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8] 037. 에필로그-사람은 고쳐쓰기 힘들다 (3)
‘국가 공인 가디언은 임기동안 위원회의 동의를 받지 않는 이상 체포되지 아니한다.’
위원회란 국회의원과 법원, 그리고 가디언들로 구성된, 체포동의안 논의를 위한 임시 조직을 뜻했다.
이는 적어도 가디언의 불체포특권과 국회의원의 불체포특권을 최소한 비슷하게나마 만들기 위해서였다.
국회의원의 불체포특권이란 결국엔 국회 회기, 그리고 현행범이 아닐 때 적용되는 권리였으니, 가디언에게 줄 특권에 그와 비슷한 기간적 한계를 둘 필요성이 있었다.
적어도 그 부분에서 국회의원들의 억울함? 상대적 박탈감이 줄어야 법안 통과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높아질 테니까. 뭐, 현행범이라는 단서는 말할 것도 없었다.
‘국가 공인’이라는 문구가 바로 그래서 붙은 것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국가가 공인하지 않은 가디언에겐 불체포특권을 주지 않겠다는 말이었다.
당연하게도 이러한 공인에는 기간이 정해져 있었고, 기간이 지나면 다시 공인을 받아야 특권이 유지되었다.
요하네스와 경완은 어떻게든 가디언에게 영향력을 행사해보려는 국회의원들의 앙큼한 속내를 짐작했지만, 딴죽 걸지 않고 넘어갔다.
적어도 그 정도 당근은 있어야 국회의원들이 의욕적으로 법안을 추진하지 않겠나?
그리고 가디언들이 고작 그 정도 단서 조항에 휘둘릴 정도로 만만한 자들이 아니었다. 다들 제 나라, 제 영역에서 한 지위, 한 카리스마 하는 인간들인 것이다.
[이것으로 가디언 법적지위 특별법이 가결되었습니다.]
땅땅땅.
국회의원들은 법안의 가결에 기뻐하지도, 그렇다고 언성을 높이며 항의하지도 않았다.
그저 가라앉은 기분으로 앉아 있었다. 왜냐면 이번 법안은 반골인 몇 명의 반대를 제외하면 당론으로 정해져서 통과한 투표였기 때문이다. 그것도 야당 여당 할 것 없이 말이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할까?
대체적으로 야당이 여당 발목을 잡고, 여당이 야당 발목을 잡는 것이야말로 조선 시대 붕당정치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한국의 전통적인 민주주의 아니겠는가?
모두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지만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대충은 알고 있었다.
법안이 통과되기 전 당의 주요인사와 영향력을 행사할 만한 유력자에게 경완이 직접 방문했기 때문이었다.
야당의 당수인 오지걸은 눈을 감고 그를 만났던 날을 떠올렸다.
“이게 무슨 횡포요?!”
“횡포라니요? 전 분명 직접 찾아뵙겠다고 전화드린 걸로 아는데요?”
“난 분명히 거절하지 않았소?!”
“너무 강하게 거절하시기에 전 반어법인 줄 알았죠.”
“…….”
뭐 이런 개소리를? 그래서 야밤 중에 야당당수의 자택에 몰래 침입했다는 말인가?
하지만 개소리는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아드님이 미국에 계시죠?”
“협박하는 거요?”
“아니, 호의를 베푸는 겁니다. 보니까 아드님이 지병이 있으신지 약을 하고 계시더라고요.”
“내 아들에게 지병이 있다고?”
금시초문이라 오지걸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했고 경완은 말을 이었다.
“부자들이 자주 걸리는 병이 있거든요. 인생 쉬워 재미없어 병, 심심해 병, 권태병, 미국에서 흔히 말하는 어플루엔자라는 거죠.”
“허.”
어이없어하는 오지걸에게 경완은 말을 이었다.
“그런 병에 약이랍시고 쓰는 게 뽕이나 엑스터시인데…….”
“모함이요!”
“아, 전 아드님이 마약쟁이인 걸 공표하겠다고 협박하는 게 아니라니까요. 전 그냥 그런 아드님에게 진정한 치료약을 주고 싶다는 겁니다.”
