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전생-더 빌런 328화
30-요하네스 발푸기스
[아.]
역시. 이렇게 쉽게 끝나지 않을 줄 알았다.
아마 미국 정부는 더 많은 전략핵을 동원하는 것에 심각한 정치적 부담을 느꼈을 것이다. 이미 여섯 발의 핵을 사용한 상황이지 않은가? 그것도 미국 본토에.
아무리 사람이 살지 않는 곳이라고 하지만, 그리고 예전부터 핵실험으로 활용해 왔던 지역이라고 하지만, 그래도 핵을 여섯 발이나 동원하고도 작전을 실패했다는 건 정권의 입장에선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아마 미대통령은 확실한 100%는 아니라도 99.9%쯤 이 상황을 수습할 수 있는 방법을 필요로 했고, 이때 위버멘쉬가 손을 내밀었다면 거부하기 힘들었을 터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군용 수송 헬기 몇 대가 경완이 있는 베이스 캠프에 도착했다.
[많이 기다리셨습니까?]
수송 헬기에선 요하네스가 내렸다.
경완은 그를 보며 쓴 미소를 지었다.
[직접 올 줄은 몰랐는데요?]
[실무적으로는 올 필요 없었지만 정치적으로는 방문할 필요가 있었죠.]
위버멘쉬의 총수가 이 사태에 직접 나서서 해결에 도움을 줬다는 건 분명 정치적으로 작지 않은 의미였다. 미국 정부와 뒤에서 어떤 이면 합의를 나눴느냐 만큼이나 말이다.
그래서 그런지 요하네스는 단신으로 오지도 않았다.
[이번 일에 도움을 주실 분들입니다.]
요하네스의 뒤로 슬라브 계열의 백인들이 나열했다. 그중 한 명은 경완도 알고 있는 얼굴이었다. 과거 러시아의 빌런을 잡는 일에서 같이 행동했던 러시아의 초능력자 미하일이었다.
[아……. 그러니까.]
[미하일입니다.]
[아, 미하일 씨 오랜만입니다.]
미하일은 자신의 이름을 바로 떠올리지 못하는 경완에게 자신의 이름을 알려주며 악수를 나누었고, 그제야 경완은 그의 능력이 신체강화계열과 파이로키네시스였던 것을 기억했다.
[어떻게 도움을 주실 겁니까?]
마이티 가이의 질문에 요하네스는 브리핑을 시작했다.
내용은 간단했다. 기온을 낮춰서 초능력 헬라 세포의 활성을 멈추고 그동안 초능력 헬라 세포를 제거하는 작업을 하겠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러시아에서 냉기 관련 능력자들과 냉기 능력을 사용할 수 있는 초능력 확장 장비까지 대거 준비해 왔다.
[다행히 미국의 사전 작업 덕분에 단기간에 끝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니었다면 더 많은 시간과 더 많은 자원이 필요했겠죠.]
요하네스는 미국이 전략핵 3발을 사용해 초능력 헬라 세포를 대거 소각한 공을 언급했다. 그런 발언은 미국 정부에게 체면을 세울 기회를 주는 것이었다. 아마 백악관과 사전에 교감이 된 발언이지 않을까?
브리핑이 끝나자 경완은 미하일과 같이 움직였다. 이는 요하네스가 특별히 요청한 사항이었다. 만일의 상황이 발생할 때 둘이 같이 있어야 해결이 가능할 거라고 말이다.
경완은 미하일이 입은 TSTG를 보면서 물었다.
[그 TSTG도 특별품인가요?]
[아니요.]
[이번 작전을 위해서 특별히 냉기를 뿜어내는 능력이 탑재되지 않았다는 건가요?]
경완이 무엇을 묻는지 깨달은 미하일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이제 제 능력은 단순히 파이로키네시스가 아닙니다. 써모키네시스가 되었죠.]
온도조절 능력자. 미하일은 열에너지의 흐름을 조작함으로써 단순히 불이나 플라즈마를 일으키는 능력을 벗어나 일정 영역의 분자운동에너지를 빼앗는 능력을 ‘개발’해 냈다.
[위버멘쉬의 전폭적인 협력 덕분이라고 할까……. 아니었으면 제 능력이 이렇게 발달하진 못했을 겁니다.]
왠지 씁쓸해하는 기색에 경완이 물었다.
[원해서 한 일이 아닌가요?]
[처음은 원해서 한 일이 맞습니다. 하지만…… 힘들었어요.]
멍한 표정으로 허공을 올려다보며 그 시절을 떠올리는 미하일을 보며 경완은 군대 PTSD를 가진 한국 남자들이 매우 공감할 것 같은 표정이라고 생각했다.
미하일이 말을 이었다.
