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한전생 더 빌런-335화 (335/367)

무한전생-더 빌런 335화

31-빅브라더

이미 알고 있던 정보인지 경완의 말에도 김준은 좀처럼 표정을 펴지 못했다. 이미 알고 있지만 믿지 못한다는 걸까?

경완이 말을 이었다.

“저도 그 말에 동의해요. 앞으로 생길 혼란에서 괜히 패권국이 바뀌는 변수가 추가되면 골치가 아플 테니까요.”

“한 가지 묻고 싶습니다.”

“네.”

“경완 씨가 원하는 건 정말 세계 평화입니까?”

그 말에 경완은 씁쓸함을 느꼈다. 미국은 자신까지 의심하고 있는 걸까?

“김준 씨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저야 경완 씨를 믿죠.”

김준은 그렇다고 하지만 미국은? 김준의 의견이 미국의 의견이 될 수 있나?

확실해졌다. 미국은 자신을 의심하고 있다. 모두는 아니겠지만 경완의 변심(?)을 경계해야 한다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는 것은 확실해 보였다.

그래서 아마 그를 요하네스로부터 떼어내고 미국 편으로 회유하라는 지시가 김준에게 내려진 것이 아닐까? 마지막으로 경완의 내심을 떠보려고 말이다.

일단 경완이 거절이 아니라 중립을 표한 것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모르겠지만 그저 긍정적이지만은 아닐 것 같았다.

경완은 잠깐 고민하다가 그냥 질렀다.

“암튼 전 중립. 영향력 싸움이든 밥그릇 싸움이든 저는 빼주세요.”

그 사이에 끼는 건 정말 귀찮다. 미국이 이런 자신의 진심을 알아줄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으로선 이것이 최선의 대응이었다.

그런 경완의 대답에 김준은 그리 밝지만은 않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 * *

IAMSR 아시아 지부 현장감찰팀의 사무실은 한적했다.

팀원들은 사실상 상시 외근 상태랄까? 현장감찰팀의 업무는 현장에 나가서 감찰하는 것이지만 당연하게도 함부로 감찰할 수는 없었고 지원부서로부터 정보를 얻어야 했다. 그다음 소집되어 활동한다.

그럼 정보가 들어오기 전까지는 노느냐? 그렇진 않았다. 그들도 나름대로 정보를 수소문했다.

이른바 인지 수사랄까? 지인으로부터 정보를 얻어도 좋고 뉴스 기사에서 정보를 얻어도 좋았다. 그렇게 정보를 모은 후 어딜 어떻게 감찰할지 의논했다.

경완은 국제기구의 성질상 그 과정이 좀 길 거라고 생각했지만 첫 업무는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일본이요?]

경완의 물음에 모니터의 이누스케가 고개를 끄덕였다.

[일본의 유명 제약회사인 다이이찌산쿄가 좀 수상합니다.]

다이이찌산쿄는 10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제약회사로, 한국을 비롯해 26개국에 법인을 가지고 있는 다국적 기업이었다.

일본에서도 손가락 순위에 드는 굴지의 제약기업으로서 연구역량이 충분하기에 초능력을 도입하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이누스케가 말을 이었다.

[다이이찌산쿄는 항암제 연구 개발로 이름이 높습니다. 당연히 항암제 연구를 위해선 암세포가 필요하죠.]

[혹시 네바다에서 일어난 일이 또 일어날까 봐 우려하는 겁니까?]

[그보다는 다이이찌산쿄가 과연 초능력자에게도 항암제가 통할까를 연구하고 있다고 합니다. 초능력자는 이미 S입자를 가지고 있으니 암세포에도 S입자가 있을 테니까요.]

참신한 발상이지만 내용을 보면 결국 한 가지를 암시했다.

[인체실험을 하고 있다고요?]

[설마요. 다만 불법적인 실험을 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인체실험이면 충분히 불법적이지만, 그보다는 약한 수위에서 불법적인 실험을 하고 있다는 말인가?

이누스케는 본인이 일본인이면서도 일본의 기업에 대해선 별로 신용하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다른 분들은 조사 안건 없습니까?]

경완은 모니터에 떠있는 다른 팀원들에게 의견을 물었다. 다들 자국에서 활동하고 있기 때문에 온라인 회의는 필수였다.

태국의 사무실은 경완 혼자 가서 관리 중이었다. 태국에서 그에게 비자 없이도 태국에 들어올 수 있는 특별한 특혜를 준 덕분이었다.

말레이시아 출신인 꾸마르가 입을 열었다.

[전 버마를 주시해야 한다고 봅니다.]

[버마면 미얀마?]

[네.]

