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전생-더 빌런 334화
31-빅브라더
[두 사람은 만나봤습니까?]
“네. 그런데 어디 계셨어요? 다과회장에 없던데.”
[저는 따로 귀빈들과 만나서 경완 씨에 대해 당부하고 있었죠.]
“무슨 흑막들이 모여서 밀실모의하는 것 같네요.”
[세상엔 공개적으로 진행할 수 없는 일들이 많거든요.]
“그렇기는 하죠.”
경완은 별이견 없이 수긍했다. 핵무기를 낳은 맨해튼 프로젝트도 비밀로 진행되었다. 세상엔 드러낸 채 진행되는 일보다는 수면 아래서 진행되는 일이 더 중요한 경우가 많았다.
[아무튼, 만나본 감상은 어떻습니까?]
“둘 다 내 편은 아니구나라는 생각?”
IAMSR 아시아 지부장인 자호멧이나 유엔 운영지원국장 막스 볼튼이나 각자의 욕망과 신념이 있었다.
그나마 자호멧은 협상이 가능할 것 같았지만 볼튼 같은 경우에는 경완의 행보에 딴죽을 걸 여지가 많았다. 실제로 IAMSR의 현장 활동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될 수 있는 게 볼튼이었다.
[그게 우리의 현실입니다. 아무리 위버멘쉬가 전 세계적인 명성을 떨쳐도 세계 멸망을 방지하기엔 근본적인 한계가 있죠.]
“그렇긴 하죠.”
[그래서 서둘러 IAMSR의 운영을 정상화하고 유엔 사무국에서 독립시킬 생각입니다.]
“쉽지 않을 것 같은데요.”
[이 부분은 제 몫이니 경완 씨가 신경 쓰실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경완 씨의 도움이 필요할 때가 있을 수는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때 연락해 주세요.”
경완은 전화를 끊고 미연이 기다리는 호텔로 돌아갔다. 그리고 3일간 신나게 방콕의 관광지들을 돌아다녔다.
그러다가 IAMSR 아시아 지부 사무소에서 경완에게 언제 출근하느냐고 전화가 왔다.
“오빠.”
그를 보는 미연의 가느다란 시선에 경완은 미소로 마주하며 대꾸했다.
“내 착각이었다니까.”
“웃지 마.”
미연의 일간에 경완은 바로 입꼬리를 내렸다.
그런 그를 보며 미연이 말을 이었다.
“오빠. 사회생활을 이렇게 하면 되겠어?”
“안 되지.”
“알면서 그래?”
“착각했다니까. 다음 주부터 시작하는 줄 알았어.”
경완은 애써 자신의 잘못을 회피했고 미연의 잔소리가 이어졌다.
경완은 그녀의 잔소리를 카페 배경음악 듣듯이 듣고는 화제를 돌렸다.
“아무튼, 넌 한국으로 돌아가야겠네? 악!”
“그래. 가야지. 혼자서.”
이를 악물고 하는 대답에 경완은 꼬집힌 옆구리를 문지르며 물었다.
“내가 웜홀로 보내줄까?”
“입국절차는 어쩌고?”
“김준 씨가 있잖아?”
도대체 본국에서 무슨 지령을 받았는지 여전히 경완 옆에 붙어있는 김준이었다.
“오빠. 지금 무지 쓰레기 같은 거 알아?”
남에게 일을 떠넘기는 남친의 모습을 솔직히 평하는 그녀였지만 경완은 뻔뻔했다.
“이용할 수 있는 건 이용하는 편이 좋지.”
“그치만…….”
“너 혼자 보냈다가 무슨 일이라도 나면 어쩔 건데?”
“설마.”
“설마가 사람 잡아. 네 남친은 전 세계에 악명을 떨치는 반(半) 빌런이라고. 쌓인 원한이 보통인 줄 알아?”
경완의 설득에 미연은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자신의 안전을 걱정한다는데 거절하기도 싫었다. 그리고 솔직히 편하지 않은가?
김준의 도움으로 입국 수속을 처리하고 웜홀로 미연을 집으로 돌려낸 경완은 김준에게 감사를 표했다.
“고마워요.”
“뭘요. 별것도 아닌 일입니다.”
“그래도 번거롭잖아요?”
“국정원에 부탁했으니 딱히 번거롭지도 않습니다.”
아, 그랬던가? 남에게 짬처리시키는 솜씨가 누굴 보고 배운 것인지 보통이 아니었다.
경완이 김준을 보며 입을 열었다.
“이제 미연이도 갔으니 솔직히 말해봐요. FBI, 아니 미국의 용건은 뭐죠?”
“으음…….”