[뭐 그래도 그 역경을 견뎌낸 덕분에 지금의 제가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능력이 발달한 덕분에 러시아 내에서도 매우 대접받는 위치에 있다며 미하일은 미소를 짓다가 이렇게 말을 이었다.
[발푸기스 총수님께서 저희 둘을 같이 움직이게 한 이유가 혹시 짐작되십니까?]
경완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미하일 씨의 능력을 카피하라는 거 아닌가요?]
[맞습니다.]
[하지만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요? 카피를 한다고 해도 당장 미하일 씨만큼 능숙하게 사용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요.]
그 말에 미하일은 어깨를 으쓱했다.
[저야 부탁받은 대로 할 뿐입니다. 그리고 경완 씨의 반응을 보니 과연 총수님이다 싶어요.]
[왜요?]
[경완 씨가 그런 의문을 품는다면 이렇게 전해달라고 하시더군요. 이게 다 미래를 위한 일이라고요.]
그 말에 경완은 미간을 찌푸렸다. 뭔가 책임이 떠넘겨지는 느낌이랄까? 만일에 돌발상황이라도 발생한다면 그걸 수습할 사람이 자신뿐이라는 뉘앙스로 들렸다.
원치 않게 떠넘겨지는 책임감이 마음에 들진 않았지만, 그래도 수용하기로 마음을 먹었기에 경완은 미하일이 능력을 사용하는 걸 집중해서 관찰했다.
요하네스가 러시아로부터 데려온 초능력자들과 냉기 능력이 탑재된 초능력 확장 장비가 투입되었지만 하는 일은 비슷했다. 냉기로 초능력 헬라 세포의 증식과 활동을 억제한 상황에서 그것을 일정량 떼어내 소각해 버리는 것이다.
초능력 헬라 세포를 떼어내 소각하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았다. 다만 그 과정에서 헬라 세포의 증식속도를 억제하는 것이 중요했고, 여기에 요하네스가 데려온 러시아의 냉기 능력자와 냉기 능력 전용의 초능력 확장 장비는 굉장히 효과적이었다.
초능력 헬라 세포의 증식 속도가 소각 속도를 따라오지 못하고 점점 그 면적이 줄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경완은 환희에 차서 작업 진행률을 보고하는 연구원의 목소리를 무전으로 들으면서 속으로 혀를 찼다.
다시 핵을 써야 하나 고민하는 미국에게 요하네스가 내민 솔루션은 그야말로 완벽했다. 초능력 헬라 세포의 약점이 냉기였다니? 이러니 예지능력자라는 소리가 안 나올 수 있겠는가?
작업은 착오나 애로사항 없이 착착 진행되었다. 특히 미하일의 활약이 빛났는데 초능력 헬라 세포로부터 빼앗은 열량을 한곳으로 집중하는 방식으로 초능력 헬라 세포의 증식을 막는 동시에 소각 작업도 동시에 이뤄내는 식이었다.
출력도 좋아서 그의 업무처리량은 다른 사람의 두세 배는 넘을 정도였다.
경완은 그의 능력을 관찰하면서 써모키네시스의 S입자 구성체를 파악하고 그 작동 과정을 습득했다.
미하일의 써모키네시스는 단순히 열운동량을 이동시키는 것만이 아니라 S입자를 적극적으로 소모해 열운동량 자체를 증가시키거나 감소시킬 수도 있었다.
마치 연료를 소모해 온도를 빠르게 높이는 것처럼 미하일의 써모키네시스는 S입자를 소모해 그 반대의 일을 할 수 있었으니, 대상을 얼리고 가열하는 것에 대상의 열전도도나 열용량은 큰 문제가 아니었다.
침투시킨 S입자 자체가 열전도의 매개체이자 열역학 제2법칙을 위반하는 연료로써 작동했기 때문이다.
미하일의 써모키네시스 능력을 복사한 경완은 이내 주변의 초능력 헬라 세포를 대상으로 연습을 시작했다.
미하일은 출력은 약하지만 주먹만 한 살덩이를 떼어내 태우는 경완의 모습을 보며 감탄했다.
[정말이지 사기적인 능력이네요.]
[쉽지 않았어요. 생각보다 더 복잡한 능력이네요.]
S입자를 침투시키며 공간을 점유하고 그 공간에 존재하는 입자들과 상호작용하여 에너지의 흐름을 제어하는 능력의 난이도가 쉬울 리 없었다.
미하일과 경완의 3D 노동은 하루 온종일 이루어졌다. 아침이 되어 해가 떠오르고 나서야 작업이 끝났고 모두는 쓰러질 듯 잠이 들었다.
그들이 충분히 휴식을 취하고 오후쯤 일어났을 때는 현장을 면밀히 조사한 연구원이 환영할 소식을 전해왔다. 이 거지 같은 사건이 정말 종결되었다고 말이다.