“진정한 치료약?”
“인생이 재미없고 심심하고 허무하고. 납득이 힘드시겠지만 전 누구보다 그 증상에 대한 원인과 해결책을 잘 알고 있거든요.”
무한전생자의 말이니 믿어라.
경완은 말을 이었다.
“다행히 아드님은 갱생이 가능하더라고요. 사고는 치는데 본인 몸만 상하게 하고 상대를 다치게 하는 일은 없었달까? 정말 다행이다 싶더라고요. 덕분에 이렇게 야당의 당수님하고 밝고 건설적인 이야기를 할 수 있으니까요.”
“……원하는 게 가디언 법안의 통과지? 알았네. 내가 수용할 테니 내 아들은 건들지 말게.”
“아니, 아드님을 두고 협박하러 온 게 아니라니까요. 서로 윈윈할 수 있는 협상을 하러 온 겁니다. 솔직히 아드님이 마약 빨고 다니는 꼴이 보기 좋아요?”
오지걸은 생각했다. 상대가 이경완이 아니라 젊은 검사 정도만 되었어도 젊었을 땐 다 그러고 노는 거라며 허세를 부렸을 텐데.
“아드님을 제게 맡겨주시죠. 아드님을 제대로 사람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어떻게 말이오?”
“남자가 남자가 되는 방법은 하나뿐입니다. 역경과 시련이죠.”
“거부할 순 있소?”
“흐음. 이 자리에서 협상이 깨진다고 제가 순순히 수긍하고 물러날 사람일까요?”
아니지. 그럴 사람이라면 이렇게 몰래 밤에 무단침입할 리가 없다.
그래서 이어진 경완의 물음에 오지걸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딜?”
오지걸이 조금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런 식의 방문을 받은 이가 본인 혼자만은 아니었다. 여당의 당수도 마찬가지였다.
뭐 대통령 같은 경우에는 야밤에 자택 침입까지는 아니라더라도 독대해서 그런 요구를 꺼냈다나? 이것이 거의 만장일치나 다름없이 가디언 특별법이 통과된 배경이었다.
오지걸은 야당의 당수로서 그런 굴욕을 혼자만 겪은 게 아니라는 사실에 오히려 위안을 얻었다.
◈ ◈ ◈
대한민국에서 가디언에게 불체포특권을 부여하는 법안은 사실 외교적으로 상당히 부담되는 일이었다.
일단 미국이나 일본이 비공식적인 라인으로 가디언 법적지위 특별법에 부정적인 의견을 보내왔기 때문이었다.
명백한 내정간섭이었지만 그런 의견을 보낼 수밖에 없는 건 가디언 특별법이 어느 한 나라에서 도입되면 자국에서도 도입해야 하냐라는 논란이 일고 자국 가디언의 눈치가 보이기 때문이었다.
그냥 자국 여론이 그러한 변화에 긍정적이면 괜찮겠지만, 특권이나 특혜를 특정 부류에게 부여하는 일은 반대와 불만을 일으키는 건 당연했으며, 초능력자라는 신진 귀족층을 견제하고 싶은 이들은 보수 진보 가릴 것 없이 포진해 있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한국에서 이런 미국과 일본의 비공식적 반대에도 불구하고 결국 가디언 특별법이 통과되었으니, 그 배경에는 역시나 요하네스가 있었다. 아무리 경완이 사적인 방문으로 정치가들을 설득(?)했다 하더라도 미국이 강하게 반발하면 경완에게 이를 핑계로 대며 법안을 질질 끌거나 무마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요하네스는 그동안 맺은 인맥을 십분 발휘하여 한국의 내정에 간섭하려는 시도들이 일정선을 넘지 못하도록 주의를 주었다. 한국에 비공식적으로 경고를 하는 것까지는 괜찮지만, 그 이상을 넘으면 역풍이 불 것이라고 말이다.
물론 경고를 했고, 상대방이 그 경고를 무시했으면 당연히 그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해줘야 하는 것이 권력자들의 불문율이지만, 막상 그렇게 하기가 쉽지 않았다.
