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한전생 더 빌런-366화 (365/367)

[365] 037. 에필로그-사람은 고쳐쓰기 힘들다 (1)

한국의 만능엔터테이너이자 섹시 아이콘인 이미연이 처음 이경완과 사귄다고 했을 때 남자들은 탄식했다.

둘이 동거한다는 사실이 알려졌을 때에는 소주 매출이 12%나 급증했다는 카더라가 돌았다. 나중에 둘이 혼인신고하고 임신했다는 뉴스가 들렸을 땐 체념하고 그녀의 행복을 빌었다.

하지만 이경완은 정확히 그 반대를 겪었다. 처음에는 비난, 그다음엔 쌍욕, 그다음엔 폭행청부(물론 그 ‘이경완’이었기 때문에 농담에 그치고 말았다), 그리고 마지막엔 쥐여사는 남편으로 살라는 저주까지.

대중의 여론은 이 정도였지만, 높으신 분들의 생각은 조금 다른 모양이었다. 이유는 경완이 육아휴직계를 제출했기 때문이다.

“그 괴물도 아이가 생기니 태도가 달라지는 모양이군요.”

국회의원들이 같이 식사하며 이경완 부부의 아이를 언급했다.

이경완. 골치 아픈 존재였다.

국회의원들도 명백히 인지하고 있는 사실은, 그가 이미 언터처블의 지위를 확보했다는 것이다. 순전히 무력적인 부분만이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말이다.

교도소에서도 언터처블이었다는데 사회에서도 그렇다니…….

그런 그가 그 힘을 남용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 고맙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안심이 되는 것도 아니었다. 정치가는 사람을 믿어서는 안 되니까. 왜냐면 인간의 선의에 의존하는 정책은 항상 인간의 악의와 이기심에 의해 파탄으로 치달았기 때문이다.

“혹시 그 아이가 타협 창구가 되어줄지 모릅니다.”

“섣부르게 이상한 생각을 하는 건 아니죠?”

한 의원의 말에 다른 의원이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

혹여나 아이를 빌미로 협상한다는 식으로 생각을 하고 있다면 상종해선 안 된다. 당사자에겐 그게 협박, 혹은 자식을 인질로 잡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으니까.

게다가 상대는 그 이경완이지 않은가?

그저 같이 일하던 검사가 죽었다고, 아는 연구원이 납치되었다고 국회의사당에서, 중국에서 그 난리를 피웠던 괴물 같은 인간이었다. 그런 인간을 상대로 역린을 건드리는 모험을 할 순 없었다.

말을 꺼낸 의원이 화들짝 놀라 급히 손사래를 치며 말을 이었다.

“아니! 저를 뭐로 보고? 저는 국법을 수호할 의무가 있는 국회의원입니다!”

퍽이나. 국토 개발 계획에서 몇몇 건설 기획사 편의를 봐주고, 본인 아들이 관련 건설회사에 취업해서 거액의 성과금과 퇴직금을 받은 주제에?

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표리부동한 의원의 언행이 아니었다.

“그저 그 아이를 잘 가르쳐야 한다는 거죠.”

“좋은 학교에 들어가게 해서, 좋은 친구들을 사귀어야겠군요.”

물론 ‘좋은 친구’란 본인들의 혈연이거나 혹은 친한 인맥들의 자녀들을 칭했다.

다들 번듯하고 교육을 잘 받은 아이들이었으니, 어디 어중이떠중이의 열등감 그득한 흙수저들하고 비교를 하겠나?

그런 구상은 경완이 육아에 진심이라는 첩보를 받고 나서 더욱 구체화 되었다.

경완의 주거지 근처에 유치원부터 초중고를 에스컬레이터식으로 올라가는 특성화 학교를 설립해서 그 아들을 입학시키자는 것이다.

이경완이 대한민국 국력과 국익에 큰 영향을 끼치는 주요인물인 만큼 그 핏줄을 보호하는 것은 나라가 당연히 해줘야 한다는 명분도 충분히 설득력이 있었다.

그 주변에 새로운 학군이 생겨서 발생하는 부동산 개발 이득과 관련 이권에 대해선 대중이 알 필요는 없었다.

이런 일련의 과정과 이해관계들은 이경완에게 매우 호의적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의 기득권층 세력에 상당한 변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의 기득권층이라 함은 청산되지 못한 친일매국 잔재와 쿠데타 세력 및 정경유착으로 커온 재벌, 그리고 군사독재에 저항한 것으로 정치적 입지를 다진 민주화 세력으로 크게 구분할 수 있었다.

그런데 정청완 준장은 여기에 자칭 개혁 혁명, 타칭 개혁 쿠데타 세력이란 새로운 기득권을 끼워넣었다.

그는 쿠데타 후 정권을 쥔 기간 동안 재벌에게 양보를 얻어내고, 친일매국 잔재를 두들겨 패서 그들이 가진 이권을 토해내게 만들었으며, 마지막엔 민주화 세력의 정치적 나와바리를 갉아먹었다.

