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전생-더 빌런 347화
32-레지스탕스
“놈을 처리할 준비는 다 되었다는 말이죠?”
“다 되진 않았지만 확실한 카드는 있죠.”
“어떤 건지 들을 수 있을까요?”
그 질문에 요하네스는 개구쟁이처럼 웃으며 경완을 보았다.
경완의 표정이 삽시간에 식어버렸다.
이 양반이 진짜.
하지만 경완이 확실한 카드라는 요하네스의 말에는 과장이 없었다. 원래 경완이 아니었다면 IAMSR을 이루는 상부층은 총회합에서 싸그리 날아가서 조직이 붕괴되었을 테니까. 그나마 그가 있었기 때문에 이 정도로 그친 것이다.
“그도 그걸 모르진 않았는데, 왜 그랬을까요?”
“아마 그 총회합이 분수령이었을 겁니다. 그때 IAMSR의 기세와 영향력에 타격을 주지 못하면 절대로 이기지 못할 거라는 예지가 있었겠죠.”
실제로 상당히 뼈아픈 타격이었다. IAMSR에 저항하는 자들이 존재한다는 걸 만천하에 알리고 타격을 입힐 수도 있다는 걸 증명하지 않았던가? 그리고 세상은 넓고 사람은 많으니, 테러범들의 자살특공은 누군가에겐 순교로 보일 가능성도 부정할 순 없었다.
“한동안 힘들겠네요.”
“경완 씨는 본격적으로 단련을 시작해야 할 겁니다. 다양한 초능력을 카피하고 습득해서 정말 최강의 초능력자가 되어주셔야 하니까요.”
그 말에 경완의 머리에 테러범이 텔레파시로 뿌렸던 이미지를 떠올렸다. 전 초능력자들의 정점이자 폭군.
하지만 이내 그 이미지를 머릿속에서 치워버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그에게 요하네스가 첨언했다.
“마리아 여사가 많이 도울 겁니다.”
“아주 좋아하겠네요.”
데이터가 쌓인다고 좋아할 얼굴이 눈에 선했다.
경완은 이정도면 충분히 대화했다고 생각하고 일어섰다. 그런 그에게 요하네스가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예언가가 누구인지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때가 되면 얼굴을 드러내겠죠.”
“얼굴은 모릅니다.”
“……???”
이긴 적이 있다며? 그럼 얼굴은 봤을 거 아냐?
의문이 가득한 경완의 표정에 요하네스는 쓰게 웃으며 대답했다.
“성형인지 초능력인지 모르겠지만 항상 얼굴을 바꾸더군요. 제 추적을 그런 식으로라도 피하라는 예지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요하네스가 말한 것처럼 예언가가 제정신이 아닌지는 경완이 확인해보진 못했다.
게다가 그리 말하는 요하네스도 어디 나사 한 군데가 덜 조여진 인간이었으니, 미친놈이 미친놈이라고 칭하는 존재가 정말 미친놈일까란 의문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확실히 그 예언가라는 놈은 비범한 구석이 있었다. 성형까지 하는 행동력이라니..
경완은 그자의 이름이 궁금해졌다.
“이름은 알아요?”
“알토르 사베티라고 합니다.”
하지만 당연히 가명을 쓰고 있을 거라고 요하네스는 덧붙였다.
* * *
정청완 중장은 살해당했다. 아니 그렇게 알려졌다.
그의 죽음은 찻잔 속의 태풍에 그쳤는데, 언론들이 IAMSR에서 있었던 일을 대서특필한다고 외면당한 탓이다. 물론 길어지진 못했다. 한국 역사상 3번째 쿠데타를 벌인 인물의 죽음이 아니던가? 주류 언론이 감추고 싶어도 그의 죽음은 감추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정청완 중장의 죽음은 적폐 척결에 공감하는 이들을 단합시키기에 충분했다. 저 권력의 망자들이 다시 권력을 쥐면 정청완 중장을 죽인 것처럼 자신들도 죽이려 들지 않겠는가?라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다.
물론 정청완 중장처럼 대놓고(?) 죽이진 않겠지만, 차라리 현대 법치체계 안에선 깔끔하게 죽이는 것보다 못한 상황이 닥칠 수도 있었다.
밥벌이를 못 하게 만든다던가, 저들 편을 드는 주류 언론의 칼을 이용해 사회적으로 죽이든가, 주변 사람들을 괴롭히면서 자살을 종용한다던가.
이런 상황이 의미하는 건 분열이었다. 정청완 중장의 죽음은 한국 사회에 확실한 피아 구분을 제시하였고, 이로 인한 분열과 갈등을 나날이 치솟았다.