“Hello. Mr. Michael”
감히 미국의 의사를 무시한 한국에 어떻게든 불이익을 줘야 한다고 주장하던 마이클 의장은 낯선 이, 아니 직접 만나본 적은 없지만 너무나 유명해서 잘 아는 이의 방문을 받았다.
그렇다. 그도 야당 당수 오지걸과 별반 다르지 않게 이경완이란 작자의 무도함을 마주하고 협박처럼 들리는 협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오지걸은 아들이 그 빌미였지만, 마이클은 조세회피처에 있는 페이퍼 컴퍼니의 주식이 빌미였다.
[미국은 이 일을 기억할 것이오.]
[오호! 본인과 국가를 동일시하다니. 미국에 있는 제 친구들이 들으면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하네요.]
[…….]
마이클은 경완의 말에 입을 다물었다. 여기서 더 꼬투리를 잡히긴 싫었다.
[그러니까 왜 남의 나라 내정에 간섭합니까? 같은 미국인으로서 쪽팔려서리…….]
[…….]
경완에겐 미국 시민권이 있었다. 아마 투표권도 있을걸?
아무튼, 그의 방문을 받은 건 마이클 의장만은 아니었다. 민주당, 공화당에서 대중적 인지도는 높지 않지만 정치적으로 입김이 세면서 한국의 가디언 특별법에 어깃장을 놓으려고 했던 이들이 경완의 방문이나 연락을 받았다.
마이클 의장만 야간에 무단으로 침입당했지만, 그렇다고 다른 이들이 압박감을 못 느끼는 건 아니었다. 총기가 자유화된 국가이니만큼 주먹은 가깝고 법은 멀다는 걸 누구보다 피부로 느끼는 미국인 아니겠는가?
모두가 그런 건 아니지만 감히 상국의 의견을 개무시한 한국의 건방짐에 불쾌감을 품은 이들의 불쾌감은 경완의 설득에 누그러지거나 억눌려서 표출될 기회를 상실해야 했다.
일을 다 마친 경완은 요하네스에게 우려를 표했다.
“이거 괜히 벌통을 들쑤신 거 아닌가 싶네요.”
“그래야 피아 식별을 확실하게 하죠. 이제 패권국인 미국에도 확실히 쐐기를 박을 때가 됐습니다.”
“쉽지 않을 텐데요.”
미국 정계에 경완의 위험성을 상기시킨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미국의 정치는 사실 민주주의가 아니라 금권주의니까. 슈퍼팩은 미국의 정치가 이미 금권주의적 성격을 띄고 있다는 사실을 상징하는 제도였고, 당연히 거대한 자본의 입김이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미국의 거대 자본하면 유대자본 아니겠는가?
“걱정 마세요. 그들과 적대하려는 게 아니까요.”
고작 가디언의 특권은 그들과 적대할 정도로 큰 떡밥은 아니었다.
물론 자본주의 패권을 움켜쥔 그들이 초능력주의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에 불안을 표할 수는 있지만, 요하네스의 설명에 의하면 그건 아직 저들이 잘 모르기 때문이란다.
아무리 초능력주의가 미래의 패러다임으로 등장한다고 하더라도 결코 자본주의를 완전히 밀어낼 수 없다고 말이다.
왜냐면 아무리 강한 초능력자도 결국엔 사람으로서의 욕망을 가지고 있고, 사람의 욕망을 가장 잘 충족하는 체제는 아직까지 자본주의체제보다 나은 것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런 요하네스의 판단이 잘 맞아떨어졌는지, 경완의 미국 방문이 끝나자 여러 긍정적인 소식이 들려왔다.
위버멘쉬와 곡물 메이저 카길의 연구 협력, 스타벅스의 히어로 특별 프로모션 등 유대인 기업과 초능력 신흥세력이 손을 잡는 모습이 말이다.
또한 요하네스가 따로 연락해 말하기를 금융권에 있는 유대인들과도 가디언 체제에 관해 깊은 논의를 나누었다고 한다.
확실히 최정상급 초능력자를 자본주의체제 안으로 끌어들이려면 그만큼의 이점을 제공할 수밖에 없다는 것에 동의했다고.
