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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전생 더 빌런-349화 (349/367)

무한전생-더 빌런 349화

32-레지스탕스

“원하는 게 뭐야?”

[내가 말한 곳으로 혼자 와라.]

“그리고?”

[거기서 인질을 풀어줄 협상을 하도록 하지.]

“어딘데?”

경완은 장소에 대한 주소와 사진을 받았다.

납치범과의 전화를 끊고 나서 그는 집안꼴이 어떤지 확인할 수 있었다. 저도 모르게 몸에서 뿜어져 나온 초능력에 물건들이 여기저기 제자리를 벗어나 있다거나 압력에 파손되어 있었다. 또 한쪽 벽면은 시꺼멓게 탄화되어 있었고, 천장 한쪽은 허옇게 서리가 얼어있었다.

경완은 그 난장판을 놔두고 분주하게 움직였다. 여기저기 전화를 걸어 상황 확인부터 한 것이다.

하지만 미연의 소속사는 아직 상황 파악하는 중이라 도움이 되지 않았고, 매니저 새끼는 넋이 빠졌는지 전화조차 받지 않았다. 아마 김준이 아니었다면 울화통이 터져서 눈이 뒤집어져 있지 않았을까?

“그러니까 현장 경호원들 중에 한 패가 있었다?”

[네. 아무래도 특수한 약물을 이용해 경호를 무력화하고 납치한 것 같습니다.]

김준과 통화하는 동안 켜놓은 뉴스 채널로 미연의 납치가 속보로 나가고 있었다.

그녀는 강원도에 예능을 찍으러 갔다가 납치당했다. 현장에 경호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범인은 그것까지 감안하고 납치를 계획한 정황이 뚜렸했다.

“놈의 이름은요?”

[알 수 없습니다.]

“네?”

[분명 미연 씨를 납치한 경호원의 이름은 김강호라고 했는데, 정작 그는 본인 자택에서 의식을 잃은 상태로 발견되었으니까요.]

“매니 페이스?”

경완은 상대로 위장하는 능력을 가졌던 암살자를 떠올렸다. 놈과 비슷한 능력을 가진 초능력자가 또 있다고 해도 이상하진 않았다.

[어떻게 할 겁니까?]

“바로 움직일 겁니다.”

놈은 바로 오라고 했다. 마리아 소장에게 연락해 천리안 장비를 빌리고 납치 현장에 가서 미연의 체취를 찾아 추적하기엔 시간이 모자랐다. 경완은 미연의 안전을 두고 도박할 생각은 없었다.

놈이 협상하자고 했으니 과연 무엇을 협상할 건지 이야기는 들어보는 편이 지금으로선 최선이 아닐까?

[따라가겠습니다.]

“멀리서 안 보이는 상태에서 추적해 주세요.”

경완은 TSTG를 입으며 대꾸했다. 그런데 그 TSTG가 요하네스가 선물해준 TSTG였기 때문인지 그는 요하네스를 떠올렸다. 과연 그는 이 상황을 예상하지 못했을까?

삐리리리!

마침 요하네스에게 전화가 왔다. 경완은 하늘로 날아오르며 그와 통화했다. TSTG의 통신장치는 경완의 폰과 연동되어 있었다.

[방금 속보를 확인했습니다.]

“이런 일이 예전에는 없었어요?”

경완의 목소리는 가라앉아 있었다. 답변하는 요하네스의 목소리는 지금까지 경완이 들은 적 없을 정도로 진지했다.

[경완 씨. 당신이 미연 씨와 연인이 된 건 손에 꼽을 정도입니다. 이렇게 세계 평화를 위해서 나선 건 이번이 처음이고요.]

“처음이라고요?”

[네. 이렇게까지 제 목적에 가까워진 것도 처음입니다. 제가 왜 당신에게 제가 회귀자라는 걸 밝혔겠습니까?]

요하네스는 그때 기뻐서 제정신이 아니었다. 드디어 무수한 회귀의 끝이 보이는 것 같아서 말이다.

“그렇게 중요한 사람을 납치가 되도록 방치한 건 아니고요?”

[경완 씨. 역린이라는 건 말입니다. 함부로 건드려서는 안 되는 겁니다. 설사 아무리 선의가 바탕이 된다고 하더라도 말이죠.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그녀는 대한민국 탑연예인입니다.]

탑연예인의 경호가 허술할까? 그렇지 않다. 그런데 그렇지 않은데도 납치당했다.

요하네스가 미연의 경호를 강화했더라도 범인은 허점을 찾아내 납치를 시도했을 것이다. 그럴 때 과연 납치를 100% 막을 수 있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

사실 그녀의 납치를 막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경완이 하루종일 그녀의 곁에 붙어 있는 것이다.

