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국 로또로 역대급 재벌!-2화 (2/250)

2. 이를 어쩐다?

“내가 말입니다! 더러워서 때려치운다 이겁니다! 네? 부장님!”

“...”

멸망의 날 저녁.

나는 생산부 이재하 부장과 소주를 기울이고 있었다.

대성 어패럴의 본사 직원은 모두 서른다섯 명.

의류회사 특성상 디자인실, 패턴실, 인터넷팀 등이 모두 여직원으로 채워지다 보니, 남자 직원은 영업부와 생산부 십여 명이 전부였다.

그래서, 술 좋아하는 사람들이 부서를 떠나서 자주 뭉쳤고, 그중에서도 이재하 부장은 내 멘토와도 같은 사람이다.

내 무참한 기분을 알고서 이 부장이 먼저 제안한 술자리는 이미 테이블에 소주 다섯 병이 널려 있을 정도로 만취한 상태였다.

“아니 대체 내가 뭘 잘못했냐고요? 네?”

“야! 어디 하루 이틀이냐? 이런 거지 같은 회사에 들어온 네가 잘못한 거지?”

“그죠? 그러니까 때려치운다고요!”

“알았어, 자식아! 때려치워! 내가 항상 말했잖아? 대체 젊은 놈이 왜 이런 회사에 버티고 있냐고? 나 같은 늙다리들이나 갈 데 없으니까 버티는 거지만?”

“흐흐흐! 부장님이 내 맘을 잘 알아요!”

“지랄! 마셔 자식아! 오늘은 좋은 날이다. 네가 드디어 회사를 때려치우기로 결심한 날 아니냐?”

“크크크! 그게 전부가 아니거든요.”

“응? 또 뭔데?”

“나 차였어요.”

“엉? 차이다니? 누가? 네가?”

이 부장도 이건 예상외였는지, 벙찐 표정으로 되물었다.

“얍! 멋지게 차였습니다. 흐흐흐!”

“야! 너 두 달 전까지만 해도 나에게 소개도 해주고 그랬잖아?”

그랬었다.

이 부장과 술을 마시다가 연주에게 연락이 와서 자연스럽게 좋아하는 형님이라고 소개도 했었다.

그때까지는 좋았으니까.

“그렇게 되었어요.”

“무슨 일이 있었던 건데?”

“특별한 일은 없었는데, 딴 놈이 채갔더라고요.”

“뭐야? 양다리였어?”

“그건 아니고, 한 석 달 전부터 나에게 자랑하듯이 회사 2세가 자길 꼬시려 한다고 했었거든요.”

“2세가? 2세라면 동양 어패럴 2세? 걔 동양 다닌다며?”

“네”

“그런데?”

“처음에는 내가 불안해서 물어보니까, 키도 작고 되게 못생기고 재수가 없다고, 오빠가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고 해서 같이 웃었거든···. 그런데, 얼마 전부터 좀 수상한 거야. 약속도 야근 있다고 가끔 펑크내고, 이유 없이 내게 짜증도 부리고요.”

“...”

그리고, 못 보던 똥가방 같은 것도 들고 다니기 시작했다.

내가 워낙 명품이나 그런 쪽으로는 무심한 놈이라 잘 모르지만, 기백은 하리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물어보니, 어머니가 사줬다고 하였다.

원래 연주네는 꽤 사는 집이라 그런가 보다 하였고.

“그러다가 한 달 전부터는 자주 연락이 안 되었어요. 내심 초조하기는 했는데, 설마 별일이야 있으랴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더라고. 이틀간 아예 깨톡도 읽씹하더니, 다른 사람이 생겼다고 문자질이 왔어요. 오빠는 좋은 사람이라나? 푸하하하!”

“니미럴! 그 빌어먹을 놈의 오빠는 좋은 사람 멘트는 어떻게 세월이 가도 변하질 않냐? 그래서? 가만있었어?”

“가만있기는? 깨톡에 자기 부서도 바꿨으니, 이젠 매장에서 볼일도 없을 거라고 썼더라고. 그게 이상했어요.”

“응? 그거 정말 이상한데? VMD가 이직한 것도 아닌데, 어딜 다른 부서로 가?”

“그러니까, 내 말이”

VMD(Visual Merchandising)는 매장 디스플레이 디자인을 하는 부서로, 우리같이 백화점 같은 대형 유통업체에 매장을 가지는 패션 회사는 회사마다 있는 부서다.

내가 연주를 만난 것도 이웃 매장에 연주네 회사가 들어오면서 티격태격하다가였고.

그만큼 전문적인 부서라 회사 내에서 다른 부서로 이직하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 이야기다.

