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전생-더 빌런 336화
31-빅브라더
흥분한 이옹 대통령은 경완이, 아니 IAMSR이 반군의 초능력 인체실험이 사실인지 감찰하는 일에 실무적인 도움을 주기 위해 관련자들을 모았다.
일단 실질적인 도움을 주기 위해 반군의 위치, 인체실험을 하고 있다고 예상되는 장소 등에 대한 첩보를 제공하는 것은 물론 이동 수단이나 필요한 장비 일체 등을 제공하기로 했다. 부대도 아니고 경완 한 사람만 지원하는 거라 그리 부담되지도 않았다.
[로힝야족?]
[네. 로힝야는 극단적 이슬람주의자이자 가장 골치 아픈 분리주의 반군세력입니다.]
[음. 그렇군요. 잠시만요.]
쉬웨라는 사무관의 말을 듣던 경완은 잠시 자신의 폰을 켜서 로힝야족을 검색해 개략적인 정보를 얻었다.
간단히 말하자면 로힝야족은 벵골에서 기원한 무슬림으로 미얀마가 영국에 식민지배를 받을 때 땅을 준다는 영국의 말에 미얀마로 이주, 식민 부역자로서 생활했다.
비록 10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인종, 문화, 종교조차 기존 미얀마에 살고 있던 사람들과 달랐기 때문에 화해는커녕 갈등만 커졌고, 지금에 와서는 탄압의 대상이 되었다.
여러 소수민족이 살고 있는 미얀마라지만 로힝야족에 대해서는 공동전선을 이룬다. 그들을 혐오하는 것이다.
사실 로힝야족은 정치적인 단어였다.
기원이나 언어나 종교를 따져도 벵골인이 분명하고 본인들도 스스로를 벵골인이라고 칭하지만, 정작 이웃에 있는 벵골인의 나라, 방글라데시는 이들을 외면하는 실정이었다. 왜냐고? 세속주의 이슬람이 정착한 방글라데시에 원리주의 이슬람이라는 독을 뿌릴 순 없었기 때문이다.
경완은 이런 사정을 읽고는 혀를 찼다. 분리주의 반군이 생겨날 수밖에 없는 환경인 것이다. 식민 부역자로서의 원죄를 가지고 있지만 100년간 살아온 땅에서 고이 쫓겨날 인간이 세상에 어디있겠는가?
“영국이 진짜 씨발놈이네.”
“What?”
[아니요. 그냥 혼잣말이었습니다.]
경완은 영어로 계속 대화를 진행하면서 세상의 불합리함을 느꼈다. 지가 싼 똥 지가 치우는 새끼는 세상엔 없구나 하고 말이다.
그는 사무관으로부터 충분히 정보를 얻고 현지로 이동했다. 안내인과 군인으로 보이는 무장 인원 1개 소대와 함께 로힝야족 거주지로 향했다.
하지만 그들의 영역으로 들어가진 않았다. 괜히 타초경사의 우를 범하기보다는 그냥 경완 혼자 의심 지역을 탐색하고 돌아오는 편이 훨씬 안전하고 효율적이었다.
물론 본인에겐 힘들 일이겠지만 증거 인멸이라든지 저항이라든지 더 귀찮은 일이 발생하는 것보다는 나았다.
[여긴 아니네요. 더 깊이 들어가야겠어요.]
경완의 말에 안내인과 군인들이 로힝야족 영역 더 깊이 들어갔다.
분명 로힝야족의 눈이 있었기에 그럴싸한 명분이 있어야 했다.
명분이 없는 건 아니었다. 국제 난민 기구나 구호 단체들이 로힝야족을 돕기 위해 인력을 파견하거나 해당 지역에 사무실을 설치했고, 그들과 접촉할 이유를 만들어내는 건 미얀마 당국에선 땅 짚고 헤엄치기였다.
경완은 안내인이 핑계를 만들어 국제기구 소속의 사람들과 접촉하고 근처에 임시 숙소를 마련하는 와중에 안내인의 수행자인 양 행동해서 정체를 감추었다. 짙은 선글라스와 분장용 수염으로 얼굴을 감추니 아무도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
그리고 밤에 홀로 빠져나와 추측 지역을 초감각 레이더로 스캔하고 돌아왔다.
그런 식으로 경완과 일행은 점점 로힝야족 지역의 깊은 곳으로 들어가며 미얀마 정부가 제공한 첩보에 나온 지역을 확인했다.
그렇게 6개 장소를 확인하고 7개째, 앞의 장소들이 그랬듯이 의심 지역은 로힝야족 거주지역 근처의 울창한 숲속, 반군들이 있을 만한 지역이었다. 그리고 거기서 경완은 드디어 로힝야족 반군을 발견했다. 더불어 수상한 행동도.
경완이 초감각 레이더로 관찰한 바에 의하면 로힝야족 반군들 중에 옷을 꽤 잘 차려입은 남자가 있었고 그 남자와 함께 반군들이 무릎을 꿇고 뭔가 기도 같은 것을 하더니 그 남자가 일어나 무릎 꿇고 앉아있는 이들의 머리에 차례로 손을 얹었다.