경완은 그러든가 말든가 관심이 없었다. 미연이 종종 한국 사회 전반이 돌아가는 꼬라지에 걱정 한 마디를 할 경우에는 결국 초능력자들이 기득권이 되는 사회가 될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다독여 주었다.
적폐니 뭐니 해도 결국 미래의 주도권은 누가 초능력자이냐, 초능력자들을 어떻게 대우할 것이냐에 달려있었다.
그보다 경완에게 중요한 건 예언가의 테러를 대비할, 혹은 붙잡을 초능력의 습득과 훈련이었다.
[그만. 좋아요. 잘했어요.]
스피커로 마리아 소장의 음성에 경완은 초능력을 수습했다. 써모키네시스를 다루는 경치가 완숙에 이른 그는 이제 1kg의 물을 5초 만에 절대 영도로 냉각할 수 있었고, 사람 하나를 열로 증발시키거나 냉동 고기로 만들 수 있었다.
능력 하나를 마스터한 경완은 중화 영역의 초능력 구현에 관심이 컸다.
“중화 영역은 아직 초능력으로 구현이 안 돼요?”
그가 마리아 여사에게 던진 질문에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다.
“연구 중이에요.”
사실 경완은 중화 영역을 초능력으로 습득하기 위해서 요하네스에게도 문의해보았다. 하지만 요하네스는 중화 영역은 초능력으로 발현된 것이 아니라고 대답했다. 그것은 고도화된 초능력 공학의 정수로, 강력한 초능력자들이 등장하고,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 활발하던 세기말에, 살아남은 자본가와 권력자들이 모든 역량을 투입해 개발한 물건이었다고 대답했다.
중화 영역과 무장된 군대를 이용해 세계를 정복하여 세기 말을 극복하고자 하는 이들의 야심찬 계획은 요하네스의 회귀 과정에서 성공할 때도 있었으나 많은 이들에 의해서 짓밟히는 경우가 더 많았다. 그건 중화 영역만으로는 완벽히 제압이 어려운 초능력자일 때도 있었고, 때로는 권력을 노리던 내부의 배반자일 때도 있었으며, 심지어 이경완일 때도 있었다.
그러한 세상에서 요하네스는 단지 싸이킥 재머를 만들기 위한 이론 배경과 싸이킥 재머의 구성 설계를 외워서 회귀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 지식은 마리아 여사에게 전달되었다. 그렇다. 그녀는 요하네스가 회귀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비유하자면 초능력을 개인의 미각과 손재주로 만들어낸 요리라고 하면 중화 영역은 분자 요리 같은 거예요. 고도의 기술이 없으면 만들지 못한다는 말이죠.”
마리아 여사의 비유는 이해하기 쉬웠다. 중화 영역을 전개한다는 건 최소 컴퓨터 수준의 연산력이 필요하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경완은 쉽게 포기하기가 힘들었다.
일정 영역 내에 초능력 전개를 무효화 하는 중화 영역은 앞으로의 재난을 ‘편하게’ 해결할 수 있는 수단이 되어줄 것 같았다.
“그래도 일단 꾸준히 연구해 주, 아니 연구 자료 좀 공유해 주세요.”
그래서 그는 마리아 여사에게 정중하게 부탁했다. 어차피 자신이 말려도 연구할 사람이니 그저 연구 자료만 공유해 달라고 했다. 혹시 모르잖은가? 그 연구 자료를 보다가 중화 영역을 초능력으로 전개할 수 있는 단서를 발견할지.
하지만 세상에 공짜는 없었다.
“맨입으로요?”
“에휴, 알겠어요.”
이번에도 마리아 여사는 경완에게 일정 기간 동안 연구 보조 등을 요구할 생각이었다.
경완은 IAMSR 일과 개인 단련으로 제법 바쁜 와중에 일이 겹치게 되었지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 예언가라는 놈이 본격적으로 훼방이 되기 전에 충분히 역량을 쌓아둬야 요하네스가 기회를 만들었을 때 놈을 제거할 수 있지 않겠는가?
지금 경완이 그답지 않게 열심히 하는 것처럼 요하네스도 놈을 열심히 찾고 있었다. 그걸 생각하면 지금의 바쁜 정도야 남는 게 있는 자기 계발이지 않은가?
그렇게 미연이 흐뭇해할 정도로 하루하루 충실히 보내고 있던 그에게 편지 한 통이 날아왔다.
“오빠. 오빠한테 편지가 왔는데? 이름이…… 정준장? 이상한 이름이네?”
미연의 말에 경완은 편지를 살폈다. 뜯어서 내용을 보는 그의 미간에 주름살이 생겼다.
“정청완 준장? 이거 살해당한 사람이 이름 맞지?”
경완의 옆에서 편지 내용을 궁금해하던 미연이 물었다.