경완은 요하네스에게 책임을 물으려고 했던 자신의 태도가 적절하지 않음을 깨닫고 사건에 집중했다.

“누굴까요?”

[지금 상황에선 아무래도 프리덤 얼라이언스겠죠.]

그렇다면 미연의 납치는 예언가의 승부수일 수도 있었다.

[조심하세요.]

함정이 있을 수도 있지만, 요하네스는 경완에게 가지 말라고는 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저주와 같은 회귀를 끝내기 위한 중요 단서가 바로 이미연이라고 확신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경완이 사랑하는 이미연이랄까?

이번 회귀에서 그녀가 없는 경완이 이 세상을 지켜야 할 이유는 없었다. 그래, 항상 그것이 문제였다.

슈퍼맨이 될 가능성이 있는 자가 이 세상을 지켜야 할 당위성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

요하네스는 무수한 실패 끝에 비로소 운 좋게 그 당위성을 확보했다. 그리고 그는 이번 기회를 헛되이 날릴 생각은 없었다. 미연이 이번 사건에서 희생당한다면 경완은 요하네스의 딱한 사정을 외면한 채 다시 회귀하게 두겠지.

[위버멘쉬 코리아에서 도와줄 사람을 바로 모집하겠습니다.]

경완은 납치범이 말한 장소로 이동하면서 요하네스와 상의해 구출팀을 조직했다.

김봉남을 필두로 한국 위버멘쉬 소속의 초능력자 중 강한 능력자를 약 열 명 내외로 모으기로 하고, 상황 대응 등에 관해 논의했다. 그러다 약속 장소에 도착하자 경완은 나머지를 요하네스에게 맡겼다.

약 20분 동안 초음속으로 날아서 도착한 곳은 이미 인구가 소멸해 버려 버려진 촌동네.

납치범이 말한 주소는 버려진 촌동네의 한 폐가였다.

“진입합니다.”

[저희도 곧 갈게요.]

김봉남의 평소의 경박함이 쫙 빠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경완은 폐가로 들어가기 전에 초감각 레이더를 펼쳤다. 그리고 인상을 찌푸렸다. 폐가 안에 사람은 없고 카메라와 모니터로 보이는 디스플레이만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긴 이경완이 어떤 능력을 사용하는지 아는 자라면 함부로 그의 앞에 나서진 못할 테니까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었다.

경완은 결국 폐가 안으로 들어갔다. 일단 들어가야 뭐라도 반응이 있을 것 같아서였다.

그가 폐가 안으로 들어가자 디스플레이가 켜졌다.

[서프라이~즈!]

화면에 나온 이는 버츄얼 유투버 같았다. 가면을 쓴 것이 아니라 카메라 필터로 얼굴을 만화에나 나오는 귀여운 도깨비 얼굴로 가렸다. 배경도 판넬을 세워뒀는지 그 장소를 짐작하기 어려웠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사상 최강의 초능력자 씨!]

화면에 나온 자는 도저히 경완에게 전화를 해서 협박했던 납치범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말투가 경박스러웠다.

“너 전화한 새끼 아니지?”

[맞습니다! 똑똑하시군요.]

“넌 납치범과 무슨 사이지?”

[음……. 전략적 동맹관계랄까요? 사실 이렇게 제가 경완 씨 앞에 나설 생각은 없었는데, 계약이 그렇게 되어버려서요.]

“……너 사망기자지?”

[…….]

경완이 불쑥 꺼낸 말에 화면의 사내는 잠시 굳었다가 웃으며 대답했다.

[후후후. 대단하네요. 어떻게 알았죠?]

“그냥 하는 언행이 닮은 것 같아서 찍었지.”

[…….]

할 말을 잃은 그에게 경완이 말했다.

“사회의 추잡함을 쫓던 사망기자가 어쩌다 납치범을 돕게 된 거지?”

[뭐 말 못 할 인생의 굴곡이랄까요? 그 이유에는 당신도 전혀 관련이 없진 않아서요.]

“내가?”

[네. 당신이 편들어주고 있는 위버멘쉬 총수 때문에 제가 아주 곤란을 겪었거든요.]

“어떤 곤란?”

[전 누구 밑에서 일할 사람이 아닌데, 자꾸 자기를 도와달라더군요. 사실은 도우라는 게 아니라 열심히 일하라는 소리였지만요.]

“세계 평화를 위해서?”

[네. 세계 평화. 하지만 제 경험상 그딴 소리를 지껄이는 인간들은 죄다 뒤로 호박씨 까더군요.]

그 뒤로 사망기자는 요하네스의 손길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어떤 미친놈들하고 손을 잡을 수밖에 없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 말에 경완은 예언가가 상당히 예전부터 활동해 왔음을 알 수 있었다. 아무래도 예언가는 상당히 오래전부터 위버멘쉬, 아니 요하네스를 상대하기 위해 준비를 해왔던 모양이다.

