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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전생 더 빌런-345화 (345/367)

무한전생-더 빌런 345화

32-레지스탕스

“……왜요?”

갑자기 뜬금없는 소리에 경완은 놀랐다.

[자살이죠.]

“역시 참을 수 없었던 모양이죠?”

적폐를 청산하겠다며 쿠데타로 정권을 쥔 정청완이었지만, 그는 심각한 판단 미스를 저질렀다. 남은 기간 안에 적폐 카르텔에게 심각한 타격을 주면 남은 사람들이 뒷수습을 잘해줄 거라고 믿었던 모양이었다.

물론 그 심정은 이해가 된다. 피 없이 새로운 질서를 강요하기 위해선 고작 10년도 모자란 것이 현실이었으니까.

아니라고? 이탈리아선 파시스트 독재자 무솔리니의 딸이 어엿하게 정치가로서 활동하고 있었고, 칠레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 독재자 일가가 여전히 정치를 하는 필리핀은 또 어떠하며 심지어 네오 나치는 전 세계에서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게 현실이었다.

적폐라는 건 단순히 개인의 일탈이나 부패가 아니었다. 그것은 사회 구조이며, 오래 묵은 사상이며, 그리고 거기에 적응하고 이익을 얻는 인간군상이기도 했다.

적폐를 없애기 위해서는 이 세 가지 구성 요소를 타파해야 했다. 적어도 적폐적 구조에 기생하는 이들이 사회의 기득권을 쥐지 못하도록 하려면, 그들이 돈과 권력을 잃고 말라죽을 때까지 솎아내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었다.

하지만 정청완 중장은 그러지 못했다.

경완은 그 이유 또한 짐작할 수 있었다. 결국 권력을 쥐고 자신의 신념을 강요한다는 건 인간의 탈을 쓴 괴물이 된다는 소리였으니까. 그래서 정청완 중장은 그런 괴물이 되지 않기 위해서 마지막으로 발악하고 뒷일을 맡긴 것이다.

나약하다고 욕할 순 없었다. 나는 할 수 있다고 굳은 확신을 가진 이들은 모두 괴물이 되었으니까. 역사 속에 등장한 수많은 독재자들이 그걸 증명했다. 광기 어린 신념만이 거대한 권력과 그 책임의 무게를 견뎌낼 수 있었다.

카이사르처럼 괴물이 되지 않은 것 같은 권력자도 있었지만, 그는 자비를 베풀어 정적들을 살려두었고 끝내 그들의 손에 죽었다.

칼로 권력을 쥔다는 건 그런 것이다. 괴물이 되든가, 아니면 죽든가.

정청완 중장이 이러한 사실을 몰랐을까? 경완은 그렇진 않다고 생각했다. 그저 정청완 중장은 불의에 단호한 분노를 터뜨릴 수 있을지언정, 본인의 타락은 감당할 수 없었을 뿐이었다.

요하네스의 말이 이어졌다.

[그보다는 타살로 위장한 자살이 될 겁니다.]

“물타기를 하겠다? 그렇게 자신의 목숨까지 바쳐 봤자 별로 의미 없을 텐데요.”

경완의 눈에 정청완 중장이 자신의 목숨을 소모하는 방법은 너무나 비효율적이었다. 물론 죽어야 한다면 정적들에게 조리돌림을 당하다 죽느니 그런 식으로라도 소모하는 편이 더 낫긴 했지만, 대국적인 관점에서 보면 개죽음이 될 가능성이 높달까? 죽어서 뭘 하겠다는 건지 이해는 되지만 별로 소용없다는 게 경완의 판단이었다.

죽은 사람은 너무나 쉽게 잊히니까.

요하네스가 탄식을 흘리며 대꾸했다.

[그래도 그게 자신의 대의를 보존할 최선의 방법이기는 합니다. 아마, 그의 능력이 그를 그런 선택을 하게 만들었겠죠.]

정청완 중장의 정신계 초능력인 텔레파시는 그 심도가 어마어마했다. 단순히 자신의 기억을 전달하는 것만이 아니라 타인의 기억과 감정도 전달받을 수 있었다.

기억과 감정의 공유. 그리고 이로 말미암아 얻어지는 어마어마한 공감력이 빚어내는 결과는 상상이나 예측이 힘들었다. 군 출신의 초능력자로서 승승장구하던 정청완 준장이 군대와 사회의 불합리함을 참지 못하고 쿠데타를 벌인 것도 결국은 그 때문이 아니던가?

“좀 아까운 사람이기는 하네요.”

정신계 능력이 그리 흔한 것도 아니고, 감정과 기억까지 전달할 수 있을 정도의 능력이라면 여러모로 쓸모가 많았다.

하지만 단순히 능력만이 아까운 건 아니었다. 적폐청산에 방해가 될 인간들을 죽여서라도 없앤다는, 틀렸지만 차악이라도 어려운 선택할 수 있는 그 결단력이 아까웠다. 능력은 그저 도구일 뿐이니까. 중요한 건 그걸 휘두르는 인간의 정신이었다.

