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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전생 더 빌런-353화 (353/367)

무한전생-더 빌런 353화

32-레지스탕스

도재영이 말을 이었다.

“놈은 미하일 스트라우스라는 이름으로 유럽행 비행기를 탔어요.”

“유럽?”

경완의 눈이 가늘어졌지만 도재영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중간에 터키에서 내렸지만요.”

“그리고?”

“그 뒤론 못 찾았어요. 터키는 넓은 나라고 IT 인프라를 제대로 갖춘지 못한 곳도 많아요. 제 능력은 IT 인프라가 제대로 갖춰진 곳이어야 빛난단 말이에요.”

“그럼 놈을 어떻게 찾지?”

“다행히 전가웅은 아직 의뢰로 받은 돈가방을 가지고 있더군요.”

“그게 왜?”

경완의 물음에 도재영은 고개를 갸웃했다.

“왜긴요? 위버멘쉬에는 사이코메트리 능력자가 있잖아요.”

“못 들어봤는데?”

“아하~ 경완 씨에게도 말 못 할 비밀이라는 거네요. 하긴 저도 간신히 알아낸 극비 사항이니까.”

경완은 왜 요하네스가 도재영을 가만히 놔두는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극비 사항을 털린 것도 몰라서 그러는 걸까, 아니면 극비 사항이 아니라서일까?

그에 대한 해답은 돈가방을 찾아온 후 요하네스에게 연락했을 때 알게 되었다.

[싸이코메트리 능력이라…… 어떻게 아셨습니까?]

“나름 정보통이 생겨서요.”

[허허. 재주가 좋으시군요. 사망기자를 포섭하시다니..]

“……어떻게 아셨어요?”

요하네스가 설명하길, 사이코메트리 능력자의 존재가 새어 나가면 그 유출경로를 타고 사망기자를 추적할 작정이었단다.

더불어 사망기자가 위버멘쉬와 자신의 앞길을 방해할 마음을 품었는지 가늠할 시금석이기도 했고 말이다. 사망기자 입장에선 그동안 입 꾹 닫길 잘한 짓이었다.

“그럼 사이코메트리 능력이 사실은 없다는 말인가요?”

[아니요. 사이코메트리 능력자가 위버멘쉬 소속이라는 건 사실입니다. 가짜 정보로 낚을 수 있을 정도로 사망기자는 만만한 인물이 아니거든요.]

“사망기자를 어떻게 하려고요?”

[어떻게 하긴요? 그 능력을 세상을 위해서 쓰도록 해야죠.]

“본인이 싫다고 하면요?”

[사망기자는 충분히 설득이 가능한 인물이랍니다.]

왜 설득이 협박으로 들리지?

경완은 일단 도재영에 관한 건 제쳐 두고 사이코메트리 능력자에 집중했다.

“제가 사이코메트리 능력이 필요합니다.”

[왜요?]

요하네스는 경완이 미연 납치 사건의 의뢰인이 실행범에게 건넨 돈가방을 확보했다는 소리에 감탄을 터뜨렸다.

[오호! 그래, 그렇군요. 그럼 제가 말을 넣어보겠습니다.]

“부탁합니다.”

[아, 그런데 그 납치범은 어떻게 됐습니까?]

“살아는 있습니다.”

살아는 있다. 그저 사지(四肢)를 써모키네시스로 태워서 재로 만들고, 얼려서 산산조각 가루로 만들었을 뿐.

물론 인간의 가능성은 크기 때문에 미리 피부에 특별히 만든 마커를 심어두는 것도 잊지 않았다. 혹여나 재생 능력을 개발하거나 전 재산을 다 써서 치유 능력자에게 치료라도 받으면 다시 즐겁게 찾아가 다시 사지를 뜯어내주기 위해서 말이다.

[음. 대단하시군요. 살려두다니.]

“아니에요. 죽이는 건 너무 쉽잖아요.”

[하하. 그런 거군요. 그런데 사망기자는 어떻게 하실 겁니까?]

“그냥 놔두면 안 될까요?”

‘그냥 놔둘 생각입니다’가 아니라 부탁조가 된 건 사이코메트리 건으로 요하네스에게 빚을 졌기 때문이지만 사망기자와 한 약속을 어기고 싶진 않았기 때문이다. 사망기자가 요하네스의 손아귀에 들어가게 되면 샌드맨도 드러날 수 있었다.

사망기자 도재영이야 요하네스에게 붙잡혀 공밀레를 당하든, 사축인생을 살게 되든 관심 없었지만, 강우빈은 경완의 관점에선 매우 무고한 인물이었다.

병신이 된 전가웅 입장에선 매우 억울하겠으나, 돈 받고 범죄나 저지르는 청부업자 새끼와 남다른 정의감에 또라이 짓을 하는 사망기자를 동일하게 취급할 순 없는 거 아니겠는가?

