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7] 037. 에필로그-사람은 고쳐쓰기 힘들다 (2)
경완의 국회 초청 연설이 계획되었다. 하지만 의도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선 충분한 사전 작업이 필요했다. 여기에 위버멘쉬 코리아와 요하네스의 도움이 들어간 건 당연했다. 아니, 도움이라기엔 애당초 경완과 작당모의한 세력이 그쪽이었다.
기획 기사로 ‘가디언의 특별 지위에 관한 법률’에 관해 논란을 일으키고, 댓글 공작으로 대중의 관심을 부추겼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상관없었다. 목적은 경완의 국회 초청 연설을 많은 이들이 알고 보도록 하는 것이었으니까.
대중의 시선이 모일수록 국회의원들의 운신은 힘들어지고, 반면에 경완의 운신은 편해지는 것도 나름 이점이었다.
그의 가장 큰 이점은 그의 영향력이 대중의 관심이나 지지가 필요하지 않다는 점에 있었으니까.
“반갑습니다. 이렇게 국회의사당에 방문하는 건 두 번째군요.”
경완의 인사말에 한쪽엔 불편해하고 한쪽은 불쾌해했다.
그가 처음 국회의사당에 들어왔을 때의 일이란 곧 국회의원 상해사건이었으니까. 국회의사당에서 국회의원의 허리에 칼침을 놓은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죄책감이 1도 없는 표정으로 언급하니 같은 국회의원으로서 심기가 불편할 수밖에.
“제가 이 자리에 선 이유는 다들 아실 겁니다. 바로 가디언의 특별 법적 지위에 관해 우리 의원님들이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제가 아는 정보를 솔직하게 말하기 위해서죠.”
그렇게 운을 뗀 경완은 준비해온 프린트를 보며 천천히 읽기 시작했다.
요하네스가 준비해 둔 연설문으로, 정치적 수사는 일절 제외하고, 가디언 특별 법적 지위란 무엇인가, 왜 필요한가를 이해하기 쉽도록 풀어내는 글이었다.
연설문을 들을 대상은 국회의원이 아니라 이 연설을 TV 등으로 보고 있을 대중이었으니까.
그러한 사실을 인지한 국회의원들은 더욱 불쾌해졌고 그중에는 언성을 높이며 경완의 연설을 방해한 이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경완의 염동력에 의해 입이 틀어 막혔다.
“아직 Q&A 시간 아니거든요. 의원님 부모님이 남 발언 시간에 함부로 끼어들라고 가르쳤어요? 본인 찍어준 유권자들 보기 안 부끄러워요? 아, 부끄럽진 않겠다. 그 의원에 그 지지자들일 테니까.”
그렇게 말하며 피식 웃는 경완의 얼굴은 순간 시청률 37%란 역대급 수치를 기록했다.
염동력에 입이 틀어막힌 국회의원은 굴욕감과 두려움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의 입을 막은 염동력이 콧구멍까지 올라오면 그대로 질식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제압은 경완이 준비한 연설문을 다 읽을 때까지 풀리지 않았고, 별다른 방해 없이 연설문을 다 읽을 수 있었다.
참을성 약한 한 국회의원이 먼저 나섰다가 체면을 구겨서 다른 국회의원들에게 본보기가 되어준 덕분이었다.
이러한 경완의 행동은 국민의 대표에게도 가차 없다는 사실을 모두에게 각인시킨 동시에 그가 중국 공산당의 목을 따버린 반(半)빌런이라는 사실을 국회에 있는 모두에게 상기시켰다.
“여기까지입니다. 그럼 질문하시죠.”
그제야 입이 막혔던 의원의 입을 자유롭게 되었지만 그는 더 이상 입을 열고 싶지 않은지 시뻘게진 얼굴로 입을 꾹 다물었다.
일단 분위기 파악부터 해야겠다는 국회의원으로서의 생존스킬이 발휘된 모양이었다.
대신 다른 의원이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연설자 본인이 주장하는 바는 가디언들에게 사실상 면책특권을 부여해야 한다는 말이 아닙니까?”
“면책특권이 아니라 불체포특권입니다만?”
“국회의원의 체포는 국회의 체포동의안이 필요하다지만 가디언들은 어떻습니까? 그들을 체포하려면 누구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겁니까?!”
“당연히 가디언들의 동의죠.”
“그게 말이 됩니까?!”
“말이 되죠. 가디언들은 국가의 존속과 인류문명 수호의 최전선에 있는 이들이니까 그 정도 권한은 있어야 제대로 일할 수 있습니다.”
“그런 권한이 없어도 얼마든지 활동할 수 있잖소?”
“과연 그럴까요?”
