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전생-더 빌런 361화
34-에필로그-아버지가 되다
경완의 차분하고 조곤조곤한 설명 덕분인지 연완은 문제없이 숙제를 마칠 수 있었다.
‘선생님이 칭찬했어!’
학교에서 돌아온 연완이 밝게 웃자 미연의 마음도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
미연은 경완과 한 이불을 덮고 누워 있다가 입을 열었다.
“다음 연완이 생일선물로는 뭐가 좋을까?”
“다음 생일은 내년이야.”
경완이 대답했다.
며칠 전이 연완이 생일이었다. 친구들을 모아서 생일잔치를 할까 하다가 미연도 그렇고 워낙 유명인이라 가족들끼리 오붓한 시간을 보냈다.
“지금부터 준비해야 할 것 같으니까 그렇지.”
미연의 말에 경완의 표정이 오묘해졌다. 미연은 음흉한 표정을 지으며 자신의 다리로 남편의 허벅지를 쓸어내렸다.
“생일 선물로 둘째는 어때?”
“어…… 물어봤어?”
“동생 가지고 싶냐니까 그렇다고 하던데? 그리고 아들 하나 딸 하나는 있어야 구색이 맞춰지지 않겠어?”
“핑계는…….”
경완이 피식 웃으며 그녀의 잠옷 속으로 손을 집어넣으니 그녀가 교태를 부렸다.
부부생활이란 건 그런 거였다.
* * *
“하하. 아버지가 되니까 느낌이 어때요?”
요하네스의 물음에 경완은 그저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할 말은 많았지만 그 말을 다 하려면 며칠이 걸려도 부족할 것이다. 무한전생자로서 각오를 하고 가정을 꾸린 것이니까 말이다.
여기에 관한 에피소드가 하나 있는데, 그건 바로 미연에게 자신이 무한전생자라는 걸 고백한 일이었다. 그녀는 이해는 해도 납득은 하지 못한 듯했다. 경완이 무한전생자라는 것도 사실은 그런 종류의 초능력이라는 수준에서 받아들였다.
그리고 경완이 무한전생자라는 사실보다는, 그로 인해 파생되는 부차적인 문제가 그녀에겐 더 중요했던 모양이었다.
‘그래서 지금 돌싱이었다는 소리야?!’
어……. 일단 이번 생에는 솔로였지만, 정신적으로 보자면 돌싱은 맞았다.
사랑하고 애까지 가졌던 연인들이 분명 존재했기 때문이다.
아무튼, 그렇게 억울해하는 미연은 경완도 처음 봤기 때문에 달래주느라 진땀을 뺐다. 어떤 년이라니? 그건 알아서 뭐하게? 시간과 차원이라도 뛰어넘어서 머리끄덩이라도 붙잡으려고?
경완은 기억나지 않는다, 지금 너밖에 없다며 입에 침을 바르고 하얀 거짓말을 늘어놓아 간신히 그녀를 달래놓았다.
무한전생자로서 새빨간 거짓말인 건 알지만, 무한전생자의 모든 것 이해하고 받아줄 정도로 미연은 성녀 같진 않았다. 뭐, 그런 점이 매력 포인트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요하네스는 경완의 표정에 흐뭇하게 미소를 지었다가 다시 진지한 얼굴로 돌아왔다.
“IAMSR이 설립된 이후 시간이 꽤 많이 지났습니다.”
“이제 슬슬 다음 프로젝트를 시작하죠.”
“가디언 프로젝트 말이죠?”
예언가가 경완에게 붙잡혔을 당시에 한 말이 있었다. 두 사람이 없어지고 난 이후엔 어쩔 거냐고.
경완은 그의 다른 말은 개소리로 치부했어도, 그 말만큼은 그럴 수 없었다. 아버지가 되고 나니 자신이 없어도 초능력 재난을 수습하고 예방할 수 있는 체계가 필요함을 느꼈다.
하지만 이 체계라는 건 마법의 주문을 외우면 뿅하고 나타나는 것이 아니었다.
