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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전생 더 빌런-358화 (358/367)

무한전생-더 빌런 358화

33-업보

[호오. 과연.]

요하네스는 감탄했지만 그리 놀라지는 않는 듯했다.

“예전에도 그런 일이 있었나요?”

[아, 제가 말 안 했던가요? 과거 당신은 약 1억 2천만 명으로 이루어진 오버마인드 군체와 동반자살했습니다. 당신의 강인한 정신력이 오버마인드 군체와 결합하며 자살욕구를 전 개체에 전파했죠. 정말 숭고한 죽음이었습니다.]

“……그 상황이 될 때까지 총수님은 뭐하고요?”

[아, 그 시절 저는 많이 미숙했거든요. 변수 파악과 관리가 안 돼서 수습이 안 되는 상황이 벌어지고, 또 마음이 나약해서 제때 결단을 내리지 못했답니다.]

그때 망설이지 않고 파리에 CN 폭탄을 터뜨렸어야 하는데…… 라며 그는 멋쩍게 웃었다.

그리고 경완은 입을 다물었다. 아무리 무한전생자라고 해도 아포칼립스 세계를 연속으로 경험하진 않았다. 가혹한 삶을 반복한 적은 있지만, 종말을 맞이할 세상만을 반복한 요하네스의 고충이 어떠할 것이라 예상하는 것은 오만이었다.

[이제 남은 건 미연 씨를 치료하는 것이군요.]

“네, 맞습니다.”

[제가 최고의 치유능력자를 섭외해 놨습니다.]

“감사합니다.”

역시 능력 좋은 사람하고는 친하게 지내야 한다.

* * *

“오랜만이에요.”

“한영미?”

“스텔라로 개명한 지 언제인데.”

사이비 교단의 성녀였지만 지금은 능력은 뛰어나도 돈독 오른 걸로 유명한 치유능력자로 요하네스가 섭외했다는 치유능력자란 바로 그녀였다.

돈독이 올랐다지만 돈값은 한다는 평이 대부분이라 실력만큼은 믿을만했다. 특히 정신계 능력에 당해 트라우마 등의 후유증을 앓고 있는 이들에게도 통하는 치유능력을 가진 희귀한 능력자였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명품으로 치장한 그녀가 경완을 보며 말했다.

“당신 친구 제법 힘 좀 쓰나 봐요. 제 앞에 예약이 꽉 차 있는데.”

“그런가요? 잘 부탁합니다.”

경완이 별말없이 정중하게 부탁하자 한영미의 눈이 놀라서 동그래졌다. 그 천하의 이경완이 이렇게 정중하게 나올 줄은 그녀도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모양이다.

“……알았어요.”

그녀는 떨떠름한 말투로 고개를 끄덕이더니 할 일을 하러 갔다.

경완은 마리아 소장에게 물었다.

“잘 되겠죠?”

“한영미 씨의 능력은 트라우마 치료에 특화되어 있으니까요. 문제는 그 전 단계죠.”

르 샤우루가 걸어놓은 정신계 능력을 해제하는 건 간단했다. 중화영역이 있으니까.

하지만 그냥 없애 버리면 미연의 정신에 급격한 충격이 갈 수도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중화영역을 전개해 초능력을 날려버리기 전에 다시 미연의 가치 순위를 조정할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그럴 수 있는 건 르 샤루우의 모든 기억을 흡수한 이경완만이 가능했다.

그는 미연의 치료를 위해 마리아 소장에게 그러한 사실을 털어놨다.

그녀는 한 인간의 일생을 다 흡수한 경완의 언행이 멀쩡한 것을 신기하게 느꼈지만, 그녀의 흥미분야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

그보다 그녀의 관심을 끄는 것은 정신계 능력자가 아닌 이경완이 다른 정신계 능력자의 보조를 받아 르 샤우루의 능력을 재현해 보고자 하는 것이었다.

“가설대로라면 정신계 능력과 패스에 관한 이론이 상당 부분 수정되어야 할 거예요. 마음의 준비는 됐어요?”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목소리엔 즐거움이 가득했다.

경완은 고개를 끄덕이며 움직였다.

미연이 동면하고 있는 캡슐실. 이 캡슐은 한창 우주 개척을 위해 초능력을 응용시험하고 있던 나사의 시험용 동면 장치를 요하네스가 대여해온 물건으로, 임시비상조치의 핵심이었다.

그 캡슐 옆에 김혜림 박사와 한영미가 서 있었다.

“시작할까요?”

김혜림 박사의 물음에 경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김혜림 박사가 경완에게 패스를 연결했다.

경완이 입을 열었다.