경완은 질문을 던진 의원의 뒤에 있는 의원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그 뒤에 있는 의원님은 완전 인싸시더라고요. 친한 친구 아들을 원하는 기업에 취업시켜 주기도 하고, 그 대가로 정기 감사를 무마해 주기도 하고, 여기저기 발이 넓어서 고위 공무원과 업자를 연결해 주는 브로커 일도 잘하시고. 로비스트로서 재능이 특출나시더라고요. 이런 분이 미국에 계셔야 하는데.”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요?!”
그 의원의 외침을 무시하고 경완은 이내 주변에 있는 다른 의원을 찍었다.
“저분 같은 경우에는 좀 위험한 줄타기를 하더라고요. 신약 개발 인허가를 두고 모 바이오 제약회사의 편의를 봐주는 건 물론, 국책전략 기술 보호법이라는 이름으로 위험한 연구를 장려하려고 하시더군요. IAMSR 고등감찰관이 눈 떡하니 뜨고 있는데 간도 크십니다. 고작 식약청 고위공직자랑 검찰 입만 단속하면 비밀이 지켜질 거라고 생각하셨어요?”
“모함이다! 모함이야!”
그 의원이 발광하든 말든 경완은 다른 의원을 지목했다. 어떤 의원은 생물보안 등급 및 감시에 관해 업체의 편의를 봐주면서 장외주식을 받았고, 어떤 의원은 초능력 특성화 사립학교 설립에 관해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이권을 챙겼다.
당연히 해당 의원들은 모함이라며 거품을 물었지만 경완은 시끄러운 그들의 입을 초능력으로 틀어막고는 말을 이었다.
“보시다시피 이런저런 영향력을 행사하는 분들이 많아요. 솔직히 꼴사나운 짓거리들을 다 치워버리고 싶지만 그런 짓거리를 여기 계신 의원들만 하는 것도 아니고, 그런 거 정리하는 게 제 업무나 책임도 아니거든요. 문제는 그런 꼴사나운 짓거리들이 IAMSR의 업무를 방해한다는 게 문제입니다. 괜히 털릴까 봐 정보를 감추고 정보수집을 방해하고. IAMSR의 업무 중 가장 중요한 일이 적시에 정보를 얻는 일인데 이런 쓸데없는 사유로 골든타임을 놓치게 하면 과연 그 책임을 누구에게 물어야할까요? 제 잇속 차리는 것에 눈이 멀어서 공공의 위기를 아무렇지 않게 방기한 여러분들? 물론 법적으로 책임은 없다고 하지만 세상이 법만으로 돌아가는 건 아니거든요.”
경완의 말은 경고였다.
아무리 불체포특권을 가진 국회의원이라고 해도 본인의 과실로 사고가 빚어진다면 반드시 그 책임을 묻겠다고 말이다.
그간 그가 보여준 행실 때문에 그러한 경고는 위협적이었다. 초능력도 없는 시절에도 국회에서 깽판을 쳤던 그인데 지금은 오죽할까?
잠시 침묵이 돌다가 한 의원이 이의를 제기했다. 안 그래도 단속과 견제가 어려운 가디언에게 불체포특권을 주면 사실상 면책 특권을 부여하는 거나 마찬가지 아니냐고 말이다.
“지금 불체포특권을 주는 게 나중에 면책특권을 주는 것보다 낫죠.”
“……그게 무슨 말입니까?”
“가디언의 활동엔 그만한 권한이 쥐어져야 합니다. 그리고 불체포특권은 현행범까지 부여되는 특권은 아니잖아요?”
“가디언이 범죄를 저지른다는 말입니까?”
“가디언도 사람이에요. 실수할 수도 있고 자기감정 조절 못 할 수도 있죠. 밉상이 자기 눈앞에서 도발이라도 하면 욱해서 꿀밤 한 대 칠 수도 있고요.”
“아니 그럼 지금 그렇게 위험한 인간들을 육성하고 있다는 말입니까?!”
“굳이 가디언을 육성하지 않아도 가디언급 초능력자는 언젠가는 나타나게 되어 있어요. 문제는 그 사람이 사회에 대해 얼마나 반감을 가지고 있느냐지. 가디언은 반사회적 강자보다 친사회적 강자를 최대한 많이 확보하기 위해 필수불가결 제도입니다.”
“웃기지 마!”
“그렇게 감정적으로 말하지 말고 논리를 세워서 반박을 해보세요. 그냥 통제 안 되는 인간이 마음에 안 든다고요.”
경완의 말은 높으신 분들, 소위 스스로에게 권력이 있다고 믿는 이들의 심기를 긁기에 충분했다.
국회 내부에 경완에 대한 적대적 분위기가 더욱 고조되는 와중에 다른 의원이 질문했다.