[으음……. 경완 씨에게 사망기자의 정체나 위치에 관해 묻지는 않겠습니다만, 경완 씨와 관련 없이 걸리는 것까지 봐줄 순 없습니다.]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경완은 다시 사이코메트리 능력자에 관한 건으로 넘어갔다.

요하네스는 어렵지 않게 사이코메트리 능력자의 허락을 받아왔고, 경완은 그 길로 바로 유럽으로 향했다.

유럽 프랑스의 한 시골 도시에 사이코메트리 능력자가 있었다.

[발푸기스 씨가 말한 그 사람인 모양이군요. 반가워요. 전 세뮈르라고 해요.]

한 젊은 흑인 아가씨가 문을 열고 나오더니 경완을 집 안으로 들였다.

[이겁니다.]

세뮈르는 경완이 테이블 위에 올려둔 케이스 가방을 내려다보고는 다시 고개를 들어 그를 보았다.

[도와드리기 전에 사이코메트리 능력에 대해 알아두셔야 할 게 있어요.]

[뭔가요?]

[사이코메트리 능력은 그리 대단하지 않으면서 굉장히 소모가 큰 능력이라는 걸요.]

그녀가 사이코메트리 능력의 원리에 대해 간략히 설명하길, 물체가 가진 입자와 다른 입자의 상호작용, 즉 양자얽힘의 파동을 역추적해 주변의 이미지를 구성하는 거란다.

그만큼 희미하고 모호한 이미지가 많았고, 또 시간이 지남에 따라 양자파동의 흔적, 또는 잔류 기억이 사라져 이미지 구성이 불가능할 수도 있었다.

또한 소리 같은 경우엔 양자파동을 추적하기가 너무 어려워서 음성도 재생할 수 없단다.

[그럼 그 이미지는 당신만이 보는 건가요?]

[다행히 전 텔레파시 복합능력자에요.]

그녀의 말로는 아무래도 텔레파시 능력이 사물에 적용되는 것이 사이코메트리라는 형태로 나타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알겠습니다. 시작하죠.]

경완이 고개를 끄덕이자 세뮈르가 손을 내밀었다. 경완은 그 손을 멀뚱히 보았다.

[…….]

[…….]

[잡아요.]

[아, 네.]

아, 잡으라는 뜻이었구나. 미연 말고 외간 여자의 손을 잡는다는 생각을 안 해서 빚어진 잠깐의 몰이해였다.

곧 세뮈르가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했다.

패스가 연결되자 경완은 그녀가 느끼는 감각이 어떤 이미지로 전달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마치 VR 버전의 풍경화 같은 느낌이었다.

그녀가 단서가 되어줄 가방에 손을 대자 경완이 전달받던 이미지가 빠르게 변했다. 세뮈르의 사이코메트리가 발현되면서 가방의 기억을 들여다보기 시작한 것이다.

테이블 위에 놓였던 가방은 경완의 손에 들린 채 다시 밖으로 나갔다가 하늘로 솟구쳤다. 그러다 공항에 도착해 검역소를 거꾸로 진입한 후 여객기 화물칸에 실린 채 한국으로 돌아갔다.

비디오를 빠르게 뒤감기하듯 가방의 입장에서 역재생하던 영상이 갑자기 끊겼다. 경완이 청부업자 납치범을 조지고 그에게서 가방을 강탈할 당시의 기억이었다.

“우웁!”

세뮈르는 비위가 좋지 않은지 화장실로 뛰어가 속을 게워내고 돌아왔다. 그리고 말없이 떨리는 시선으로 경완을 보았다.

그는 멀뚱한 얼굴로 대꾸했다.

[저로서는 살려두는 것만으로 최대한 자비를 베풀었습니다.]

언제는 쉽게 죽일 수 없다고 했으면서 이번엔 거짓말을 하는 이유는 때론 상대가 듣고 싶은 말을 해주는 것이 배려이기 때문이었다.

상대가 진실을 원하면 진실을, 적당한 사실을 원하면 그런 사실을, 새빨간 거짓을 원하면 새빨간 거짓을.

지금 세뮈르는 경완을 무서워하지 않을 이유가 필요했을 것이다.

[미리 들어서 알고는 있었지만, 좀 심하군요.]

[인정합니다. 제가 좀 감정적이었거든요.]

[좋아요. 계속하죠.]

세뮈르는 계속 가방의 기억을 거슬러 올라갔다.

전가웅의 방 한구석에서 가만히 있던 가방은 내용물이 다시 채워지고 그의 손에서 의문의 남자에게 다시 건네졌다.

의뢰인으로 보이는 남자는 뒷걸음질로 빠르게 움직였다. 움직이고, 움직이고, 움직이고. 이미지가 정지한 건 그가 어디론가 전화번호를 누르고 있던 장면이었다.

너무 과거라 그런지 이미지는 많이 흐려졌고 휴대폰의 숫자도 보이지 않았지만, 경완은 손가락의 위치로 전화번호를 기억했다.

남자가 누군가에게 전화를 하던 지역은 이란. 생김새는 확실히 기억했다. 다만 소리가 전혀 없었기 때문에 목소리가 누군지, 누구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는 전혀 알 수가 없었다.

