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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전생 더 빌런-344화 (344/367)

무한전생-더 빌런 344화

32-레지스탕스

과연 정청완 중장이 이러한 사실을 모를까? 그가 말한 10년의 기간 동안 적폐청산이 이루어지려면 방해가 없어야 했다. 방해받으면 10년의 기간도 부족할 수 있었다.

비록 지금 정계에 정청완 중장과 뜻을 같이하는 자들이 있다고 하더라고 그들은 본질적으로 정청완 중장과 달랐다.

그들은 결국 국민들에게 선출 받아 권력을 휘두르는 기간제 임시직에 불과했다. 정청완 중장이 그 초법적인 권력을 포기하고 하야했을 때, 그들은 과연 아직 뿌리가 뽑히지 않은 기득권을 상대로 적폐청산을 완료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럴 가능성은 매우 희박했다.

“그래서 정청완 중장이 초조해져서 매우 극단적인 수단을 쓰고 있다는 가설도 있습니다.”

그 극단적인 수단이 앞에서 말한 보복형 범죄, 살인이었다.

경완이 물었다.

“증거 있어요? 그건 진짜 심각한 스캔들일 텐데요?”

단순히 모종의 장소에 억류해 놓는 것과 죽여서 없애 버리는 건 엄청난 차이가 있다.

“증거는 없습니다. 단지 정황만 있을 뿐이죠.”

“미국은 어떻게 하고 싶은데요?”

경완은 오히려 질문을 던졌다. 이런 위험하고도 귀중한 정보를 그에게 털어놓는 이유가 뭘까?

“저희야 이 나라의 평화와 양국간의 우호를 원하는 게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그 말에 경완은 속으로 감탄했다. 그 김준이 저렇게 외교관 같은 말을 할 수 있게 되다니…….

“그래서 정청완 중장을 공격하겠다는 거예요, 놔두겠다는 거예요?”

“그건 아마…… 경완 씨 의견에 중요할 겁니다.”

김준이 슬쩍 경완의 안색을 살폈다.

경완이 김준에게 말했다.

“남는 시간에 훈련을 열심히 받은 모양이네요.”

“네?”

“노련해졌다고요.”

경완의 의견을 묻는 건 대한민국과 정청완 중장에 대한 그의 태도가 어떤지 시험하는 동시에 한국에 대한 그의 지분과 영향력을 인정하는 호의적인 입장을 동시에 보이는 일석이조의 수였다.

그것이 경완의 확대 해석일 리는 없었다. 그만큼 김준의 입 밖으로 나온 문장은 잘 정돈되어 있었지만 몸 여기저기에 나타난 비언어적 표현은 본인이 한 말이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걸 나타내고 있었다.

물론 그 수준이 경완이나 노련하고 경험 많은 정치인 정도가 되어야 눈치챌 수 있을 정도라, 오히려 김준이 그동안 관련 교육을 받았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평소에 김준은 자백제가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표정이 솔직한 인간이었으니까.

경완은 어색하게 미소 짓는 김준에게 말했다.

“솔직히 신경 쓰고 싶지 않아요. 위험한 실험을 하는 인간들을 의심하고 감시하는 것도 충분히 피곤하거든요.”

“아, 그렇군요.”

김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경완이 한국의 정치적 상황에 끼어들 생각이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

두 사람의 대화는 거기까지였지만, 정청완 중장은 그리 만만한 인물이 아니었다.

김준이 돌아간 후 경완은 정청완 중장의 연락을 받았다.

[미국으로부터 저에 관해 이야기를 들은 것이 있습니까?]

“거기에 제가 대답을 해야 하나요?”

[저는 미국이 그동안 제 행적을 감시하고 있었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제 목적이 뭔지도 알고 있겠죠. 제가 알고 싶은 건 당신의 선택입니다.]

정청완 중장은 따로 정보 소스라도 있는지, 경완이 김준에게서 무슨 말을 들었는지 이미 확신하고 있는 듯했다.

경완은 대답했다.

“전 방관할 겁니다.”

[……정말입니까?]

“제가 언제 거창한 대의나 정의를 추구했던 적이 있나요?”

정의(正義)는 보편적이어야 한다고 한다. 누구에게나 공평해야 한다고 말이다.

따라서 무엇이 정의(正義)인지 정의(定義)하기 위해선 결국 사회적 합의가 필요했다. 그래야 최소한의 보편성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집단마다 옳은 것과 틀린 것이 달랐다. 가령 도시와 시골에서 허용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이 다르듯이. 왜냐면 각 집단이 중시하는 것이 다르기 때문이다.

여기서 정의(正義)는 보편성과 상대성(相對性)을 동시에 가지는 모순성을 가지게 된다.

집단에 따라 정의(正義)가 달라지는 것이다. 그 예로, 프롤레타리아에겐 자신들을 착취하는 자본주의의 모순을 타파하는 것이 정의(正義)라면, 부르주아에겐 자신들의 재산권을 위협하는 시도야말로 강도질과 다름없는 불의(不義)였다.

