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한전생 더 빌런-363화 (362/367)

[363] 036. 에필로그-강의 앞물, 그리고 뒷물 (1)

인간이 존재하는 한 세상엔 온갖 사건 사고가 멈추는 일은 없었다. 왜냐면 사건과 사고란 결국 인간의 관점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인간의 관점에서 사고라고 할 수 있는 현장에 출동한 조선 레인저 레드, 연완은 급박했던 사고에서 인명 구조와 뒷수습을 하고는 한숨 돌리고 있었다.

“이봐, 레드. 수고했어.”

“아, 그린 선배.”

“이제 또 사진 찍으러 가야지.”

선배 그린의 말에 연완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놈의 히어로 엔터테이먼트는 그야말로 자본주의의 끝판왕이었다.

번쩍! 번쩍번쩍!

연신 플래쉬 라이트가 터질 때마다 연완은 동료들과 자세를 바꾸며 생각했다. 이 짓도 많이 익숙해졌다고 말이다.

“이봐, 레드! 집중해요!”

사진작가 피에르 장이 소리쳤다. 귀신 같은 인간. 순간 딴 생각하는 걸 어떻게 알았을까?

피에르 장이 소리치자 레드는 바로 정신을 차리고 화보 촬영에 집중했다. 조선 레인저라는 이 웃기지도 않는 이름의 히어로 전대의 화보의 퀄리티를 책임져 주는 피에르 장은 소속사에게 귀하게 모셔온 업계 탑급 사진작가였다. (놀랍게도 한국인이다)

괜히 그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가 일정에 지장이라도 생기면 곤란하다.

“헤헷! 수고하셨어요. 언니 오빠들!”

왜냐면 이 귀엽고 착한 매니저의 얼굴이 울상이 될 테니까.

“교희야, 고마워.”

뜨거운 조명 아래에서 고생한 조선 레인저는 매니저 교희가 건네준 시원한 음료수를 들이켰다. 아니, 초능력 공학으로 기술이 발전한다는데, 왜 아직 조명은 이리도 뜨겁단 말인가?

그건 다 탑급 사진작가의 탑급 꼰대 마인드 때문이었다. 자기 말로는 최신 기술로는 제대로 된 감성이 안 나온다나? 그런 소리를 하려면 사진 보정은 하지를 말든가.

“헤헤. 이제 팬미팅 하러 가야 해요.”

“……아…… 그렇구나.”

“왜 그리 죽상이야?”

블루가 팔꿈치로 옆구리를 찔렀다. 연완은 어색하게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아직 적응이 안 됐나 봐.”

“적응이 안 되기는 무슨. 팬들이 극성스러워서 그렇겠지.”

“하하. 그런가?”

연완은 어색하게 웃으며 내키지 않는 발걸음으로 팬미팅이 있을 소극장으로 향했다.

“워아이니!”

“레드!”

“!%!%”

팬미팅이 시작되자 요란스러움이 얼을 빼놓았다. 중국팬들의 극성이 시작된 것이다.

그렇다. 조선 레인저란 병맛 같은 이름으로 활동하게 된 이유는 모두 소속사가 중국 내 한류를 노렸기 때문이었다. 분명 이름만 들어서는 망할 것 같았는데, 성공한 이유엔 이연완의 지분이 적지 않았다.

중(中)합중국 민주주의 영웅의 아들.

이경완이 위대한 중화에 먹칠을 했다는 인식은 자유 민주주의의 단물을 빨아 먹은 중국인들에겐 통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 좋은 자유를 저들만 누리고 있던 공산당의 후계들에게 날을 세웠다.

물론 여전히 많은 잡음이 나고 있기는 하지만, 확실한 건 개인이 한류를 즐길지 말지 결정하는 윗대가리가 없다는 것이었고, 연완은 그럴 수 있는 자유를 제공한 위대한 공로자의 장자였다.

물론 그 혼자라면 한류의 주역이 되긴 힘들었겠지만, 능력 좋은 소속사는 이를 보완하기 위해서 아이돌처럼 팀을 만들었다. 예전 한류의 주역이었던 배우이자 히어로인 김정길은 조선 레인저의 블루를 맡았고, 일본 아줌마 팬들을 환장하게 만들었던 미중년 황호현은 그린, 지하 아이돌계에서 떠오르던 별인 아이나가 핑크, 한국 기획사에 있다가 개인적 사유로 잠시 아이돌의 꿈을 접었던 중국 소녀 왕지나가 옐로우를 맡았다.

한국인들은 이 무슨 촌스러운 히어로 전대 이름이냐며 탄식했지만 어쩌겠나? 중국에선 오히려 한국 느낌 난다고 먹히고 있는데. 고려 전대, 팀 고구려 등의 아류들이 쏟아져 나온 것이 조선 레인저의 위상을 증명했다. 그리고 그 수많은 아류 경쟁팀에도 불구하고 역시 선점 효과를 누린 조선 레인저의 인기와 수익은 비상 중이었다.

