 경완에게 물었다.
[괜찮아요?]
“No!”
괜찮을 리가 있나? 냄새는 불쾌하고 염동력으로 만들어진 장벽 때문에 환기도 제대로 안 돼서 덥기도 하고, 밟는 감각은 물컹하니 기분도 더러웠다.
하지만 경완의 땅 파는 실력은 확실히 남달랐다. S입자 네트워크를 형성해서 그런지 초능력에 묘한 저항력이 있는 초능력 헬라 세포를 섞인 토양을 퍼내는 능력은 경완이 마이티 가이보다 두 배가량 더 뛰어났다.
마이티 가이는 자신도 한 번 파봤지만 경완만큼 효율이 나오지 않아서 그냥 보조 역할로 만족했다. 하지만 보조 역할이라고 해서 만만한 일은 아니었다.
수직으로 파내려간 약 200미터 중 가장 중량을 많이 받는 하부 100미터가량은 마이티 가이의 염동력이 아니라면 버티지 못하고 금방 무너져 내렸을 것이다.
그런 그의 보조 덕분에 경완은 땅 파는 것에 전념할 수 있었고 오래지 않아 초능력 헬라 세포가 파고든 뿌리의 끝에 도달했다.
그 자리에 사람만 한 크기에 단단히 봉인된 스토리지 박스가 놓였다. 스토리지 박스에선 도선이 길게 뻗어나왔는데, 지표면까지 이어져 기폭 신호를 땅속까지 전달하기 위한 안테나에 연결하는 도선이었다.
그렇게 총 세 군데 작업을 완료했다.
이 3D 노동은 초능력에 힘입어 신속하게 끝났지만 그래도 무려 5시간이나 걸렸고, 경완은 기진맥진해졌다.
[왜 그러고 있어요? 구경해야지.]
[뭘요?]
[뭐긴요? 핵폭발이지.]
마이티 가이는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하얀 이가 드러내는 미소를 지으며 엄지를 치켜들었다. 그러면서 경완에게 선글라스를 건네주었다.
경완은 선글라스를 받아들며 대꾸했다.
[이거 느긋하게 구경할 일이 아닌 것 같은데……. 이거 실패하면 X되는 거잖아요.]
[하하하! 긍정적으로 생각해야죠. 그렇게 부정적으로 생각하면 될 일도 안 돼요.]
마이티 가이가 호탕하게 웃었지만 경완은 찜찜했다. 고작 핵폭탄으로 해결되는 문제였으면 이미 앞선 핵폭탄으로 크게 해결되지 않았을까?
그런 불안감을 뒤로하고 경완은 여럿이 구경하러 모인 자리에 끼어서 저 멀리 버섯구름이 피어오르는 것을 보았다.
역시 모니터로 보는 것과 직접 보는 건 현장감 자체가 달랐다. 버섯구름이 피어오르고 가라앉는 동안 바람의 방향이 바뀌는 것까지 느꼈으니 오죽하겠는가?
[작전은 성공했습니다. 약 90% 소각이 완료되었습니다.]
[남은 건요?]
[인력을 투입해야죠.]
하얀 가운을 입은 연구원 대신 군복을 입은 군인이 등장했다.
[반갑습니다. 저는 네바다 주방위군의…….]
무슨무슨 대위라고 자신을 소개한 그는 인근 주방위군의 도움을 받아 점액 지대에 대대적인 화력 투사를 벌일 거라고 했다. 거대한 점액덩어리들을 열압력탄 등으로 파괴하고 남은 잔여물들을 초능력자들과 군인들이 물리적으로 파괴하고 분산하여 소각한다는 것이었다.
경완은 그 얘기를 듣고는 어떤 컴퓨터 게임을 떠올렸다. 끊임없이 번지는 외계 점액질을 디펜스하면서 핵을 파괴는 게임 말이다.
하지만 이건 게임이 아니라 현실이었고 상대는 딱히 핵이라고 할 것이 없는 바이오 해저드였다.
경완은 저 멀리서 들리는 폭압 소리와 항공 영상을 보며 휴식을 취하면서도 왠지 모를 불안감을 느꼈다.
이게 이렇게 결국 해결된다고? 요하네스가 말하기엔 이번 일도 매우 큰 위기라고 하지 않았던가? 경완이 없다면 결국 미국이 요하네스에게 도움을 손길을 내밀 정도의.
경완이 돕긴 했지만, 막상 그가 참여한 작전의 내용을 떠올려 보면 그가 없었더라도 어렵지만 해낼 수 있을 정도의 작전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그 정도 해결책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였던가? 정말로?
이유 모를 찜찜함은 경완을 비롯한 염동력자가 충분히 휴식을 취한 뒤 현장처리를 하러 갔을 때 구체화되었다.
[이거 없어지는 거 맞습니까?]
[계속해서 나오는데?]
염동력자들이 지표면을 점균처럼 덮은 초능력 헬라 세포를 조금씩 떼어내서 뒤쪽에서 시커먼 연기를 내뿜는 간이 소각장에 집어넣고 있었다.
다들 아무리 고기 굽는 냄새라도 그 정도가 심하면 역겹다는 걸 느낄 정도로 끊임없이 살점을 떼어내 간이 소각장에 집어넣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앞으로 진행하던 발걸음이 멈추었고, 작업을 진행하는 초능력자들 사이에 불안감이 퍼졌다. 작업이 앞으로 진행되지 않는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누구보다 현장에 있는자들이 피부로 더 잘 느낄 수 있었다.
다행히 그때 작업을 중지하고 뒤로 물러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베이스 캠프로 돌아간 경완은 하얀 가운의 연구원으로부터 사정을 전해 들었다. 결코 좋지 않은 상황을 전달하는 그의 표정은 어두웠고 얼굴 옆으로 흘러내리는 식은땀을 연신 소매로 닦아냈다.
[……작전은 실패했습니다.]
[이유는?]
팔짱을 낀 마이티 가이가 차가운 어조로 물었다. 무려 전략핵 3발을 땅속 깊이 묻어 뿌리부터 제거했는데 실패란다.
[초능력 헬라 세포의 에너지 흡수능력이 너무 뛰어납니다.]
[그래서요?]
[전략핵이 뿜어낸 열에너지의 상당량을 흡수해서 급속도로 세포분열을 하고 있습니다.]
[그럼 저것들을 날려버리려면 더 많은 핵이 필요하다는 말이군여.]
[……그렇습니다.]
[그럼 어서 가져와야지 뭐하고 있습니까?]
[어…… 그게 저…….]
마이티 가이의 말에 연구원은 눈 딱 감고 대답했다.
[그건 제 권한이 아닙니다.]
[음. 대통령의 권한인가? 내가 직접 연락하죠.]
마이티 가이는 곧장 핸드폰을 꺼내 백악관으로 연락했다. 미국의 S급 초능력자 정도 되면 미대통령 직통 번호 하나쯤은 가지고 있는 게 당연했다.
경완이 옆에서 마이티 가이가 쏼라쏼라 정황상 미대통령으로 보이는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었다.
하지만 그의 표정은 점점 굳어졌다. 아마 생각처럼 일이 진행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전화를 끊은 마이티 가이가 경완을 보며 말했다.
[위버멘쉬가 도와준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