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전생-더 빌런 342화
31-빅브라더
솔직히 경완은 그러고 싶어서 그러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빨리 일 마무리하고 집에 가서 쉬고 싶은 마음과 요하네스의 당부 때문이었다.
‘경완 씨가 활약해 줄수록 우리의 목적은 수월하게 성취할 수 있습니다.’
유엔 사무국으로부터 IAMSR을 분리해 독립 기구로 만드는 것, 그리고 독립기구 IAMSR을 통해 향후 세계에 위험을 끼칠 인위적인 요소들을 감시하고 적절한 조치를 취하는 것이 요하네스의 목표였다.
경완은 솔직히 그러한 목표에 자신이 그렇게 큰 쓸모가 있나 싶었지만, 요하네스가 강력하게 주장했다. 초능력자 중에는 힘을 숭상하는 이들이 아주 많고, 그들을 제어하기 위해선 가장 강력한 초능력자라고 알려진 경완이 IAMSR의 일원으로서 아주 높은 지위에 올라서야 그들을 끌어들이거나 통제할 수 있다고 말이다.
솔직히 그런 인간들을 통제하고 싶은 마음은 눈곱만큼도 없지만 그런 인간들을 놔두는 것보다 관리할 수 있으면 하는 편이 낫다는 요하네스의 말도 있어서, 경완은 조금 신경 써서 열심히 오버마인드 사태를 수습하려고 움직인 것이다.
다행히 싸이킥 재머라는 특효약에 힘입어 오버마인드 사태는 빠르게 종결되었고, 뒷수습만이 남았다. 경완은 자신을 둘러싼 사람들의 시선에 뭔가 번거로울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얼른 한국으로 돌아와 버렸다. 굳이 뒷수습까지 자신이 필요하진 않았고 그 자리에 계속 있었다만 사방에서 박수와 환호성이 터져 나올 것 같았기 때문이다.
물론 그의 두꺼운 낯가죽은 전 세계 사람들이 찬사를 보낸다고 해도 아무렇지 않았지만, 문제는 실질적인 이득이었다. 빠가 까를 만들 듯, 과도한 팬심이 오히려 민폐를 야기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경완은 사람들이 열광하는 이미지를 유지하기 위해 힘을 쏟을 생각이 없었다. 차라리 사람들이 자신을 두려워하고 어려워하는 편이 편안한 일상에 도움이 되었다. 쇼펜하우어도 말하지 않았던가?
인간은 너그럽게 대하면 버릇이 없어진다는 점에서 어린아이와 비슷하다고 말이다. 그러니 특별히 모든 사람들에게 잘해줄 필요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경완은 기대와 열망의 분위기에서 멀어지려 두문불출했다. 그러나 요하네스만큼은 직접 연락을 해서 그에게 치하와 감사의 말을 전했다.
“아, 뭘요.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인데요.”
경완의 대답은 절대로 겸양이 아니었다. 평온한 일상을 위해선 마땅히 해야 하는 일이었다. 그것이 그가 요하네스와 손잡은 이유이잖은가?
[경완 씨가 아니었다면 수습 불가 지점에 도달하기 전에 해결하기는 아슬아슬했을 겁니다.]
“……네? 수습 불가 지점이요?”
[아. 제가 얘기 안 했던가요?]
요하네스가 이어서 설명하길 오버마인드가 정녕 무서워지는 건 자아를 각성한 이후, 숙주 중에 포함된 초능력자들을 활용할 수 있게 되면서부터라고 했다.
오버마인드는 그 초능력자들을 도구 다루듯 다루어 더 강한 출력의 초능력을 사용하게 만드는 것은 물론, 지금 인간들이 초능력 신소재 등으로 정신계 저항 장비를 만들어내듯이 싸이킥 재머의 중화 영역에 저항할 수 있는 수단이나 능력을 개발하게 된다고 말이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인류 측 초능력자는 굉장한 소모전을 강요받게 된다.
그건 마치 살충제에 해충이 내성을 갖추고, 그래서 더 많은 살충제나 혹은 다른 살충제를 사용하는 양상과 비슷하지만.
그것보다 최악인 점은 살충제는 새로 내성이 없는 살충제를 개발할 가능성이라도 있지만, 오버마인드는 그럴 시간과 기회를 주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항상 오버마인드 처리는 속도전이었습니다. 예전엔 오버마인드 군집을 향해 핵폭탄을 쓰기도 했죠.]
그때는 이백만 명가량이 순식간에 재로 화했었다고 요하네스는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이야기했다.
“그런 이야기를 왜 안 해주셨어요?”
들었다면 더 빡세게 행동했을 텐데……
요하네스가 대답했다.
[요즘 제가 워낙 바빠서 정신이 없었거든요. 경완 씨에겐 이미 했다고 착각한 모양입니다.]
“도대체 뭐가 그리 바쁘신지……”
[당연히 우리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작업들이죠. 곧 그 결실을 볼 수 있을 겁니다.]