수많은 극성스러운 팬들을 모은 팬미팅이 끝나고 드디어 집에 갈 시간이 되었다. 원래 히어로란 그 명분상 비상대기 업무가 있지만, 제도에는 허점이 있고, 히어로 매니지먼트에선 그런 허점을 이용해 꼼수를 부렸다. 야간당직, 주말당직, 명절당직 같은 일을 중소 히어로 기획사와 별로 인지도 없는 히어로들에게 외주를 주는 것.

그렇다고 조선 레인저가 그런 꼼수를 부린다는 뜻은 아니었다. 그저 오늘 비상대기 업무가 없을 뿐이었다.

집으로 돌아온 연완은 피곤한 목소리로 인사했다.

“다녀왔습니다.”

“오늘도 수고했다.”

그윽한 커피향 너머로 아버지의 자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그 목소리에 웃음기가 서려 있는 걸 지울 순 없었다.

‘조선 레인저라고? 푸흡! 푸하하하하하!’

아버지는 연완이 히어로를 한다는 걸 말리지 않았다. 다만 조선 레인저를 한다는 소리에 박장대소를 하며 땅을 구를 뿐이었다.

어릴 적엔 귀여웠지만 지금은 웬수 같은 동생도 옆에서 같이 굴렀다.

‘끄하하하학! 나 죽어! 히햐학!’

아직도 그때를 생각하면 굴욕감에 몸이 부르르 떨렸다. 아, 요한 아저씨에게 왜 그때 히어로가 되고 싶다고 말해 가지고…….

“그래, 오늘은 어땠니?”

“오늘은 화재 사고에 출동했어요. 초능력 변질 가공 회사에서 일어난 사고라 평범한 물로는 진화가 안 됐거든요.”

“그랬구나. 그리고?”

“……팬미팅을 했죠.”

“그랬구나.”

“……웃고 싶으시면 웃으세요.”

“푸흡! 그래.”

경완은 아들의 심드렁한 말에 고개 숙여 키득거렸다. 한참을 키득거린 그는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으며 물었다.

“히어로 노릇은 조금 익숙해졌니?”

“아니요. 이건 숫제 연예인이나 마찬가지던데요.”

“그렇기는 해.”

경완은 고개를 끄덕였다. 히어로 엔터테이먼트는 히어로라는 이름의 뜻을 왜곡하는 원흉이었다. 영웅을 뜻하는 히어로는 이제 아이돌하고 구분이 어려워졌다.

물론 히어로의 본뜻을 수호하려는 이들이 있기는 하지만 역시 자본주의 사회라 그런지 별로 영향력이 없었다.

예외가 몇 명 있기는 하지만 그야말로 예외. 대세를 뒤바꿀 순 없었다. 그건 아마 아버지가 히어로가 된다고 해도 어쩔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었다.

“훈련은 하고 있고?”

“네.”

아무리 아이돌화 되었다고 해도 명색이 히어로였다. 실력이 없으면 금방 묻힐 뿐이었다. 왜냐? 약한 히어로 따위는 가오가 살지 않으니까.

그리고 연완은 어릴 때부터 경완의 세심한 교육 덕분인지, 아니면 혈통이 좋아서인지 또래 나이의 초능력자 중에 상위 10%에 들 정도의 능력자라고 할 수 있었다.

연완의 능력은 분석과 해체, 그리고 신체강화능력. 상대가 발현한 능력을 분석하고, 이를 해체해 무력화한 뒤, 강화한 자신의 신체로 때려눕히는 것이다.

“한번 보자.”

“……이 밤에요?”

“그럼. 사건 사고가 밤이라고 안 날 것 같니?”

본인의 입으로 사건 사고가 되어주겠다는 부친의 말에 연완은 긴장을 탔다. 어릴 때의 훈련이야 자상한 이론과 실습이 주였지만, 나중에 점차 나이가 들자 실전을 대비해야 하는 훈련이 필요하다며 대련을 섞기 시작했다.

그리고 연완은 사춘기를 겪지 못했다. 사춘기라 호르몬이 날뛰며 반항기를 부추길 때마다 부친은 허허 웃으며 ‘훈련이 부족하구나’라며 혼에 구멍이 날 정도로 대련을 빙자해 두들겨 팼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후엔 이렇게 일장연설을 했다.

‘이게 다 자립해야 할 시기의 성인들을 집에 붙들어 놓는 현대사회의 모순이니 네 탓이라고 여기지는 말아라.’

옛날 같았으면 벌써 혼인하고 가정을 이루어 책임감과 자립심을 확립할 시기에 집에 붙들어 놓고 이거 해라 저거 해라 하니 어찌 반항이 없겠냐며, 이게 다 사회의 일원으로서 최소한이라도 쌓아야 하는 지식과 교양이 너무나 많은 현대사회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사춘기를 억누른 폭력을 정당화하려는 논리의 일부분이자 질풍노도의 시기에 휩쓸리는 연완에게 내민 당근이었다.

그런 억누름은 뒤늦은 반항기의 씨앗이기도 하지만, 늦은 반항기가 피어날 때쯤 이연완은 충분히 철이 들 수밖에 없었다. 솔직히 사춘기 시절 자신의 고뇌 따위야 그 시절 아버지의 삶에 비하면 배부른 돼지의 투정에 불과했다.

