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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전생 더 빌런-354화 (354/367)

무한전생-더 빌런 354화

33-업보

“짜증나는군요.”

이번 일은 마치 스웜 전술 같았다. 여기서 한 방, 저기서 한 방, 한 방 때린 후엔 종적을 감춰버리고.

경완은 애써 침착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저들이 원하는 대로 되기는 싫었으니까.

[미연 씨는 좀 어떻습니까?]

“수상하게 여기고 있어요.”

그녀의 광역 치유 능력을 회춘, 미용 능력으로 파생할 수도 있다는 핑계로 마리아 소장의 연구소에 들락거린 것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박사라는 사람들이 그녀를 만나서 깊은 상담을 하고, 정밀 기기에 들어가 스캔 비슷한 것을 받으니 뭔가 훈련이나 능력 개발이 진행되고 있는 것에 대한 의심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식의 금제? 세뇌에 대한 해결책은 없어요?”

경완은 요라에몽에게 물었지만 대답은 부정적이었다.

[쉽지 않아요. 정말 쉽지 않습니다.]

정신계 능력은 마치 예리한 수술용 메스와도 같았다.

사람을 살리겠다는 마음으로 휘둘러도 실력이 모자라면 사람을 다치게 하거나 죽일 수도 있는데, 아무 생각 없이, 혹은 악의에 가득 차 휘두르면 사람에게 평생 지워지지 않을 흉터를 남기는 너무나 쉬웠다.

망가뜨리기는 쉬워도 고치는 건 어렵듯이 말이다.

[초능력 공학이 발달한 미래에서도 정신계 능력자의 범죄는 언제나 두려움의 대상이었죠. 하지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지금도 제 직원들이 불철주야 놈들을 추적할 단서를 찾고 있으니까요. 그리고 정 안 된다면 최후의 방법이 있습니다.]

“그게 뭐죠?”

[경완 씨가 정신계 능력도 각성하면 됩니다.]

“그게 말처럼 쉽나요?”

정신계 능력을 사용하기 위해선 패스가 필요했지만, 이는 선천적으로 타고난 특질이라는 게 일반적인 평이었다.

[쉽지 않으니까 최후의 방법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이런 요하네스의 대꾸를 들어보면 경완이 정신계 능력을 사용했던 미래도 있었던 모양이다. 그래도 쉽지 않을 거라는 어조에도 말이다.

그런 요하네스의 말이 마음에 남은 탓인지 경완은 마리아에게 관련 자료를 부탁한 후 미연을 캐어했다.

“오빠, 요즘 왜 이리 잘해?”

“음……. 좀 변해야 할 것 같아서.”

“사람이 갑자기 안 하던 짓을 하면 죽는데.”

“하던 짓만 계속해도 죽어.”

“오~ 이젠 좀 살고 싶어졌나 봐?”

“그렇다고나 할까?”

미연을 구하기 전까지 죽을 순 없달까?

그런 대답에 미연은 경완의 목에 팔을 두르고 그윽한 시선으로 올려다보며 물었다.

“그럼 나 좀 더 기대해도 돼?”

“무슨 기대?”

“우리 미래.”

경완은 말없이 미연과 눈을 마주쳤다. 떨리는 눈동자에 그는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미연은 환하게 웃으며 그에게 매달렸다. 늘씬한 다리가 경완의 허리를 휘감았고, 행복으로 환했던 미소는 이내 고혹적인 유혹의 미소로 바뀌었다.

“기분이다! 오늘 내가 서비스 왕창 해준다!”

“니가?”

“왜?”

“너 침대 위에서 허접이잖아.”

“아니거든!”

“맞아.”

“아니라는 걸 증명하겠어!”

미연이 연기하는 쪼로 외치며 몸을 흔들었다. 빨리 침실로 가자는 유혹의 몸집이었다.

경완은 그대로 침실로 들어가며 발로 문을 닫았다.

* * *

둘은 혼인신고서를 제출했다. 그리고 그날부터 결혼식 준비를 서둘렀다. 사실 주도는 미연이 하고 경완은 그저 고개만 끄덕이는 과정의 반복이었지만 미연은 마냥 행복했다.

발신인이 누군지 알 수 없는 편지 한 장을 받기 전까지 말이다.

“오빠. 이리 와서 좀 앉아봐.”

재택 근부로 IAMSR의 서류 작업을 하고 있던 경완은 미연의 목소리에 또 이번엔 어떤 웨딩 소품이 등장해서 골치 아플까 싶었다.

그런데 미연이 내민 건 한 문장이 프린트된 한 장의 종이였다.

[지금 당신의 연인은 당신을 속이고 계속 요하네스와 연락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종이를 가리키며 물었다.

“이 말 사실이야?”

“아니.”

경완은 입에 침도 안 바르고 거짓말했다.

“그런데 왜 이런 투서가 날아오는 거야?”

