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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전생 더 빌런-343화 (343/367)

무한전생-더 빌런 343화

31-빅브라더

그래서 요하네스의 말도 틀리진 않았다. 세상과 단절되어 살아가지 않겠다면 어디 비빌 구석 한 군데 정도는 있어야 안심이 된다.

다만 문제는 청와대에 가는 것 자체가 다시 미국의 경계심을 건들지 않을까라는 점이었다.

그러한 우려에 요하네스는 웃으며 말했다.

“사람은 강한 존재에게 호의적이랍니다. 경완 씨가 그동안 가진 게 일신에 담은 무력뿐이었다면, 사회적인 힘도 갖추게 되었을 때의 시너지는 엄청나겠죠. 그걸 보여주면 미국도 당연히 호의 가득한 손을 내밀 겁니다.”

맞는 말인데 경완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다. 저 사회적 힘이라는 건 결국 조직, 인맥 등등, 인간군상을 마주해야 하는 피곤한 일 아니겠는가? 마냥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 경완에겐 적성에 별로 안 맞는 일이었다.

하지만 요하네스의 말이 틀린 건 아니었기 때문에 고개를 끄덕이며 같이 청와대로 향했다.

청와대에는 전 대통령 또래로 보이는 현 대통령이 앉아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전 대통령보다 7살 연하라고 하니 생각보다 겉늙었다. 아니, 전 대통령이 동안이었던가?

신임 대통령은 요하네스, 경완과 차례로 악수를 나누고는 자리를 권했다. 그리고 스몰토크로 날씨나 일상 신변에 대해서 묻더니, 요즘 돌아가는 세상 꼬라지에 개탄하며 본격적으로 본론에 들어갔다.

“하아~. 세상이 참으로 복잡하게 돌아가고 있어요. 이럴 때 대한민국은 어찌해야 하는지 고민이 참 많습니다.”

“이해합니다.”

요하네스는 유창한 한국어로 대통령과 대화했다.

둘은 한국의 경제, 안보, 외교, 초능력 사회의 전망, 위버멘쉬의 한국내 역할이나 도움 등으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당선인은 사실상 친 군부정권 인사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나중에 면죄부를 위해서라도 어떻게든 치적이 필요한 상황이라 조바심을 느끼는 모양이었다.

요하네스는 그런 대통령에게 초능력 연구의 리스크와 리턴에 대해서 더 많은 전문가의 의견이 필요하다고 했다.

“솔직히 제 입장에선 위험한 초능력 실험을 못 하도록 강력하게 제재를 가하고 싶죠. 이 이상 과열되면 사고가 날 가능성도 크니까요.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럴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습니까?”

초능력 실험에 있어서 리스크와 리턴을 최대한 정확하게 판단하고 싶으면 요하네스 자신보다는 연구에 전념하는 전문가, 예를 들어 김마리아 여사의 조언을 귀담아듣는 것이 좋다는 충고에 대통령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요하네스의 말은 끝난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IAMSR이 있습니다. 편견과 거부감을 치우고 보면 위험한 초능력 실험의 안전망으로써 이보다 괜찮은 자원이 또 없죠.”

은근히 IAMSR을 어필하자 대통령은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표정엔 복잡한 내심이 드러났는데, IAMSR은 사실 국가 주권을 침해하는 요소가 다분한 조직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IAMSR는 분명 그 강제력 덕분에 위험한 초능력 실험에 대한 억제제로써의 역할을 했으니, 요하네스의 말대로 잘 활용하면 국가의 안전한 초능력 실험에 도움이 될 것은 분명했다.

그렇게 결론을 내린 대통령의 시선이 경완에게 향했다.

“그러고 보니 여기에 IAMSR에서 몇 없는 부청장이 계시군요.”

“어떻게 아셨어요?”

경완은 분명 요란한 취임식을 하진 않은 것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대통령은 웃으며 말했다.

“모르면 대통령으로서 자격 미달이죠.”

“오호.”

경완은 감탄하는 모습을 보이며 대통령의 얼굴에 금칠을 했지만, 솔직히 대통령이라는 인간이 면담하는 사람에 대한 주요 인적정보조차 모르고 있으면 그게 문제 아니겠는가?

대통령은 경완이 감탄하는 모습에 밝게 웃으며 말했다.

“부디 이 부청장님이 한국의 사정을 잘 보아주기 바랍니다.”

기업들의 연구가 원활하게 이루어지도록 규제와 감시를 좀 느슨하게 해달라는 뉘앙스에 경완은 이렇게 대답했다.

“어…… 그러다 사고 터지면 감당은 가능하시고요?”

“…….”

순간 말문이 막힌 대통령에게 경완은 이렇게 말을 이었다.

