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전생-더 빌런 337화
31-빅브라더
조용히 샬롬의 능력을 카피하는 것에 성공한 경완이 돌아와 안내인에게 샬롬의 위치와 목격한 바를 말해주자 안내인은 급히 미얀마 정부에 연락해서 이 첩보를 전달했다.
그리고 경완은 미얀마의 수도 양곤으로 돌아왔다. 샬롬은 위험한 인물이기는 하지만 IAMSR의 일은 아니었다. IAMSR은 내전이나 테러와는 상관없었다. 샬롬이 세계 위기를 가져올 가능성도 낮았다.
하지만 미얀마 정부 입장에선 매우 중요한 정보를 확보한 것은 분명했기에 경완과 IAMSR에 정식으로 감사인사를 전달했다.
이제 샬롬은 미얀마 정부의 몫이었다. 경완이 살짝 듣기로는 위버멘쉬 미얀마와 군부에 소속된 초능력자들이 나설 예정이라나?
정글에서 일주일 넘게 고생했던 경완은 얼른 한국으로 돌아와 쉬었다. 온전히 쉬지는 못했다. 귀찮지만 보고서를 내기 위해 서류작업도 해야 했는데, 혼자 갔기 때문에 남에게 떠넘길 수가 없었다.
“오빠가 컴퓨터를 업무적으로 사용하는 거 보니까 놀랍네.”
미연이 감탄하자 타다다다 키보드 위에 손가락을 놀리고 있던 경완이 손가락을 멈추고 그녀를 돌아보았다.
“하기 싫어.”
“그러시겠지.”
미연이 피식 웃으며 실소를 지을 때 경완은 문자 하나를 받았다. 팀원인 이누스케로부터 온 문자였다.
-일본 오키나와에서 에서 바이오 하자드 발생
경완은 그 문자를 확인하자마자 이누스케에게 전화했다. 이누스케는 기다렸다는 듯 바로 전화를 받았다.
[이누스케입니다.]
[일이 터졌다고요?]
[오키나와에 있는 다이이찌산쿄의 실험실에서 사고가 났습니다.]
[양상이 어떤가요?]
[네바다 주에서 일어난 것과는 다릅니다.]
네바다 주와 달리 다이이찌산쿄의 실험은 사람을 동원한 임상시험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암에 걸린 초능력자들에게 항암제를 사용하면서 S입자가 신체에 어떤 생리적 작용을 하는지 연구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무슨 짓을 한 것인지 임상시험자가 이성을 잃고 폭주해 버려서는 닥치는 대로 살인을 하고 있다지 않은가?
경완은 이것이 요하네스가 언급했던 변이인간 사건이 아닌가 의심했다. 그는 바로 일본으로 이동하면서 요하네스에게 연락했다.
[여기저기서 사고군요.]
“진짜 말세가 오나.. 그래서 변이인간 사건일까요?”
[글쎄요…… 하지만 확인해 볼 필요는 있습니다.]
변이인간 사건이 세계 멸망과 관련있는 이유는 그들이 인간의 탈을 쓰고 있지만 인간이 아니라는 점에 있었다.
그들은 공감지능이 없다시피하고, 그들의 이성은 그들의 파괴욕구에 철저하게 종속되어 있으면서도,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충분히 기다릴 수 있는 인내심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개체의 차이는 있었다.
“인간과 변이 인간의 차이점은요?”
[변이 인간은 인간을 잡아먹습니다. 그들의 이성과 육체를 유지하기 위해 정상적이고 다양한 유전자를 공급할 인간의 육체를 필요로 하죠.]
“변이 인간은 왜 나타나는데요?”
[초능력자를 가지고 인체실험을 할 때 확률적으로 탄생합니다.]
그 인체실험은 대부분 피험자의 정신과 능력, 혹은 육체에 어떤 임계점에 도달하는 부담이 인위적으로 가해졌을 때 발생한다.
그래서 그런지 변이 인간은 다양한 양상을 보인다.
인내심 없이 바로 폭주하는 놈부터 태연하게 멀쩡한 척 하다가 연쇄 살인을 하는 놈, 아예 사회적 지위를 쟁취해 그걸 방패막이 삼는 놈 등 다양했다.
[이들에겐 원천적인 악의가 있습니다. 자신들의 가지지 못한다면 다 부셔버리겠다는 광기가 있죠. 아마 S입자에 의해 변화된 육체와 뇌가 그런 영향을 주지 않았나 싶습니다.]
변이인간. 인간에게서 비롯되었지만 엄연히 인간과 다른 종으로 우화, 혹은 변인한 그들은 대부분 육체와 지능 면에서 인간보다 우월했고, 그런 그들이 주도하는 세상은 충분히 말세가 되기에 충분했다.
