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전생-더 빌런 339화
31-빅브라더
미연은 아프리카로 간다는 경완의 말에 어이 없어했다.
“이번에는 아프리카?”
“케냐 나이로비.”
“오빠 아시아 지부 소속 아니었어? 그런데 왜 갑자기 파견이야?”
“내 능력을 필요로 하는 곳이 많아서?”
경완의 말에 미연은 콧방귀를 뀌었다.
“오빠가 슈퍼맨이야? 왜 다들 오빠만 찾는 거야?”
“어…… 슈퍼맨 비슷하기는 하지 않나?”
일단 세상에서 가장 강한 초능력자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고, 미국의 패권에 도전하던 정부 하나를 무너뜨린 전력도 있고 말이다.
“솔직히 말해봐. 왜 굳이 아프리카까지 가는지.”
“어. 겸사겸사…….”
미연이 지그시 보는 시선에 경완은 그녀가 혹시 천리안이나 독심술 따위의 정보 분야 초능력을 각성한 건 아닌지 의심했다.
S입자의 움직임이 없는 것을 보아 초능력은 아니지만 그에 준할 정도로 너무나 좋은 촉에 경완은 솔직하게 사정을 설명해야 했다.
일본 정부가 비협조적이라 실력행사를 하다가 이렇게 되었다고 말이다. 그의 이야기를 들은 미연은 화를 내기보다는 침착해졌다.
“힘들게 일하네?”
“어…… 그랬나?”
일본 내각부 조사팀을 제압할 때 귀찮기는 하지만 딱히 힘들지는 않았던 것 같았다.
“악!”
“그럴 때는 나 힘든 일도 거뜬히 해낸다고 허세를 부리는 거야.”
미연이 옆구리를 꼬집으며 조언했고, 경완은 꼬집힌 부위를 문지르며 본론으로 돌아왔다.
“그럼 혼자 간다?”
“몸조심하고.”
“어차피 웜홀이라 금방 와. 가는 게 문제지.”
“고생해~”
미연이 격려해 주었지만 케냐 나이로비까지 가는 비행선은 시간만 17시간이 걸렸다.
경완은 영화와 게임기, 충전기 및 수면의 힘을 빌어 그 시간을 버텼다. 퍼스트 클래스라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퍼스트 클래스가 아닌 사람들은 도대체 어떻게 버티는 걸까 막상 경험해보니 신기할 정도랄까.
공항에 도착한 경완은 일단 워프 마커부터 박아놓고 미연에게 잘 도착했다고 문자를 넣었다. 그리고 게이트에서 기다리고 있던 IAMSR 아프리카 지부의 직원을 만나 숙소로 향했다.
IAMSR 아프리카 지부에서 나온 직원의 이름은 간마 로이슨이었는데 말이 참 많았다.
덕분에 IAMSR의 사정을 어느 정도 알 수 있었다.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중구난방 오합지졸이랄까? 경완은 각오는 했지만 막상 귀찮은 일이 생길 것 같은 느낌에 급피곤한 느낌적인 느낌을 느꼈다.
호텔에 도착한 그는 요하네스와 통화했다. 정보가 필요하기도 했고 세상 돌아가는 꼬라지가 궁금하기도 했다. 인터넷을 뒤져보면 나오기는 하지만 그래도 요하네스 위치 정도에 있는 인사가 보는 형세는 인터넷을 뒤지는 것보다는 분명 양질의 정보일 테니까.
-일본에서의 일은 잘 마무리되었습니다. 변이 인간 의심자들도 모두 확보해 잘 가둬두었고요.
요하네스가 일본의 근황을 설명했다. 처음에는 변이인간이라는 개념을 도저히 믿지 못하던 일본 정부였지만 메신저가 위버멘쉬의 총수이니만큼 한 귀로 흘려버릴 수가 없었다.
그리고 변이인간 확인절차라고 해봤자 그리 어려운 것도 아니고, 피험자를 사람이 없는 곳에 격리시켜 일정 기간 감시하는 것뿐이잖은가? 물론 인권침해적인 요소가 없는 건 아니지만 일본 정부는 공익과 국익이란 미명하게 개인의 인권 정도는 얼마든지 짓밟을 수 있는 조직이었다.
-그럼 오키나와 사건은 그렇게 마무리되는 건가요?
-그건 일본 정부가 얼마나 성실하게 검증을 하느냐에 달려있죠. 하지만 걱정할 것 없습니다. 근처에 누군가가 실종된다면 변이인간이라는 강력한 정황 증거가 되거든요.
그래서 인적 없는 무인도 같은 곳에 격리하도록 강력하게 제안한 것이다.
어디 시설 같은 곳에 수용했을 때 탈출 사건이 일어나는 것보다 훨씬 피해가 적을 테니까.
역시 요하네스였다. 어디 인터넷이나 뉴스에서 이런 고급 정보를 얻을 수 있겠는가? 경완은 아직 일본에서의 일이 마무리되지 않은 것을 느끼며 화제를 전환했다.