그것으로 미국의 간섭은 마무리되었고, 가디언 특별법을 미국에서도 논의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남은 건 요하네스의 몫이랄까?
일본 같은 경우에는 좀 달랐다. 그냥 방치한 것이다.
“왜? 일본도 똑같이 하면 되는 거 아냐?”
미연은 잠자리에서 경완의 이야기를 듣다가 물었다.
“음……. 미국에 이어 일본까지 침묵하는 건 너무 부자연스럽다나?”
“요하네스 씨가 그래?”
경완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리고 한국과 일본 사이에 갈등이 있는 건 당연한 일이래.”
그 당연한 일을 막으면 골치 아픈 부작용이 따라온다는 게 요하네스의 경험담이었다.
하지만 미연의 감상은 달랐다.
“그 아저씨 악취미네.”
“그런가?”
“완전 음모론에 나오는 흑막이잖아?”
“그렇기는 하지.”
“그리고 오빠는 그 흑막의 오른팔이고.”
“으음. 인정.”
정확히 말하자면 동지지만 오른팔처럼 움직이고 있는 건 맞았다.
“이거 알려지면 돌 맞는 거 아닐까?”
“아마 그렇겠지?”
좋은 결과를 낸다고 해도 과정이 정정당당하지 않으면 대중의 인정이나 존경을 받기 어려운 법이었다. 하지만 경완이 원하는 건 개인의 명예 따위가 아니니 감수할 만했다.
“아참. 그 오종석인가 하는 사람은 어떻게 됐어?”
“종종 방문해서 확인하고 있지.”
오지걸의 아들인 오종석은 오지걸과 경완 사이에 합의가 이루어지자 얼마 지나지 않아서 미국 위버멘쉬의 사람들에 의해 납치당해 강제로 부트캠프에 입소했다.
초능력 인력 공급업체나 마찬가지인 위버멘쉬에는 여러 훈련소가 있었고, 그중엔 PMC에 공급할 용병 훈련소가 있었는데, 거기에 집어넣어버린 것이다.
“좀 갱생이 됐어?”
“어……. 일단 다른 물을 들이기는 했지.”
거친 남자들 사이에서 책임감과 동료의식, 육체적 고통을 통한 정신의 각성 등을 유도하기는 했지만, 그건 부트캠프 안에서의 일이었다.
인간이란 얼마나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는지……. 사회에선 멀쩡해 보이는 인간도 한국 군대에 들어가면 이런 병신도 상병신이 있나 의심이 되는 경우가 있고, 군대에서 일등 병사였지만 제대하고 나면 3일 만에 사회 물이 들어 오전 11시쯤 일어나 간신히 식사를 챙기는 이가 있을 정도였다.
그러니 지금 오종석이 대오각성하며 과거의 방탕했던 자신의 모습을 잊은 것 같지만 지금의 극약처방이 끝나면 또 어떤 모습을 보일지 모른다.
그래도 경완이 긍정적으로 판단하는 이유는, 그나마 오종석이 마약을 처먹어도 혼자 처먹고, 남에게 권유하거나 해를 끼치진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건 오종석 자신에겐 행운이기도 했다.
만일 경완의 눈에 갱생이 불가능한 인간폐기물로 보였다면 웜홀 쓰레기통에 처넣어져서 태평양 어딘가에 불법투기 되었을 테니까.
그만큼 인간은 고쳐 쓰기 힘든 존재였다. 한 번 선을 넘은 인간은 두 번, 세 번도 넘을 수 있었다.
“그럼 한동안 일 없네?”
“응. 다시 육아에 전념해야지.”
미연이 잠시 쉬는 동안 경완이 바쁘게 움직였다면, 이제 미연도 자기 일을 해야 했으므로 육아는 다시 경완의 몫이 되었다.
“힘들지 않았어?”
“뭐 애 키우는 게 다 힘들지.”
경완은 그래도 옛날보단 훨씬 나아졌다며 미연을 다독였다.
그가 없을 때 육아를 맡았던 미연은 감탄과 함께 육아에 대해 자신감 없는 말을 꺼냈고, 경완은 그런 그녀를 다독였다.