“그놈들이 납치범이다?”

[네.]

“넌 납치에 관련되지 않았고?”

[물론이죠. 저는 그런 범죄에는 관심 없다고요.]

“그럼 대답해. 미연이는 어디 있지?”

[알려드리고 싶기는 한데, 그전에 제 할 일부터 먼저 해야 해요.]

“빨리 해봐.”

경완은 인내심을 가졌다. 납치범이 원하는 것이 사망기자와 자신이 이런 대화를 나누는 거라면 얌전히 그 의도를 따라주어야 한다.

미연을 구출할 기회가 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짜잔! 그럼 위버멘쉬 총수 요하네스의 세계 전략! 시작해 보겠습니다!]

사망기자는 오직 경완을 위한 방송을 시작했다.

요하네스가 세상에 모습을 보이기 전 위버멘쉬가 전 세계에서 게릴라 활동을 벌였을 때 어떻게 수익을 얻고 어떻게 영향력을 넓혔는지부터, 요하네스가 등장한 이후 그가 세계 여러 나라들을 다니며 그 나라, 그 지역의 유력가들과 결탁해 온 사례들이 전부는 아니지만 굵은 것 위주로 나열되었다.

내용은 문제적이었다. 확실한 탈법과 도의적이지 않은 행동은 요하네스가 악당이라는 사실을 설파하기 충분했다.

약 10분간 영상을 시청하던 경완이 입을 열었다.

“그래서 결론은?”

[이걸 보고도 뭔가 느끼는 게 없으신가요?]

“왜? 요하네스가 세계 정복을 추진하는 악당이라고?”

[맞지 않나요? 강대국과 결탁해 약소국의 주권을 침해하고 세계 정부를 설립하는 단계를 차근차근 밟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그게 미연이를 납치한 것과 무슨 관련이 있지?”

[음……. 관련이 없죠?]

엄밀히 말해 미연이 납치된 이유는 요하네스와 그에게 협조하는 경완 때문이었지, 그녀가 문제는 아니었다. 그녀는 정말 선의의 피해자일 뿐이었다.

사망기자가 재차 물었다.

[정말 저런 악당이 세계 정복을 하고 있는데 아무런 생각이 없나요?]

그게 뭐? 세계 정복 경험이라면 경완도 만만치 않았다. 그런 그의 경험을 반추해보면 요하네스 정도면 절대로 최악은 아니고. 그렇다고 차악도 아니며, 적어도 차선 정도는 되었다.

“내 생각엔 다른 놈들보다는 나아.”

[아이고, 저런. 히틀러도 청렴한 인물이었다는 건 알아요?]

사망기자는 아주 딱하다는 추임새를 넣으며 반박했다.

히틀러는 주변 사람들에게 친절한 사람이었고, 금주금연을 했으며, 고기도 먹지 않았고, 세계 최초로 동물 보호법을 만든 사람이었다. 또한 여자와의 스캔들도 거의 없었는데, 1939년엔 심지어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되기도 했을 정도였다.

이렇게 어떤 인물의 평이 좋다고 그가 좋은 사람이라고 단정 지을 순 없었다.

백번 양보해 좋은 사람이라고 쳐도 그 결과의 선함까지 담보할 순 없었다.

경완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런 사실을 인정했다. 그리고 아무리 세계 평화를 위해서라지만 요하네스가 걷는 길이 정도(正道)는 아니었다.

“뭐, 그가 하는 짓이 도덕적이라고 말하기는 힘들지.”

[그런데 왜 그를 돕죠?]

“더 나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려고.”

세계 정부? 주권 침해?

그게 싫다고 징징대는 꼬라지 앞에 세계 멸망, 아포칼립스 상황을 떡하니 놓아두면 99%는 전자를 선택할 것이다. 아, 예언가 같은 미친놈들이 있기는 하니까 99%까지는 아닌가?

하지만 경완의 입장에선 다른 사람의 생각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가 누리고 있는 평온과 안정을 위해서 기꺼이 다른 나라, 다른 인간의 주권과 자유를 침해할 각오가 되어 있는 것이 이경완이라는 인간이었다.

어차피 자유에 대한 개념은 상대적이었다. 사람들은 불과 백년전까지만 해도 왕을 모시는 걸 당연하게 여겼다.

설사 그 권위가 자신들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하더라도 법도가 그러하니 마땅히 따라야 한다고 말이다.

경완은 자유가 그 자체로 가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것은 그저 어떤 가능성의 씨앗일 뿐이고, 그것이 싹을 틔워 맺는 열매가 더 중요했다. 그런데 그 결과가 세계 멸망의 위기라면 잠시 자유를 억제하는 것도 실리적으로 합당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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