꾸마르의 말에 의하면 미얀마의 반군 조직이 초능력 병사를 양산하기 위해 인체실험을 자행하고 있다는 소문이 돈다는 것이다.

[출처는요?]

[제 지인이 언론사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아는 사람만 아는 소문이라 아직 대중에겐 알려지지 않았다지만 기자 파견을 고려하고 있는 언론사도 있다더군요.]

음……. 경완은 고민했다. 사실 그가 IAMSR에 몸을 담은 이유는 결국 세계 멸망의 위기를 막기 위해서가 아니겠는가?

물론 비교하자면 불법적인 초능력 실험을 하고 있다고 의심받는 다이이찌산쿄보다 초능력 병사 양산을 위한 인체실험이 더 경악스러운 일이기는 하다.

하지만 그것이 세계 멸망으로 이어지느냐는 다른 문제 아니겠는가? 그리고 미얀마 반군이라니. IAMSR 같은 국제기구에서 ‘인체실험 멈춰!’라고 해봤자 그들이 얌전히 멈출까? 그리고 미얀마 정부의 입장까지.

변수도 많고 일처리가 깔끔하지도 못할 것 같으며 별로 큰 파급효과를 주지도 않을 것 같았다.

[또 의견 있으신 분?]

경완의 말에 다른 이들도 저마다 나름 귀동냥한 정보나 IAMSR 지원부서에서 얻은 정보를 풀어놨지만, 앞의 두 사람만큼 신통치는 않았다.

[제가 안건들을 좀 더 검토해본 다음에 결정하죠.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수고하셨습니다.]

그는 화면을 끄고 요하네스에게 전화했다.

[무슨 일인가요?]

“혹시 미얀마에서 벌어지고 있는 초인 병사 양성을 위한 인체실험에 대해서 알고 계세요?”

[인위적인 각성 실험은 알고 있죠. 그중에는 정말 위험한 결과를 낸 일도 여럿 있고요. 초인 병사 양성을 위한 인체실험은 비단 미얀마에서만 벌어지는 일은 아닐 겁니다.]

“혹시 위험할까요?”

[음……. 대체적으로 위험하죠. 하지만 그 위험이 그 지역에 멈추느냐, 아니면 세계에 위기를 가져다줄 정도냐는 편차가 워낙 커서 저도 함부로 말할 순 없군요.]

그러면서 몇 가지 사례를 말해주었다.

정신계 각성자에게 인체실험을 가하다가 능력이 폭주해서 일대에 있는 인간들의 정신이 동기화된 오버마인드 사건, 동물에게 임계점 이상으로 S입자를 주입하는 실험을 하다가 계속 실패하니 결국 사람을 대상으로 했다가 벌어진 변이인간 사건, 인지지능과 초능력의 상관관계를 연구하기 위해 뇌사자에게 S입자 유도를 하다가 탄생한 초능력 싸이코패스 등등.

각각이 워낙 개성(?) 넘치는 사례였기 때문에 미얀마 반군이 벌이는 짓이 어떤 결과로 나타날지는 요하네스도 예측이 불가능했다.

[물론 대부분의 인체실험이 생로병사의 극복이나 군사적인 목적을 가지고 있기에 그에 수반되는 결과가 나오기는 하지만 제 경험상 초인 병사 육성을 목적으로 한 인체실험이 세계적 위험이란 결과가 되는 경우는 매우 드물었습니다. 오히려 생로병사를 극복하기 위한 실험에서 위험한 사고가 많이 발생했죠.]

“그럼 굳이 미얀마에 가볼 필요는 없겠군요.”

[가능성은 낮지만 다른 관점에서 접근해보죠.]

“가보는 게 좋다고요?”

[네. 아직 IAMSR의 필요성이나 위상에 대해서는 물음표를 가진 이들이 많잖습니까?]

그러니까 이미지 구축을 위해서라도 미얀마에 가서 그 반군이라는 작자들하고 한 번 푸닥거리를 해야 한다?

“골치 아프네요.”

[미얀마 정부는 좋아할 겁니다.]

“하지만 괜히 반군들의 증오를 사겠죠.”

[그러니 철저하게 짓밟아야죠. 모두의 사랑을 받을 순 없는 노릇 아니겠습니까? 그럼 차라리 어느 정도 두려움을 가지게 하는 편이 낫습니다.]

마키아벨리스트였나? 아니다. 그는 그저 현실을 말했을 뿐이다. 존중은 두려움에서 나오는 법.

IAMSR이 만만한 곳이 아니라는 인식이 필요하다는 건 현시점에선 사실이었다.

초능력이라는 완전히 새로운 분야는 후발주자들이 선진국을 따라잡을 수 있는 연구분야였다. 설비보다는 초능력자, 즉 인력이 더 중요했기에 연구 인프라가 부족한 국가에게도 초능력 연구에 도전할만한 기회를 제공했다.