그는 부모 노릇이 한두 번이 아니지만, 미연은 이번이 처음이 아닌가? 도와주거나 육아를 경험한 집안 어른이 있는 것도 아니니 어렵고 힘든 건 당연했다.
“걱정 마. 내가 도와줄게.”
“……이렇게 착한 남편인데 왜 사람들은 오빠 성질머리가 더럽다고 하는 걸까?”
경완은 그 말에 그저 웃었다.
솔직히 사람들 눈이 틀리지 않았다.
◈ ◈ ◈
가디언 법적지위 특별법이 가결되고 일 년 가량의 시간이 훌쩍 지났다.
한국 출신의 가디언은 1명, 하정훈이라는 경찰 출신의 초능력자였는데, 괴력 능력과 초재생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능력만 따지면 가디언이라는 간판을 달기에는 부족해 보였지만, 사실 그의 능력은 천재적인 교전 능력에 있었다. TSTG를 기가 막히게 운용하는 능력과 마치 미래를 보는 듯한 수싸움은 근접전에선 경완조차 상대하기 싫을 정도의 위력을 보였다.
그가 가디언이 된 이유는 간단했다.
이철의 연락으로 한 번 만나봤는데, 확실히 천재라고 할 수 있는 인간이었고 가디언이 되기에 충분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하정훈이 가디언이 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인사들이 참 많았다.
이철이 말하길 하정훈은 천생 형사라 편법적인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윗대가리랑 종종 충돌하는 경우가 있었다나? 능력은 좋아서 좌천 위기를 잘 회피해 왔다고 말이다.
그런 이가 경완과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한 건 최근 일어나고 있는 사건 때문이었다.
“자경단이 부활했습니다.”
“어……. 비질란스?”
경완이 고개를 갸웃했다.
“흑연이 다시 활동을 재개했다더군요.”
“그렇군요.”
이상한데. 오라클은 활동을 완전히 접었고 사망기자 역시 위버멘쉬의 감시 하에 있는데 비질란스가 다시 활동을 할 수가 있나?
요하네스 말로는 오라클은 자경 행위보단 본인 가족과 주변인의 일상이 더 소중한 사람이라 위버멘쉬에게 덜미가 잡힌 경험을 한 후론 평범한 시민으로 살 사람이라고 하던데.
“그런데 왜 그걸 저에게 말씀하시는 거죠?”
“어……. 그게 말이죠. 솔직히 말해 당신을 의심했는데 아닌 모양입니다.”
경완은 눈을 껌벅였다.
그러니까 지금 자신을 용의자로 생각했다 이 말 맞지?
하지만 고작 자경단 정도로 오해받은 걸로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강간범 따위의 인간쓰레기로 오해받은 것도 아니고, 진짜 자경 행위를 했다고 해도 손해 볼 입장도 아니었다.
미스터 디텍티브라는 히어로명으로 활동하는 하정훈이 돌아가자 경완은 한 사람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경완 씨.]
전화를 받은 이는 전직 자경단 일원, 사망기자 도재영이었다.
“흑연이 요즘 다시 활동하던데 알고 있었니?”
[……넵.]
“혹시 네가 관련됐고?”
[어……. 그건 지금 말씀드리기 곤란해요.]
“전화로 하기 곤란한 이야기라는 거지?”
[아니, 그게 아니라……. 음. 잠시 끊을게요.]
그리고 전화가 끊겼다. 경완은 무슨 일이지? 이러고 잠시 분유 타러 갔는데, 분유를 타는 동안 연락이 왔다.
경완은 계속 분유를 타면서 이어폰으로 전화를 받았는데 요하네스였다.
[혹시 도재영 씨에게 자경행위에 대해 물으셨나요?]
“네.”
[음……. 이런 말을 하긴 좀 그렇지만, 안 들키면 장땡이잖습니까?]
요하네스의 설명은 이러했다.
도재영의 자경행위는 사실이다. 사실 이런 자경행위를 하는 회원들이 전 세계적으로 한둘이 아니었다.
요하네스가 그런 행동을 못 본 척하는 이유는 하나였다.
[법적으로 해결 안 되는 미묘한 선이 있거든요.]