“많은 사람이 착각하는데, IAMSR은 단지 억압을 위한 조직이 아니에요. 국가 존립을 도박판 코인으로 사용하는 행위를 막으려고 세워진 거죠. 특히 한국 같은 경우에는 세계 생산망에서도 제법 자리를 차지하고 있잖아요? 그런 나라가 초능력 재앙으로 기능이 마비되면 세계 경제에도 악영향을 주게 되는 거죠.”

그래서 중공이 붕괴한 이후 어느 시점부터 미국은 경완에게 더 이상 중국 리더들의 위치에 대해서 정보를 주지 않았다.

중국 리더들을 더 이상 제거해서 중국 대륙 혼란을 야기하지 말아달라는 우회적인 요청이었다. 그리고 그건 비단 미국 혼자만의 뜻은 아니었다.

중국 공산당의 붕괴는 반갑지만 그것이 중국 산업의 몰락과 이어진다면 세계 경제에도 타격이었다.

분열된 중국 내부의 혼란이 중국 산업에 악영향을 준 건 분명했지만, 그건 중국 대륙 내에서 본 관점이고, 중국 동쪽 해안 지역의 산업지구는 상당 부분이 그러한 혼란을 피해갔다.

중국 지방 정부와 그 지역을 장악한 군벌이 중국의 정치적 혼란이 그들이 장악한 지역의 경제적 혼란으로 이어지는 걸 원하진 않았기 때문이다.

똑같은 이해관계를 다른 나라의 기업과 그 소속 국가들이 은근히 도움을 주기도 했고 말이다.

IAMSR의 설립과 운용도 마찬가지 맥락이었다.

IAMSR이 비록 선진국의 사다리 차기에 이용될지언정, IAMSR의 사고 예방 역할이 세계 경제에 도움이 된다는 건 부정할 수 없었다. 각종 보험과 관련 금융의 비용을 낮추기 위해서라도 초능력 재해라는 불확실성을 제거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일종의 필요악이랄까?

대통령은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역시 경완 씨는 믿을 만하군요. 자신이 맡은 일에 큰 사명감을 가지고 있다니. 같은 한국인으로서 자랑스럽군요. 앞으로도 많은 활약을 해주시길 바랍니다.”

경완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통령의 덕담에 감사를 표했다. 굳이 대통령이 말하지 않은 복잡하고 적나라한 국가간 이해관계를 말하고 싶지 않은 걸 이해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때 요하네스가 말했다. 그는 대통령이 단순히 피상적인 덕담으로 이 문제를 구렁이 담 넘듯이 넘어가는 걸 원치 않았다.

“사실 그러기 위해서는 한국 정부의 협조가 필요합니다.”

“이 사람이 무슨 힘이 있어서 그러겠습니까?”

대통령은 요하네스에게 우회적으로 협조의 대가를 물어보았지만, 요하네스는 대놓고 이렇게 말했다.

“솔직히 지금의 군부 정권이 얼마나 오래가겠습니까?”

“흐음…….”

대통령도 솔직히 인정할 수밖에 없는지 침음성만 흘릴 때 요하네스가 말을 이었다.

“IAMSR는 완벽한 조직이 아닙니다. 각국 정부의 협조가 없으면 제대로 활동할 수 없고 여기저기에 구멍이 생기죠. 그런 구멍을 막으려면 조직이 더 비대해져야 하는데 그건 현실성이 없는 소립니다.”

이어서 요하네스는 러시아를 언급했다. 러시아의 영토는 유럽부터 아시아까지 걸쳐있기에 결국 한국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말이다.

대통령은 그 말이 IAMSR 아시아 태평양 지역관리청과의 결탁을 제의하는 거라는 걸 알아차렸다. 그리고 그건 생각하기에 따라 상당히 쓸만한 외교적 카드였다. 대통령의 구미에 맞는 건 그 카드의 활용이 결국 대통령 자신의 결정에 달려 있다는 점이었다.

그제야 대통령은 왜 요하네스가 IAMSR 아시아 태평양 지역관리 부청장인 이경완과 굳이 정청완 중장이 아니라 자신을 만나러 왔는지 이해했다.

정청완 중장은 내치에만 전념하고 있었다. 정확히는 적폐청산에만 자신의 모든 시간을 쏟고 있었다.

자연히 바깥일은 대통령의 몫이 되는데, 이건 정청완 중장의 입장에선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민주국가들과의 외교에서 쿠데타 사령관의 입장은 불리했지만, 국민으로부터 선출된 대통령은 그나마 명분을 챙길 수 있었기 때문이다.

대통령은 요하네스의 제안이 자신의 정치적 성과로 꽃피울 씨앗이 될 수 있음을 알고 부드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좀 더 들어볼까요?”

