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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전생 더 빌런-357화 (357/367)

무한전생-더 빌런 357화

33-업보

경완은 저들의 기억과 사상에 동화되는 것을 느끼며 매우 영리한 방법이라 생각했다. 역으로 영향을 받을 수 있는 정신계 능력의 위험을 타인을 이용해 분산하고 원하는 효과만을 극대화하는 거니까.

[어떤가? 슬슬 위대한 중화에 대한 충성심이 솟구치지 않나?]

[네 능력은 가치 조정이라는 거 아니었던가?]

[응용이지.]

하지만 미연을 중화주의자로 만들진 않았다. 않은 건가 못한 것인가?

경완은 속으로 의문을 품고 마음을 열었다. 그러자 자신도 동아시아인이라는 자각이 피어나고 수천 년간 동아시아 질서의 중심에 있던 위대한 중화에 대한 존경과 자부심이 무럭무럭 자라기 시작했다.

그러한 변화의 이유는 그가 르 샤우루의 정신계 능력에 딱히 저항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것이 14억 인민의 뜻이다! 위대한 조국을 위해 봉사해라!]

한층 더 집중된 강요가 느껴졌다. 위대한 조국을 무너뜨린 이경완을 자신들의 수족으로 부릴 수 있다는 중화주의자들의 음습한 쾌감마저 전달되었다.

그만큼 경완은 마음의 빗장을 열고 있었다.

[드디어! 이경완이 손아귀에…… 아니, 이건 뭐지?]

열어젖혀진 심상(心想)으로 파고든 르 샤우루의 의식은 드디어 이경완의 가치관에 중화주의를 최우선을 두는 작업을 할 수 있을 기대에 차 있었지만 막상 들어와 보니 뭔가 이상했다.

인간의 심상이 이렇게나 비어 있을 수 있는 것인가?

그간 무수히 세뇌해 온 르 샤우루의 경험에 의하면 인간의 정신은 다양한 심상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것은 기억일 수도 있고, 가치관일 수도 있으며, 평소에 소망하는 바일 수도 있었다.

지금 함정에 빠진 경완의 절망에 찬 심상을 구경하고 주무르며 중화인으로서 중화의 체면에 먹칠한 존재를 중화에 봉사하는 존재로서 변모시키는 보복의 쾌감을 느끼고 싶었던 르 샤우루의 동지들, 수족들도 당황했다. 경완의 심상은 텅 비어버린 것처럼 어두웠기 때문이었다.

생각하는 것이 곧 인간의 심상으로 피어나는데,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는 바위처럼 아무것도 없었다.

별빛이 없는 밤하늘 같은 내면을 유심히 살펴보던 르 샤우르는 점점 기분이 이상해졌다.

어딘가에 자신의 정신이 빨려 들어가는 기분과 전혀 그런 느낌이 없는 괴상한 괴리감이 느껴졌다. 그건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 점점 커지면서 위기감도 점점 커졌다. 그 위기감은 끝도 없이 커져서 심상 속인데 식은땀이 나고 구역질이 날 것 같았다.

[내보내 줘! 내보내 줘!]

[이상해! 여긴 이상해!]

[여긴 어디야?! 여기가 정말 인간의 내면이라고?!]

연결된 수족들이 아우성을 쳤지만 르 샤우루는 자신의 능력을 중간에 끊지 못했다. 능력을 사용하는 감각은 몇 번이고 패스를 거두라는 신호를 보냈지만 심상의 연결은 여전히 유지되고 있었다. 누군가에게 자신의 능력에 대한 통제권을 빼앗긴 기분이었다.

당연하게도 그 범인은 경완이었다.

[인간의 정신은, 자아는 무엇으로 구성되는 걸까?]

경완의 음성이 들려왔다. 르 샤우루는 이를 갈았다.

[뭐냐?!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인간의 정신이 이렇게까지 공허할 수는 없었다. 뭔가 분명 속임수가 있는 거다! 르 샤우루는 그렇게 믿었다.

경완은 그의 의문에 대답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그건 바로 경험이야. 인간은 경험한 것을 토대로 정신을 형성하지.]

[거짓말! 여기에는 아무것도 없잖아! 이게 백치의 내면이지 어떻게 사람의 내면이냐!]

르 샤우루는 경완이 뭔가 수작을 부렸다고 생각했다.

경완이 상황을 살피고 입을 열었다.

[아. 거기는 좀 먼가? 가까이서 봐.]

르 샤우루와 일동은 어디론가 이동되는, 아니 뭔가 거대한 것이 다가오는 느낌을 받았다.

거대한 무언가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건 가까워지면서 점차 모습을 드러냈다. 그건 별빛 없는 밤하늘보다 더 시꺼멓고, 공허한 이곳을 가득 채울 만큼 거대했다.