[미얀마 정부엔 제가 접촉해 보겠습니다. 경완 씨의 방문을 국빈 수준으로 대우하도록 손을 써놓죠.]

“그거 부담스러운데요.”

[이제부터 슬슬 그런 자리에 익숙해지셔야 할 겁니다. 명성은 때론 지름길을 제공하거든요.]

“절 잘 어르고 달래시네요.”

더 귀찮은 걸 피할 수 있다면 덜 귀찮은 걸 감수할 수 있는 경완의 성격을 정확히 파악한 제안에 그는 그렇게 대꾸할 수밖에 없었다.

요하네스는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하하. 제가 경완 씨를 한두 번 겪어봤겠습니까?]

참 잘났다. 경완은 그 말을 속으로 삼켰다.

* * *

미얀마는 더웠다. 하지만 경완은 그 더위에서 예외였다.

러시아의 초능력자 미하일로부터 카피한 써모키네시스트 능력으로 주변의 온도를 적정 수준으로 내렸기 때문이었다.

빰빠라밤~!

경완이 양곤 국제공항에 내리자 의장대의 연주가 그를 맞이했다. 그리고 곧 그에게 다가와 반갑게 웃으며 손을 내밀고 있는 이가 있었으니 바로 미얀마의 대통령, 이옹이었다.

[이렇게 만나서 반갑습니다.]

[이렇게 환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두 사람은 웃으며 걸어갔다.

경완은 미얀마 대통령과의 대화에서 자신이 이렇게 환대받은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것은 미얀마 쿠데타를 막고 군부를 문민통제 하에 들어가도록 위버멘쉬가 매우 큰 역할을 해줬기 때문이다.

오랜 세월 군부 독재를 겪었던 미얀마는 헌법상 미얀마 군부가 상하원 전체의석의 25%를 지명했다.

하지만 민주주의 정부가 들어서고 이러한 문제를 개혁하기 위해 개헌을 하려고 하자 권력을 잃기 싫었던 군부는 쿠데타를 시작했다.

이때 위버멘쉬가 등장했다. 당시 위버멘쉬 미얀마는 빌런 단체로 낙인찍혀 있던 상태였지만, 이 쿠데타에 개입해 쿠데타 수뇌부들과 지휘관들을 사살하거나 사로잡아 쿠데타를 돈좌시켰고 당당히 위버멘쉬 미얀마로 정식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그야말로 미얀마 정부에게 있어 위버멘쉬는 미얀마 민주주의의 은인이라 할 수 있었으니 그 총수인 요하네스의 당부를 들은 미얀마 정부가 경완을 국빈으로 모시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더구나 반군 문제에 도움마저 주려고 온 이가 아닌가? 그것도 세계 최강의 초능력자라 일컬어지는 사람이 말이다.

[이 나라도 미스터 리를 환영하는지 날씨가 선선하군요.]

[아, 그거 제 초능력입니다.]

[아, 그래요?]

이옹 대통령은 감탄하면서 경완과 함께 영빈관으로 향했다.

영빈관에 도착한 두 사람은 서넛 정도 되는 실무자를 대동해 긴밀한 대화를 시작했다.

[미스터 리가 저희 나라로 온 이유가 IAMSR의 업무 때문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맞습니까?]

[네, 맞습니다.]

반군의 초인 병사 육성을 위해 인체실험을 자행하고 있다는 소문이 사실인지 실사하고 필요한 경우에 조치를 취하기 위해서였다.

[그 조치란 무엇인가요?]

[어. 음……. 실력행사?]

[오호. 그런 계획이 있나 보군요.]

[딱히 계획은 없지만 상황을 봐서 그래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렇군요.]

이옹 대통령은 경완의 말이 위버멘쉬의 개입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걸 확인하기 위해 물었다.

[몇 명이나 파견되는 겁니까?]

[실력행사에요?]

[네.]

[아직 계획이 없습니다.]

[……?]

이게 무슨 말인가 싶었던 이옹 대통령에게 경완은 어색하게 웃으며 검지로 자신의 얼굴을 가리켰다.

[무슨 일이 생기면 저 혼자로도 충분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혼자 왔다. 솔직히 IAMSR의 현장감찰팀에서 전투요원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은 경완 혼자뿐이었다.

[물론이죠!]

그 말에 이옹 대통령은 얼굴을 활짝 피며 고개를 끄덕였다.

초능력자의 군사적 효과는 이미 군부 쿠데타 진압에서 위버멘쉬가 충분히 보여줬다. 그리고 중국 공산당을 무너뜨린 이경완이다. 반군들 따위가 감히 그의 행사를 막을 수 있으랴?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