요하네스가 말하길 어떤 회귀에서는 놈들이 핵전쟁을 일으켰다고 말했다. CN폭탄은 사용해서 말이다.
[다이이찌산쿄가 어떤 초능력자들을 대상으로 임상실험을 했는지, 그리고 정확하게 그들에게 무슨 실험을 했는지 자료가 필요합니다.]
“일본 정부가 싫어하겠네요.”
일본 정부가 그 귀한 자료를 순순히 넘길 리가 있나?
하지만 경완이 안 준다고 얌전히 예할 사람도 아니었다. 일본 정부가 싫어할 거라는 그의 말은 사실 일본 정부가 어떻게 나오든 그 자료를 확보할 거라는 그의 결심을 표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안 준다고? 731부대의 실험 데이터도 미국에게 처맞고 난 후 얌전히 내놓은 일본이니만큼 처맞다보면 주겠지.
요하네스가 말을 이었다.
[부탁합니다. 혹시 폭주하지 않고 인내하고 있는 변이 인간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요.]
“변이 인간을 확인하는 방법이 있어요?”
[일정 시간 감금해 두면 됩니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자신을 유지하기 위해선 인간을 소모하는 존재니까요.]
“흐음 초능력자인데 가능할까요?”
[사실 초능력 범죄자용 수용소를 짓고 있습니다.]
초능력을 무력화하는 중화 영역을 24시간 돌리는 수용소랄까.
이 중화 영역을 전개하는 싸이킥 재머 장치를 운용하는 인력을 수월하게 확보하기 위서 증폭 장비가 필요한데 이를 위해서 마리아 여사가 연구 중이란다.
그래서 일단은 경완의 능력으로 사로잡은 후 외딴섬에 처박아두는 방안이 나왔다.
그에겐 마킹 능력이 있으므로 설사 도주한다고 해도 금방 잡을 수 있었으니 말이다.
경완은 고개를 끄덕이다가 마리아 여사가 언급되자 그간 좀 궁금했던 점을 요하네스에게 관해 물었다.
“그분은 회귀 전에 뭐하셨어요?”
[매드사이언티스트셨습니다.]
“그래요?”
역시랄까?
“그밖에는요?”
[나름 섬세하신 분이었죠.]
“…….”
경완은 자신의 귀가 의심스러워 대꾸하지 않았고 요하네스는 말을 이었다.
[그분은 세상의 도덕에 따라 사실 분이니까요.]
그 말에 경완은 아! 하고 깨닫는 것이 있었다.
김마리아 여사는 어리석지 않았다. 오히려 똑똑한 편에 속했다.
하지만 그녀의 도덕관은 그녀의 높은 지능만큼 굳세진 않았다.
중국에 납치당했을 때의 일, 서울 참사 때의 일을 떠올려보면 그녀의 도덕관은 고결할 정도 높다기보다는 분명 범속(凡俗)했으며 그만큼 상대적이었다.
그러니 말세가 도래하고, 도덕이 땅에 떨어졌을 때, 그녀가 정부나 문명사회가 강조해오던 도덕을 굳건히 지킬 거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아마 그녀의 뛰어난 지능에 맞게 도덕관을 수정하지 않을까? 그것을 두고 요하네스는 그녀가 섬세하다고 표현한 것이다.
“혹시 저와 그분이 싸웠었나요?”
[아아. 대단했죠.]
감탄, 혹은 그리움이 섞인 목소리에 경완은 더는 그에 관해 묻지 않았다. 괜히 들쑤셨다가는 골치 아픈 사실을 알게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무튼, 조언 감사합니다. 우선 명단부터 확보하도록 할게요.”
[네, 그럼 수고하십시오.]
경완은 일본에서 해야 할 일에 대한 단서를 쥔 채 일본 땅에 들어섰다.
그가 일본 공항에 입국하자 이누스케와 일본 내각정보조사실의 공무원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 상! 이리로!]
내각정보조사실에서 나온 공무원은 아이샤라는 이름을 가진 미모의 젊은 일본 여성이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미인계를 쓸 생각을 하는 일본 정부라고 추측하는 건 편견일까?
[어떻게 되어가고 있어요?]
경완의 물음에 이누스케가 대답하길,
[일단 미쳐버린 피험자는 제압되었습니다.]
[체포?]
[사살입니다.]
이누스케가 자세하게 체포당시의 상황을 설명했는데 듣기만 해도 상황이 보통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었다.
폭주한 피험자는 거의 불사(不死)였다. 어지간한 소총탄은 튕겨내고, 중기관총의 탄환이 근육을 뚫고 들어가도 잠시 시간이 흐르면 구멍이 박힌 탄환을 뱉어내고 스르륵 흔적도 없이 아물었다.