-일단 그 건은 그렇게 두기로 하고…… 그럼 중동의 일에 대해서 하실 말씀이 있나요?
-미안하지만 저도 말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습니다. 저도 지금부터 알아봐야 하거든요.
그가 이어서 설명하길, IAMSR 아프리카는 여러 열강의 입김이 서려 있어서 함부로 간섭할 수가 없다고 한다.
열강들에게 있어서 IAMSR은 세계 평화, 안전을 명분으로 아프리카의 갖가지 사건에 끼어들기에 매우 적절한 도구였는데, 여기엔 미래 전략에 있어 IAMSR의 역할이 중요하기 때문이었다.
앞으로 세계는 초능력이 없으면 설명할 수 없는 세상이 될 것이고 이는 아프리카 역시 마찬가지며, 실제로 아프리카에선 선진국들도 깜짝 놀랄 정도의 초능력 훈련법이나 강력한 초능력자가 나왔다.
-자호멧에게 중동을 추천한 건 총수님이 아니었나요?
-하하. 경완 씨. 전 그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어요. 중동의 일을 당신에게 말한 건 자호멧이 스스로 결정한 겁니다.
경완은 그 말에 자신이 지레짐작했음을 깨닫고 요하네스의 문자를 계속 읽었다.
-이미 당신은 최선의 선택을 했어요. 여기서 제가 더 간섭한다고 더 나은 결과가 나올 것 같지도 않아요. 제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당신은 당신이 필요한 장소가 어딘지 현명하게 선택할 겁니다. 그런 시대입니다. 지금 이 과도기는 말이죠. 그리고 자호멧 그 사람은 과거 제 밑에 있기는 했지만 지금은 제 지시를 따르는 하급자가 아닙니다. 나름의 신념과 목표가 있는 사람이죠. 저라도 그에게 강압적으로 지시를 내리거나 압박하긴 힘들어요.
그랬구나. 경완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요하네스와의 문자가 별다른 소득이 없다고 느껴졌다.
중동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왜 자신의 힘이 필요한지 대충이나마 알고 가면 편할 텐데 굳이 알 필요도 없었던 배경 정보를 듣게 되었다.
그래서 대놓고 물었다.
-혹시 IAMSR 아프리카 지부에서 제가 주의해야 할 점이라도 있나요?
-음……. 사람을 조심하세요.
-구체적으로 누구요?
-그건 저도 잘 모릅니다. 하지만 확실한 건 아프리카 지부는 강대국들의 입김이 들어간 지부입니다. 아시아 지부같이 헐렁한 곳이 아니에요.
경완은 다음 날 IAMSR 아프리카 지부에 방문해 요하네스의 말뜻을 실감했다.
일단 건물 크기와 사무실 크기가 아시아 지부의 세 배 정도는 되어 보였고 안에 있는 사람 수는 네 배는 되어 보였다.
인종도 여기가 아프리카가 맞는지 비흑인 비율이 약 40%가량 되어 보였고, IAMSR 아프리카 지부의 현장감찰팀도 약 50명가량이나 되었다.
아마 그를 공항으로 픽업하러 왔던 간마가 아니었다면 뻘쭘하게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고개나 빼고 구경이나 하고 있었을 것이다.
[여기는 루카스 카이카입니다. IAMSR 아프리카 현장감찰팀의 팀장이자 제게 미스터 리의 픽업을 부탁하신 분이죠.]
[아, 그렇군요. 반갑습니다.]
[반갑습니다. 루카스 카이카입니다.]
경완은 루카스 카이카라고 자신을 소개한 흑인과 악수를 나누었다. 경완을 현장감찰팀으로 안내해 준 간마는 지원부로 돌아가 버렸고 경완은 루카스와 단둘이 면담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렇게 미스터 리를 모시게 된 이유는 좀 복잡합니다.]
IAMSR 현장감찰팀의 업무는 위험한 초능력 연구나 실험을 감찰하여 그 위험성을 평가하고 조치를 취하는 것이다.
쉽지 않은 일이었다. 무엇이 위험한 연구인지 판단하는 것도 연구 자료나 아이디어의 유출을 꺼리기 때문에 기준이 애매하고, 감찰 관할권은 모호하고, 위험성의 평가는 물론이거니와 어떻게 조치를 취할 거냐도 애매했다.
매뉴얼은 있지만, 그 긴 매뉴얼을 다 읽어보면 앞에서 읽은 거랑 뒤에 나오는 거랑 상충되는 것이 많았다. 왜냐면 그 매뉴얼을 작성하는 시점은 물론이고 작성하는 이들도 상황이 애매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매뉴얼을 파악한 이라면 매뉴얼의 진의가 ‘그때그때 상황에 맞춰 유도리 있게 할 수 있는 만큼 해라’라는 걸 알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매뉴얼에 IAMSR 아프리카의 특수성이 합해지면 아주 골 때리는 상황이 나온다.