에스퍼 다수를 동원해 땅속까지 초능력 헬라 세포 덩어리들이 남아 있는지, 혹시 증식하고 있는 것은 없는지 확인한 결과였다.
“정말 끝난 거예요?”
“네.”
경완의 물음에 요하네스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죠?”
“왜 믿지 못하세요?”
“미하일 씨에게 저를 붙여서 능력을 카피하게 시킨 것도 돌발상황을 우려해서잖아요.”
“하하. 보험은 언제까지나 보험입니다. 보험 받을 일이 없는 게 최고죠. 다행히 이번엔 별일 없이 넘어갔군요.”
요하네스는 주변을 살피며 듣는 귀가 있는지 확인하더니 조용히 회귀 전 있었던 초능력 헬라 세포 사건을 거론했다.
그때도 헬라 세포에 S입자를 주입하는 실험이 있었고 이번과 거의 동일한 사건이 유럽에서 벌어졌다.
독일 동북쪽에 있던 어떤 민간 연구소에서 초능력 헬라 세포의 폭주가 일어났고, 그 여파는 인근 도시 절반을 덮었다. 민간인들이 많은 지역이었기 때문에 미국처럼 바로 핵을 사용하진 못했지만 그래도 핵 사용까지 진지하게 논의되었다.
하지만 다행이랄까, 지구 이상 기온 현상 때문에 전년도보다 빨리 찾아온 한파(寒波)가 초능력 헬라 세포의 증식을 멈추었다.
그리고 그 틈에 급히 초능력자들과 병사들을 대거 동원해 초능력 헬라 세포를 소각해 버렸고, 유럽과 세계는 위기를 벗어났다.
이상 증식하는 초능력 헬라 세포의 약점이 냉기라는 걸 요하네스는 이때의 경험으로 알게 된 것이다.
“유럽에서 벌어졌다던 일이 왜 미국에?”
“헬라 세포에 S입자를 주입하는 연구는 한두 곳에서 벌어진 일이 아닙니다. 어디서 문제가 벌어지는지는 그저 확률적인 문제죠. 저는 다만 미국 이외의 지역에서 이런 일이 일어날 가능성을 조금 낮췄을 뿐입니다.”
“어떻게요?”
그 질문에 요하네스는 대답하지 않고 미소만 지었다. 경완은 그 미소에서 그 방법이 적법하지만은 않았다는 걸 느꼈다. 몰래 연구소 사보타주라도 했나?
요하네스는 경완의 시선에 헛기침을 하며 화제를 돌렸다.
“아무튼 이걸로 전 세계가 주의할 겁니다. 이번 같이 초능력 헬라 세포의 임계점 문제가 다시 일어나기는 힘들겠죠. 그나저나 변이가 일어나기 전이라 다행이네요.”
“변이도 일어나나요?”
“네. 그때는 정말 지옥이었죠.”
S입자를 주입당한 초능력 헬라 세포는 주입당한 S입자 덕분에 형성된 네트워크에 그 비과학적 증식능력을 의존했지만, 충분히 적응하고 변이를 시작한 후엔 S입자 네트워크, 그 자체와 결합해 버렸다.
그로 인해 떼어내고 파쇄하여 파편으로 만드는 것만으로는 생체활동을 멈추지 않게 되었고, 또한 멀리 포자 같은 것을 퍼뜨릴 수 있게 되었다. 완전 소각만이 유일한 대응법이 된 것이다.
“그리고 인류 문명은 초능력 헬라 세포와의 소모전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붕괴했습니다. 그 뒤로는 지옥이었죠.”
인류는 완전 변이한 초능력 헬라 세포에 지상을 빼앗기고 바다와 섬으로 문명의 근거지를 옮겨야 했다.
하지만 살고자 하는 사람, 문명의 이기를 누리고자 하는 사람은 많았고, 자원은 제한되었다. 전쟁이나 다름없는 다툼이 일어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 전쟁을 종결한 건 한 명의 위대한 초인, 이경완과 그의 참모인 요하네스였다.
요하네스는 그때를 떠올리며 속을 알 수 없는 무표정으로 경완을 보았다.
“문명을 다시 싹틔울 미약한 불씨를 남겼다고 자부했을 때 당신은 말했죠. 난 실패했다고. 그러니 다시 돌아가라고.”
“어…… 그때의 저와 지금의 저는 다르지 않을까요?”
경완은 심상찮은 분위기에 그렇게 변명했다. 다시 돌아가라고? 회귀하라는 소린데 회귀는 죽어서 하는 거 아닌가?
그러니까 요하네스는 그때 이경완에게 죽으라는 소리를 들었다는 거다.
그래서 경완은 요하네스에게 죽으라고 명령한 이경완과 지금의 자신을 분리하고 싶었다. 자신은 기억도 하지 못하는 일 때문에 요하네스가 자신에게 악감정을 가지면 이 무슨 억울한 일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