“조금 기분이 이상하겠지만 저항하지 말고 제가 이끄는 감각대로 따라오세요.”

김혜림 박사의 정신계 능력은 미약했지만 오히려 그 부분이 장점이었다.

패스가 굵고 튼튼하게 연결되면 자칫 경완의 심연에 닿을 가능성이 높아지고, 그렇게 되면 그녀 역시 르 샤우루와 같은 백치가 될 위험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경완은 김혜림 박사의 정신을 그의 내면이 아닌 미연의 내면으로 향하도록 유도하는 매개자가 되었다. 그리고 김혜림은 텔레파시로 연결된 경완의 감각대로 정신계 초능력을 사용했다. 그러자 르 샤우루의 가치 조정 능력의 아주 기본적인 부분이 발현되었다.

그것은 바로 심상의 이미지화. 르 샤우루의 가치 조정 능력은 이를 바탕으로 성립한 것이다. 타인의 복잡한 내면을 자신이 이해가 가능하도록 색깔, 언어, 이미지 등으로 추상화하고 간략화하는 것이다.

마치 사람이 컴퓨터 프로그래밍이 용이하도록 기계어 대신 어셈블리어를 개발했듯이, 르 샤우루의 가치 조정 능력은 이해 가능한 수준으로 추상화되고 간략해진 심상을 분별하고 필요한 곳에 간섭함으로써 정신 조작이 가능한, 섬세하게 다루자면 한없이 섬세하게 다룰 수 있는 능력이었다.

다만 르 샤우루는 그 간섭을 다수라는 이름의 폭력으로 행했다. 그러나 경완과 김혜림은 그럴 수 없었다.

여기서 김혜림 박사의 전문성이 드러났다. 정신계 능력을 가진 초능력 심리학자겸 정신과 의사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르 샤우루의 우악스런 정신계 능력에 의해 헝클어져 있던 미연의 내면 심상을 하나하나 정리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 작업을 하면서 김혜림은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작업 없이 정신계 금제를 먼저 제거했다면 아마 큰 후유증은 물론 치료 기간도 길었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르 샤우루가 남긴 금제는 경완에게 통제권이 탈취당하고 김혜림 박사의 손에 들려 훌륭한 치료 도구가 되었다.

‘할 수 있는 건 다 했어요.’

텔레파시로 김혜림 박사의 생각이 전달되었다. 바로 멀쩡해지진 않고 회복에 시간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동시에.

경완은 할 수 있는 일은 여기까지임을 알고 천천히 능력을 거두었다.

미연의 내면에서 빠져나온 후에는 중화 영역으로 남은 초능력 잔재를 지우고 한영미가 치유능력을 전개했다.

그녀의 초능력은 자가회복 버프라고 불리는데 일시적으로 사람의 자가치유능력을 초인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려 준다. 이는 육체만 아니라 정신에도 영향을 주기 때문에 정신계 능력에 당한 후유증에도 매우 효과적이었다.

모든 과정이 끝난 후 경완은 미연이 정신을 차릴 때까지 그녀의 옆을 지켰고, 그녀는 약 두 시간 후 정신을 차렸다.

“오빠? 여긴 어디야?”

“연구소에 있는 의무실.”

“내가 왜 여기에 있는데?”

“그거 말해주기 전에 확인할 것이 있어. 혹시 요하네스 씨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

“어떻게 생각하긴?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너무 대단해서 죽이고 싶다는 생각 안 들어?”

“내가 왜?”

미연은 어이없다는 반응을 보이더니 이내 예전에 경완에게 요하네스를 죽여달라고 부탁했던 자신의 발언을 기억해 내고는 혼란에 빠졌다.

“내, 내가 왜 그랬지?”

그제야 경완은 안심하고 차분하게 상황을 설명했다. 이야기를 들은 미연은 놀라서 손으로 입을 가렸다.

“어머어머어머! 진짜?!”

경완은 놀라는 그녀를 살포시 끌어안아 어깨를 토닥였다. 겉으로는 태연한 척해도 속은 분명 많이 놀랐을 거다.

미연은 그를 마주 안으며 물었다.

“저기…… 그 요하네스 씨는 그거 알아?”

“알지.”

요하네스에 대한 미연의 살인청부 건에 대해서 경완은 말을 얼버무릴 수 있었지만, 일부러 그러지 않았다. 마주하기 쪽팔려도 끝이 좋은 기억은 다 추억이 되는 법이니까.

“어으…….”

미연이 경완의 어깨에 얼굴을 파묻고 자신의 흑역사를 추슬렀다. 경완은 그녀의 탓이 아니라며 옆에서 지원사격을 했다.