김준이 주변을 살폈다. 혹시 도청이라도 되어 있나 걱정하는 모습에 경완은 염동력을 펼쳐 공기 진동이 새어나가는 것을 막았다.
주변에 검은 연기가 깔리는 것을 본 김준은 그제야 입을 열었다.
“경완 씨는 위버멘쉬 총수를 얼마나 신임하십니까?”
그 말에 경완은 턱을 긁고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꽤 많이?”
“어째섭니까?”
“누가 제 앞에서 거짓말을 해요?”
“음…….”
김준의 표정이 심각해졌다가 다시 입을 열어 미국의 입장을 전달했다.
“본토에선 위버멘쉬의 영향력이 확대되는 것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그래요? 왜요?”
“그야 당연한 거 아니겠습니까? 절대권력은 견제되어야 하잖습니까?”
“김준 씨가 보기엔 위버멘쉬가 절대권력을 쥐고 있는 것처럼 보여요?”
“…….”
그 말엔 김준은 말하지 못했다. 솔직히 자신의 논거가 궁색하긴 했다.
하지만 경완은 김준이, 아니 미국이 무슨 입장인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미국에서 위버멘쉬를 견제하고 싶다는 사람들이 많다는 소리잖아요.”
물론 그 사람들이 평범한 사람들일 리는 없었다. 분명 정재계에서 입김 좀 부는 사람들이겠지.
그런 그들이 왜 이 시점에서 위버멘쉬, 아니 요하네스를 견제하고 싶을까? 경완은 그 이유를 네바다 바이오 해저드 사건에서 짐작할 수 있었다.
핵으로도 제거하지 못할 뻔했던 바이어 해저드. 그리고 그것의 약점을 정확히 알고 있던 요하네스. 아무리 전 세계가 초능력 연구의 위험성을 알고 IAMSR을 설립해 운영한다고 해도 언젠가는 사고가 날 것이다.
그리고 그 사고는 초능력이 얽힐 것이 분명하니 기존의 상식으로는 대응하기 어려울 가능성이 크고, 그렇게 된다면 예지능력자로 알려진 요하네스의 도움이 절실해진다.
자연적으로 위버멘쉬에 대한 의존과 위버멘쉬의 영향력이 커지게 되는 것이다.
세상에 윈윈게임이 매우 드물다는 사실을 전제로 한다면 이런 위버멘쉬의 이득은 누군가의 손해로 이어진다. 그리고 그 누군가가(아마 미국에 있는 누구겠지만) 미(美) 정가에 바람을 넣었을 것이다.
김준은 경완의 말에 눈을 굴렸다.
“사실 깊은 내막에 대해선 전 잘 모릅니다.”
“당연하죠. 이해해요.”
누구도 그저 메신저에 불과한 사람에게 미주알고주알 다 알려주진 않을 테니까.
경완이 물었다.
“그래서 제가 어쩌길 바라는 건가요?”
“저희 프로파일러팀에서는 경완 씨가 전에 없이 활발할 활동을 보이는 이유를 발푸기스 총수 때문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그의 설득에 넘어갔다고 보는 거죠. 아마도 그 설득의 내용은 아마 네바다에서 있었던 일 때문이고요.”
저들의 분석은 정확했다. 역시 미국은 미국이라는 걸까?
“그래서요?”
“일단 저희의 판단이 맞습니까?”
“네, 틀리진 않아요. 확실히 세계적인 위기 앞에서 집안에 엉덩이를 붙이고 있을 수만은 없더라고요.”
“역시…… 그렇다면 미국과 손을 잡는 게 어떻습니까?”
“요하네스 씨는 어쩌고요?”
“솔직히 저희 쪽 씽크탱크에선 그를 의심하고 있습니다. 세계의 위기를 지렛대 삼아 이득을 취하려고 하고 있다고요.”
“흐음…… 그래요?”
경완은 과연 그럴까 의아해했지만 김준은 그 의아해하는 태도의 대상이 요하네스인 줄 알고 서둘러 말을 이었다.
“솔직히 그가 커다란 위기와 그것을 해결할 방법을 알고 있다면 그걸 혼자만 알고 있지 말고 도움을 청할 수 있는 모두에게 알려야 하지 않을까요?”
“흐음……. 그 말도 일리가 있군요.”
“그쵸?”
“그런데 말이죠, 사람은 듣고 싶은 것만 듣는 존재라는 말이죠.”
곧 거품이 터진다, 경제가 붕괴한다고 경고하는 자가 있음에도 버블 파티가 영원히 끝나지 않을 거라 믿는 것이 바로 인간이라는 존재였다.
세계가, 인류 문명이 멸망할 수도 있다는 말에 모든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협조했다면 과연 IAMSR 같은 기구를 강대국이 주도해서 만들었을까?