[본인의 선택이 아니겠습니까?]

“전 모르는 일로 치죠.”

경완은 남 일처럼 취급하기로 했다. 역시 사람의 사정은 복잡하고, 끼어드는 건 더 복잡해서 골치가 아팠다.

사람이 죽든 말든 한국의 일에서 신경 끄기로 한 그는 요하네스에게 내일의 일정에 관해서 이야기하다가 불만을 토로했다.

“아니, 제가 그걸 왜 해요?”

[이유는 설명드렸잖아요?]

경완이 불만을 토로하는 이유는 IAMSR의 주요 인사들의 발언 시간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거기서 경완은 IAMSR 아시아 태평양 지역관리청 대표로서 발언해야 했다. 왜 청장이 아니라 부청장이 하냐면 그 부청장이 IAMSR에서 가장 강한 초능력을 가진 초능력자이기 때문이었다.

[초능력자들 중에는 힘을 신봉해서 제멋대로 하는 사람이 많다고 했잖습니까.]

그러니까 그런 사람들 귓구멍에 조금이라도 이쪽의 말을 쑤셔 박으려면 발언자를 잘 골라야 했다. 길 가다가 헌팅 할 때 ‘예쁘신데 번호 좀 받을 수 있을까요?’라고 똑같은 멘트를 쳐도 누구는 받고 누구는 거절당하는 것과 같이, 인간은 본인이 조금이라도 흥미가 있는 상대의 말을 듣는다.

“전 이렇게 낯간지러운 이야기를 못 하는데요.”

경완은 토마슨이 준 문서의 내용을 확인하며 미간을 찌푸렸다. 거기에는 경완이 연단 앞에 서서 어떤 말을 해야 하는지 적혀 있었다. 핵심만 추리자면 세계의 파괴를 막기 위해, 세계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재능 있고 뜻 있는 초능력자들의 단합과 협조가 필요하다는 내용이었다.

내용도 낯간지러웠지만, 그런 내용을 전달하기 위해 붙은 미사여구도 낯간지럽긴 마찬가지였다. 경완의 낯가죽이 두꺼우니까 낯간지러운 수준이지, 아니었다면 붉게 달아올랐을 정도였다.

[하하하. 원래 그런 자리에선 그런 말도 하는 겁니다.]

“알죠. 그래도 낯간지러운 건 사실이잖아요.”

경완은 요하네스에게 투덜거리면서도 절대로 하지 않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한 경험이 없는 것도 아니고 필요한 일을 해야지 않겠는가?

“그럼 내일 봐요.”

[그러죠.]

IAMSR 총회합은 약 이천여 명이 들어갈 수 있는 행사장에서 열린다. 경완은 행사 시작 시간보다 한 시간 먼저 도착했다.

시간에 딱 맞춰서 도착하고 싶었지만, 원래 이런 행사라는 건 행사보다는 행사 전이나 행사 후 사람 만나는 일이 더 중요한 법이었다. 게다가 토마슨 청장이 그때 온다는데 부청장이 주인공처럼 행사 시간에 맞춰 나타날 순 없는 노릇 아닌가?

[미스터 리!]

[토마슨 청장님.]

행사장에는 벌써 많은 사람들이 모이고 있었고, 경완을 먼저 발견한 건 토마슨이었다.

경완은 그를 따라 여기저기 인사와 악수를 나누었다. 몇몇 귀빈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IAMSR 소속이었지만 그것이 그들이 IAMSR의 이익을 추구한다는 뜻은 아니었다.

물론 IAMSR의 대의에 공감하거나 개인적인 야망에 몸을 담은 이도 있었지만, IAMSR가 국제적 이해관계에 의해서 탄생한 조직인 만큼 각국의 이해관계자가 대거 몸담고 있었다. 특히 결정권이나 중요한 정보를 다루는 자리에 말이다.

경완은 토마스의 곁을 지키며 그런 이들과 안면을 익히다가 요하네스가 어디 있는지 궁금해서 초감각 레이더를 돌렸다. 그러고는 사람에게 둘러싸여 사교활동을 하고 있는 요하네스를 발견했다.

[저쪽에 위버멘쉬 총수님이 있어요.]

[어디요? 갑시다!]

토마슨은 경완의 말에 얼른 요하네스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요하네스는 경완을 발견하고는 ‘오! 미스터 리!’라고 반갑게 악수를 나누며 둘의 친분을 사람들에게 보여주었다.

“너무 절 띄워주는 거 아니에요?”

“웃어요. 경완 씨가 소위 기득권 네트워크에 접촉하는 순간이니까.”

경완은 요하네스를 따라다니며 사람들을 만났다. 확실히 토마슨과 함께 있을 때와 만나는 사람의 수준이 달랐다. 특히 요하네스가 귀빈이라서 그런지 자리를 빛내줄(?) 귀빈과 인사를 나눌 수 있었는데 그중에는 세계은행 총재라든가 IMF 총재도 있었다. 토마슨은 졸지에 쩌리가 되었지만 그런 인사들과 인사라도 나눌 수 있는 것이 무척이나 기쁜 표정이었다.