“면책특권 운운했는데, 이번 불체포특권은 결국 면책특권으로 가는 일종의 지렛대, 혹은 징검다리 아닙니까?”
“음. 의원님이 현실을 잘 모르는 것 같은데……. 사실 현재 가디언이 범죄를 저지른다고 국가의 힘으로 잡을 수 있어요?”
“왜 못합니까?”
“신기하네? 질문은 제가 했는데 말이죠. 아무튼 의원님은 할 수 있다는 입장이시네요.”
“그렇죠.”
“그럼 지금 제가 여기서 의원님 한번 전치 12주로 만들어보죠. 그럼 저를 체포하러 공권력이 투입되겠죠? 그때 과연 제가 잡히는지 한 번 볼까요?”
“…….”
“그러게 그렇게 금방 찌발릴 소리를 생각 없이 내뱉는 거 아닙니다. 가디언들은요, 제가 가진 초능력 운용 능력의 노하우만이 아니라 초능력을 단련하는 기본적인 원리들을 박사 수준으로 익히고 훈련한 이들이에요. 객관적으로 따지자면 그들 다섯 명이 모이면 저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이게 무슨 말이냐? 대한민국 정도의 군사능력을 지니지 않은 나라는 그들 한 명만 투입해도 제압할 수 있다는 소리예요.”
괜히 미국이 백악관 옆에 가디언 전용 주거시설을 지은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가디언이라면 언제든지 그 시설에서 갖가지 혜택을 받으며 시설을 이용할 수 있었다.
백악관에 초능력 테러가 벌어지면 가디언이 즉시 대응할 수 있도록 말이다.
“냉정하게 현실을 보세요. 가디언들은 자신의 눈앞에 놓인 불합리를 약하다고 못 본 척 넘어가는 소시민들이 아닙니다. 물론 의원님들이 우려하는 바가 뭔진 알아요. 힘을 가진 이들이 특권을 가지면 횡포를 부리지 않을까라는 거겠죠. 하지만 제가 말했잖아요. 가디언도 사람이라고요.”
보통 사람은 상상도 못 할 정도로 강한 이들임은 분명하지만 예수같이 전 인류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내밀진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악마같이 세상을 부수고 싶어하지도 않았다.
그들이 원하는 건 대부분의 사람들이 원하는 것과 같았다. 행복, 삶의 보람, 신념, 그런 것들.
“불체포특권의 진정한 의미는 그들에게 법치를 존중할 명분을 준다는 겁니다.”
그 이후의 내용은 대통령에게 한 말과 대동소이했다.
표현은 좀 더 순화되었지만, 실질적인 무력을 가진 이들이 법치를 존중하지 않겠다고 결심했을 때, 그때 그들이 쟁취할 것은 불체포특권 이상이 될 것은 분명하다는 것.
“의원 여러분. 욕심 부리지 마세요. 가디언들을 제 입맛대로 움직이고 싶어하지도 말고요. 그저 그들이 인류와 세계를 위해 헌신할 수 있도록 방해하지 말아주십시오. 그게 답니다.”
국회 연단에서 경완의 발언은 거기까지였다.
그의 국회 연설 내용이 일파만파 논란을 부추긴 건 당연했다.
한국사람들은 특권에 대해서 굉장히 민감한 성향이 있었다. 본인의 특권을 챙기는 것에만 민감한 것이 아니라 타인의 특권을 챙기는 것에도 민감했다.
가령 국회의원의 불체포특권을 예를 들자면 그것이 삼권분립이라는 민주주의 구조를 지탱하기 위한 제도라는 이해보다는 어? 국해의원 새끼들은 잘못을 해도 안 잡혀가네? 어? 열받네?라는 1차원적인 사고를 하는 인간들이 적지 않았다.
나한테도 없는 특권이 왜 저런 세금 도둑들한테 있는건데?라며 분기에 차서 게시판에 글을 올리며 자신과 생각이 같은 사람들을 찾으려고 노력하다가 동의하는 댓글이 달리면 역시 내 생각이 옳다고 정의감에 찬 아드레날린이 치솟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때쯤 되면 불체포특권이 왜 있는지 지적하는 댓글 따윈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그리고 그러한 원리는 이번 가디언 불체포특권 부여에 관한 논의에도 똑같이 적용되었다.
가디언이 뭔데? 뭐가 그리 잘났기에 불체포특권까지 부여하는데?라는 정서가 군중심리를 선점하고 반대 시위가 열렸다.
하지만 개가 짖어도 열차는 간다. 이 나라의 높으신 분들이 ‘국익을 위해서’ 대중의 요구를 무시한 것이 어디 한두 번인가?
그렇다고 해도 유권자의 표는 표이기 때문에 적당히 면피할 타협안을 내놓았으니, 그것이 바로 가디언 법적지위 특별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