이 개혁 쿠데타 세력의 정체성은 개혁적 성향만 보면 좌파라고 할 수 있으나, 그 내용을 보면 오히려 민족주의적 우파와 닮아 있었기에 누군가는 그간 반공만 외치던 사이비 우파와 다르게 오직 민족과 국익만을 외치는 진짜 우파가 나타났다며 박수를 쳤다.

하지만 다른 관점에선 파시즘의 재림이자 법치 훼손의 상징이라며 손가락질받았다.

하지만 정청완 준장이 사망한 이후 시행되었던 총선에서 국민은 이 개혁 쿠데타 세력에 면죄부를 부여했다.

전체 의석수에서 약 3분의 1가량을 소위 정청완 준장파로 불리는 이들이 확보한 것이다. 그야말로 정청완 준장이 죽음을 각오하고 만들어낸 거대한 변수였다.

물론 이에 대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땅에 떨어졌다고 한탄하는 이들이 많았지만, 솔직히 군사 쿠데타 세력과 친일매국 세력의 후예가 잘 먹고 잘사는 대한민국의 현실에서 개혁 쿠데타 세력 한 바가지 끼얹어지는 게 뭐가 그리 큰 문제가 되겠느냐는 한 네티즌의 냉소가 밈이 될 뿐이었다.

어찌 되었든 대한민국은 굴러가긴 굴러가는 중이었으니까.

아무튼, 이 과정에서 정계는 크게 물갈이되었고, 이경완의 국회의사당 습격 사건을 선명하게 기억하는 이들도 많이 줄었다.

오히려 정청완 중장의 쿠데타를 방해하지 않고 얌전히 있어준 그에게 호의를 가진 정치인도 적지 않았다. 물론 대부분이 개혁 쿠데타 세력 정당인 대한개혁당 소속의 정치인이었고 그런 그들도 여론의 의식해 그런 말을 입밖으로 꺼내진 않았다.

사실 대한개혁당이 경완에게 기대하는 부분은 다른 곳에 있었다.

정치적 기반이 약한 그들은 포스트 정청완이 필요했고, 그 후보로 경완을 낙점했다.

정청완 준장 같은 카리스마와 회유력을 뽐내지 않아도 좋았다. 그저 아는 지인의 죽음에 국회의사당에 차량돌격을 할 정도의 의리, 중공이란 거대한 세력에도 두려움 없이 맞서는 강단, 그리고 끝내 중국공산당을 붕괴시킨 일신의 무력, 이 3가지를 가진 사람이 당원, 혹은 정당의 지지자가 되어주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되어줄 테니까.

그러기 위한 야심찬 기획이 바로 초능력 특성화 학교 계획이었다. 장수를 잡으려면 말을 잡아라. 부친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 그 자식의 마음을 얻자는 의도였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니까.

이는 초능력 계발, 훈련, 교육, 연구가 더욱 중요해질 미래와 맞물려 대한개혁당이 이 초능력 특성화 학교란 안건을 내미는데 그럴싸한 명분을 주었으니, 우파정당이나 좌파정당이나 그 필요성에 대해선 인정했다.

다만 그 후보지를 어디로 정할 것이냐로 입씨름을 벌였는데, 당연하게도 자기네들 지역구에 유치하려고 용을 썼다.

일단 유권자에게 홍보할 수 있는 치적임은 물론이거니와, 업자와 정치인, 공무원이 부동산 개발 이권을 나눠 먹는 건 대한민국의 오랜 전통(?)이었으니까.

언론에서도 관심을 가지고 보도하는 이슈였지만, 이내 그 이슈는 한 가지 이슈에 순식간에 종적을 감추고 대중들의 머릿속에서 잊혀질 수밖에 없었다.

“어…… 그, 그러니까 지금 가디언들에게 불체포특권을 부여해야 한다는 거요?”

“맞습니다, 대통령님.”

현재 대통령은 대한개혁당과 좌파정당이 손잡고 배출한 대통령이었다. 개혁 쿠데타 세력이라는 출신성분은 용납하기 힘들었지만, 그래도 일단 적폐 청산과 개혁이라는 대의에서는 이해관계가 일치했기 때문이었다.

새로 나타난 밉상보단 오랫동안 발목 잡아온 정적부터 조지고 싶은 것이 사람 마음 아니겠는가?

대통령 이한길은 경완의 말에 충격을 받은 듯 아연한 표정으로 멍하니 입을 벌렸다. 그가 경완과 독대를 한 건 앞으로 한국의 초능력자 육성에 관해서 조언을 듣기 위해서였는데 이런 이야기를 들을 줄은 몰랐다.

뭐? 불체포특권?

불체포특권이란 국민의 뜻을 대행하는 국회의원들의 신성한 권리 아닌가?

불체포특권이 없다면 어떻게 사법기관을 견제하고 삼권분립의 균형을 지킬 수 있겠냔 말이다. 그런데 그걸 다른 사람에게도 주라고? 국민의 선택도 받지 않은 이에게?

이한길 대통령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고 경완은 따졌다.