그 시절 아버지는 학교폭력과 가난에 고통 받다가 결국 할아버지로부터 동반 자살, 아니, 살해 당할 뻔하지 않았던가? 그 뒤로 소년원과 교도소를 전전하던 시절은 또 어떻고?

아버지의 과거를 인터넷으로 알았을 때에는 다른 사람 이야기인 줄 알았다. 인지부조화가 오지게 와서 며칠 밥맛이 없을 정도였다. 물론 그것도 ‘먹기 싫으면 안 먹어도 된단다’라는 자상한 아버지의 말과 나흘간의 (반강제) 금식으로 깨달음을 얻었다. 먹고 사는 문제 앞에선 대부분의 고민은 의미가 없다는 걸.

“오거라.”

“넵!”

넓은 마당은 이미 아버지가 뿜어낸 검은 연기로 휩싸였다. 공격을 위한 것이 아니라 대련의 여파로 집에 파손이 생길 것을 막기 위한 짓이었다. 경완은 아들의 대련에서 신체강화와 중력 제어 말고는 여태 써본 적이 없었다.

한바탕 대련이 끝난 후 땀으로 범벅이 된 아들을 발치에 두고 경완은 쪼그려 앉았다.

“신체 역학에 대한 이해는 이제 완숙의 경지에 들었구나. 이제 남은 건 초월에 대한 이해를 늘려 나가는 걸로 하자.”

초월이란 경완이 마리아 여사와 정리한 ‘초능력자가 강해지는 단계’의 개념으로 주로 초능력과 물질 세계에 대한 간섭의 방법론과 그 이해와 관련된 개념이었다.

“끙. 그냥 초월부터 하면 안 돼요?”

“양팔저울을 기울게 하는 건 약간의 티끌로 충분하지.”

신체강화능력이 주요한 능력 중 하나인 연완이라 더욱 그러했다. 신체 역학에 관한 이해는 힘의 발출을 용이하게 하니까. 동급의 초능력자와 겨루면 승패는 그런 자잘한 이해도에서 갈린다.

“아 참. 분석과 해체도 제법 늘었더구나.”

“감사합니다.”

연완은 지친 얼굴로 웃었다. 분석과 해체로 부친의 중력 제어를 훼방 놓지 않았다면 접근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나도 좀 씻어야겠다.”

“이 야밤 중에 뭐 하는 거예요?”

“아, 어머니, 다녀왔습니다.”

연완은 일어나지도 못하고 누워서 인사했다. 예의가 아니었지만 전신이 너무 노곤해서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그런 아들의 모습에 이미연 여사의 목소리가 뾰족해졌다.

“왜 당신은 야밤에 애를 잡아요?!”

“야밤에 들어와서?”

“아니, 얘도 나름 성인이고 사회생활 하는데 야밤에 들어올 수도 있죠!”

“아니, 야밤에 들어온 걸 탓해서 그런 게 아니라 실력 점검,”

“시끄러워욧!”

부모님의 꽁냥꽁냥이 시작되었다. 끼어들기 싫었던 연완은 간신히 힘을 내서 상체를 일으켰다. 그걸 본 미연이 얼른 아들의 엉덩이를 토닥였다.

“우리 아들 얼른 씻고 푹 쉬렴.”

“네, 어머니.”

연완은 아버지를 남겨두고 피신했다.

다음 날 아침은 온 가족이 모여서 같이 아침 식사를 하는 날이었다.

“연완아~. 소희 깨워라~.”

“네~.”

어머니의 분부에 연완은 동생인 소희의 방문을 열고 들어갔다. 방문은 초능력으로 잠겨 있었지만 연완의 분석과 해체 능력에 여지없이 뚫리고 말았다.

“이게 사람 방이냐 돼지우리냐?”

“으…… 나가…….”

소희는 아침잠이 많았다. 저혈압이라 깨어나기 힘든 타입이라고 본인이 주장하지만 병원에서 받은 건강검진 결과는 지극히 정상이었다.

“어머니께서 깨우래.”

“5분만…….”

“그대로 전해줄까?”

“으씨…….”

소희는 부스럭거리며 일어났다. 부스스한 머리에 불구하고 모친을 닮은 미모가 빛이 나는 소녀가 마른세수를 하며 정신을 일깨웠다.

“일어났니?”

“네.”

“먹고 학교 가야지?”

소희는 식탁에 앉았다. 부친의 초능력이 식탁을 세팅했다. 남들이 보면 신기한 상황이지만 이미 이 집에선 일상이었다.

초능력 특화 고등학교에 다니는 소희는 집안 식구들 중에서 가장 먼저 집을 나서야 했다. 시대가 변했지만 오히려 배워야 하는 것들은 더욱 많아진 세상이라 어쩔 수 없었다. 특히 이과를 선택한 학생들은 고전적인 과학만이 아니라 초능력에 관해서도 배워야 하는 시대라 학업 부담이 더욱 커졌다.

그리고 소희가 바로 그 이과였다. 소희의 미모를 본 연완의 소속사가 그녀에게 아이돌이나 연예계를 제의했지만 그녀는 이미 정한 진로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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