만약 요하네스가 모든 위기에 대한 정보를 공개한다고 해보자. 모든 사람이, 아니 적어도 권력과 권한이 있는 사람들이 순수하게 그의 말을 믿고 받아들일까?
경완은 그렇지 않을 거라고 보았다. 평범한 사람도 그러기 힘든데 권력과 지위가 높은 사람이 과연 그렇게 순진하게 믿을까?
검은 속내가 없는 권력자라고 할지라도 책임진 것이 많기 때문에 순진해질 수가 없었다. 설사 신의 기적이 일어나 믿는다고 하더라도 이해관계를 조율하고 힘을 모으는 건 다른 문제였다.
그리고 불행하게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학력의 여부와 관계없이 자기에게 유리한 건 주의 깊게 보고 자기에게 불리한 건 애써 회피하며 의식의 바깥쪽으로 밀어놓는 것이 일반적인 경향이었다.
결론적으로 요하네스가 모든 멸망적 위기에 대해 공개한다? 그 결과는 별로 긍정적이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경완은 요하네스가 왜 그 정보들을 독점하는지 심정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도무지 믿을 새끼들이 없었다는 거겠지. 혹여나 믿을 수 있는 이들이 있다면 이미 요하네스에게 협조하고 있지 않을까?
“요하네스 총수에게 물어봤어요? 왜 말해주지 않는지? 말해주지 않는 이유가 그러는 편이 더 최선의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수도 있잖아요?”
“으음…….”
“아. 김준 씨가 이런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 위치는 아니기는 하죠. 아무튼, 그래서 미국이 원하는 건 제가 요하네스 씨의 뒤통수를 때리고 미국 편에 서는 건가요?”
“아, 그런 게 아니라 그냥 아시는 정보가 있다면 저희 측과 공유해 달라는 겁니다.”
“정보라…….”
그것 참 쉽고도 어려운 대상이었다. 정보의 가치는 상대적이지만 그 영향력은 지대하니까. 그래서 김준의 말은 뒤통수를 치라는 말과 다름이 없었다.
“아무래도 저는 중립을 지켜야 할 것 같은데요.”
“그렇습니까?”
“요하네스 씨로부터 정보를 얻는 건 그쪽이 직접 해야 할 것 같아요. 그리고 솔직히 세계 평화를 위해 힘쓰는 사람들끼리 충돌하는 모습이 제가 보기엔 그리 좋지도 않고요.”
다 같이 으쌰으쌰 가즈아~ 가격방어 해야 하는데 홀로 공매도 치려는 새끼를 보는 느낌이 없잖아 있었다.
아무래도 요하네스와의 친분이 더 강하고 그의 사정에 대해서 잘 알기 때문이겠지만, 그럼에도 이 상황에서 위버멘쉬를 견제해야 한다는 발상을 하는 것 자체에서 경완은 불순한 의도를 느꼈다.
위버멘쉬는 이번에 IAMSR을 발족하면서 상당한 출혈이 있었다. 상당한 수의 인재 및 조직 노하우의 유출을 감수한 것이다.
그런 희생을 보면서도 미국의 어떤 씽크탱크분들은 선악설을 믿으시는지 요하네스의 의도를 불순하게 보고 있었다.
물론 요하네스가 더 많은 영향력을 필요로 하고 있는 건 사실이었다.
다만 그가 영향력의 확대를 통해 어떤 개인적 욕구나 사적인 이익을 취할 것이라고는 보지 않았다. 경완이 보기엔 공익을 위해서, 세계 평화를 위해선 오히려 요하네스의 영향력이 확대되는 편이 더 낫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누가 이런 논리를 순진하게 믿고 받아들이겠는가?
경완이 요하네스의 진심을 보증한다고 해도 요하네스과 영향력 다툼을 벌일 이들은 오히려 경완의 능력을 의심하고 그의 신용을 깎아내릴 것이다.
그래서 경완은 중립을 선언했다. 그럴 능력이 있었고, 그러는 편이 여러모로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일방적으로 요하네스의 편을 들면 미국을 자극할 것이고, 그렇다고 거짓으로 미국 편을 드는 기만도 입맛에 맞지 않았다.
경완의 대답에 김준의 표정은 어두워졌다. 아마 경완을 회유하라고 지시를 받았을 텐데 그러지 못했으니까. 혹시 인사고과에 마이너스가 될 수도?
“너무 그렇게 걱정하지 마세요. 요하네스 총수도 미국의 필요성에 대해선 절실히 느끼고 있으니까요.”
“아, 그렇습니까?”
“위에 말해도 좋아요. 요하네스 씨는 미국이 패권을 유지하는 편을 선호한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