경완이 아무리 세계 최강의 초능력자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더라도 다른 사람들의 도움과 협조가 아니면 제대로 만들 수가 없었다. 부수는 건 쉬워도 쌓는 건 어렵듯이 말이다.
“포스트 이경완이라…… 매력적인 문구죠.”
“진짜요?”
아무튼 가디언 프로젝트를 위해선 인재를 모집할 필요가 있었고, 요하네스는 포스트 이경완이라는 표어를 내밀었다.
그리고 경완은 반문했다. 자신의 이름값이 높기는 하지만 거기엔 악명도 반쯤은, 솔직히 반 이상은 섞여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이탈리아 총리와 정재계에 입김 좀 세다는 상원의원의 멱살을 붙잡고 흔들다가 이탈리아 히어로랑 맞붙었던 일은 이경완은 빌런이라는 여론에 힘을 실어주기 충분했다.
요하네스가 웃으며 대답했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자유를 추구하거든요. 게다가 욕심은 그득 해서 자유를 추구한다고 공공의 적이 되고 싶어 하진 않고요. 부와 명예, 자유를 다 누리고 싶어하죠. 그런 이들에게 경완 씨의 포지션은 매우 이상적으로 보인답니다.”
“이 자리도 딱히 자유롭진 않은데.”
“짊어져야 하는 책임이 있긴 하니까요. 하지만 일국 총리의 멱살을 잡고서도 멀쩡한 경완 씨의 위치는 분명 대단하답니다.”
특히 초인 범죄에 대해 민감한 분위기에서 분명히 폭행인데도 법적 구속조차 없는 경완의 경우는 처벌을 안 했다고 봐도 무방했다.
“과연 쓸만한 인재가 있을까요?”
경완은 다른 우려를 표했다. 솔직히 회귀자인 요하네스가 끌어모은 인재가 적잖았다.
이에 그가 대답했다.
“아포칼립스 상황에 휩쓸려 버린, 저도 모르는 인재가 있을 수 있으니까요.”
그의 기억에 남은 인재란 그런 상황에서도 살아남아 두각을 보인, 운과 실력이 보장된 자들이었다. 당연히 요하네스가 냉큼 데려다가 잘 써먹고 있는 이들이기도 했다.
안 되는 이들도 소수 있기는 했지만, 위버멘쉬를 설립하고 지금의 위상을 이루기에는 충분했다.
아무튼 그래서 이번 프로젝트에서 요하네스가 기대하는 건 실력과 잠재력은 있지만 운이 없었던 인재를 찾아보는 것이다.
경완은 맞장구를 쳤다.
“인재라는 건 없다가도 있고, 있다가도 없는 거니까요.”
하지만 그가 기대하는 것은 요하네스와는 조금 달랐다. 단순히 포스트 이경완을 찾아 본인의 여유로운 은퇴 라이프를 도모하는 것뿐만 아니라, 인재 발굴 육성 체계 자체를 중요하게 여겼다.
인재에 의존하는 시스템은 반드시 붕괴한다.
근본적으로 훌륭한 인재는 시스템의 모순을 보완해 주는 귀중한 자원이지만, 그 자원이 영원하고 무한하진 않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문명의 발달이란 인간을 충분히 가용한 인재로 가공하는 체제의 발달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것은 다르게 표현하자면 인간을 언제든 대체 가능한 사회의 톱니바퀴로 만드는 과정이기도 했다.
경완은 요하네스와 추진하는 프로젝트에서 능히 초인이라고 불려도 될 만한 자들이 시스템에 얽매여 초인의 반열에서 인간으로 격하되는 걸 아랑곳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것을 조장하고 싶었다.
물론 반발할 인간들도 있겠지만, 경완은 장담했다. 초인이 될수록 인간의 행복에선 멀어질 수밖에 없다고.
뭐, 초인으로서의 행복을 추구하는 이도 있겠지만, 인간은 영웅까지는 용납해도 그 이상은 용납할 수 없었다. 영웅이 아닌 초인은 악당 아님 괴물로서 토벌 대상일 뿐이다.