만사(萬事)는 곧 인사(人事)다. 사람을 보면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있었다. 세계은행 총재라든가 IMF 총재는 IAMSR의 활동에 긍정적인 이와 세력이 누군지 엿볼 수 있는 시금석이었다.

그렇게 사람을 좀 만나다 보니 시간이 금방 지나가고 행사 시간이 되었다. 경완은 앞쪽 자리에 착석해서 연단을 올려다보았다. 유엔사무장이 개회사를 위해 연단에 섰다.

유엔사무장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는 뻔하지만 중요한 이야기였다. 세계 평화를 위해 IAMSR이 힘써주기 바라며 이를 위해 유엔이 도울 수 있다면 돕겠다는 말이었으니까. 이는 유엔 차원의 협조가 있을 거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었다.

유엔 사무장이 내려가자 귀빈 발언 시간이 있었다. 요하네스가 발언할 예정이었다.

그가 연단에 서서 마이크를 붙잡았을 때.

콰아앙!

갑자기 폭발음이 울렸다. 경완은 반사적으로 초감각 레이더를 돌렸다. 그러자 복면과 중무장을 한 초능력자들 스무 명가량이 수류탄과 섬광탄을 던지고 총을 쏘며 행사장 안으로, 연단을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누구는 염동력을 두르고, 누구는 번개를 두르고, 누구는 화염을 뿜어냈다. 그 밖에도 신체강화 특성도 있었다.

무장도 충실했다. 사용하는 탄환들이 죄다 대(對) 초능력자용 탄두였고, 수류탄 역시 초능력 소재로 만들어진 대(對) 초능력자용 무기였다.

그리고 그게 치명적이었다. 행사장에 온 이들은 무장하지 않은 상태니까

경완은 어찌 된 일인지 궁금해하기보다, 일단 상황부터 정리하기로 하고 움직였다.

그의 몸에서 검은 연기가 뿜어졌다. 귀빈들을 향해 날아오는 수류탄이 튕겨 괴한들에게 돌아가고 총알의 속도가 줄어 땅에 떨어졌다.

퍼어엉!

끼아악!

수류탄이 공중에서 터져 파편을 뿌렸다. 다행히 검은 안개에 휩싸인 수류탄은 부상자는 만들어도 사망자는 만들지 못했다.

하지만 경완은 미간을 찌푸렸다. 상대는 화기(火器)를 다루는 것에 능숙해 보였고, 대(對) 초능력 무기에 사용되는 재질은 초능력 소모를 심하게 만들었다.

[막아!]

경완이 외치며 달려들자 정신을 차린 IAMSR의 초능력자들이 괴한들에게 달려들었다.

구도는 천여 명 대(對) 이십여 명. 괴한들이 제압되는 건 기정사실로 보였으나 괴한들은 잡히거나 죽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For the freedom!”

“알라 후 아르바크!”

괴한들의 집단은 기묘했다. 경완의 초감각은 복면을 뚫고 저들이 백인, 아랍계, 흑인, 심지어 동양인까지 섞인 다인종 집단임을 읽어냈다.

그들은 죽음을 각오하고 싸웠다. 그 치열함과 정신무장은 IAMSR의 초능력자들이 50배는 많은 머릿수에도 쉽게 제압하지 못하고 사상자만 내고 있었다.

저들의 목적은 뭘까? 왜 이 무모한 자살특공을 한단 말인가? 경완은 저들을 죽이지 않고 제압해서 알아보려고 했지만, 놈들은 지독했다.

[우리는 절대로 너희의 노예가 되지 않겠다.]

뭐래? 노예제가 사라진 지가 언젠데?

게다가 어디에서나 대우받을 수 있는 초능력자들이 저런 소리를 하니까 경완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때 그의 머리에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었다. 지독하고, 경멸스럽고, 역겹고, 오만한 자들이 지배하는 세상.

그 정점에는 차가운 얼굴을 한 이경완이 있었다. 그는 세계의 모든 초능력자들을 휘하에 넣고, 반항하는 자들은 자비 없이 처벌했으며, 자유를 부르짖는 자들을 탄압하고, 세상을 손아귀에 넣었다.

이유는?

세계 멸망을 막기 위해.

그리고 그러한 억압에 저항하려는 자들의 고통과 울분, 희생의 기억이 전달되었다. 이경완은 너무나 강했고, 세계는 안정을 찾았다. 하지만 대신 사람들은 소중한 무언가를 잃어버렸다.

‘이것이 우리의 미래입니다!’

낯선 음성에 경완은 그때 자신의 머리에 떠오른 이미지가 자신에게만 전달된 것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정신계 능력자도 있었나?

정신계 능력으로 전달된 이미지는 훌륭한 심리 공격이었고, 일순간에 괴한들을 향한 공격을 멈추게 만들 정도였다. 이미지에 실린 감정에 감화된 자들 중에는 괴한이 아니라 오히려 경완을 보는 이도 있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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