아무리 초능력 범죄를 수사하는 기법이 발달한다고 하지만, 기본적으로 법은 완벽하지 않다.
완벽하지 않은 법은 결국 완벽하지 않은 판결로 이어지고, 이는 앙금을 남긴다.
이 앙금을 해소하는 건 재능있는 초능력자를 빌런으로 만들지 않기 위한 요하네스 나름의 고육지책이었다.
[일종의 리스크 관리라는 겁니다. 삐뚤어진 정의감이 폭주하지 않도록 김을 빼주는 거죠.]
이는 요하네스가 위버멘쉬 같은 조직을 여러 차례 설립하고 운용하면서 터득한 노하우였다.
“그러다가 들키면요?”
[개인의 일탈이라고 치부하는 거죠. 실제로 그렇고요.]
업무 시간 외 개인 사생활을 자경활동에 쏟는 게 회사의 지시는 아니지 않은가?
“회사가 외면한다는 배신감은요?”
[저희 회사만큼 인재를 아끼는 곳도 없죠. 징역을 살다나오면 적당한 곳에 재취업 시킬 수 있습니다.]
“사람을 죽이면 무기징역 아닌가요?”
[그래서 이렇게 넌지시 우연을 가장해서 이런 생각을 심어두는 거죠. 죽이는 건 너무 쉽다. 살아서 고통을 맛보게 해야 한다. 덕분에 적어도 제가 아는 선에서 살인까지 하는 이는 없습니다.]
“거참. 허허허.”
경완은 분유통을 들고 요람으로 향하면서 낮게 웃었다. 우리 요하네스 양반은 경완이 모르는 게 좋은 블랙옵스를 운용하는 모양이었다.
“그럼 저는 모르는 일로 치겠습니다.”
[그러는 게 좋습니다.]
“그러면, 곧 흑연 그 친구는 잡히겠네요.”
[아까운 인재죠. 뭐 그래도 살인은 안 했으니까 다행이긴 합니다.]
경완은 요하네스가 말은 저렇게 해도 무기징역을 받을 정도로 사고를 친 인재를 나름 활용하는 노하우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사고사로 위장한 다음 위장신분을 만들어준다든가, 아니면 경완이 교도소에 있던 시절처럼 사설 교도소를 만들어서 호텔처럼 편하게 지내게 해준다든가.
일단 능력 좋은 초능력자는 데리고 있으면 어디엔가 써먹을 곳이 있는 법이었다.
“아우아!”
“그래, 맘마 먹자.”
경완은 통화를 끊은 후 자식의 입에 젖병을 물려주었다.
◈ ◈ ◈
흑연과 하정훈이 충돌한 건 그로부터 나흘 뒤였고, 세상 사람들은 그 여파에 S급 초능력자를 다시 볼 수밖에 없었다.
건물이 무너지고 땅이 뒤집어지고 갈라지고. 흑연은 체포되었지만, 그로 인한 재산 피해만 추정 400억이나 되었다.
경완은 흑연이 체포된 이후 하정훈의 연락을 받았다. 흑연이 자신을 만나고 싶다고 했다나? 혹시 만나게 해주면 용의자의 입이 열릴까 봐 경완에게 부탁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만나러 갔다.
“저를 만나보고 싶었다면서요?”
“네. 아무리 생각해도 왜 그때 절 놓아줬는지 이해가 안 돼서요.”
‘왜 그때 절 놓’라는 문구를 듣자마자 황급히 능력을 전개해서 소리를 틀어막은 경완은 애써 웃으며 말했다.
“왜 그리 사람이 조심성이 없어요?”
“죄송합니다.”
고개를 푹 숙였던 청년은 고개를 들며 경완에게 자신의 질문에 대한 대답을 요구했다.
“그냥 뭐 기분 따라 간거죠.”
“전 결국 범죄자잖습니까?”
“거참. 제가 뭐 대단한 준법 시민이라고 생각해요? 전 그냥 이해득실을 따졌을 뿐이에요.”
법을 지키는 게 이득인가, 아닌 게 이득인가?