“너 요하네스의 이름이 거론될 때마다 예민해지잖아. 그걸 이용해서 날 괴롭히려는 사람들이 있어.”

“아~! 내가 예민해지는구나. 그래서 날 마리아 소장님 연구소로 데려간 거야?”

“…….”

예리한 질문에 경완은 일순간 입이 다물어졌다.

그런 그에게 미연이 앙칼진 표정으로 쏘아붙였다.

“날 검사했던 김혜림 박사, 알아보니 대단한 사람이라더라. 초능력 정신과 의사래. 더 놀라운 건 전문분야가 트라우마 치료래! 트라우마! 오빠! 내가 이상해?!”

경완은 입을 열지 못했다. 하지만 그 침묵이 미연에겐 충분한 대답이 되었다.

“왜 내가 이상해? 이상한 건 요하네스야! 그자가 있어서 오빠가 두각을 보이지 못하는 거야! 왜 오빠가 그 사람의 머슴처럼 일해줘야 해?! 오빠가 뭐가 부족해서! 오빠는 세상에서 가장 잘난 남자라고!”

얼굴이 시뻘게지도록 표독스럽게 소리치던 미연은 심호흡을 하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이 아름다운 미소를 지었다. 어조도 평탄해졌다.

“그래. 그 인간이 문제였어. 오빠, 부탁이 있어. 미연이 부탁 들어줄 거지?”

“…….”

“요하네스, 그 인간. 죽여주지 않을래?”

그렇게 부탁하는 미연은 그야말로 경국지색의 요부였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경완은 입술을 달싹였지만 차마 단어 하나를 내뱉지 못했다.

탁!

“윽!”

그의 초능력이 미연의 목덜미를 내려쳤고, 그녀는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경완은 초능력을 쓰지 않고 직접 두 팔로 그녀를 안아 들어 침대에 눕힌 후 요하네스에게 전화했다.

“요하네스 씨.”

[무슨 일입니까?]

“임시비상조치. 그거 지금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알겠습니다.]

대답하는 요하네스의 목소리가 무거웠다.

* * *

33-업보

경완이 요하네스에게 부탁한 임시비상조치는 미연을 잠시 가사 상태에 빠뜨리는 것이다. 치유 능력자를 쉽게 구할 수 있는 요하네스의 사회적 위치 덕분에 건강엔 문제가 없겠지만, 다른 문제가 있었다.

연예인의 공백기. 특히 미연같이 활발히 활동하는 연예인의 경우, 갑작스런 활동 정지는 타격이 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의 커리어를 소중히 하고 있었고, 호호 할머니가 될 때까지 연예계에서 버티겠다고 경완에게 반쯤 농담 삼아 말하기도 했다.

그리고 정신계 능력의 전문가인 김혜림 박사는 안정 캡슐에 들어간 미연을 보면서 또 다른 위험을 거론했다.

그것은 꿈이었다. 미연이 가사 상태에서 꿈을 꾸고 있는가? 그리고 만일 꿈에서 요하네스의 이름을 듣는 것이 똑같이 금제를 자극할 가능성은 어떻게 되는가? 이러한 의문을 던진 것이다.

그래서 시간을 벌었어도 경완은 도저히 안심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원칙을 깼다.

“인사해. 위버멘쉬 총수, 요하네스 발푸기스 씨야.”

“아, 안녕하세요.”

“요하네스 씨, 이쪽이 바로 사망기자입니다.”

“하하하! 반갑습니다. 사망기자 씨. 당신의 활약상과 정의감은 만인의 귀감입니다. 한국의 언론이 당신의 반만큼만 했다면 한국이 지금처럼 혼란스럽지는 않을 텐데 말이죠.”

바로 발푸기스에게 사망기자 도재영을 넘겨준 것이다.

도재영은 약속을 어겼다며 경완을 비난했지만, 미연의 상황을 듣고는 입 다물고 얌전히 경완의 뒤를 따라 요하네스를 만났다. 그리고는 자신을 마치 보물을 감상하는 것 같은 요하네스의 그윽한 시선을 피해 경완의 등 뒤로 몸을 숨겼다.

“걱정 마. 요하네스 씨는 남색가가 아니니까.”

“그걸 어떻게 믿어요?”

“진짜 아니라니까.”

“저 아저씨 순 남자들하고만 어울린단 말이에요. 딱히 만나는 여자도 없고요.”

“그걸 어떻게 알아?”

“내가 저 아저씨 약점 잡으려고 얼마나 캐고 다녔는데…….”

도재영은 경완의 질문에 대답하려다가 말없이 웃고 있는 요하네스를 의식하고는 말꼬리를 흐렸다.

더 이상 자신을 쫓지 말라고 협박하기 위해선 역시나 개인적인 치부를 들추는 것이 가장 좋았지만 위버멘쉬의 총수라는 타이틀은 허언이 아니었는지 요하네스의 사생활은 그야말로 흠잡을 곳이 없었다.