따라서 정의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각자의 마음에 품은 신념만이 있을 뿐. 그 신념이 많은 이들에게 공유되면, 비로소 정의(正義)라고 할 수 있는 무언가가 탄생한다.

그래서 정의는 곧 승자의 단어였다. 상대방을 설득해 내 편으로 만들든, 아니면 반대의 목소리를 짓누르고 자신의, 자신들의 정의(正義)를 강요하든, 결국 승자만이 정의(正義)를 주장할 수 있었다.

과연 정청완 중장이 쿠데타를 성공시키지 않았다면 적폐청산이라는 ‘정의(正義)’를 밀어붙일 수 있었을까?

마찬가지로 IAMSR이 힘이 없었다면 전 세계적으로 초능력 실험과 연구를 감시하고 간섭할 수 있었을까?

그래서 경완은 정의(正義)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설사 사용하더라도 자신의 행동이 정의롭다고 포장하지 않았다.

정의를 추구하려는 나의 행동이 누군가에겐 불의(不義)일 수도 있기 때문에.

그래서 그의 화법은 이러했다.

‘니가 ㅆㅂ 이러이러한 짓을 한 게 ㅈㄴ 꼴받아서 내가 이러는 거야. 알겠어?’

그는 대의를 말하지 않았다. 정의를 추구하지 않았다. 세계와 세계를 넘어가며 전생하는 그는 시대정신조차도 그저 많은 이들이 공유할 뿐인 신념으로 치부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한마디는 해야겠네요. 제가 예전에 일을 저질러서 얌전히 감옥에 있었던 건 그래도 명색이 법치주의 국가에 사는 사람들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 때문이거든요. 그러니 저도 그 정도 존중은 받아야겠어요.”

[구체적으로?]

“노파심이겠지만 중장님이 하려고 하는 일이 좀 세심했으면 좋겠다는 거죠.”

경완과 그 주위에 피해가 오지 않도록 말이다.

[제가 무고한 사람을 죽인다고 해도 말입니까?]

“음……. 저랑 관련이 없다면?”

그 대답에 정청완 중장은 잠시 말이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경완과 친분이 있다고 여겨지는 이는 극히 일부라는 것이다.

[좋습니다. 안심이 되는군요.]

그렇게 경완과 정청완 중장은 ‘합의’에 도달했다. 정청완 중장은 경완이 자신의 일을 혹여나 방해할까 봐 그게 우려되었던 모양이었다.

정청완 중장과의 대화가 끝난 후 경완은 한국의 국내외 정세에 대해 철저히 방관자적 입장을 고수하면서 IAMSR 업무에만 집중했다.

실력 행사가 필요하거나, 진실의 스무고개, 초감각 레이더 등의 그만의 특출난 능력이 필요한 업무에 투입되어 비협조적인 정부를 엿 먹이거나, 기업이나 경영자의 교묘한 은폐를 벗겨내는 등의 활약을 했다. 가끔 여유가 나면 아프리카 등으로 파견을 나가기도 했다.

강력한 초능력자를 동반한 IAMSR의 활동은 국가 주권에 대한 침해라는 비난 여론이 슬슬 일어나기 시작했지만, 아프리카에서 몇 번 사고가 일어나자 다시 잠잠해졌다. 위험한 초능력 실험은 확실히 규제받아야 했다.

경완은 그답지 않은 충실한 일과를 보내는 와중에 한국의 소식을 듣게 되었다.

초인 특수전 부대에 억류되어 있던 정치인, 법조인, 언론인 등이 빌런에게 몰살당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누구도 군부 정권의 발표를 믿지 않았다. 아니 믿는다고 해도 정정완 중장이 그 빌런을 사주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거대한 시위가 일어났다. 아무리 적폐라고 하지만 삼백여 명이나 되는 인사를 죽여 버린 충격적인 사건은 대한민국에선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정청완 중장은 자신이 한 일이 아니라고 주장하면서도, 혈사의 책임을 지고 군부 정권을 종료하겠다고 대국민 선언을 했다.

그렇게 4년 6개월간의 군부 정권은 끝을 맞이했다.

* * *

32-레지스탕스

새로운 질서가 자리 잡히기 위해선 그만큼의 저항세력을 억눌러야 했다.

한국은 적폐라고 불리는 인사들을 군부정권이 잡아 가두고 억류해서 기존 질서를 유지하려는 기득권의 저항을 약화시켰고, IAMSR에 반발할 세력은 서양 세력의 주도에 저항이 억눌러졌다.

반(反) 서양, 반(反) IAMSR 세력의 중심이 되어줄 만한 나라는 중국 정도밖에 없었지만 중국은 내부의 혼란 때문에 불가능했고 러시아는 유럽과 붙어먹었다.

좀 더 자세하게 들어가면 훨씬 복잡한 역학 관계와 이유가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새로운 질서가 기존의 질서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 것은 확실했다.

하지만 기존 질서의 저항은 그저 억눌려져 있었을 뿐 그것의 뿌리를 제거하진 못했다.