물론 거기엔 개인의 성미가 판단의 주요한 기준이 되지만, 경완은 ㅈ같은 법을 억지로 지키려고 하지 않았다.
평범한 사람은 방조죄가 무섭겠지만, 경완은 별로 무섭지 않았다. 아니, 그는 법이 별로 무섭지 않았다.
그 말에 침묵을 지키며 고뇌에 빠진 흑연의 모습에 경완은 체포 과정에서 뭔가 심경의 변화가 있을 법한 경험이 있지 않았을까라고, 생각했고 그건 사실이었다.
“하 경사님이 말씀하시더군요. 제가 한 일은 정의가 아니다. 그저 자기만족이다.”
“몰랐어요?”
경완의 반문에 흑연은 고개를 들었다.
“정의(正義)가 뭔지 정의(定義)할 수 있어요? 전 모르겠던데?”
사람마다 정의의 기준이 다르다는 건 너무나 진부한 이야기였고, 경완에게 남과 정의(正義)가 뭐니, 이래야 하느니 저래야 하느니 따지는 건 너무나 지겨운 짓이었다.
그래 내가 좀 틀릴 수도 있지. 그렇다고 내가 저 새끼를 조지고 싶지 않은 건 아니잖아? 그래도 네 말이 맞으니 죽이진 않고 반쯤 죽이는 걸로 할까? 라는게 경완의 입장이었다.
“정의(正義)같은 진부한 개념은 알아서 고민하고 일단 집주소랑 가족 사항부터 말해봐요.”
“그건 왜요?”
흑연의 눈에 경계의 빛이 서렸다. 경완이 대답했다.
“일단 가족들부터 피신시켜야죠. 댁이 저지른 짓이 정의인지 아닌지 따지기 전에 원한을 쌓는다는 건 알아야죠.”
“……왜 그렇게 호의를 보이십니까?”
경완이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나도 반골이라서 남일 같지가 않다고나 할까?”
그 말에 흑연도 그만 피식 웃고 말았다.
이후 흑연에 대한 재판과 그의 가족에 대한 보복 시도를 둘러싸고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지만, 결과는 간단히 말할 수 있었다.
대한민국의 그 어떤 권력자도 경완이 보호하는 자에게 해를 끼칠 순 없었다.
그리고 흑연은 강원도에 세워진 위버멘쉬 초능력자 전용 교도소에서 편안하게 지내며 종종 대중에게 공개할 수 없는 일을 맡았다.
“역시 경완 씨 입니다. 좋은 인재를 얻었군요.”
아무리 장비가 부실했다지만 가디언 하정훈을 상대로 1시간가량이나 맞상대한 흑연의 능력은 인정할 만했다.
오죽하면 미국 등지에서 흑연을 찾아와 신분세탁을 해줄 테니 자기네 나라에서 새출발을 하자고 할까?
하지만 흑연은 그것을 거부하고 한국에 남았다. 이유는 단순했다. 도망가기 싫어서.
그는 자신이 저지른 자경행위를 후회하지 않기로 했다.
“덕분에 항의가 엄청나더라고요. 하정훈 씨도 잔소리하고요.”
“하하하!”
요하네스는 그 말에 웃음이 나왔다. 언젠가 경완이 했던 이야기가 떠올라서였다.
‘사람을 고쳐 쓰려다간 답답증이 와서 못 할걸?’
사람의 기질은 타고나는 거다. 아마 흑연도 그럴 것이다. 반골이 반골을 만났으니 흑연의 롤모델은 아마 경완이 아닐까?
요하네스는 그런 말을 꺼내진 않았다. 경완이 질색할 얼굴이 눈에 선했기 때문이다.
그는 대신 화제를 전환했다.
“연완이는 잘 자라고 있죠?”
“물론이죠. 요새는 기기 시작해서 위험한 물건 정리하고 모서리에 패드 붙인다고 좀 바빴죠.”
경완은 잠시 육아에 관해서 썰을 풀기 시작했다.
요하네스는 경완의 입가에 서린 미소를 보며 생각에 잠겼다. 아아, 저 사람은 몇 번을 회귀해도 여전하구나 하고 말이다.
- 완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