“사장한테 박살이 나고서 옥상에서 담배 피우다가 그딴 문자를 봤으니, 내가 얼마나 멘붕이 왔겠어요?”

“캬! 너 오늘 완전 날 잡았구나! 거의 예술이야 예술!”

아니 뭐 예술까지 나가나?

그리고, 왜 이리 좋아하는 건데?

“하여간 그래서 동양에 김 대리라고 있어요. 아시잖아? 우리 영업부는 웬만하면 서로 다 아는 거?”

“영업이야 원래 그렇지”

“꽤 친하게 지내는 놈이고, 동양에서 연주와 내가 사귀는 거 아는 유일한 놈이거든. 그놈에게 전화해서 물었지. 연주 다른 부서로 이동하냐고?”

“그래서?”

“그랬더니, 그럽디다. 그만 잊으라고”

“그건 또 무슨 소리야? 그놈이 연주와 너 깨진 것을 어떻게 알아?”

“크크큭! 여기가 포인트요. 연주가 만난다는 다른 놈이 바로 동양 2세더라고”

“오잉? 정말?”

“나에게 말을 못 해서 그렇지, 동양에서는 직원들 사이에서 말이 많았데요. 두어 달간 2세 놈이 연주에게 꽂혀서 선물 공세하고 난리도 아니었다나? 그런데, 오늘 연주가 뜬금포로 발령이 났는데, 부서가 어디게요?”

“임마!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경영지원실!”

“경영지원실? VMD가 거길 왜 가? 아! 혹시?”

“흐흐흐!”

“아니 그럼 썸타는 수준이 아니라, 결혼하겠다는 소리 아냐?”

아무리 2세라도, VMD를 생뚱맞게 경영지원실에 멋대로 넣지는 못한다.

그렇다면, 동양 사장과도 이야기가 되었다는 말이고, 결혼을 시키겠다는 소리와도 같았다.

“그렇지 뭐”

“아니 그럼, 석 달 전에 그 새끼가 지분거리기 시작할 때부터 썸탔다는 소린데? 너와는 그사이에 양다리 걸친 것이고? 햐! 그년 얼굴값 하네?”

“뭐 이년 저년은 하지 말아요. 제 딴에는 고민한 것 같더구먼···.”

“지랄한다, 병신! 넌 어떻게 된 것이 맨날 호구나 잡히냐? 오빠는 좋은 사람? 에라이 등신아! 넌 새끼야 사람이 너무 좋아!”

“...”

할 말이 없었다.

내 천성이니까.

아니 우리 집안 가풍이다.

그래서 아버지도 쫄딱 망하신 거였고.

“야! 마셔! 마시고 잊어!”

“얍!”

오늘따라 술이 쓰게 들어갔다.

“캬! 내가 지금 와서 하는 소린데, 너 똑똑히 들어”

“네”

“어차피 너희 둘, 전혀 어울리지 않았어.”

“왜요?”

“새끼야! 그렇게 이쁜 애가 너를 왜 만나냐? 허우대만 멀쩡하지, 가진 것도 개뿔도 없는 거지 아니냐? 아니, 그 좋았던 허우대도 요즘 살이 쪄서 망가졌지? 그리고, 막말로 네가 차가 있어, 뭐가 있어? 그렇다고 직장이 좋기나 해? 너 연봉 3천? 야! 네 나이에, 6년 차에 과장인데 3천? 한 달에 실수령액이 얼마냐? 250이나 되냐?”

“큭! 250이면 좋게? 세금하고 4대 보험 떼면 220 조금 넘지”

“니미럴! 더럽게 적네? 하여간 생각보다 더 거지구먼? 알고 보니 이 새끼가 나쁜 새끼였네? 너 같은 거지가 감히 그렇게 이쁜 애를 사귀어? 에라이! 나쁜 새끼야!”

“푸하하하!!”

눈물이 찔끔 날 정도로 웃었다.

내가 이재하 부장을 좋아하는 이유가 바로 이거다.

지독한 현실주의자에 독설가.

이 부장의 독설을 들으니 정말 내가 나쁜 놈 같았다.

언제나 객관적인 시각으로 내 분수를 알게 해주는 고마운 분이다.

“잊어버려! 이건 정말 너를 위해서 하는 소린데, 꼭 그놈이 아니었더라도, 너희 오래가지는 않았을 거야”

“고마워요, 형님”

“새끼가 꼭 이럴 때만 형님이라고 하지?”

“나 회사 나가면 매일 형님이라 불러드릴게”

“그래라”

이 부장 덕분에 내 분수를 알기는 했는데, 비참하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그렇게 다시 침울해진 상태로 술 몇 잔을 더 들이켰는데, 술집 TV 뉴스에 눈길이 갔다.