그러자 한 명씩 눈, 코, 귀로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죽은 것이다.
하지만 무릎 꿇은 자들은 마치 순교자처럼 차례로 죽음을 기다렸다. 그렇게 죽은 이가 여덟 명.
그런데 아홉 번째는 쓰러지지 않고 버텼다. 눈, 코, 귀에서 피가 흐르고 입에 거품을 물면서 이마에 혈관이 도드라졌다. 엄청난 고통을 느끼는 와중에도 죽지 않고 버틴 그의 몸이 부풀기 시작했다. 마치 신체강화 능력자처럼 말이다.
경완은 미간을 찌푸렸다. 이건 인체실험 정도가 아니라 강제각성인 것 같은데? 혹시 잘 차려입은 남자의 능력이 초능력 인위 각성인가?
경완은 그 수상한 남자에게 마커를 심어두고 싶었지만, 거리가 너무 멀었다. 초감각 레이더에 들어오는 거리였지만 마커를 심어두기엔 무리였다.
조용히 뒤로 물러난 경완은 위성전화로 요하네스에게 문자를 넣었다.
-총수님. 혹시 초능력을 인위적으로 각성시키는 능력도 있나요?
-충분히 있을 수 있습니다.
-여기 로힝야 반군이 지들 사람을 인위적으로 각성시키는 것 같은데요.
경완은 그 와중에 사람도 죽는다고 설명했다.
-각성한 사람의 상태는 어떻습니까?
-글쎄요. 신체강화능력자로 각성하던 것 같던데요.
-……인위 각성 능력자라고 생각되는 자의 생김새가 기억나십니까?
초감각 레이더의 성능은 아주 좋았기 때문에 경완은 생생하게 얼굴을 묘사했다.
-음……. 경완 씨. 말세에 세상에 이름을 떨친 여러 세력이 있었습니다. 그중 이슬람 영역을 주름잡은 이가 있죠.
그 이름하야 샬롬 샤딘.
그는 원리주의 이슬람으로서 세계가 멸망의 위기로 혼란에 휩싸였을 때 등장했고, 많은 사람들을 죽였다. 정말 많은 사람들을 죽였다.
-혹시 그자를 죽일 수 있겠습니까?
-왜요?
-그자는 존재 자체가 백해무익하거든요. 지금 그 장소에 있는 것 자체도 반군에 초능력 전력을 주어 분쟁을 일으키려는 것이 분명합니다.
-혹시 그가 로힝야족이라서 그런가요?
-아닙니다. 그는 파키스탄 출신입니다.
-그런데 왜 여기까지 와서 이 지랄을 하는 걸까요?
요하네스는 잠시 답장이 없었다. 그리고 곧 긴 내용의 답장이 왔다.
회귀 전 역사에서 원래 미얀마의 로힝야족은 이렇게 계속 탄압받는 위치에 있는 건 아니었다. 군부의 권한을 축소하는 개헌을 하려는 미얀마의 민주정권을 끝내 군부가 총칼로 해산하는 것에 성공하자, 민주정권은 많은 도움이 필요했다. 고양이손도 필요할 정도로.
그래서 로힝야족의 처우 개선과 시민권 인정 등을 조건을 로힝야족에 제시했다.
마치 외계인이 등장하자 전 세계가 좌우, 인종 구분없이 단합해 싸우는 것과 같이 미얀마 군부라는 대적(大敵)에 맞서는 것으로 오랜 탄압에 마침표를 찍을 희망이 생겼다.
하지만 회귀한 요하네스는 미얀마 군부 쿠데타를 돈좌시켰고, 그것은 결과적으로 로힝야족이 미얀마에 사는 모든 종족으로부터 탄압받던 상황을 타개할 기회를 박탈한 결과로 이어졌다.
-로힝야족은 원리주의 무슬림입니다. 무슬림이 아닌 자들을 모두 개종하거나 죽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샬롬 샤딘이 파고들기 아주 좋은 상황이지요.
바로 옆에 있는 방글라데시는 로힝야족과 인종적으로 같은 벵골인이었지만 세속주의라고 원리주의 이슬람을 받아들이기 싫어했다.
같은 동족으로부터 외면받은 로힝야족이 누구를 의지할 수 있겠는가? 이럴 때 신앙의 형제가 도움을 손을 내미는데 거부할 수 있을까?
샬롬 샤딘이 로힝야족에게 온 건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요하네스의 문자가 이어졌다.
-선의가 항상 좋은 결과로 이어지는 건 아니죠. 미얀마 군부 쿠데타를 막은 대신 로힝야족이 탄압에서 벗어날 기회를 뺏어버린 셈이 되었습니다.
경완은 그 문자에 그의 잘못이 아니라고 답장하려다가 도로 지웠다. 과연 요하네스가 그걸 모르고 미얀마 군부 쿠데타를 저지했을까?
아니다. 그는 그 편이 세계평화에 더 도움이 된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렇게 로힝야족은 저도 모르게 요하네스에게도 버려진 것이다. 희생양이 된 것이다.