거기까지가 경완이 알 수 있는 전부였다.

[감사합니다.]

[범인을 잡을 수 있길 바랍니다.]

[네, 꼭 잡겠습니다.]

경완은 세뮈르의 사이코메트리로부터 얻은 정보를 도재영과 요하네스에게 보냈다. 몽타주도 하이퍼 리얼리즘 인물화처럼 정교하게 그려서 보냈다. 이미지대로 움직이는 염동력 덕분에 빠른 시간 안에 작업이 가능했다.

이제 남은 건 기다리는 것뿐.

초조해야 하는 상황이지만 경완은 마음을 다스렸다. 미연에게 이상한 낌새를 들킬 순 없었다.

그리고 그 일은 생각보다 힘들었다. 도재영이나 요하네스가 꼬리를 잡기 전에 저쪽에서 협박장이 날아왔기 때문이다.

‘그녀를 잃는 것이 두렵다면 그를 돕지 마라.’

경완은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그 협박장을 위버멘쉬에 넘겨주었다. 요하네스의 손에 협박장이 들어가면 세뮈르의 사이코메트리 능력을 동원할 수 있었다.

간신히 꼬리를 잡은 건 협박장을 받은 지 5일 뒤였다.

[역시 루롱이 관련되어 있었군요.]

나바하 루롱. 위버멘쉬 연구소에 부장으로 있었지만 위버멘쉬를 탈퇴하고 적대하기 시작한 사람이자 연구소에서 보관하고 있던 CN폭탄과 관련 우라늄 변질가공 코어를 유출한 자였다.

그런 그가 이제는 예언가와 손을 잡고 경완과 요하네스 사이를 끊어내기 위해 수작을 부렸다.

[미연 씨에게 세뇌 능력을 건 사람은 아무래도 저희 교화소에 있던 사람인 모양입니다.]

“교화소요?”

경완은 이건 또 뭔 소리인가 싶었는데 요하네스가 말을 이었다.

[살다 보면 그런 사람을 종종 보게 되지 않습니까? 운이 나쁘게 첫 단추를 잘못 끼워서 안 좋은 길로 빠지는 그런 사람들 말이죠. 교화소는 잠시 그런 초능력자들을 수용해 첫 단추를 잘못 꿰지 않도록 돕는 곳이었죠.]

“왜 과거형이죠?”

[이제는 사회 제도가 많이 정비되었으니까요.]

초기 초능력 각성 시기, 사람들과 사회는 혼란과 불안에 요동쳤다. 특히 초능력을 각성한 이들 중 힘에 취해버리거나, 능숙하지 못한 초능력 발현으로 사고를 일으키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요하네스는 세상이 초능력자를 배척하고 경계하는 분위기를 풍기기 전에 큰 사고를 칠 것 같은 이들을 미리 데려와 교화소에 집어넣었던 것이다.

“모두 자발적이었던 건 아니죠?”

경완은 교화소란 명칭에서 강압이 있었다고 추론했다. 요하네스는 부정하지 않고 솔직하게 대답했다.

[솔직히 누가 어떤 사고를 치게 되는지 알고 있는 상황에서 가만있기가 더 힘들더군요.]

“고마워해야 하는데 고마워하진 않겠군요.”

세상에서 가장 많은 사람의 목숨을 구한 사람이 있다면 아마도 안전밸트를 의무로 차량에 설치하고 운전 시에 착용하도록 한 정치인이 아닐까?

하지만 그 누구도 그런 그의 공을 기억하지 않았다. 왜냐면 사람들은 미래를 내다보지 못하기 때문에 ‘예방’이 얼마나 대단한지 피부로 실감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마 강제로 교화소에 들어간 이들도 그럴 것이다.

요하네스는 회귀한 경험을 토대로 그들이 얼마나 대단한 빌런이 될지, 얼마나 큰 사고를 칠지 알고 이를 예방해 주었지만, 당사자들에게 요하네스는 그저 부당하게 자신들의 신변을 구속한 전직 빌런 두목에 불과했다.

“그리고 마침 그중에 고마움도 모르고 보복하려는 이도 생겼고요.”

[그 사람들 잘못이 아닙니다. 다 옆에서 나쁜 말을 집어넣는 놈이 있기 때문이죠.]

나바하 루롱이 언급되자 경완은 미연을 떠올렸다.

“그자가 미연에게 세뇌를 걸었을까요?”

[본인은 그런 능력이 없지만 작전을 입안했을 가능성은 있습니다. 경완 씨와 저의 우호관계야말로 제가 그리는 미래의 핵심이라는 걸 파악했을 테니까요.]

경완을 협박하는 편지는 나바하 루롱이 쓴 것이었다.

다만 예언가나 세뇌 능력자의 신상에 관한 건 알 수 없었다. 나바하 루롱은 요하네스를 막기 위해 기꺼이 예언가의 장기말이 되기를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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