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전생-더 빌런 333화
31-빅브라더
아무리 네바다 주에서의 사건이 충격적이었다고 해도, 그 충격을 받아들이는 일엔 온도 차이가 있었다.
미국이야 당사자니 심각하게 사건을 받아들이고 IAMSR 말고도 위험한 초능력 연구를 감시하는 방안을 만들고 있지만, 다른 나라까지 그럴까?
특히 정치적으로 불안한 나라들, 권력자들이 나라의 안전이나 공익보단 사익에 더 관심이 있는 국가들에게 IAMSR의 필요성은 물음표일 수밖에 없었다.
그저 유엔에서, 그리고 강대국들이 권유하기 때문에 받아들였을 뿐, 설마 네바다에서 일어난 일이 자기네 땅에 또 일어나겠냐는 안전불감증을 가진 나라들이 상당수였다.
듣고 있던 미연이 저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설마 그 정도로 멍청할까요?”
“이건 지능의 문제가 아니라 인지, 인성의 문제라서요.”
요하네스가 콧등을 검지로 긁으며 말을 이었다.
“똑똑한 머리로 자기 이익과 욕망만 챙긴달까요? 세상에는 이해가 안 되는 이가 있기 마련입니다.”
“그래요?”
거기서 경완 시니컬하게 한마디했다.
“세상사람 절반의 IQ가 평균 이하야.”
“뭔가 확 와닿는다.”
“뭘 상상하던 그 이상, 혹은 그 이하지.”
요하네스가 경완의 말에 덧붙였다.
“하긴 사회지능도, 정서지능도 지능이기는 하니까요.”
“그렇죠. 결국에는 지능의 문제라니까요.”
TV에 나오는 정치인들을 보면 참 병신같이 행동하는 인간들이 많은데, 무속인을 신봉하거나, 갑자기 혈서를 쓰는 퍼포먼스로 이목을 끌려고 하거나, 때와 장소에 맞지 않게 언성을 높이며 사람들이 ‘와~ 병신같다’라고 생각할 정도로 억지를 부리는 이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들도 한창때는 능력 있는 인물들이었다. 능력이 없다면 어떻게 그 높은 자리에 올라갈 기회를 붙잡을 수 있었겠는가?
그런 그들이 병신 같은 행동을 보이는 건 스스로의 양심에 어긋난 행동을 했기 때문이다.
그 순간부터 무의식은 정서지능을 합리화하기 위해 뇌라는 리소스를 사용하게 되지만 거짓말은 더 큰 거짓말을 부르는 법.
자기합리화를 꽃피우기 위해서 뇌에 과부화가 온 결과 한창때의 능력과 현명함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대비해야 합니다. 어리석은 자들이 싸질러 놓을 똥을 치울 준비를요.”
“윽.”
요하네스의 말에 미연이 미간을 찌푸렸다. 왜 남이 싸질러 놓은 걸 내가 치워야 하나? 아마 모든 사람들의 생각이 그러할 것이다.
요하네스는 그녀의 반응에 어깨를 으쓱했다.
“어쩔 수 없습니다. 까딱하다간 그 똥이 담벼락을 넘어 우리집 안방으로 흘러올 수도 있거든요.”
그러니 어쩌겠나? 목마른 놈이 우물을 판다고, 똥냄새 견디기 싫은 사람이 치워야지.
함부로 똥 싸지른 새끼를 응징하는 일은 일단 담벼락 안쪽으로 넘어온 똥을 치우고 나서도 늦지 않았다. 요하네스가 하는 일은 넘어올 똥이 조금이라도 덜 넘어오도록 담벼락을 높이거나, 넘어온 똥을 빠르게 치울 수 있는 도구 등을 마련하는 것에 비유할 수 있었다.
어떻게든 최악의 상황은 모면하는 것이 그의 과제였다.
요하네스가 말을 이었다.
“내일 아시아 지부 발족식에 여러 인사들이 경완 씨에게 얼굴을 보이겠지만 그중 유념해야 하는 사람은 두 사람입니다.”
바로 IAMSR 아시아 지부장과 유엔 운영지원국장이었다.
“내일 발족식 때 제가 경완 씨와 함께 움직이지 못하기 때문에 주요인사들을 다 소개시켜 주진 못하지만 그 두 사람의 안면 정도는 익히시길 바랍니다.”
“알겠어요.”
“그럼 제 용건은 여기까지. 그럼 두 사람 즐거운 시간을 보내시죠.”
요하네스는 그렇게 방을 나섰고, 경완와 미연 두 사람만 방에 남았다.
그녀는 창밖의 화려한 방콕의 야경을 잠시 구경하더니 경완을 보았다. 뜨거운 시선이 교차했다. 서로가 뭘 원하는지 굳이 말할 필요가 없었다.