[중동의 상황이 심각하다는 첩보가 들어오는데도 IAMSR 아프리카 지부의 대부분은 아프리카 감시, 아니 아프리카의 이권에만 신경을 쓰고 있는 상황입니다.]
[아프리카 이권이요?]
경완의 말에 루카스는 쓰게 웃었다.
[아프리카의 연구 인프라를 장악하겠다는 거죠.]
초능력 연구 인프라는 비싼 최첨단 연구 기자재보다는 사람과 연구 시스템이 가장 중요했기 때문에 아프리카에서도 초능력 연구 분야에선 선진국을 따라잡을 가능성이 있었다. 실제로 몇몇 사례가 나왔는데 그중 한 명이 눈앞에 있는 케냐의 국민 히어로 루카스 카이카였다. 케냐 히어로즈 출신인 그는 엔터테이먼트보다는 좀 더 실질적으로 국가와 사회에 도움이 되기 위해서 히어로즈를 나와 IAMSR에 몸 담았다.
이렇게 아프리카에서도 자체적으로 성과가 나온 사례가 나오자, 아프리카의 초능력 연구를 사보타주하기보다는 차라리 아프리카의 초능력 연구 사업에 투자, 혹은 진출해서 빨대를 꽂자는 전략이 선택되었다. 비용면, 이윤면에서 더 많은 이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전략에서 IAMSR은 매우 유용한 지렛대였다.
초능력 연구를 감시, 감독, 감찰할 수 있는 국제기구라니? 이걸 참을 수 있는 나라가 몇이나 되겠는가?
그리고 초능력이 거의 모든 산업 전반에 응용되는 만큼, 초능력 분야를 쥐면 아프리카의 지하자원이나 소비 시장 등에도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아프리카의 지하자원이나 거대한 인구를 생각하면 절대 수수방관할 수 없는 이권이었다.
루카스의 설명에 경완은 아프리카 지부에 손을 대기 힘들다는 요하네스의 말을 이해했다.
어쩌면 아프리카 지부를 강대국에게 먹잇감으로 주고 IAMSR의 창설에 동의를 얻어낸 것일 수도?
[루카스 씨는 그런 행태에 불만이 없으신가요?]
[없긴요. 일을 좀 제대로 했으면 좋겠는데 다들 엉뚱한 곳에 정신을 팔고 있으니 문제요. 이러다 사고라도 나면…….]
[팀장이시잖아요.]
경완의 질문에 루카스는 쓰게 웃었다.
[팀장이지만 팀원들을 제압할 정도는 아닙니다.]
팀이라는데 팀의 인원만 50명이었다. 이는 아프리카는 물론 중동까지 감찰한다는 명분 때문이지만, 확실히 아시아 지부에 비하면 규모가 너무 컸다. 차라리 감찰팀이 아니라 감찰부가 어울리는 규모랄까.
[설사 제압하려고 해도 위에서 압박이 들어옵니다. 여러 세력의 입김이죠.]
루카스가 팀장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케냐 마사이족 출신임과 동시에 케냐의 자랑스런 국민 히어로라는 타이틀을 달고 그 어떤 외부 세력과도 결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IAMSR을 이권이란 케이크를 잘라먹을 칼로 사용하려는 자들 사이의 완충지대랄까?
경완이 물었다.
[걱정 안 되십니까?]
[걱정이야 되죠. 하지만 아프리카는 많은 지역이 혼란스럽습니다. 저들의 욕심이 아프리카에 안정을 가져온다면 그것으로 충분하죠.]
경완은 그 말에서 그 과정에 대한 희생에 관심주지 않겠다는 루카스의 의사를 읽었다. 하긴 그는 케냐 사람이었고, 아프리카는 넓으니 아프리카 전체에 대한 책임감을 가지고 있기는 힘들 것이다.
그리고 IAMSR의 설립에 입김을 가한 선진국들이 아프리카 전체에 대해 책임감을 느끼는 이에게 IAMSR 현장감찰팀장이란 중요한 자리를 주진 않았을 것이다. 그런 사람에겐 현재 돌아가는 IAMSR의 작태는 새로운 식민침략이라고 느껴질 수도 있었으니까.
루카스 카이카라는 인재는 적당히 타협할 줄 아는 사람이기에, 아프리카 사람이지만 골치 아픈 아프리카보다는 일단 당장 손을 쓸 수 있는 중동에 신경 쓰는 것도 당연한 수순이었다.
경완은 어느 정도 상황을 파악했다. 여기 아프리카 지부 내의 알력 관계에 끼어들어봤자 골치만 아프고 별 소득이 없을 건 분명해 보였다.
확실한 건 루카스가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했다는 것이었다. 감찰팀 내부는 사실상 분열되어 각자 머리가 있는 오합지졸 상태였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