모순적인 말이지만 그것 외에는 표현할 길이 없었다.

[이게 네 심상인가? 도대체 감정도, 기억도 아니고 대체 뭐지? 인간이 이런 심상을 가질 수 있다고?]

[아직도 좀 먼 모양이군. 더 가까이서 봐.]

[시, 싫다!]

경완의 제안을 르 샤우르는 본능적으로 거부했다. 여기서 저 심상에 더 가까이 가면 큰일 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경완이 담담하게 말했다.

[여기까지 온 이상 목적을 달성해야지? 들어온 이상 너희 마음대로 나갈 순 없어]

르 샤우르는 무언가 툭 자신의 등을 미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추락했다. 끝없이.

[으아아아아……!]

[안 돼애애애!]

[살려줘!]

비명을 지르는 건 르 샤우르만이 아니었다. 그를 매개로 연결된 무수히 다른 이들의 정신도 르 샤우루가 겪는 것을 똑같이 경험했다.

그러다가 일순간 일제히 비명을 지르는 것을 멈췄다. 왜냐면 추락하면서 저 시커먼 것의 모습이 점점 시야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장엄한 경험이었다. 한없이 어두운 것 같았던 그것은 다가갈수록 선명하게 빛났다. 그리고 다시 어두워지다가 다시 밝아졌다.

가까이, 깊이 들어갈수록, 그것은 밝거나 어두워지다가 곧 천연색으로 변했다.

그 색깔 하나하나가 모두 심상이었다. 농부, 노예, 군인, 상인, 사장, 사원, 귀족, 천민, 부자, 영웅, 악인, 마왕, 구원자, 온갖 인간의 생애가 거기에 있었다. 아니 그 생애가 심상이라는 형상으로 서로 얽혀 돌아가고 있었다.

어떤 경험은 굴욕을 불러일으켰지만, 어떤 기억이 그것을 위로하고, 어떤 기억은 가슴 따뜻한 행복감을 불러왔지만, 어떤 기억이 그 따스함을 일순간에 차갑게 식혀버렸다.

행복한 마음, 끔찍했던 기억, 찬란한 분노와 끝없는 절망. 그리고 그 외 수많은 기억과 감정들이 무수하게, 정말 무수하게 서로를 상쇄하고 있었다.

플러스 마이너스하여 제로.

하지만 그 과정은 너무나 복잡해서 1-1=0이라는 식으로 단순하게 말할 수 없었다. 미적분을 해서 0이 될 수도, 그보다 복잡한 수식의 결과로서 0이 나올 수도 있잖은가?

지금의 이경완이 있기까지의 모든 경험들이 바로 그러했다. 그 방대하고 거대하며, 찬란하면서도 추악한, 행복하면서도 불행하고, 절망하면서도 끝내 희망할 수밖에 없는.

르 샤우르의 정신은 그 장엄함에 휩쓸렸다. 작은 물줄기가 큰 강에 합류하는 것처럼, 질량이 터 큰 행성에 질량이 작은 행성이 빨려들어가는 것처럼, 본인의 생각을 버리고 넋을 놓았다.

[네 능력으로 구현된 내 내면세계는 이렇군.]

경완이 말했지만 르 샤우르는 대답하지 못했다. 대답하지 못한 건 그와 연결된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무한전생자의 방대한 기억과 심상에 르 샤우르는 물론이고 그와 패스로 연결된 이들의 자아 역시 휩쓸렸다.

경완은 그들의 삶과 기억이 자신의 기억으로 흘러들어오는 것을 느끼며, 그것을 재미없는 영화 보듯 관조한 후 본인의 덩어리에 합류되어 사라지는 것을 구경했다.

그 수가 당장 세기 귀찮을 정도로 많았지만, 경완 본인이 경험한 인생을 생각하면 커다란 호수에 잉크 한 병 던져 넣는 수준에 불과했다.

경완은 타인의 기억들이 빨려들어 가는 덩어리를 바라보았다.

저 거대한 덩어리야말로 그가 그간 무한한 삶을 반복하면서 몇 번이나 미쳤다가 제정신을 차리며 깨우친 ‘요령’이었다.

그것을 과거를 흘려보내는 법에 대한 깨달음, 혹은 무한전생자로서의 삶을 바라보는 마음가짐이었다.

말로는 다 설명하기 힘든, 직접 경험해보지 않으면 이해하기 힘든 사실을 깨우치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멀쩡(?)하게 살고 있진 못했을 것이다.