요하네스는 그렇게 말을 마무리했다.
아무튼, 이란에서 활약한 경완은 그 공로를 빌미로 직무 정지가 풀렸고, 아시아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
그리고 경완은 그 융숭한 대접에 걸맞게 철저하게 보답(?)했다.
베트남에선 어떤 베트남의 제약 회사에 위험한 연구를 하고 있다고 경고하고 IAMSR에서 관리하는 CCTV를 설치하도록 했으며, 태국에선 인신매매 당할 뻔한 어린 각성자 몇을 구해내면서 인신매매 조직 몇을 조지기도 했고, 중국 대륙에서 어느 다국적 제약 회사가 인체실험을 한다는 첩보가 사실인지 확인하고 세상에 알려지게 만들기도 했다.
그 과정이 경완의 입맛 따라 이루어졌기 때문에 IAMSR 아시아의 활동은 호불호가 갈렸다.
계속해서 일어나는 초능력 연구 사고에 불안감을 느끼고 IAMSR의 존재 이유를 수긍하는 이들은 긍정적으로 보았지만, IAMSR의 활동 때문에 눈앞에 놓인 기회를 잡지 못했다던가 손해를 본 이들을 싫어했다. 아니, 싫어한 것을 넘어 증오할 정도였다.
그러나 그런 감정이 여론으로 모여 어젠다를 만들어내진 못했다. 왜냐면 IAMSR을 필요로 하는 이들의 힘과 영향력이 더 셌기 때문이다.
이들은 초능력 연구 경쟁에서 사다리 걷어차기를 원하는 강대국이거나, 굳이 초능력 연구에 절박하지 않은 자본가, 기업인, 혹은 섣불리 움직이는 경쟁자를 노리는 자 등이었다.
IAMSR의 활동에 많은 기대를 가지거나 이미 쏠쏠한 재미를 본 그들은 IAMSR을 좀 더 날카로운 칼로 만들기 위해 유엔 사무국에서 독립시켜 독자적인 조직으로 만들자는 안건을 통과시켰다.
여기에는 북미와 유럽의 입김이 매우 강했다.
중국은 지금 갈라져서 유엔 분담금도 제대로 내지 못하는 상황이었기에 IAMSR 독립안은 현재 세계를 주도하는 국가들의 입맛에 맞게 만들어졌다.
과연 분리된 IAMSR이 제대로 운영될 수 있냐는 현실적인 우려도 있기는 했지만, 유엔 사무국과의 몇 달간 더부살이 기간은 IAMSR에게 국제기구 운영에 대한 노하우를 전수하기에 충분했다.
남은 건 거기에 일할 사람을 뽑는 것이었고 이는 상당히 난항을 겪을 일이지만 IAMSR은 유엔 사무국 직원들을 대거 스카우트하는 걸로 급한 불을 껐다.
유엔 사무장은 이 일 때문에 IAMSR에 매우 강력하게 항의했지만, 이내 잠잠해졌다. 그 배경에 IAMSR의 설립을 추진했던 세력이 있다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아무튼, 독립한 IAMSR은 개편을 거쳤고, 북미, 남미, 동아시아, 동남아시아, 인도, 중동, 서아프리카, 동아프리카, 유럽 등 좀 더 세세하게 지역을 나누어 지부를 추가했다.
그리고 각 지부를 총괄하는 지역관리청을 크게 네 개 지역으로 나누었으니, 경완은 그중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 오세아니아를 관리하는 아시아-태평양 지역 관리청의 부청장에 임명되었다.
“경완 씨가 미리 중공을 무너뜨려 놔서 일 진행이 수월했습니다.”
오랜만에 직접 방문한 요하네스의 말에 경완은 머리를 긁적였다.
“이렇게 될 거라고 예상한 건 아닌데요.”
“저도 그랬습니다. 서울에서 핵이 터지는 일은 별로 없었거든요.”
웜홀 능력자는 매우 희귀하지만, 그 능력자가 골수 중화주의자로서 공산당에 충성하는 청년일 가능성은 더 희귀했다.
그 능력으로 자유주의 국가에 가면 엄청나게 귀한 대우를 받을 텐데 굳이 공산당에 목숨까지 걸고 충성을 할 줄은 요하네스조차 예상하지 못했다.
아무리 무한회귀자인 그라도 해도 경완과 중국이 충돌을 빚을 가능성은 충분히 점칠 수 있어도, 한 청년이 웜홀핵이라는 광기에 찬 행동의 가능성을 예상할 순 없었던 것이다.
그 외에 서울에서 핵이 터진 경우는 CN폭탄 기술을 확보한 북한의 핵테러, 혹은 전 세계가 휘말리는 핵전쟁이 있었다.
요하네스는 화제를 바꾸었다.
“새로 취임한 대통령을 만나러 갈 건데 같이 가시겠습니까?”
그가 한국에 직접 방문한 이유는 바로 새로 취임한 대통령 때문이었다.