일본의 내노라하는 초능력자들이 전기로 지지고, 콘크리트 덩어리로 뭉개고, 불로 태워서 커다란 피해를 주었지만, 폭주한 피험자는 맹렬히 도망치며 근처의 사람을 잡아다가 ‘먹었다’.
처음에는 입으로 우걱우걱 씹어 먹더니, 시간이 지나자 마치 아메바가 사냥하는 것처럼 피부로 피해자의 몸이 흡수되었다. 그러고는 그때까지 일본의 초능력자들이 입혔던 부상이 깔끔히 회복되었다.
결국 전투는 놈을 인적이 없는 곳으로 몰고 가서 치열하게 육체를 파괴하고 소각한 끝에 종료되었다.
이누스케의 설명이 끝나자 바로 아이샤가 말을 이었다.
[일본 정부는 이 사태를 심각하게 보고 있고 원인 파악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현장부터 가죠.]
경완은 아이샤가 까는 밑밥을 살짝 치우며 이동했다. 아이샤가 하는 말은 결국 일본 정부를 믿어달라는 뜻 아니겠는가?
하지만 경완은 정부를 믿지 않았다. 왜냐면 조직의 도덕은 대체로 개인의 도덕보다 떨어지기 때문이었다.
민주투표로 선출된 정부라고 해도 다르지 않았다. 하물며 지역구 세습이라는 행위가 벌어지는 유사민주주의 국가는 어떻겠는가?
아이샤는 침착하게 경완과 이누스케의 뒤를 따라 오키나와에 있는 다이이찌산쿄의 연구소로 했다.
오키나와. 참 풍경 좋은 곳이었다. 연구소가 있던 곳도 뒤에는 산, 앞에는 넓은 바다가 보여 연구소보다는 휴양지가 어울리는 장소였다.
피험자들이 암 걸린 초능력자라고 했던가? 호스피스 겸 임상연구를 의도했다면 꽤 괜찮은 장소였다.
하지만 그 좋은 풍경과는 달리, 그리 크지 않은 연구소의 한 쪽 벽면엔 흉물스런 구멍이 뻥 뚫려 있었다.
그리고 폴리스 라인이 쳐져 사람들의 접근을 막는 동시에 경찰과 조사관으로 보이는 이들이 여럿 들락거렸다.
경완이 폴리스 라인을 넘어가려고 하자 경찰관이 막았다. 경완은 아이샤를 불렀다.
[아이샤 씨.]
아이샤가 앞으로 나와 경찰에게 뭐라고 말하자 경찰은 길을 비켜주었다. 역시 내각정보조사실이란 배경이랄까?
경완은 폴리스 라인을 넘어가 연구소로 향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른 이가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경찰은 아니고 양복을 입고 험악한 인상을 쓰고 있는 사내였다.
경완은 아이샤를 보았다. 이번에도 그녀의 활약(?)을 기대했지만 이번에는 통하지 않았다. 사내도 꽤나 높은 곳에서 내려온 인간인 모양이었다.
아이샤와 사내가 일본말로 뭐라고 말다툼에 가깝게 대화하는 걸 들은 이누스케가 경완의 귀에 속삭였다.
[내각부에서 내려온 놈입니다.]
[아이샤하고 한통속일까요?]
[그건 아닐 겁니다.]
[정말요?]
[내각부랑 내각정보조사실은 엄연히 다른 기구입니다.]
다만 관할권을 두고 지금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나?
경완은 이해하기 힘들었다. 똑같이 ‘내각’이란 단어가 들어간 내각부랑 내각정보조사실이면 사실 같은 식구 아닌가?
일본이 툭하면 무슨 무슨 기구를 만들어서 온갖 명칭의 부서들이 즐비하다는 걸 모르는 그로서는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었다. 일본의 정부조직의 구성은 한국의 그것과 비교하면 복잡하다 못해 난잡한 느낌이 들 정도였다.
이누스케가 약간 비웃는 표정을 지으며 대꾸했다.
[2차대전의 교훈을 잊어먹고 또 저짓거리를 하는군요.]
[미국에게 덤비면 처맞는다?]
경완의 말에 이누스케는 순간 폭소할 뻔 했지만 간신히 참았다. 이누스케가 듣자하니 경완은 2차대전에서 일본이 폭주한 이유에 육군과 해군 사이의 알력, 권력 다툼이 있었음을 모르는 모양이었다.
이누스케는 굳이 말하지 않았고, 경완은 그의 옆으로 돌아온 아이샤에게 주목했다.
그녀는 매우 송구하고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경완에게 말했다.
[저~. 이 상. 죄송하지만 이미 조사관들이 나와 조사하고 있는 상황이라 그들에게 협조를 기대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그녀의 말에 경완은 이누스케를 보며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