그녀가 감정을 추스르고 고개를 들었을 때 경완은 매우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여태까진 너무 과도한 간섭이라고 생각해서 안 그럴려고 했는데, 이제는 안 되겠다. 네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언제든 대응할 수 있는 수단을 갖춰야겠어.”

“어떤 건데?”

“사생활 침해 요소가 좀 있어.”

예를 들어 경완이 원하면 언제든 미연이 어디에 있는지, 어떤 상태인지 감지할 수 있는 센서 같은 걸 몸에 붙여둔다던가, 언제든 그가 원하면 미연의 옆으로 이동할 수 있는 이동형 웜홀 마커 같은 걸 붙여둔다던가.

전자는 지금의 초능력 공학과 경완의 능력으로도 가능했지만, 후자는 마리아 소장의 협력이 필요했다.

현재 워프 능력을 쓸 수 있는 초능력자는 경완 한 명뿐이었기 때문이고, 워프 마크를 설치하기 위해선 적어도 주변에 1톤 무게 정도의 고정된 질량이 필요했다. 미연에게 1톤 무게를 들고 다니라고 할 순 없잖은가?

경완의 말을 들은 미연은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겠어?”

“다시 납치되는 건 사양이야.”

“……미안해.”

경완은 사과했다. 결국 그녀가 노려진 건 자신 때문이었으니까. 미연은 괜찮다는 듯이 다시 그를 껴안았다.

“다 각오하고 사는 거야.”

“고마워.”

“내가 좋아한 업보지.”

어찌 보면 정말 대단하고, 어찌 보면 참 순진한 구석이 있는 여자였다. 어떻게 예전의 인연을 이렇게까지 가꾸고 발전시킬 생각을 했을까? 그녀라면 이경완보다 그녀를 더 행복하게 해줄 남자를 찾기는 어렵지 않았을 텐데 말이다.

경완은 미연의 손을 잡고 마리아 소장과 김혜림 박사, 그리고 한영미에게 거듭 감사의 말을 전하고 집으로 귀가했다.

가기 전에 마리아 소장이 노파심에 약속을 다시 한 번 주지시켰다.

“우리 웜홀 연구하기로 한 거 잊지 말기로 했죠?”

“물론이죠.”

웜홀의 원리에 대한 연구는 과학사를 바꿔놓을 정도로 임팩트 있는 연구였다. 물론 결과가 나오려면 시간이 걸리겠지만 웜홀 연구를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마리아는 전 세계 과학자들의 부러움을 살 것이 분명했다.

집으로 귀가한 미연은 회사에 연락하며 스케줄 조정하느라 잠시 바빴다. 갑작스레 동면캡슐 안에 잠들어 있는다고 폐를 끼친 업계 관계자들에게 사과하고 사정을 설명했다.

미연이 일상으로 복귀할 때 경완도 다시 IAMSR의 일을 시작했다. 하지만 그리 길게 하진 못했다. 요하네스가 어떤 일로 연락을 해왔기 때문이다.

[예언가를 잡는 작전이 실패했습니다.]

“예지 능력을 사용한 모양이죠?”

[그랬겠죠.]

“골치 아프네요.”

[원래 큰일을 할 땐 장애가 있는 법이죠. 그리고 예언가의 존재는 분명 골치 아프지만 생각을 달리하면 긍정적인 부분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요하네스와 IAMSR의 행보에 딴죽을 걸 인사들을 끌어모으는 유인등이 되어준다든가 말이다.

[그래서 이번에 여러 국가 정상들과 면담을 나누면서 IAMSR의 조직을 개편하기로 했습니다.]

“어떤…….”

[지금처럼 지역을 분할해서 활동하는 것에 더해서 전 세계를 아우르는 고등감찰기구를 설치하기로 했죠.]

“그리고 저는 거기로 전출하는 거겠죠?”

[그렇죠. 경완 씨의 능력을 동아시아 태평양 지역에만 묶어두는 건 낭비니까요. 그리고 기왕이면 고등감찰관 자리로 올라갈 텐데, 직위상 지역관리청장과 동급이랍니다.]

“그래요? 제가 사고치면 수습은 누가 하는데요?”

IAMSR은 유엔사무총장 직속기구였지만, 정작 유엔사무총장이 실질적으로 IASMR에 강력한 지배력을 행사하지는 못했다. 즉, 지역관리청장이 실질적으론 IASMR의 각 지역 책임자나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런데 경완에게 그런 책임자와 동급의 위치로 올라가라니.. 여태 윗사람에게 뒷수습을 떠맡겨온 경완에겐 별로 매력적으로 들리지 않는 소리였다.

그러자 요하네스가 반쯤은 장난끼로, 반쯤은 진지하게 이야기를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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