전 대통령은 임기가 끝나 물러나고 새로 대통령이 취임했다. 쿠데타 사령관인 정청완 준장은 과거 어떤 독재자처럼 본인이 체육관 대통령이 되는 대신 대통령 선거를 승인하고 새로운 대통령이 취임하는 걸 ‘허락’했다.
그런데 그 대통령이 하필이면 정청완 중장과 손잡은 전 대통령의 정치적 후계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언론에선 허수아비 대통령이다, 꼭두각시다 말이 많았다.
어떻게든 군부 정권에 흠집을 내보려는 발악이었지만, 이번 대통령의 당선은 결국 국민들이 정청완 군부 정권에 대한 기대가 크다는 방증이기도 했던 것이다.
이러한 현실에 여러 지식인이 한국 민주주의에 큰 흠이 남았다고 개탄했지만 귀담아 듣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오히려 한국인은 독재를 좋아한다고, 차라리 독재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생길 정도였다.
“저요? 왜요?”
“안타깝게도 러시아가 유럽부터 아시아까지 영토가 있잖습니까? 일단은 유럽 지부에 포함하기는 했지만, 영토적 특성을 생각하면 몽골이나 한국과의 긴밀한 협조가 필요한 상황이죠.”
“중국은 쏙 빠졌네요.”
“그치들은 지금 바쁘거든요.”
중국은 분열되었지만 언제까지나 분열되어 있으려고 하진 않았다. 쉽게 분열되기에는 중공이 그동안 세뇌에 가깝게 중화(中華)사상을 교육해 놓은 중화주의자들이 남아 있었고, 분열되어 오합지졸이 되어버린 중화(中華)의 입김이 국제 정세에서 얼마나 나약한지 그간 흘러온 국제정세가 똑똑히 보여주었다.
생각 좀 있고 대의와 야망을 품은 중국의 실력자 중엔 이대로 분열된 채로는 안 된다고 판단한 이들은 분명히 있었고 그런 이들을 소위 소분홍이라고 하는 자들이 지지하고 있었다.
중국 내 소수민족의 입장에서 보자면 거대한 중국에서 떨어져나간 쩌리가 되느니 높은 수준의 자치권과 정치적 자율성을 보장받고 중국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뭉치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미국이라는 좋은 예시가 있잖은가? 그렇다. 중합중국이었다.
경완이 물었다.
“중국이 다시 합쳐지면 위험한 거 아닌가요?”
“하지만 이미 IAMSR은 자리를 잡았고, 세계의 주류가 되어버렸습니다. 중합중국이 내일 당장 튀어나오는 것도 아니고, 중합중국이 어느 정도 기틀을 잡았을 땐 IAMSR은 부정할 수 없는 대세가 되어 있겠죠. 그리고 정말 IAMSR의 대의를 방해한다면…….”
요하네스의 시선이 의미심장하게 경완을 향했다. 그는 요하네스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감을 잡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실력행사를 한다 이거죠?”
다소 자조적인 뉘앙스에 요하네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할 리 없으니까요. 그들에게 경완 씨는 억압적 정부를 파괴해 자유의 토대를 마련해준 은인이 아니라 위대한 중화에 똥물을 끼얹은 중화의 적일 테니까요.”
“은인까지는 바라지도 않아요. 새로운 중국 정부가 부디 똑똑하길 바랄 뿐이죠.”
경완은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그는 진심이었다.
아무리 구원(舊怨)이 있는 상대라도 대가리가 정상작동하면 협상할 여지는 있다. 하지만 대가리가 빠가인 새끼들은 일단 협상 테이블에 앉히기 위해서라도 몽둥이부터 들어야 했다.
이 얼마나 귀찮은 일이란 말인가? 경완은 중공 잔당 잡으러 돌아다녔던 시설의 개고생을 또 반복하고 싶진 않았다.
“아무튼 그래서 대통령을 만나보시겠어요?”
“제가 굳이 갈 필요 있나요?”
“이제 경완 씨를 받혀줄 세력이 필요하니까요. 한국 정도면 미국을 완전히 대체할 순 없어도 비빌 언덕을 되어줄 수 있을 겁니다.”
“흐음……”
경완이 외부 활동을 시작하기로 하면서 미국의 경계심이 증가했다.
사실 이경완이 은거해서 사는 상태가 변수가 없어서 좋은데, 심경의 변화로 활동을 시작하니 미국으로서는 갑자기 뒤통수를 맞은 기분일 터였다. 그렇다고 경완이 얌전히 미국의 재갈을 찰 인간도 아니고 말이다.
비록 미시민권자라지만 미국에 거주하지도 않으며 미국의 국익도 그다지 배려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 경완을 보며 미국은 불안감을 느낄 수밖에 없으리라.
연락책인 김준의 반응도 그렇고 미국과 경완 사이를 국제 관계에 비유하자면 겉으로는 웃으며 손을 잡고 있어도 뒤로는 경색된 상태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