- 미국의 로또, 파워볼이 연일 이월이 되어, 미국 복권 사상 최고 당첨금을 계속 갱신하여 무려 18억 달러, 우리 돈으로 2조 원을 넘어서 미국에 로또 광풍이 불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뉴욕의 안지만 특파원 나와주세요.

“우와와! 2조 원? 역시 천조국은 로또도 끝내주는구나?”

내 시선을 따라서 뉴스를 보던 이 부장도 탄성을 지르며 천조국 복권의 스케일에 놀라워했다.

“그죠? 저거 당첨되면 대성이고 동양이고 싹 사버릴 수 있는데?”

“미친놈! 2조 원을 가지고 골치 아프게 의류회사를 왜 사냐? 그냥 편하게 놀지?”

“흐흐흐! 맞다!”

“근데 저거 국내에서는 못 사나?”

“뭐 구매대행으로 살 수는 있다는 데, 실제로 당첨되었을 때 수령이 가능한지는 말이 많나 봐요.”

“그래? 젠장! 우리도 로또 금액 좀 올리지, 실수령액 10억이나 20억이 대체 뭐냐? 그거 가지고 인생역전을 어떻게 하라고?”

“누가 아니래요?”

요즘 우리나라 로또는 이월도 되지 않고, 한 번에 심하면 열댓 명씩 1등 당첨자가 나오다 보니 세금 떼면 10억에서 20억 사이가 보통이란다.

그걸로 인생역전?

택도 없는 소리다.

뭐, 인생역전 하는 데에 발판 정도는 될 수 있겠지만.

그런데 2조라니!

저 금액도 현재 당첨액이고 우리 시각으로 일요일 낮에 추첨할 때까지는 얼마가 더 늘어날지도 모른단다.

심지어는 유명인이나 주지사 같은 정치인까지 파워볼 구매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고 하니까.

한번 구매대행 사이트나 찾아볼까?

신뢰성에 대하여 말이 많은 것 같지만, 어떠냐?

꿈이라도 꾸어 볼 수 있지 않나?

당첨금액 2조라니···.

한창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는데, 술집의 문이 열리면서 회색의 인영이 조심스럽게 들어오는 것이 눈에 띄었다.

파르라니 깎은 머리에 자그마한 키, 그리고 회색의 가사.

탁발승이다.

그런데, 다른 테이블을 돌고 있는 모습을 보니, 여자 승려, 즉 비구니였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 테이블 차례.

“어려운 아이들을 돌보고 있습니다. 작은 정성이라도 시주 부탁드립니다.”

가까이서 합장을 하는 모습을 보니, 의외로 연세가 많은 할머니 여승이었다.

“에이! 왜 이러세요? 우리나라에서 종파 불문하고 탁발을 금지한 것이 언제인데요?”

이 부장이 현실주의자이자 독설가답게 탁발금지까지 들먹이며 거절하였다.

그런데, 내 마음은 또 그게 아니었다.

술집에서 흔히 보는 껌을 파는 할머니나 아줌마는 여태껏 거절해 본 적이 없었으니까.

그리고, 지하철이나 지하도에서 구걸하는 사람들도.

사기면 또 어떤가?

그깟 5천 원, 1만 원 드리고 내 마음이 편하면 그만인 것을.

그리고, 그런 분들이 껌 팔아 사기 쳐서 부자가 될 것도 아니고.

아닌 말로, 나한테 사기 쳐서 한 끼라도 좋은 음식을 먹을 수 있으면 나는 만족한다.

내가 주섬주섬 지갑을 꺼내려 하자, 이 부장이 또냐? 라는 표정으로 나를 보면서 입을 열었다.

“하여간 너도 참! 어지간하다! 어떻게 한 번을 못 거르냐?”

“이제 알았수? 나 원래 이러는 거 처음 보는 것도 아니잖아요?”

“하여간 오빠는 좋은 사람이라니까? 너무 좋아서 탈이고?”

“에이 진짜! 그 이야기는 왜 나오는데?”

나도 짜증을 내면서 주섬주섬 지갑을 뒤지는데, 어라?

5만 원짜리 딱 한 장만 있고, 5천 원이나 1만 원짜리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 하지?

거슬러 달라고 할 수도 없고?

“형님”

“왜?”

“만 원짜리 하나만 주세요. 이따가 뽑아다 드릴게”

“잘한다, 잘해! 이제 빌려서도 주냐? 없어 자식아!”

“에이, 그러지 말고 한 장만 달라니까요?”

“진짜로 없다니까? 봐봐!”

지갑을 꺼내 탈탈 터는 이 부장.

진짜로 현금이 없다.

이를 어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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