하지만 경완은 요하네스를 비난할 수 없었다. 세상일엔 더 큰 희생을 막기 위해 불가피한 희생을 감수해야 하는 경우가 있었다. 희생당하는 사람에겐 억울한 일이겠지만, 세상을 움직이는 거인들에게 누굴 죽이지 않으려면 대신 누구를 죽여야 하는 상황은 너무나 자주 마주하는 난제였다.
미얀마 군부 쿠데타를 막아서 살릴 수 있는 생명과 로힝야족의 생명. 그 둘에서 요하네스는 자신에게 필요한 걸 선택했을 뿐이다.
그보다 당연한 문제는 그 샬람인가 샬롬인가 하는 놈이었다.
-그는 세계에 위기를 가져오는 자인가요?
경완은 그렇다고 답한다면 죽일 생각이었다.
하지만 의외로 요하네스는 부정했다.
-그렇진 않습니다만 우리 일에 방해가 될 가능성이 크죠.
-그렇다면 죽이지 않을게요.
그 문자에 요하네스의 답장은 좀 간격을 두고 돌아왔다.
-역시 경완 씨는 제가 기억하던 그 사람은 아니군요.
-당연한 거 아닌가요?
경완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때와 상황에 따라 사람의 행동이 바뀌는 건 당연한 거다. 주변 사람이 그 행동을 보고 그 사람을 판단하는 것 역시 당연한 일이었다.
세기말의 이경완과 지금의 이경완이 다른 건 당연하지 않은가?
요하네스의 문자가 돌아왔다.
-제가 기억하던 그 사람은 목숨을 구걸하던 샬롬과 그자의 무리들을 용서 없이 처리했었죠.
-그랬던가요?
-제가 보기엔 언젠가 경완 씨가 그를 다시 만나게 되었을 때 그자를 죽일 것 같습니다.
이건 회귀자로서의 예측일까? 경완이 답장 내용을 고민하는 동안 요하네스의 문자가 또 도착했다.
-혹시 기회가 된다면 그자의 능력을 카피해 보는 건 어떻습니까? 혹시 나중에 도움이 될 수도…….
-알겠습니다. 한 번 해보죠.
경완은 그렇게 답장을 매겼다. 솔직히 어떻게 인위적으로 각성을 유도하는지 개인적으로 궁금하기도 했다.
그는 안내인에게 문자로 사정을 설명했다. 누군가를 발견했는데 그가 로힝야족에 인위적으로 초능력자를 만들고 있다고 말이다.
-그래서 전 그 사람을 추적해 볼 생각입니다.
-부디 몸조심하십시오.
안내인은 걱정하면서 몇 번이고 경완에게 감사를 표했다. 경완이 그 초능력자의 능력을 카피하려고 한다는 목적을 모르기 때문에 더욱 감사했다.
반군의 전력에 초능력 병력이 확보되고 있다니, 이건 국가적 비상상황이었다.
경완은 혹시 미얀마 정부 측이 경거망동해서 자기를 방해하지 않도록 안내인에게 상부에 보고하는 건 자신이 좀 더 정보를 얻고 난 후로 미뤄달라고 당부하고 일단 쉬었다.
해가 뜨는 걸 보며 잠자리에 들었던 그가 다시 눈을 떠서 움직인 건 석양이 질 때쯤이었다.
그는 샬롬을 발견한 장소까지 가서 거기서부터 추적을 시작했다. 과연 샬롬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갔을까?
경완은 그 장소에서 동쪽에 있는 반군 지역으로 향했다. 왜냐면 샬롬의 행적은 분명 서쪽에서 시작했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로힝야족이 사는 지역은 미얀마의 서쪽, 방글라데시와 국경을 접하는 지역이었으므로 파키스탄 출신이라는 샬롬은 방글라데시를 거쳐 미얀마로 왔을 가능성이 높았다.
과연 그는 추측대로 동쪽 정글 깊숙한 곳 반군 지역에서 샬롬의 존재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는 경완의 초감각 레이더를 느끼지 못하고 하던 일을 계속했다. 바로 초능력자를 만들어내는 일이었다.
경완은 한 명 한 명 죽어나가는 각성 의식을 초감각으로 멀리서 관찰했다.
S입자의 유동이 어떠한지, S입자 구성체의 모양과 변화에 집중했다. 희생양 혹은 자발적 순교자는 충분히 많았기 때문에 경완이 샬롬의 능력을 카피할 때까지 충분히 관찰할 수 있었다.
한 스무 명쯤 죽었을 때 그는 자신이 이 인위 각성 능력을 사용할 수 있을 거라고 예감했지만 그 예감을 확신으로 바꾸기 위해 실험을 할 생각은 없었다.
이 인위 각성 능력의 사망률이 90%가량 되었기 때문이다.
정확하진 않지만 경완이 샬롬이라는 자가 하는 짓을 보고 확인한 바가 그랬다.
10명 중 9명은 눈코귀로 피를 흘리며 죽고 나머지 한 명이 신체강화능력을 각성한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