도재영은 그래서 더 무서웠다. 요하네스의 행태는 충분한 돈과 권력을 가진 사람의 것이 아니었으니까. 지금의 위치만으로 부족하다는 듯 혈기왕성하게 움직이는 요하네스는 도재영에겐 마치 인간의 탈을 쓴 욕망의 화신처럼 보였다.

경완은 도재영을 자신의 등 뒤에서 끄집어내어 요하네스에게 내밀었다.

“잘 쓰고 돌려주세요.”

“흠집 하나 없이 쓰고 돌려보내죠.”

“난 물건이 아니라고요.”

도재영의 볼멘소리를 귀담아 듣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아무튼, 전선만 연결되어 있으면 정보를 빼낼 수 있는 도재영의 테킨트와 위버멘쉬로 대표되는 요하네스의 휴민트가 합쳐지자 시너지 효과가 어마어마했다.

단 삼 일 만에 나바하 루롱의 위치를 알아낸 것이다.

그는 인터폴의 적색수배와 위버멘쉬의 수색에서 벗어나려고 이란과 파키스탄의 접경지역에 은신해 있었다. 그럴싸한 가명과 직업을 가지고 말이다.

경완은 바로 출발했다. 혹시나 해서 이란에 설치해 놓은 워프 마커 하나를 지우지 않고 남겨둔 덕분에 초음속 전투기보다 빠르게 나바하가 숨어있는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혹여나 이란이나 파키스탄의 방공망에 걸릴까 봐 밤에 움직인 탓에 도착했을 때는 깊은 밤이었다.

나바하가 있는 곳은 어떤 인적 없는 외딴 곳의 계곡에 있는 한 오두막이었다.

오두막은 돌을 쌓아 벽을 만들고, 덤불을 엮어 지붕에 올려 마치 전근대 시절을 연상케 했다. 과연 전기를 쓸 순 있을까?

경완은 초감각 레이더를 돌렸다. 밤이 깊었지만 나바하 루동은 잠에 들지 않고 작은 전등을 켜고 책을 읽고 있었다.

경완은 섣불리 들어가지 않고 주변을 좀 더 자세하게 탐색했다.

오두막 근처에 지하 저장소엔 통조림, 염장 고기 등이 풍족하게 있었고, 오두막 뒤편엔 위성통신이 가능한 접시 안테나가 있었다. 뒤에 작은 창고엔 휘발유 통과 인버터 발전기가 전기를 공급하고 있었다.

다만 교통수단은 없었다. 나바하가 교통수단이 필요 없는 초능력을 지녔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나바하 루롱의 초능력은 강화지능. 기억력과 이해력이 일순간 도핑하듯 증가하는 능력이었다.

정리하자면 생활과 생존에 필요한 물품은 있어도 교통수단이 없다는 말은 누군가 그를 이리로 데려다주었다는 뜻이었다. 혹시 그놈이 자신이 찾던 놈일까?

경완은 정중하게 문을 두드렸다.

똑똑.

[!@#$!%]

영어가 아닌 말이 들려왔다. 누구세요?라고 묻는 걸까?

경완은 답하지 않고 다시 문을 두드렸다. 그러자 곧 나바하 루롱이 문을 열었고, 경완과 얼굴을 마주했다.

의외로 그는 경완의 모습에도 별로 놀라는 것 같지 않았다. 차라리 올 것이 왔다는 표정에 가까웠다.

경완이 그에게 물었다.

[내가 여기 왜 왔는지 알고 있나?]

[한 사람을 찾아서 왔겠죠.]

[그놈이 누군지, 어디에 있는지 말해. 당장.]

[좋습니다. 차 한잔하면서 들으시겠습니까?]

[필요없어.]

차는 마시지 않아도 안으로 들어오라는 듯 문 옆으로 피하는 나바하의 모습에 경완은 인내심을 유지하며 허름한 오두막 안으로 들어갔다.

오두막 안은 나름 아늑했다.

나바하는 자신이 마실 차 한 잔을 따르며 입을 열었다.

[여전히 총수를 돕고 있습니까?]

[질문은 내가 하는 거 아니었나?]

나바하는 잠시 가만히 있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튼, 당신이 제 말을 무시하고 빼낸 물품들을 회수하고 돌아가도 전 나름 잘 지냈습니다. 위버멘쉬 연구소의 부소장까지 지냈던 인재였던 만큼 이란 당국에서도 써먹을 곳이 있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얼마 뒤 한 사람이 방문했습니다. 그는 본인을 ‘순응하는 자’라고 불렀습니다.]

[그놈이 정신계 능력자인가?]

[당신이 찾고자 하는 사람을 찾고 싶으시면 차근차근 설명할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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