일일이 세기 힘들 정도로 타인의 기억이 들어와 머릿속이 복잡하고 기분이 요상하지만 그 역시 흘려냈다. 본인의 경험도 아니었기 때문에 자신과 분리하는 것도 경완이 직접 경험했던 기억에 비해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소득이 없진 않았다. 경완은 의식 저편으로 흘러 들어가는 르 샤우루의 기억 속에서 미연을 고칠 단서를 얻었다. 가치 조정 능력을 사용하는 요령과 감각을 깨우친 것이다.

그렇다. 이것이 그가 르 샤우루가 건 수작에 전혀 저항하지 않고 마음을 연 이유이자 무한전생자의 통찰이 경완에게 끝까지 참고 인내하라고 말했던 이유였다.

얻을 걸 얻은 그의 의식이 내면을 벗어나 현실로 돌아오자 르 샤우루가 추욱 늘어지며 무릎을 꿇었다.

[뭐, 뭐야?! 무슨 일이야?!]

그 모습에 나바하가 놀라 소리쳤다.

[르 샤우루! 정신 차려!]

그가 급히 르 샤우루를 흔들고 때리며 깨워보려고 했지만, 르 샤우루는 넋을 잃은 채 백치처럼 침을 질질 흘렸다.

[누구 없어!]

나바하는 오두막 주변을 포위한 이들을 불렀지만 그들도 대답이 없었다.

그는 굳은 얼굴로 경완을 보았다.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지?]

[간단히 말하자면 저들이 내 심연을 들여다보다가 견디지 못했달까?]

[그건 불가능해!]

르 샤우루의 능력은 이미 검증이 끝났다. 비록 활용 가능성이 그리 넓진 않지만 인간 세뇌라는 측면에서 세뇌된 다수를 이용하는 르 샤우루의 능력을 이겨낼 수 있는 이는 없었다.

아무리 내면이 괴물같은 인간이라도 다수의 정신을 이겨낼 순 없었다. 하물며 르 샤우루가 동원한 인원이 겨우 서넛도 아니고 말이다.

[어쩌라고.]

경완은 시큰둥했다. 무한전생자인 자신이 이 땅 위에 서 있는 것 자체가 이 세상의 입장에선 불가능한 일 아니던가?

그는 나바하를 향해 손을 뻗었다. 비록 미연을 치유할 단서는 얻었지만 그것이 나바하를 놔줄 이유가 되진 않았다. 나바하라면 요하네스에게 좋은 선물이 될 거다.

[안 돼!]

나바하는 검은 연기에 휩싸이며 비명을 질렀지만 그를 돕는 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 * *

[중국이라. 악연이 진득하군요.]

“중국인 모두를 죽이지 않는 이상 언젠간 일어날 일이 아니었을까요?”

경완은 요하네스의 말에 그렇게 대꾸했다. 하지만 정말로 중국인들 모두를 죽여 없앨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그나저나 선물은 잘 받았습니다.]

“이제 예언가를 쫓을 수 있겠죠?”

[쫓는 데 요긴한 단서를 얻을 수 있을 겁니다.]

요하네스의 말을 들은 경완은 생각했다. 예언가를 잡는 것으로 마무리가 되려나?

“예언가는 이번 작전이 실패할 거라는 걸 몰랐을까요?”

[알고 있었을 겁니다. 나바하가 말하길 예언가가 만류했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왜 강행했을까요?”

[명확하게 실패하는 예지를 못 한 모양입니다. 그렇다고 확실하게 성공하는 예지도 못 했고요. 제가 말했죠? 예지 능력자라고 해도 전지하지는 않다고요. 그도 인간입니다.]

“그렇군요.”

[그리고 점조직이잖아요? 조직에 대한 장악력이 확고하지 않다는 소리죠.]

회사처럼 하는 일을 전부 꼼꼼하게 보고받고 지시를 내릴 수가 없으니 중요한 강령만 지킨다면 나머지는 각자의 재량에 맞길 수밖에 없는 게 점조직의 단점이자 장점이었다.

그리고 나바하는 자신 있었다. 물리적으로 경완을 상대하기 힘들다면 정신적으로 그를 제압하면 된다고. 그리고 그러기 위한 최고의 패, 르 샤우루를 확보했다. 아무리 이경완이라도 다수의 정신적 압박을 감당할 순 없을 것이라고 보았다.

하지만 결과는 실패. 이경완에 대해 많은 자료를 확보하고 분석해서 충분히 공략할 수 있다고 믿었던 나바하는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한 가지 확실한 건 이경완이라는 인간에 대해 불가해를 느끼고 있을 것이다. 도대체 이경완이라는 자는 어떤 인간인가? 인간이 맞기는 한가?

[그나저나 중국에서 갑자기 2만여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백치가 되었다고 하더군요. 혹시 아시는 바가 있습니까?]

그에 경완은 르 샤우루의 능력에 관해서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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