“일단 1차 인원을 모집해보고 시스템을 점검해보죠.”
요하네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화를 마쳤다.
* * *
가디언 프로젝트는 그렇기 기밀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도 않았다. 위버멘쉬의 데이터베이스에서 가디언 프로젝트에 어울리는 이들에게 제안서를 보냈을 뿐.
하지만 딱히 보안사항은 없었고, 초인이라고 불리는 이들 중엔 SNS에 중독된 이들도 없진 않았기 때문에 세상이 알려지는 건 당연했다.
그리고 이런 관종 초인들은 팔로워 숫자도 상당했기 때문에 가디언 프로젝트라는 것이 알려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그러자 언론에서 바로 취재 요청이 들어왔다. 하지만 위버멘쉬는 알려진 것 외에는 더는 말해줄 수 없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시일이 되자 제안서를 수락한 초인들이 한국으로 모였다. 이들은 각국에서 최고의 히어로로 손꼽히는 이들도 있었고, 국가의 중요한 초능력 전력으로 분류된 이들도 있었다.
그런 그들이 한국까지 온 이유는 가디언 프로젝트가 한국에서 진행되기도 하고, 그것을 진행하는 사람의 이름값 때문이었다.
이경완.
요즘에는 좀 잠잠하지만, 한참 IAMSR이 악명을 떨칠 때 항상 그 선두에 서서 주먹을 휘둘러 저항세력을 뭉개온 인간, 그러고도 감옥 한 번 가지 않은 인간.
그럴 수 있었던 이유에는 그가 부린 횡포만큼이나 많은 인명을 구하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아프리카 해충 박멸 사업 사고, 프리덤 리그라고 불리는 초능력 우월주의 빌런 조직 박멸, 중동 전쟁 중재, 소말리아 반군 통합 및 소말리아 정부 정상화, 그리고 중(中)합중국 재통일까지.
그가 앞장섰던 일 중에 굵직하지 않은 일이 없었고, 현대 세계사의 분기점이 되지 않은 사건이 없었다.
그 과정에서 그는 위버멘쉬의 사냥개, 요하네스의 충견이라는 멸칭도 얻었지만, 사람들의 뇌리에 동시에 각인된 건 본인의 미칠 듯한 강함이었다.
혼자서 웬만한 군부대도 대적할 수 있으며, 국가의 지원을 받는 초인부대조차 농락하는 강함. 상대방은 그를 사살하는 것도 감수하고 달려드는데 죄다 때려눕힐 뿐 죽이지도 않았다.
그런 이가 가디언이라는 거창한 타이틀을 건 프로젝트를 진행한다니. 그것도 ‘포스트 이경완’을 육성하기 위해서.
이는 그의 강함을 선망하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달려들기 충분했으나, 안타깝게도 제안서를 수락한 이만 이곳 한국의 교육소에 입소할 수 있었다.
입소식에서 경완은 연단에 서서 도움을 준 이들에게 우선 감사부터 표했다.
[우선 교육소를 흔쾌히 빌려주신 위버멘쉬 코리아에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위버멘쉬 코리아의 지부장인 정호태는 경완의 시선에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였고, 경완은 말을 이었다. 이번 가디언 프로젝트의 취지에 관해서 설명하기 위해서였디.
[가디언 프로젝트는 IAMSR이나 위버멘쉬를 위한 인재 육성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인류 문명이 위기를 맞이했을 때 그것을 앞장서서 막아낼 사람들을 키워내기 위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 최고의 연구자와 연구기관들이 도움을 줄 예정입니다.]
여기서 잠시 말을 멈춘 그는 좌중을 둘러보며 말했다.
[즉, 더 강한 초인이 될 가능성을 제공하는 것이 가디언 프로젝트의 목적입니다. 제가 없더라도, 각종 초능력 재난으로부터 인류와 인류문명을 수호하기 위해서 말이죠.]