* * *
IAMSR 아시아 지부 발족식이 열렸다.
행사에는 태국 국왕과 총리를 비롯해 태국의 유력자와 해외와 유엔 등의 저명인사들이 참여했다.
행사장은 5성급 호텔 연회장. 자리는 지정석이었고 경완은 현장감찰팀이라는 팻말이 놓인 테이블에 앉았다.
경완이 가장 마지막에 도착했는지 테이블엔 이미 7명의 사람이 앉아있었다. 다들 현장감찰팀 소속인 모양이었다.
[반갑습니다. 경완 리입니다.]
경완이 먼저 나서서 미소와 함께 그들에게 손을 내밀었다.
[반갑습니다, 이 상!]
가장 먼저 그의 손을 잡은 건 일본 출신이라는 이누스케였다.
일본에서 경완에 대한 이미지는 아주 좋았기 때문에 이누스케는 활짝 웃는 얼굴로 경완의 손을 잡았다.
그 외에 필리핀에서 온 아놀드, 말레이시아 출신의 꾸마르, 인도에서 온 카란, 싱가포르 출신의 링, 호주에서 온 이얄라, 마지막으로 몽골에서 온 탕자이까지.
그들은 경완의 인사에 어색해하기도 하고 긴장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가 단순히 그들의 상사가 되기 때문이 아니라 어떤 행적을 보인 초능력자인지 잘 알고 있는 눈치였다.
경완은 그들과 인사를 하면서 중국 출신이 한 명도 없는 것을 알아차렸다. 각 군벌의 알력 때문일까, 아니면 의도적인 배제일까?
그들의 인구를 생각하면 대륙 출신 한 명쯤은 집어넣을 만했는데 요하네스의 솜씨를 생각하면 아무래도 후자일 듯했다.
만약 그가 솜씨를 부렸다면 저들의 출신지가 아무래도 아시아 지부의 행동반경이 되지 않을까?
경완은 자신의 짐작이 맞을 거라고 느끼면서 동시에 또 중국에 방문하게 될 것 같은 강한 예감을 느꼈다.
의도적으로 중국인이 배제된 현장감찰팀이라면 중국에서 사건이 벌어질 가능성이 높았다. 중국은 믿을 수 없다는 요하네스의 판단일 테니까.
경완은 지루한 식순을 소화했다. 작게 하품을 하면서 박수 칠 타이밍이면 가식적으로 박수를 치고, 일어나라는 사회자의 말에 기꺼이 일어나는 협조성을 발휘했다. 약간의 심력을 소모하는 걸로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본행사를 끝내는 어느 명사의 연설이 끝나고 경완은 다과회장으로 이동했다.
그는 조심스럽게 움직이며 주변을 살폈다. 그의 눈에 들어온 건 간식이었다. 그는 달달한 간식을 주워 입에 넣으며 호텔에서 기다리고 있을 미연을 떠올렸다. 빨리 끝내고 그녀 옆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하지만 그전에 요하네스가 말했던 이들하고 인사는 하고 가야지 않겠는가?
경완은 초감각을 펼쳐 다과회장 안을 스캔했다. 그가 능력을 사용하는 걸 감지했는지 경비와 참가자 중 몇 명이 긴장하는 게 느껴졌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능력을 사용해 사람들의 얼굴을 스캔했다. 사람이 몇인데 일일이 얼굴을 보고 있을까?
뛰어난 능력 덕택에 요하네스가 말한 두 사람을 발견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경완은 둘 중 우선 IAMSR 아시아 지부장을 먼저 찾아갔다.
아시아 지부장은 당연하달까 아시아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을 자호멧이라고 소개했다. 출신은 인도네시아였고 특기할 사항은 위버멘쉬 출신이라는 점이었다.
자호멧은 경완과 악수를 하며 IAMSR로 옮긴 감회를 읊었다.
[위버멘쉬에 한계를 느꼈죠.]
[왜요?]
[결국엔 사기업이지 않습니까? 공권력 자체를 쥐고 있는 것과 영향력의 크기가 다르죠.]
그런 자호멧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경완은 위버멘쉬엔 하나 같이 야망 넘치는 인간들만 모이나 싶었다. 아니 그런 사람들만 요하네스가 모은 건가?
아무튼 자호멧이 직위상 상급자이니만큼 경완은 한가지를 확실히 하고자 했다.
[자호멧 씨가 지시하면 제가 반드시 그것을 수행해야 하나요?]
대놓고 까라면 까야 하냐고 묻지 자호멧이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그래주면 저야 좋죠. 하지만 저도 듣는 귀와 보는 눈이 있습니다. 경완 씨 같은 사람에게 부당한 지시를 내리면 어떻게 될까요? 당신과 척지는 건 저도 사양입니다.]