경완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눈으로 내용을 훑었다.
편지의 내용은 축약하자면 경완에게 대한민국의 미래를 맡긴다는 것이었다. 아무래도 죽기 전에 보낸 편지인 모양이었다.
경완의 입장에선 왜?라는 의문이 들 수밖에 없는 부탁이었지만, 나머지 내용은 그렇게 해야만 하는 당위성을 담고 있었다.
세상은 어차피 초능력이 일군 변화에 직면해 있었고, 적폐 기득권들은 그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서 새로운 질서를 편입하려고 용을 쓸 것이다.
문제는 그 과정은 합리적이지 않고, 결과는 납득할 수 없을 거라는 것에 있었다.
어떻게 그걸 예상하냐고? 단지 국익이라는 이유로 초능 특수전 부대에 끌려온 것에 그치지 않고 가족들을 빌미로 협박당한 부대원들을 보면 뻔했다.
그걸 보니 적폐 기득권이 뜻하는 대로 놔두면, 그저 그들의 이익을 위해 사회와 나머지가 희생당하는, 양극화의 극단을 달리는 나라가 될 것이 뻔했다.
정청완 중장은 그런 세상을 볼 수 없었다. 기억과 감정을 공유할 수 있는 텔레파시 능력 때문인지 어쭙잖은 정의감이 폭발한 그는 결국 자신을 따르지 않는 이들도 설득해서 쿠데타를 일으켰다.
하지만 쿠데타를 성공시키고 본격적으로 적폐 청산을 시작할 때 자신은 확신했다.
‘나는 실패했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적폐인가? 과연 이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가? 과연 내 맘대로 처리한다고 적폐가 없어지겠는가?
정청완 준장이 본 현실은 썩은 부위를 잘라내겠다고 오염된 칼을 들고 설친 자신이었다. 쿠데타란 칼은 악을 다른 악으로 대체할 수 있을지언정 진정한 발전이나 변화를 이끌어낼 수 없었다.
그가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현실을 부정하고 자기 합리화를 위해 폭주하거나, 아니면 현실과 타협해 타락하겠지만, 그에게는 텔레파시 능력이 있었다.
그리고 그의 주변에는 적폐 청산에 대한 희망과 열망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있었기 때문에 정청완 준장은 폭주할 수도, 타락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다행히 자신의 입으로 내뱉은 기한을 약속했다. 정청완 준장은 그 기간 동안 최선을 다해 봄에 씨앗을 뿌리는 농부의 심정으로 자신의 역할을 그저 적폐 청산이라는 시대적 요구에 물꼬를 틔운 수준에서 만족하기로 했다. 적폐 인사들의 작당 모의를 확인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는 오랜만에 초능 특수전 부대에 방문해 억류되어 있는 이들을 만나 면담했다. 최대한 적폐란 무엇인지, 무엇이 그들을 그런 자들로 만들었는지 이해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그들은 정청완 중장을 앞에서 분개하거나 타협하려 하거나 용서를 구했다.
하지만 정청완 중장은 텔레파시 능력자였고, 또한 권력을 쥔 자들을 쉽게 믿지 않았다.
그가 몸담고 있었던 군대야말로 그런 곳이지 않은가?
공과 영광은 위로, 짬처리는 아래로. 게다가 군부 독재의 정점에 있으면서 가진 것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인간의 치열함을 충분히 맛본 정청완 중장은 그가 억류한 인사들의 입에서 튀어나온 타협과 용서, 화해라는 단어의 뜻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정청완 중장은 그들이 취침에 들었을 때 텔레파시 능력을 사용했다. 그리고 그들이 섬뜩한 계획을 세우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
언제고 군부 정권이 종료되면, 철저하게 정권과 권력을 손아귀에 쥐고 자신들에게 이러한 수모를 준 자들과 그 가족들을 모조리 자살시켜 버리겠다는 것, 자살하지 않으면 차라리 죽느니만도 못한 수모를 주겠다는 것이다.
그들의 모의는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이 모의했다고 하지만 단순히 의견을 합치한 것뿐이고 구체적인 계획은 짜지 않았다.
그런 걸 미리 짜서 약점이나 빌미를 만들 필요가 없다는 걸 알 정도로 저들은 충분히 교활했다. 탈법과 합법 사이의 경계를 문제없이 걸을 수 있을 정도의 수완도 있었다.
정청완 중장은 그들의 의도가 이뤄지는 세상을 용납할 수 없었다. 쿠데타에 협력하고 군부 독재에 협조한 이들은 죄다 잘 먹고 잘사는 것이 현실인데, 왜 자신의 쿠데타에 협조한 이들만 벌을 받아야 하는가? 그저 든든한 뒷배와 비빌 언덕이 없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