“아 왜 불체포특권을 안 주겠다는 건데요?”

“가디언에게 불체포특권까지 주다니! 그게 말이 된단 말이오?”

“말이 안 될 이유는 또 어딨어요?”

“아니, 그러니까…….”

가디언이란 존재는 S급 중 최강의 무력을 행사하는 존재라고 할 수 있었다.

가디언이 되었다는 말은 경완의 교육을 수료한 자들로서 대외비에 의하면 소국의 군대쯤 일신으로 상대할 수 있는 무력을 보유한 자라는 의미였다.

덕분에 국가가 지정하는 초능력 등급제의 위상이 2부, 3부 리그급으로 떨어졌지만, 어느 나라도 불만을 토해낼 수 없었다.

S급 초능력자라는 허명보단 가디언 프로젝트에 참여해 자국의 초능력자가 이경완의 전투 노하우를 습득하는 편이 훨씬 실질적인 이득이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국력의 척도가 된 가디언이었기 때문에 나라에선 자국의 가디언에게 많은 혜택을 베풀었다. 대가 없는 충성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대한민국도 마찬가지였지만, 그럴 수 있었던 배경에는 대한개혁당이 국회의석을 다수 차지하면서 ‘나라에 충성하는 것은 당연’이라는 꼰대 의원들을 상당히 줄었기 때문이다.

아니었다면 아직도 그런 기득권 꼰대들과 신흥 초능력 세력 사이에 알력 다툼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그런 꼰대들이 상당수 줄었을 뿐 없어진 것은 아니었다.

안 그래도 초능력으로 급변하는 정세 속에서 가진 이권과 영향력이 조금씩 줄어드는 것을 느끼고 있는 그들은 이미 히스테리 직전이었다. 그런데 가디언에게 불체포특권까지 부여한다? 그들이 어떻게 생각할진 뻔했다. 애국심도 제대로 있지도 않은 인간들에게 그런 특권까지 부여해야 해?

오직 자신들만 특별한 존재며 어리석은 대중을 이끌어야 하는 위치에 있다고 생각하는 자들이니 입에 거품 물고 반대할 사항이었다.

물론 자신들이 창출한 정권이 아니라는 점에서 더욱 발목을 물고 늘어질 것이고, 게다가 정청완 준장의 쿠데타를 막지도 않고 방관한 밉상, 이경완의 영향력을 커다랗게 확대하는 꼴이니 아마 자기네들을 밟고 지나가라고 드러누울 것이 뻔했다.

물론 기존 좌파도 반대할 것이다. 가디언이란 존재가 국가의 통제를 벗어나는 걸 원하지 않으니까.

즉, 설사 대한개혁당이 찬성한다고 해도 국회에서 통과하지 못할 사항이었다.

“그러니까 다른 당이 반대를 한다는 말이죠?”

“일단 대한개혁당부터 설득하는 것도 문제요.”

대한개혁당이 이경완에게 꽤나 호의적이라지만 모두가 그런 것도 아니고 자기네들 특권이 달린 문제에 당론이 일치할지도 알 수 없는 문제였다.

정치인도 결국엔 사람 아닌가? 이성과 합리만을 가진 정치인이란 마치 외눈박이 세상의 두눈박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한길 대통령은 은근히 운을 띄웠다.

“하지만 가장 설득하기 쉬운 곳이기도 하지. 당원으로 가입하겠다고 하면 경완 씨의 제안이 당론으로 정해질 가능성이 매우 높소.”

“그리고 다른 두 당이 격렬하게 반대하겠죠.”

경완이 담담한 어조로 대꾸했다. 다른 두 당의 입장에선 대한개혁당의 영향력 확대, 혹은 사설 무력 집단과의 유착 행위로 보일 것이다.

개혁 쿠데타의 악몽이 여전히 생생한 그들에겐 입에 거품을 물고서라도 무조건 반대를 외쳐야 하는 상황이었다. 권력은 총구, 아니 초능력에서 나오는 세상이니까.

경완이 말을 이었다.

“그럼 국회 연단에 설 기회를 주시죠. 제가 직접 그들을 설득할 테니까.”

“……가능하겠어요? 아니, 그러는 게 나라를 위한 일이 맞습니까?”

“가디언들에게 지금 불체포특권을 수여하는 게 좋겠습니까, 아니면 나중에 그들이 스스로 그러한 특권을 쟁취하는 편이 낫겠습니까? 참고로 후자가 되면 불체포특권 정도로 만족할지 우려가 되네요.”

그 말에 이한길 대통령은 침음성을 흘렸다. 지금 세대의 정치인들이야말로 권력은 총구, 아니 초능력에서 나온다는 말을 가장 절실하게 느낀 세대였기 때문에 경완의 말이 단순한 조언으로 들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말 후자가 된다면 그때는 단순히 불체포특권 정도가 아니라 면책 특권, 살인 면허 수준을 받지 않을까?

“알겠소. 하지만 돕겠다는 말은 하지 못하겠소.”

“그 정도만 해도 충분합니다.”

경완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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