[음. 그럼 오히려 제가 민폐를 끼칠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예를 들면요?]
[현장감찰팀으로서 활동할 때 약간의 편법을 쓰거나 약간의 무력을 동원할 수도 있어서요.]
[곤란합니다.]
[어……. 수위를 어느 정도로 할지는 활동하면서 서로 조율해 보는 게 어떨까요?]
경완의 제안에 자호멧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상관과의 관계 설정은 잘된 것 같자 경완은 다음으로 유엔 운영지원국장을 찾아갔다.
이름은 막스 볼튼. 40대 정도의 백인인 그는 경완과 악수를 나누었지만 굳은 표정을 잘 펴지 못했다. 경완에 대한 첫인상이 나쁜지 경계심이 있었다.
[반갑습니다. 운영지원국장님.]
경완은 그의 경계심을 풀어주기 위해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먼 곳에서 오시느라 수고가 많다느니, 세계 평화를 위해 물심양면으로 일한다고 고생한다느니 덕담을 잔뜩 늘어놓았지만, 그럴수록 볼튼의 표정은 점점 굳어갈 뿐이었다.
그래서 경완은 대놓고 물었다.
[제가 마음에 안 들어요?]
볼튼은 부정하지 않았다.
[수많은 사람을 죽이고 한 국가를 붕괴시킨 사람이 불편하지 않으면 누가 불편할까요?]
[혹시 중국인이세요?]
경완의 물음에 볼튼은 헛웃음을 지으며 대꾸했다.
[누구나 양식 있는 사람이라면 당신이 한 짓을 그리 좋게 보진 않을 겁니다.]
그럼 서울 참사는? 양식 있는 새끼들이 두루두루 살펴서 따져야지 콕 하나만 찍어서 보냐?
하지만 경완은 굳이 그 사건을 언급하며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하지 않았다.
어차피 서양인 입장에선 저 멀리 동아시아에서 벌어진 남 일이 아니겠는가?
솔직히 아시아 입장에서도 가령 1차 세계대전이라는 명칭은 너무나 거창했다. 차라리 유럽대전이 더 적절한 명칭이 아닐까?
[뭐, 그런 반응도 다 각오하고 한 일이니까요.]
그런 경완의 무던한 태도에 볼튼의 표정이 조금은 펴졌다.
[미스터 리. 당신의 능력을 매우 강력합니다. 그러니 그 힘을 발휘함에 있어 주변의 목소리를 주의해서 듣는 법을 깨우쳤으면 좋겠습니다.]
말은 좋지만 경완은 어깨를 으쓱했다.
주변의 목소리? 과연 그 목소리 중에서 헛소리가 아니라 진짜 경완에 대한 진심어린 걱정이 얼마나 있을까? 힘을 가진 자 주변엔 그 힘을 이용하려는 기회주의자들이 모이기 마련이었다.
황제나 왕도 항상 자신의 신하가 간신인가 아닌가 고민했다지 않은가?
경완은 회의적이었지만 일단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죠. 저도 헛소리인지 아닌지 분별할 줄은 아니까요.]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그런데 궁금한 게 있습니다. 저희 현장감찰팀의 업무를 어떻게 지원해주실 계획인가요?]
[IAMSR 아시아 지부에서 어떤 지원을 해달라는 요청이 들어오면 그걸 검토한 후에 적정한 지원을 할 겁니다.]
[그거 절차가 무지 오래 걸릴 것 같은데요.]
[우리 유엔 같은 다국적 연합체는 반드시 절차와 규정을 준수해야 합니다. 그것이 유엔이라는 기구의 권위와 영향력을 보장하는 방법이죠.]
그 대답에 경완은 확신했다. 볼튼과 자신은 아무래도 결이 안 맞는다고 말이다.
어떤 조직이든 그 권위와 영향력을 확보하는 방법은 극단적으로 단순화하면 하나뿐이었다. 바로 유능한 조직이 되는 것.
그것이 착한 짓이든 나쁜 짓이든 상관없었다. 어느 짓이든 그것에 유능해야 누군가에게 필요성이 생기고 그것이 조직의 역량이자 영향력이 되는 것이다.
절차와 규정은 조직이 유능해지기 위한 방편일 뿐, 그것 자체가 조직의 권위와 영향력을 담보하진 못한다.
[기억해두죠.]
경완은 그렇게 대답했다.
* * *
다과회는 그리 길지 않았다. 경완은 자신을 알아보는 이들과 인사를 나눈 후에 다과회가 마치자마자 호텔로 돌아왔다.
그런 그에게 요하네스가 귀신같이 연락해왔다.
경완이 전화를 받자 요하네스가 용건을 꺼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