그는 그런 말을 하는 자신이 신기하게 느껴졌다. 이 세상에 처음 눈을 떴을 때만 해도 세상이 망하든 말든 상관이 없었는데 언제부터 세상을 지키겠다고 이렇게 아둥바둥 움직이게 된 걸까?
답은 명확했다. 사랑하는 연인과 자식을 위해서. 아니었다면 세상이 망하든 말든 신경 쓰지 않았을 것이다.
[이 프로그램이 여러분을 어느 정도 강하게 만들 수 있을지는 미지수입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조언을 드리자면 강해질 수 있느냐 없느냐 전에 여러분은 세상을 지켜야 할 이유를 먼저 찾아야 할 겁니다. 세상에 마음에 들지 않는 좆같은 새끼들이 넘쳐흘러도 지켜야 할 이유 말이죠.]
공식석상에 어울리지 않는 비속어가 튀어나오자 인상을 찌푸리는 이들이 있었다. 물론 경완의 입장에선 꼰대라고 분류되는 인물들이었기 때문에 전혀 개의치 않고 말을 이었다. 어차피 이경완을 다 알고 참석한 이들이라 그러려니 하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
[인류를 수호한다는 대의와 신념도 좋습니다. 개인적인 권력욕이나 이권에 대한 욕심도 괜찮습니다. 그것이 현재 인류 문명을 수호할 당위성을 제공한다면 말이죠. 여러분은 굳이 영웅이 될 필요도 없습니다. 그저 인류 문명을 위협할 재난을 예방하고 수습하기만 하면 됩니다. 세상이 불타는 꼴을 보고 싶은 악당만 되지 않으면 됩니다.]
경완의 말에 아까 인상을 찌푸린 인사들은 더욱 오만상을 찌푸렸다. 지금 초인들을 감동시켜 모범적인 초인으로 계도해도 모자란데 저런 소리나 내뱉다니!
경완은 그런 귀빈들의 반응을 눈으로 흘깃하더니 말을 이었다.
[중국의 유명한 누군가가 이런 말을 했죠.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 그 말이 진실이라면 일신에 그만한 무력을 가진 우리 초능력자들도 그만한 권력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닐까요? 이런 말하면 싫어할 사람들이 있긴 하지만, 이건 명백한 사실입니다. 세상은 폭력이란 기반 위에 서있으니까요.]
누군가는 폭력이 나쁘다고 말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폭력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다만 그걸 어떻게 휘두르냐에 따라 좋고 나쁨이 갈릴 뿐.
마약에 취해 칼을 휘두르는 미친놈을 향해 테이저건을 쏜 경찰의 폭력을 누가 나쁘다고 하는가?
그걸 보고 나쁘다고 주장하는 인간은 정신이상자, 혹은 반사회적 인격장애자, 혹은 체제의 전복을 노리는 회색분자라고 경완은 단언할 수 있었다.
[여러분이 힘을 갖춘 순간 여러분이 몸담고 있는 조직이나 국가는 여러분의 대우에 대해서 신경을 쓸 겁니다. 왜냐면 권력이 총구에서 나오는 건 사실이기 때문이죠. 여기에 적잖은 분들이 국가의 허락, 혹은 부탁을 받고 이 자리에 온 것도 마찬가집니다. 이 프로젝트가 국가가 보유하는 초능력 전력이라는 것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기 때문이죠.]
경완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러니 귀한 대우를 즐기는 것도 세상을 지킬 이유가 될 수 있습니다. 명심하세요. 가디언 프로젝트는 영웅을 키우지 않습니다. 세상을 위해 자신을 희생할 성자를 키우지도 않습니다. 다만 세상을 지킬 인간을 육성할 뿐입니다. 영웅이나 성자가 되고 싶다고요? 본인이 되고 싶다면 말리지 않겠습니다. 저희가 말리고 싶은 건 이 프로그램을 수료한 이들이 빌런이 되고자 하는 것뿐입니다.]
그럼 입소자 모두의 앞날이 밝길 바란다고 경완은 덕담을 남기고 연설을 끝냈다.
많은 논란을 남긴 연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