한국조차 삼백여 명가량이나 되는 인사들을 죽였지만, 그것이 적폐의 뿌리를 뽑았다곤 할 수 없었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적폐인가? 그리고 적폐의 뿌리를 뽑는다고 만들어낸 살육의 원한과 공포에 젖은 적대감은?

정청완 중장은 수도권을 벗어나 시골에 은거했지만, 그가 남겨놓은 충돌의 씨앗은 싹을 틔우기 시작했다.

아니, 애당초 깊게 뿌리박혀 있던 적폐 기득권이 제대로 저항을 시도하지 않았다는 말이 정확했다. 그저 군부정권이란 초법적 폭력에 눈치를 보고 얌전히 있었을 뿐이었고, 그간 억눌러온 감정과 인내는 초법적 무력(武力)이란 불리함이 제거되자마자 폭발했다.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네.”

경완은 혀를 차며 TV를 껐다.

예전에 사라진 여의도 UFC가 다시 등장했다는 헤드라인은 가히 기레기스러웠다.

초능 특수전 부대에 억류되어 있던 오너 일가가 많이 죽어도 오래된 언론권력은 완전히 뿌리 뽑지 못한 모양이었다.

하긴 아무것도 모르는 애와 젊은이까지 죽일 순 없었겠지. 하지만 결국 그들이 물려받을 것이 바로 그들의 애비애미가 누리고 있던 사회구조적 기득권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그 기득권 구조에 빌붙어 살아가는 기레기 등과 인간은 한둘이 아니었다.

한 번 형성된 사회적 구조는 그 자체로 관성을 가지게 되고, 그 구조를 바꾸려는 시도는 기존의 구조로부터 이득을 얻는 자들 때문이라도 저항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정청완 중장과 같은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적폐청산이라는 의지에 공감하는 이들은 대대적인 언론의 공세에 정치적인 위기에 몰렸다. ‘학살자’ 정청완 중장의 공범으로 몰린 것이다.

물론 법적으로는 어처구니가 없는 소리지만 정치에 그런 게 어디 있나? 날조와 선동은 정치세력과 결탁한 언론의 주무기였다.

날로 떨어지는 지지율에 대통령은 여론의 방향을 바꾸려 외방(外邦)도 다녀오고 경제적 기대감도 부추겨보았다.

자수성가비율이 고작 20%가량밖에 안 되는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겠다는 슬로건을 내걸며 말이다.

하지만 대통령은 요하네스, 이경완과 만났을 때 얻은 카드를 쓰진 않았다. 결정적인 수는 결정적일 때 써야 그 효과가 극대화되는 법.

경완은 얼마 전 요하네스와의 통화를 떠올렸다.

한국에서 IAMSR이나 위버멘쉬의 활동에 제약을 받지 않으려면 소위 정청완 계파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고 말이다.

경완은 굳이 이 똥물에 발을 담가야 하는지 고민해 보겠다고 대답했고, 요하네스는 얼마 후 아프리카에서 열릴 IAMSR 총회합 때 더 이야기해보자고 제안했다.

IAMSR 총회합은 각 지역관리청이 돌아가면서 열기로 되어 있었는데, 총회합의 목적은 조직의 단합과 IAMSR 주요 안건에 대한 의제 설정이었다.

이번에 IAMSR 아시아 태평양 지부가 내밀 안건은, 중국 및 남미에 투입할 현장감찰팀의 인원 및 무장 강화였는데, 중앙정부의 영향력이 한미하거나 비협조적이라 경완이 자주 투입되는 지역이었다.

경완은 상관인 토마슨 청장의 차분한 닦달에 관련 서류를 준비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현장의 열악한 환경을 직접 경험한 이경완이 작성한 서류라면 설득력이 있을 거라는 토마슨의 말 때문이었지만, 결국 토마슨이 이러저러한 내용도 넣겠다는 소리를 함으로써 경완의 이름값을 빌리고자 하는 의도를 드러내고 말았다.

뭐, 경완은 시시비비를 가려가며 청장과 실랑이하는 것보다는 그냥 그의 의도에 어울려주기로 했다.

준비가 완료된 경완은 케냐 나이로비로 향했다. 아니, 향했다는 말은 좀 이상했다. 그냥 웜홀을 열고 도착했으니까.

나이로비에 도착한 IASMR 아프리카 지부장 루카스와 만나 출입국 기록 처리를 부탁하고(루카스의 표정이 안 좋았지만 외면했다) 요하네스가 잡아놨다는 호텔로 향했다.

“아~ 굳이 스위트 룸 예약 안 해도 된다니까요.”

[제가 예약한 게 아니라서 저에게 따져도 소용없답니다.]

“그래서 비서 잘못이다?”

[이 정도야 애교로 봐줘야지 어쩌겠습니까?]

전화기 너머로 요하네스의 웃음소리가 들리다가 그쳤다. 그리고 음산할 정도로 고요한 목소리로 말이 이어졌다.

[곧 정청완 중장이 죽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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