대통령은 그 뒤로 약 한 시간가량 요하네스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경완은 차 안에서 요하네스에게 말했다.

“설마 대통령과 협의한 일을 제가 다 알아서 해야 한다는 소리는 아니죠?”

“잘 포장에서 지역관리청장에게 넘기면 됩니다.”

“그냥 넘기라는 소리는 아닐 테니, 적당히 제 공로를 강조하라는 말이죠?”

“실적을 적당히 나눠먹어도 되지만 그래도 경완 씨 이름값은 있어야 하니까요.”

경완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상관인 청장에게 청와대 방문에 관한 보고서를 작성해 보냈다. 내용은 한국 정부와 아시아 지역 활동에 관해 전폭적인 협력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는 내용이었다.

유엔 사무국에서 스카웃되어 IAMSR 지역관리청장으로 있는 토마슨은 ‘Wonderful!’이라고 답신을 보내더니 관련 실무자들을 조직해서 보내겠다고 알려왔다.

이경완이 그런 종류의 실무에 약하다고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경완은 ‘Thank you’라고 답신했다. 귀찮은 일을 떠넘길 인재들은 언제나 환영이었다.

그가 실무팀의 입국을 기다리면서 이메일로 IAMSR 아시아 태평양 지부들의 보고서를 읽는 동안, 김준이 방문했다. 그런데 그의 얼굴이 생각보다 밝았다.

“기분 좋은 일이 있나 보네요?”

“아, 네. 상부에서 이번에 CIA 첩보자원을 IAMSR에 제공하는 안건을 통과시켰거든요.”

경완은 미국의 첩보 능력과 빠른 결단력, 그리고 요하네스의 선견지명에 감탄했다. 한국이 경완의 비빌 구석이 될 가능성이 보이니까 바로 와서 손 내미는 거봐라.

“정말 고맙군요. 미국이 세계 평화를 위해서 아주 큰 결정을 했어요.”

그는 미국에게 감사하는 말을 김준에게 전했다. 김준은 편안한 표정으로 상부에 경완의 감사를 전달하겠다고 말했다. 그동안 경완과 미국 사이의 관계가 나빠지지 않을까 마음고생을 좀 한 모양이었다.

한결 마음이 편해진 김준은 경완과 이런저런 세상 돌아가는 일을 하다가 정청완 중장의 근황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정청완 중장이 요즘 조용하더군요. 경완 씨는 그가 정말 얌전히 그 자리를 내려올 거라고 생각하세요?”

김준의 물음에 경완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거야 모르는 일이죠. 그런데 그건 왜요?”

“요즘 정청완 중장이 몰래 수상한 일을 벌이고 있어서요.”

“무슨 일인데요?”

“요즘 한국에 사적 제재나 보복에 관련된 범죄가 늘고 있다는 건 아세요?”

“아니요.”

비질란스가 더 이상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이후에도 초능력 각성과 보복 사건은 심심찮게 일어났다. 법이 범죄자에게 제대로 된 징벌을 내리지 못하는 경우에 그런 사적 제제 사건이 벌어지는 건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김준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한국에서 벌어지는 일은 매우 수상합니다. 상당한 비율이 사회 기득권층을 대상으로 하고 있어요.”

“정청완 중장이 뒤에서 작업 중이다?”

“솔직히 대한민국 초기부터 쌓여온 적폐가 한순간에 사라지겠습니까?”

“10년을 기한으로 두고 정리한다면서요?”

“하지만 정청완 중장의 권력은 10년을 가지 못할 겁니다. 사람들의 불만이 장난이 아니에요.”

개혁, 적폐 청산. 좋은 말이다. 하지만 인간이란 동물은 대부분 인내심이 그리 많지 않았으며, 근시안적이었고, 이성보다는 감정이었다.

설사 적폐가 청산되는 편이 장기적으로는 나라에 이익이라고 하더라도, 그로 인한 당장의 피로감과 경제적 불안이 더 피부로 와닿는 것이 대중이라는 존재였다.

그리고 정청완 중장이 정리하고자 하는 이들은 이러한 대중의 본성을 잘 파악하고 있었고, 와신상담을 하며 민심의 방향이 바뀌는 것을 기다리고 있었다.

중간에 언론 플레이도 좀 하면서 여론에 군불도 지피고, 은근히 정청완 중장을 방해도 하고 말이다.

정청완 중장이 초인 특수전 부대에 억류한 정치인, 언론인 등은 사실 적폐 인사의 곁가지에 불과했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고, 적폐와 그렇지 않은 자의 경계는 상당히 모호했으며, 명백히 적폐가 아니라고 인식된 이들이 모두 정청완 중장을 지지하는 것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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